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휘용

인간으로부터의 해방

구태여 유명한 철학자나 성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나름대로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틀을 가지고 사물을 판단하며,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 속에서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희로애락을 경험하는 존재, 그가 바로 인간임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또한 다른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동물적 본능과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갖은 애를 쓰지만, 다른 한편으론 동물적 속성을 훌쩍 뛰어 넘는 뭔가 아주 고상한 품성을 나타내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인생의 의미, 인간의 본질, 그리고 펼쳐진 우주에 대하여 생각하고 상상하고 회의(懷疑)하기도 하며, 아무런 조건 없이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생명체들을 돕기도 합니다. 인간에 대한 이러한 관찰 결과를 바탕으로 할 때, 인간이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존재, 동물적인 속성과 신(神)적인 특성이 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특별한 존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수많은 철학자, 종교가, 수행자들의 인간에 대한 연구와 탐구에도 불구하고, 소위 인간학(人間學)은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속성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파악하였지만,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성공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인간이라는 모습과 형태에 사로잡혀 그 본질이 비물질적인 영혼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고, 또한 다른 동식물들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너무나 확신한 결과 인간의 본질은 다른 동식물들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라는 기본 가정 때문일 것입니다.

책 <가이아 프로젝트>에서 기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인간의 본질은 의식 혹은 영혼이며, 이는 다른 동식물의 본질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모든 존재는 우주의 근원의식에 의하여 의식 혹은 영혼의 형태로 탄생되었으며, 각 존재는 생성시 부여된 정보 및 이후 수많은 체험을 통하여 축적된 기억들에 의하여 특징지어 집니다. 따라서 각 존재는 본질적인 면에서 볼 때 현재의 모습이나 형태에 의하여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정보의 양과 질의 측면에서 다른 존재와 구별됩니다. 다시 말해, 다른 형태의 생명체들과 구분되는 인간만의 본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인간의 본질은 결코 다른 존재 혹은 다른 생명체의 본질과 구분되어 논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의식 혹은 영혼이 물질화된 생명체로서 지구상에 환생하게 되면, 각 생명체에 주어진 역할에 맞는 특성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따라서 각 동식물들은 자신들 종(種) 특유의 속성을 나타내게 되고,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특징을 드러내게 됩니다. 다시 말해, 이곳 물질화된 지구에서는 어떤 물질적 껍질을 쓰고 환생하였느냐에 따라 인간, 동물 그리고 식물로서 구분되고, 각기 다른 속성을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같은 인간으로 태어난 경우에도 본래 의식 혹은 영혼으로서 가지고 있는 정보의 차이 그리고 인생의 프로그램에 따라 거의 무한대의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이제까지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각 동물이나 식물이 나타내 보이는 속성을 그들의 본질로 여기고, 인간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속성들을 인간 혹은 인간적인 것으로 간주해 왔습니다. 인간의 경우, 육체적인 것과 비육체적인 것이 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을 인간 고유의 속성 혹은 품성으로 간주해 왔고, 인간에게는 동물적 본능을 포함하여 이기심, 시기심, 지배욕, 명예욕 등과 인간적 의리(義理), 인간적 사랑, 배려(配慮), 자비 등이 모두 혼재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적 속성은 다양한 의식 혹은 영혼의 존재가 인간이라는 물질적 껍질을 공통적으로 쓰게 됨으로써 나타나는 특징이고, 따라서 본질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그것은 모두 인간의 껍질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저는 청소년 시절, 어느 작가가 말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 이라는 구절에 매료되어 한동안 그것을 중얼거리고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인간적인 사고와 인간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은 그 당시의 저에게는 참으로 멋진 말로 여겨졌습니다. 인간 고유의 존엄성을 가지고 있지만 또한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육체를 가진 인간들이기에, 육체적 본능에 적당히 충실하면서 또한 인간적인 고귀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아주 건전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이기에 너무나 동물적인 쪽으로 치우쳐도 좋을 것이 없고, 또 육체적 본능을 완전히 무시한 채 너무나 고상한 언행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 역시 가식일 뿐이라는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그러한 관점을 지녔던 저였지만, 지금은 인간의 마지막 껍질들을 벗어버리고 있음을 느낍니다. 벌써 몇 년 전에 쓴 명상록의 글들에도 나와 있겠지만, 전혀 의도한 바 없는 몸과 마음의 근본적 변화를 바라보면서, 청소년 시절 가졌던 극히 ‘인간적인 생각들’은 진리와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진짜 세상을 하나하나 알아 가면서 인간적이라고 여겨온 대부분의 것들이 인간의 껍질에 불과한, 대체로 육체에서 초래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과정, 즉 탈(脫) 인간화의 과정을 겪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영적인 존재이고, 따라서 육체적 속성들로부터 하나하나 벗어나는 것은 자신의 본질에 더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본래 꿈이라고는 잘 꾸지도 않고 내용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며칠 전의 꿈은 비교적 생생할 뿐만 아니라 그 스토리를 자세히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그 꿈에는 저 이외에도 두 사람의 중요한 등장인물이 있었는데, 한 분은 미국 유학시절의 한국인 은사님으로서 학위취득 이후에도 계속 가깝게 지내온 분이지만, 제가 근본적인 변화를 겪은 이후 특히 최근에는 거의 아무런 연락을 않고 지내는 상태입니다. 다른 한 사람은 동료교수로서 지금도 저를 인간적으로 많이 위해 주고 있는 분입니다. 꿈에서는 그 은사님이 제가 다시 자신을 찾아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가 제가 나타나자 너무나 반가와 하였고, 또 현재의 동료교수는 여전히 인간적으로 저를 많이 도와주려고 애를 쓰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꿈은, 지난 5-6년 전부터 형제, 친구, 친지 등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대부분의 분들과 거의 연락을 끊어 버리고 무정(無情)하게 변해 버린 제 자신을 뒤돌아 보게 만드는 것처럼 해석될 수도 있지만, 제게는 얼마 남아있지 않은 다른 인간적인 것 마저 다 놓아 버릴 준비를 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 졌습니다.

자신의 의식이 전적으로 물질에 뿌리내리고 있는 사람 혹은 특정한 수행의 틀을 가진 사람들은 인간적인 것으로부터의 해방을 이야기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그러한 주장을 비도덕적, 반윤리적이라고 비난할 것입니다. 하지만 수행에 관심이 있고 깨달음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분들이라면,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지는데 대한 거부감은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인생과 우주의 이치를 깨닫고 진정한 각자(覺者) 혹은 도인(道人)이 된 사람은 인간적인 속성들 특히 집착과 분별에서 벗어나 무심의 경지에 머무르게 되고, 전형적 인간의 사고와 언행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깨달은 자에게 인간적인 도리를 요구하거나 인간적인 훈훈함을 기대하는 것 혹은 비도덕적, 반윤리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인간적인 껍질을 벗어버리는 것은 바로 진정한 각자, 진정한 도인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3차원 물질의식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또 가이아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할 일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사명자로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은 가이아 프로젝트 사명자들이 다양한 에너지적인 변화를 겪으며 집단적으로 깨어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각 사명자들은 인간적인 껍질을 완전히 혹은 거의 다 벗게 되는데, 그렇게 거듭난 상태가 되어야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아무런 사심 없이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직도 인간적인 정(情)을 강조하고, 인간적인 의리(義理)를 중요시하며, 인간적인 멋을 추구하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자신이 아직도 3차원의 의식에 매달려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까지 구도자들은 집착과 분별에서 벗어나는 것이 곧 도인이 되는 것으로 인식해 왔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그것은 물질적 차원을 벗어나 지구대변혁을 준비하는 것이며, 또한 우주적 관점을 지닌 우주 시민으로서 거듭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지금은 지구에서의 마지막 시간들입니다. 많은 사회적 혼란과 자연재해들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이아 프로젝트와 관련한 사명을 지니고 있든 아니든, 인간미 넘치는 다정다감한 인간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시기는 이미 끝났습니다. 지금은 자신이 물질적 껍질을 쓰고 살아왔음을 먼저 확실하게 인지하고, 때가 되면 그 껍질을 언제든 벗어버릴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한 때입니다.

2006년 2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