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란시아서 글 64 편은 약 100만년 전부터 지구상의 원시 시대의 인종이 분포되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쳐서 환경변화와 자연적인 진화의 결과로 곳곳에 흩어지는 인종들의 모습을 세밀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제 1번째 계시인 달라마시아 행성영주 시대가 막이 오르고, 이후 30만년 동안, 루시퍼의 반란으로 유란시아가 고립이 될 때까지, 순조로운 진화과정을 겪으며 유란시아 유색인종들의 지구 곳곳으로 확대되기 시작했음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비록 행성은 고립되었으나, 그 이후 15 만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발전을 거듭하였으나, 더 이상의 영적 진화는 벽에 부딪치고, 점점 쇠퇴하게 되자. 2 번째 계시인 아담과 이브가 도래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가 대략 3만 5천년 전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가 원했던 생물학적인 차원 상승 계획은 일부 실패하게 되었고, 그 나마 성취한 아담의 자손들이 원래의 계획에 따라 인간들을 생물학적으로 상승시키기 시작했지요. 이렇게 이담의 피를 수혈받은 각 인종들이 탄생하기 시작하는 때가 약 30,000 년 전이며, 이 초기의 아담의 피를 수혈받은 인종을 "앤다이트" 라고 부르며 글 78편에서 소개하기 시작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00 년 전에, 이들 "앤다이트"들은 지구 곳곳으로 엄청나게 퍼져나가기 시작하는 데, 이러한 종족의 혼합이 "앤타이트" 종족이 탄생된 후 약 20,000 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글 78편 1장)

앤다이트와  그들의 혼혈 종족이, 비록 생물학적으로 뛰어난 잠재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들만이 당시의 최고의 영적 이상을 달성했거나, 또는 높은 문명을 이록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아담과 이브가 당도하기 전에, 이미 인류가 달성한 최고의 문명이 곳곳에서  명맥을 유지하면서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영적 깨우침과 문명이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이 책의 설명을 참고하면, 좀 더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만약, 인류의 찬란한 문명과는 관계없이, 인종적인 관점에서만 우리나라의 형편을 살펴보면 유럽과 아시아 대륙이 이어지는 지리적 요건, 즉 북방 통로를 통하여 이주하는 "앤다이트"의 이동 경로를 살펴보면 아시아의 북방 계열이라는 우리나라 민족이 "앤다이트"의 이동 경로에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가 건국되었다는 4,300 전 경의 메소포타미아와 중국의 상황과 함께 단군과 고조선의 활동영역을 살펴보면, 굳이 우리나라의 민족 혈통을 따진다면 "앤다이트"라고 결론 지을수 있습니다.

유란시아 책에서 설명하는 몇가지 귀절도 이러한 사실을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아래 문단에서는, 이미 남방계에 속한 중국의 한족이 찬란한 문명과 나름대로 통일된 대국을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북쪽에서의 북방 민족으로 크게 진보하게 되었음을 설명하는 귀절이 있습니다.

글 79 편 6 장 12절에서는, 중극의 북쪽은 한족이 지배한 곳이 아니라, 앤다이트가 몰려 올때까지 비어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중국의 북쪽을 차지하고 있던 종족으로는 우리나라가 아마도 대표적인 종족의 하나라고 말할 수도 있지요.

" 중국은 서쪽으로는 산들에 의해서 그리고 동쪽으로는 태평양에 의해서 보호를 받았다. 오직 북쪽으로만 공격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으며, 적색 인종의 시대부터, 후대의 앤다이트 자손들이 도래할 때까지, 북쪽 지역은 어떤 공격적인 종족에 의해서도 점령되지 않았었다."[79:6.12]

물론, 중국의 북쪽을 위치하고 있으면서, '싱랑톤'(10 만년전의 지도자)의 중국을 침공하곤 했던 민족이 모두 순수한 "앤다이트"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울 공격할 수 있었던 북쪽 민족은 오로지 새로이 도래한 앤다이트와 그의 혼혈이라고 볼 수는 있습니다.  

우선,  중국이 대표하는 황색인종은...

"300,000년 전에 황색 인종의 본대(本隊)가 남쪽으로부터 해안을 따라 이주하여 중국으로 들어갔다. 매 1,000년마다 그들은 점점 더 깊숙이 내륙으로 들어갔지만, 티벳으로 이주한 동족들과는 비교적 최근에 이르기까지 마주치지 않았다."[79:5.3]

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그 다음, 북쪽지역의 종족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적색 인종과 황색 인종 사이에 있었던 오랜 세월 동안의 이 이야기는 유란시아 역사에서 하나의 서사시(敍事詩)와도 같다. 200,000년이 넘는 기간동안 이들 두 우수한 인종들은 더욱 격심하고 끊임없는 전쟁을 벌였다.....순수한 적색 인종이 마지막으로 아시아를 떠난 지 85,000년이 지났지만, 오랜 기간의 투쟁은 승리를 거둔 황색 인종에게 유전적인 흔적을 남겨 두었다. 안돈 자손인 시베리아인들과 함께, 북부 지역의 중국 민족들은 적색 종족을 많이 닮았으며 그것에 의해서 상당한 정도의 유익을 얻었다." [79:5.5, 6]

그리고 중국 문명이 새롭게 황금기를 맞이하는 노자, 공자의 시대가 오기까지 "앤다이트"의 도래는 중국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앤다이트들의 도래와 함께 시작되었던, 중국 문명의 발달기(發達期)는 그리스도 이전 6세기의 엄청난 윤리적, 도덕적, 반(半)종교적 각성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중국의 전승(傳承)은 과거의 진화에 대한 어렴풋한 기록을 보존하였으며; 어머니 중심의 가족으로부터 아버지 중심의 가족으로의 전환, 농업의 확립, 농업의 발달, 산업의 개시 ─ 이 모든 것들이 연속적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다른 비슷한 설명들보다 훨씬 정확하게, 미개한 차원으로부터 우수한 민족이 훌륭하게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79:8.11]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볼때, 아래와 같은 것이 유란시아서 설명으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1)  30 만년전에 중국 인종은 원래 있던 안돈 종족을 시베리아 쪽으로 몰아낸 황인종으로, 4 만년 전까지 독립적인 문명을 발전시켰고,

2)  북쪽 시베리아에 안돈종족이 있은 이 후에는,  다시 아메리카로 퇴각하는 적섹인종과 황인종의 혼혈인종이 북쪽에 남아, 중국 종족에게 크게 혜택을 주었고,

3)  그 이후 이 북쪽 지역에 앤다이트가 유입되어 혼혈됨으로서, 그러한 앤다이트의 도래로 중국 문명의 발달은 실질적으로 시작되어,  기원전 6세기에 그 꽃을 피우게 되었다.

우리나라 민족은 멀리 남쪽으로부터 유입된 인종도 있을 수 있겠지만, 당시의 기술로 보아, 대부분 중국 북쪽에서 유입된 종족으로 예상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굳이 우리민족의 근원을 예상해 본다면, 우선 시베리아에 살고 있던 안돈종족, 북쪽에 있던 적색-황색 혼혈인종, 그리고 북쪽으로부터 새로 유입된 "앤다이트"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1세기 인류는 너무나 복잡하게 혼혈되어, 인종적 특징을 뚜렷하게 지니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식이나 문명의 바탕은 중국이 역사적으로 뛰어났지만, 오히려 중국 문명을 꽃피우게 한 생물학적  원인을 제공한 것이 우리와 같은 민족일수도 있고, 우리 민족은 그러한 능력을 여진히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문명의 바탕에서는 중국이 여러가지로 우리의 본보기가 될 것이지만, 영적 각성에 대한 본보기는 우리가 보여주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한반도 주변의 고대역사에 전문 지식을 가진 학자가 언젠가는 유란시아서의 이러한 내용을 더욱 세밀하게  조명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두꺼비
  아담-이브의 순수 혈통은 '아담아들 종족(아담손)" 인데, 이들로부터 "앤다이트" 종족이 형성되는 데 대략 5,000 년이 걸리고,
그 이후, 다시 "앤다이트"들이 전 세계에 퍼질만큼 개체수가 증가되는 데, 5,000 년이 걸린 것이 아닐까, 짐작 되는군요

역사 기록에는, 우리 나라 건립이 4,339년 전 입니다.

책에 따르면, 앤다이트가 들어온 것이 약 5,000 년 전에 끝났다고 하니, 아마도 마지막 앤다이트가 들어온 후, 약 660 년이 지난 후에 고조선이 건국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중국인들이 "흉노"라고 말하는, 중국을 괴롭힌 북방민족의 하나가 우리나라이며, 이들 북방민족은 모두 뿌리가 같다고 밝히는 글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를 보니, 중국 역사에서 '흉노'라고 표기되는 이방민족은 ...

"흉노족은 훈족, 험윤, 곤이, 북적, 융적, 산융, 흉노 등으로 불렸다. 중국의 여러 문헌에서 이러한 호칭의 일부를 단군조선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 예가 비일비재하다....훗날 흉노족이 서쪽으로 진출하자 유럽에서는 이를 훈족이라고 했는데, 흉이나 훈은 옛 우리말 ‘한韓(汗)’에서 비롯된 말이며 헝가리의 ‘헝Hung’ 역시 같은 뜻이다..." .

"흉노족은 선비족이나 몽골족보다 이른 시기인 단군조선 말기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흉노족의 지류로 돌궐족이 있었는데, 이들도 서쪽으로 진출하여 오스만 투르크(돌궐) 제국을 건설하여 현재의 터키에 이르렀다.."

..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인지는 잘 모르지만,

" 갑진 6년(BC2177) 열양의 욕살 색정을 약수로 옮기고 종신토록 갇혀 있게 하였다. 뒤에 그를 용서하시고 그 땅을 다스리도록 봉하니 그가 흉노의 조상이 되었다.” (단군세기, 단기고사 중에서)

라고 하면서 단군이 모든 북방민족의 조상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민족적 자긍심을 가지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유란시아책의 설명을 잘 이해한다면, 그러한 지나친 확대 해석이나 민족적 우월감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것인지 깨달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많은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2006-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