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석가/예수의 자비 – 옮김

어떤 사람 셋이 길을 가다 보니 맹인이 하수구에 빠져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데 앞에 가는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지나가고, 가운데 사람은 어찌하다 저렇게 빠졌는가? 하고, 뒤에 가는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건져준다 하였다.  
그렇다면 맹인에게 적선한 사람은 누구인가?  앞에 가던 사람은 석가요, 가운데 사람은 공자요, 뒤의 사람은 예수라 한다.  그래서 예수를 구세주라 한다.  

그러면 옛 성현들이 이미 맹인이 되지 않도록 말씀해 주신 것을 왜 지키지 못하고 맹인이 되었는가?  또 하수구에는 왜 빠졌는가?  한번 반성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보는 것은 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성해 보지 않으면 반성해 보지 않은 인연으로 눈이 없는 과보를 받으니 이것이 맹인이다.  이와 같이 맹인의 업을 짓고 익힌 인연으로 맹인이 되어서, 맹인의 업을 뼈저리게 실컷 느낀 뒤에야 비로소 반성해보고 참회해서, 반성해본 인연으로 눈은 자연히 뜨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맹인의 업을 뼈저리게 느끼기도 전에 건져주면, 참회와 반성해 보는 눈이 생기지 못해서 계속 맹인의 고통을 받게 된다.  그래서 부모가 자식의 장래를 위해서 온갖 고통의 시련을 경험토록 하는 것이요, 사자도 세끼를 맹렬하게 길들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타의 자비는 한량이 없어서 제 스스로 반성해 보고 참회하게 하시니, 이것을 사무량심의 광대무변한 자비의 서광이라 한다.
- 천명회

여기서 교훈 : 인류 역사 이래 승천/상승한 비율이 머리수에 비해 매우 적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그에 대한 실마리가 보일 듯하다. 결국 무지가 열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