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대 K전교수의 사건으로 인하여 교수의 학과내에서의 튀는 행동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저의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서 이 글을 올립니다.

저도 처음 부임했을 때 학과내의 부조리를 보고 정말 답답했습니다.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욕을 참느라 꽤 애를 썼습니다. 대표적인 부조리 중에 학위심사 문제가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박사학위심사에 참여했을 때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당연한 “관행”이었지만, 제가 이해를 못하겠는 게, 학위심사를 시내에서 호텔방을 잡아서 하는 겁니다. 심사위원들은 호텔에서 논문은 보는 듯 마는 듯하다가 저녁에는 나가서 저녁을 먹고, 술대접까지 받고, 돌아갈 때는 거마비까지 받아 챙기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비용은 학생이 지불하더군요. 제가 부임한곳이 모교인지라 저는 후배들로부터 들어서 이런 일에 대한 불만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갓부임한 초짜라 감히 말도 하지 못했지요. 그러나 불만은 제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가 “관행”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학위심사후 마지막 도장을 찍는 날이었습니다 (소위 최종심사지요). 학생의 지도교수님이 심사비라는 명목으로 제법 두툼한 봉투를 돌렸습니다. 저는 봉투를 받아 챙기고 “관행”을 따르든지 아니면 봉투를 팽개치고 거기 계시는 모든 심사위원들과 대립각을 세우든지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했을까요? 결론적으로 저는 선택을 미루었습니다.
학생을 밖으로 불러내어 남몰래 봉투를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심사위원들 중에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던 선배를 찾아가서 말씀드렸습니다. “형, 우리가 후배의 돈을 꼭 받아야 되겠어요? 이제 우리세대에는 이런 일은 없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형, 심사비 돌려주세요” 그 선배가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쉬쉬하고 있었는데 말 잘했다. 나도 그렇게 학위심사 받았지만 이제는 그래서는 안되지. 근데 난 심사비 이미 돌려줬는데?”하시더군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 뒤 조용히 물밑으로 교수님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성 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때를 기다렸지요. 마침내 제가 첫 박사를 배출할 때가 되었습니다. 저는 선배교수, 타학교에서의 외부심사자 한 분 그리고 노교수님 두 분 이렇게 심사위원을 위촉했습니다. 외부심사자와는 미리 서로의 학교에서 이런 관행을 없애보자는 약속을 했습니다. 제 학생의 심사 첫날 외부심사자가 미리 약속했던대로 "심사는 연구실에서 할 것 그리고 관행적인 심사비는 없는 것이 좋겠다"는 발언을 해주었고, 선배가 맞장구 쳐주었습니다. 불만을 가지신 노교수님 두 분께는 “아이고, 선생님 이제 우리도 이렇게 한 번 해보입시더. 제 첫제자인데, 제가 외국생활 오래 했고하니 미국식으로 한 번 해보입시더 (크! 미국식이라니요)” 응석반 진담반 섞어 제가 쐐기를 박았습니다. 노교수님 연구실에 불려가서 제가 개인적으로 한 번 혼이 나긴 했습니다만, 결국 선생님들도 변화를 추인해주셨고 제가 바라던 대로 우리학과에서 이런 부조리는 없어졌습니다. 이 일은 이웃학과에서도 일어난 변화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외부심사자의 학교에 제가 학위심사를 하러 갔을 때, 미리 약속한대로 저는 똑같은 발언을 해주었고(외부심사자는 손님의 입장이고, 그 학교의 인간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스러우므로 이런 발언을 하기가 쉽고, 발언에 힘이 실릴 수 있습니다), 그 학교에서도 이후 그런 관행은 없어졌다고 합니다.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최종심사일에 봉투를 내팽개치고 대립각을 세웠다면 어땠을까요? (학부)학생들에게 이런 사실을 들어 다른 교수님들을 비판했으면 어땠을까요? 저야 속이 시원했겠지만, 개혁은 훨씬 늦게 오지 않았을까요? 뿐만 아니라 저는 어떤 경우에도 교수들의 다툼에 학생들을 개입시켜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첫째 이것은 (비판하는 자신을 포함한)교수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리는 일이고(제가 좀 고루합니다^^), 둘째 학생들이 정의감에 불타서 들고 일어나면, 학생들은 순수하므로 앞뒤를 재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피해는 학생들이 보는 수가 많을 것입니다. 절대로 (저의 경우에는 사랑하는 후배도 되는) 학생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며, 학내의 부조리는 교수님들의 책임이고 교수님들이 풀어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의 은사이시기도한 노교수님들을 - 지금은 다들 퇴직하시고 제가 가끔씩 인사드리러 갑니다만 - 비방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그런 일이 관행이었고, 그 분들도 자연스럽게 관행을 따른 것이지요. 지금도 저의 돌출행동을 조용히 추인해주신 그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저의 짧지 않은 교수생활에 그래도 자랑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일과 대학원생들의 인건비문제를 해결한 것이었습니다. 저 아니라도 시대는 변하고 있습니다만, 그 변화를 제 손으로 이루어낸 것입니다. 대학원생인건비문제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따로 한 번 글을 올리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