진리를 왜곡시키고 종교화한 바울
여러분의 세계에서, 이 드물게 얻어지는 결정determination이
'성스러운 깨달음'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몇몇의 위대한 영적 마스터들이 이 결정에 도달하였으며 그 지식을
그들의 사도(제자)들에게 전수하였습니다.

이 사도들의 대다수는 그들의 뒤죽 박죽된 생각 속에서

이 가르침을 잃어 버렸고

그리하여,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제대로 전승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리하여, '깨달음enlightment'은 전혀 정확하지 않은

거짓된 개념이 되어 버렸습니다.

                             ㅡ 은하연합의 메시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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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예수의 모든 역할이 그를 믿는 신앙인들을 그들의 죄 의식과 비참함,
그리고 사탄의 힘으로부터 해방시킨 그의 죽음에 그 핵심이 있다고 가르쳤다.
사실상 바울이 서신에 쓴 한 마디 말이 예수의 실제적인 가르침을 의미하는것은 아니며,
그는 심지어 그의 비유 가운데 어느 하나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대신 그는 단지 자기 자신의 철학과 사상만을 전개시키고 있다.

바울은 모든 사람들을 분노의 자식들,
즉 하느님의 진노를 받기 쉬운 자녀로서 그 성격을 규정시키는 경향이 있다(에베소서 2장 3절).
모든 사람들은(예외없이)희망도 없고 하느님도 없이(에베소서 2장 12절)
버림받았다(예컨대, 로마서 5장 18절, 고린도전서 15장 18절).
왜냐하면 사탄이(예이없이)
모든 사람들에 대한 지배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로마서 3장 9절, 갈라디아서 3장 22절, 골로새서 2장 14절).
천벌의 의미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모클레스 Damocles의 칼처럼 따라다닌다. (예컨대 로마서 5장 16절).

따라서 인류의 교사로서 바울은 그의 <위협적인 소식>을 <즐거운 소식>으로 만들었으며
<오직 그>만이 구원의 길을 보여 줄수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물론 그러한 태도로 모든 사람이 죽음에 대한 본질적 견해에 이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태도는 죽음을 마치 죄의 해결책인양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종교 속에서도 바울의 기독교에서와 같은 죽음의 공포에 대한 그 같은 교화를
발견할 수가 없다.
바울 때문에 기독교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기독교도들이 두려움의 멍에 밑에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는 종교가 되었다.
그 종교는 이미 친절하고 모든 것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예수의 하느님의 개념에서 벗어나
바울의 말에 의해 생성된 진노한 구약의 하느님이라는 미숙함으로 되돌아갔다.

핵심은 바울이 정확히 명시한 말,
즉 구원받기 위해 인간 개개인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가장 가슴에 와 닿게 된다. (로마서 3장 24절, 3 장 28절, 9장 11절, 9장 16절 ; 고린도 전서 1장 29절 ; 갈라디아서 2장 16절 참조).

바울에 따르면 구원은 오직 하느님의 은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에베소서 2장 8~9절)
따라서 바울의 교리는 구원을 하느님을 위한 일방적인 일로 만든다.
즉 사람들은 지상에서 제한된 능력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로마서 3장 24절, 4장 16절;
에베소서 2장 5절, 2장 8~9절 ; 디모데후서 1장 9절 ; 디도서 3장 5~7절 참조)

여기서 바울이 말한 것은 물론 매우 그럴 듯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매우 편리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교회에 가입하기만 하면 구원은 <자동적으로>보장받는다.
따라서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노력은 삶의 목표에 도달하는 데는 하등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기독교도들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희생적 죽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사람들이 이러한 <교회>에 참가하여 <회비>를
지불하기만 하면(이상하기도 하여라!)
영원한 천국에 자리를 확보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히 그러한 가르침은 많은 지지자들을 끌어들였고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결국 안전하고도 편안하게 얻을 수 있는 어떤 것을 믿기란 훨씬 더 쉬운 일이다.
단지 개종하는 행위에 의해 속죄되었고 구원받았으며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완벽하게
새사람이 된다.
이러한 가르침에 따르면, 예수의 역할이 경시된 구원행위를 위해 개인 각자가 시도하는
모든 노력은 심지어 죽을 죄가 되기도 한다.
반대로 모든 사람이 아무리 그들의 삶을 모범적이고 선하게 산다 해도 만약
그들이 십자가 위의 희생을 전적으로
그들 개인의 구원을 이루는 것으로 깊이 인식하지 못한다면
버림받게 된다고 이 기르침은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의 위대함과 독특함이 이 가르침의 진리와 더불어 지탱되거나
쓰러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자세히 조사해 보면 이런 생각은
예수의 실제 사상과는 너무 동떨어지 거짓말임을 알 수 있다.

복음 안에서는 소위 구원에 대한 기독교교리에 대해서는 암시조차 없다.
예수의 메시지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산상수훈> 안에나 또는
주기도문이나 예수의 전통적인 비유 안에도 없다!
실제로 그런 구원이 그토록 중요했다면, 예수는 그의 <희생적인 죽음>이 인류의 구원을 의미한다는
약간의 암시만이라도 주었을 것이다.
아무리 사실에 대해 의도적으로 억제를 한다 해도 그의 살아 있는 윤리를 다가릴 수는 없었을것이다.
예수는 그의 메시지나 길에대한 학계의 이론들을 뒷받침할 만한
어떤 이론도 제시한 바가 없다 ㅡ 그는 단지 자신의 가르침대로 살았을 뿐이다. !
관용, 편견 없이 남을 받아들이는 것, 주고 나누어 가지는 것,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짊어질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서 무한한 사랑의 행위와 이웃을 위한 봉사 ㅡ 이런것이 바로 예수가 구원으로 보여 준 길인 것이다!

                                                               ㅡ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 고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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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진리를 왜곡한것이 바울뿐이었으리
교황청은 윤회설을 말살하였고 로마는 자신들의 정치의 구심점을
만들기 위해 교리를 조작했으며 어둠의 비밀세력들이 그러했다.

이 외에 성경은 4번씩이나 번역되면서 본질과 달라졌고
나운몽 목사는 정정해야할곳이 무려 1 만군데가 된다고 하였다.

이런책이기에 이렇게 왜곡되고 본래의 진리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졌기에
은하연합에서 마스터들은 이러한 것이 어디가 잘못되었는가 원문과
비교하며 몹시도 바로잡아 주고 싶어한다고 하였다.

하물며 이러한 조작된 책(도맥이 끊긴것은 불교뿐만 아니라
기독교도 마찬가지임)을 기독교인들에게만 속하지 않고
영적 성장의 단계에 따라 모든이에게 영적 양식이니 하며 남에게
젖먹이 운운하며 스스로 딱딱한것을 먹어보았다고 말하는가

정말 딱딱한것을 먹어보았다면 지금의 조작된 부분이 어디이며
예수님의 본래의 진리 말씀을 성경책과 관계없이 아는가를
살펴보아야하고 구약의 게마트리아적 비의를 해석을 할수 있기라도
하는가 되물어 보아야 할것이다.

이러했기에 증산님께서 신약을 불태울만 했던것이고
신약은 사라져야할 책이며 노스트라다무스도 그 때 영적 황금시대가
되면 이러한 책들 -신, 구약은 소각되고
더 이상 없을것이라고 예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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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을 조종하던 이들은 여러분을 고립시키는 연구를 했음에도 불구
하고, 여러분의 그 힘을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향후 멀리까지 영향력을 미칠 교육 프로그램을
여러분께 소개할 시간입니다.

상승한 마스터들이 이 과제를 감독할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분 각자에게 비밀 통치자들이 존속하는 사회적 신념들을
얼마나 왜곡시켜 놓았는지 몹시도 보여주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이 거짓말들을
새로운 원문과 새로운 가르침을 제공함으로써
거짓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진리로 바꿔놓기를 원합니다.

친애하는 하나의 여러분! 그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케 할 것입니다.
물리적 창조계에서 여러분의 자리를 이해할 수 있게 함으로써요.

                                            ㅡ 은하연합의 메시지에서




황금독수리  :  현재 시점에서 한 사람의 의식의 각성 정도를 가늠하는 방안은
그 사람의 종교에 대한 태도를 보면 거의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가 지식의 있고 없고를 떠나서
종교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각성의 수준이
너무 낮아서 현실의 진실된 면모를 보기에는 역부족인 사림이고
종교를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제대로 각성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이곳 크라이온 넷이 가치가 있는것이며
기존 종교가 인류를 영적으로 성장시킨다면, 이곳이 무슨 존재이유가 있겠는가 ?
고로 종교에 길이있고 진리가 있다고 믿는 사람은 그 종교에 귀의하면 될 것이고 이곳을 기웃거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매우 나쁜것은 이곳을 기존 종교의 교의로 물들이고자 하는 시도들이다.
그런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싸이트를 만들거나 그런곳으로 가야 마땅할
것이다.
이곳이 기존 종교의 주장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존재가치가 없어지게 된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어떤 종교든지 기존 종교의 낡은 교의를
이곳에 퍼트리지 말기 바란다.
이곳은 빛을 지향하는 곳이지 어둠을 향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며
빛과 어둠은 그 위상이 정반대 이므로 결코 공존할 수 없다.
빛과 어둠의 통합은 그 의미가 어둠의 영향하에 떨어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 불분명한 의미와 오해의 소지를 이용하여 어둠의 존재들은
인간들을 어둠으로 추락시키려고 현재도 무던히 노력하고 있다.
물론 겉으로는 빛으로 가장한체 말이다.
양의 탈을 쓴 늑대에 속지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