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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사에 유명한 실험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거의 모든 심리학 개론 서적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1960년대 예일대학 심리학과의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교수가 보여줬던 복종 실험이다. 그리고 이 실험은 권위 혹은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부정하거나 정의롭지 못한 지시에 한 개인이 자신의 자아를 잃은 채 얼마나 쉽게 복종하는가를 아마도 가장 잘 보여준 연구일 것이다. 이 연구는 아래와 같은 실험실에서 이루어졌다.
 
 


 


실험의 목적을 모른 채 실험 참가자는 선생님(T: teacher)의 역할을 맡는다. 칸막이 뒤에는 학생 역할을 맡은 사람(L: learner)이 문제를 풀고 있고 선생님은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을 16V씩 올리라고 실험자(E: experimenter)에게 지시받는다. 물론 실험자와 학생은 사전에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고 실제로 전기충격을 받지는 않는다. 오직 선생님만 이 실험의 목적과 내용을 모르고 있다. 일종의 몰래카메라인 셈이다. 선생님 역할을 맡은 참가자는 지시받은 대로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충격의 수준을 올렸고 그 때마다 학생은 괴로운 척 하는 연기를 했으며 따라서 참가자들은 대부분 몇 번 정도 전기충격을 주고는 더 이상 못하겠다고 실험자를 돌아보며 얘기했다. 그러나 실험자가 “그 정도의 전기로는 사람이 죽지 않습니다.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라고 하자 놀랍게도 참가자의 무려 65%(40명 중 26명)이 450V에 해당하는 전기충격에 도달할 때까지 버튼을 계속 눌렀다. 상식적으로 450V의 전기라면 거의 모든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원숭이조차도 자신이 어떤 버튼을 눌렀을 때 다른 원숭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 버튼을 오래 동안 누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 버튼을 누르면 먹이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째서 인간은 이런 일을 하는 것일까? 원숭이보다도 더 우수한 생명체라고 자부하면서 말이다.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
 
 


 

 

자기합리화와 책임감의 회피가 만들어내는 복종
 
 

 

이 실험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실험자가 책임을 지겠다는 메시지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실험자는 심리학 연구에 상당한 경험이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따라서 일종의 ‘권위’가 있는 셈이었다. 450V의 버튼을 눌렀던 참가자들은 실험이 모두 끝난 뒤 왜 전기충격을 계속 주었느냐는 질문에 “지시대로 따랐을 뿐”이라는 핑계를 댔다. 만일 그 실험자가 어리숙하고 경험이 적어 보이는 나이
 
 
 
권위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책임을 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핑계를 가능하게 한다.
<출처: gettyimages>
 
 
 어린 조교라 해도 그런 핑계가 가능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왜 가능했었는지 답이 나오기 시작한다. 권위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책임을 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핑계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행동을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면서도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 일을 저지른 고위공직자나 금융계 인사가 검찰에 출두하면서 수치스러워 하거나 반성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당당한 얼굴로 이런 투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바로 조직이나 윗선을 위해서(즉 지시를 받아서)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양심을 종종 이 권위와 맞바꾼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이 정말 부도덕하거나 나쁜 짓이라는 것을 몰랐을까? 수사나 조사과정에서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파급효과에 대해서 당시에는 잘 몰랐다고들 하지만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 왜일까? 신경과학적 방법을 사용한 심리학 연구들은 그 몰랐다는 변명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거짓말 하지 말라고 말이다.
 
 

 

 

부정함의 지각과 수용은 별개의 문제다

 

심리학뿐만 아니라 경제학, 사회과학 등 사회과학 분야 전반에 걸쳐 자주 사용되는 게임 형태의 실험과제가 있다.  이른바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라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는 A와 B 두 명의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A에게 10만원이 주어진다.  A는 자신이 받은 돈의 일부를 B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데 얼마를 주는지는 자유이다.  그리고 B는 A가 주는 돈을 받거나(수용) 그 제안을 
 
 

 

거부할 수 있다. B가 A의 제안을 수용하면 그 제안대로 각자 돈을 나누어 가질 수 있으며 만일 거부하면 A와 B모두 돈을 전혀 받을 수 없다. 만일 A가 돈을 5대 5로 나누자고 제안한다면(아마도 이 제안은 공정한 제안일 것이다) B는 둘 모두 돈을 받을 수 없는 ‘거부’를 하지 않고 ‘수용’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문제는 A가 자신이 8만원을 가지고 B는 2만원만 가지라는 (즉, 불공정한)제안을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러한 불공정한 제안을 대부분의 B들은 거부한다. 그런데 이는 어찌 보면 바보 같은 일이다. 왜냐하면 A의 제안을 수용하면 어쨌든 2만원의 공돈이 생기는데 이를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이러한 불공정한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가질 수 있는 돈이 자신의 1~2개월 치 월급에 해당하는 돈일 경우에도 거부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정도로 불공정함이나 불평등함을 혐오한다. 자신이 무언가를 가지지 못해도 불공정한 제안이나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큰 이익을 취하는 것을 막으려 한다는 것이다.
 
 
 
최후통첩 게임에서 불공정한 제안이 이루어지면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이 제안을 거부한다. <출처: gettyimages>
 
 


 


이후의 신경과학 연구에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이를 설명해 준다. 사람들은 최후통첩 게임에서 불공정한 제안을 받을 경우, 배외측 전전두피질(DLPFC: 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이 평상시보다 훨씬 더 많이 활성화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이 뇌영역이 ‘불공정함’을 알아차리게 만들어주는 곳일까? 이후의 연구들은 조금 더 복잡한 이야기를 해 준다. 이 영역 중 일부가 바로 ‘신뢰’를 담당하는 곳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 영역이 손상된 환자는 제안을 하는 사람이 얼마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를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대부분 마냥 믿는 경향성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믿기 때문에 불공정한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를 자주 경험한다. 가족 혹은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부적절한 제안이나 지시를 받을 경우 ‘이러지 말아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일을 결국 하는 이유가 그들을 믿기 때문이다.
 
 

 

 

배외측 전전두피질

 

 

보다 중요한 점은 이 영역이 손상된 환자들조차도 자신에게 주어진 제안이 얼마나 불공정한 것인가를 이야기해 달라는 요청에 정상인과 다르지 않는 판단 능력을 보여줬다. 즉, 불공정함을 지각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며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무작정 실행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한다는 것이다. 뇌의 다른 영역이 손상되어  지적인 판단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자유로워지기 위한 신뢰, 비겁함을 덮어주는 신뢰


그런데 어떤 대상이 충분히 신뢰할만하지 않은데도 믿어버리고 싶은 욕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앞서 논의했듯이 신뢰를 주거나 권위를 부여해 버리면 내 행동의 잘잘못이 가져야 하는 책임이 나로부터 떠나기 때문이라는 암묵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닐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픈 강한 욕구가 존재하며 이러한 합리화를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내 행동의 원인을 나 자신이 아닌 외부의 다른 곳에 두는 것이다. 한편으론 비겁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론 어리석은 생각일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세상은 그 행동의 책임을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더 강한 정도로 물을 테니 말이다.
 
 

 

 

Milgram, S. (1963). "Behavioral Study of Obedience". Journal of Abnormal and Social Psychology 67 (4): 371–8.
Sanfey, Rilling, Aronson, Nystrom, & Cohen (2003), The neural basis of economic decision making in the Ultimatum game, Science 300, 1755-1758.
같은 이유로 DLPFC가 손상된 환자들은 상대방이 지나치게 모험적인 사업 제안을 해도 받아들이는 경향성이 정상인보다 더 높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글 김경일 /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 석사를 받았으며 미국 University of Texas - Austin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제학술논문지에 Preference and the specificity of goals (2007), Self-construal and the processing of covariation information in causal reasoning (2007) 등을 발표하였다.


발행일  201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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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1.10.26
18:35:34 (*.34.108.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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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라

2011.10.26
18:44:38
(*.34.108.120)

이건 어그저께 네이버 캐스트에 나온 기사인데 평소 내가 하는 말들 중에 일부를 잘 전하고 있는 것 같아 올려 봅니다...

 

영성이라는 것은 이런 고단수(?)의 심리학영역을 넘어 그 이상을 보는 겁니다....누가 그 용기 있는 길을 가겠습니까...

 

그리고 사람이 무슨 말을 하면 너와 나에서 좀 벗어나서 전체 공동의 관심사 입장에서 좀 봅시다.

 

너 아니면 나 그리곤 없습니까.... 그 내용은 어디갔나요?

 

아무리 인터넷의 글이지만 ....좀 깊게 읽은순 없습니까...

 

사람들은 예수님이 가르킨 방향(내용)은 보지 않고 예수님의 손가락(사람)만 쳐다 본다고 합니다....그게 예수님이 오시고 붓다가 오시고 했어도 수천년간 인류가 어둠에 지배아래에서 발전이 없었던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지요...

 

네라

2011.10.26
18:49:40
(*.34.108.120)

지구 스케일을 다루고 있는 이 사이트에서 너무 공동체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불평불만을 안가져서도 문제지요...

 

단순히 기득권층 문제가 아닙니다....그것이 신의 법칙에 맞고 합당한 것이고 옳은 것이라면 왜 불만을 가지겟습니까....이 세계를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루시퍼와 아눈나키입니다...

 

그리고 나 나름대로는 창조주의 복을 누리고 있고 행복하다고 봅니다...슬픔은 슬픔대로 기쁨은 기쁨대로 행복하지요...선악이 아니라 실수하고 잘못이 있더라도 배움이 있기에 발전이 있기에 그것이 가능한겁니다....이런 면에 입각해서 절대적인 원죄의식과 권력추종에 대하여(반하여) 줄기차게 산다는 것 자체가 삶 자체를 긍정하자는 것이 내 글이 아닙니까...종교의 신도 심리적으로 보면 권력추종의식(누군가 책임을 대신 전가하는)에 지나지 않고 큰 의미에선 모든 사이비의 권력문제가 '죄책감, 공포, 권력'에서 비롯됩니다....그 죄책감을 신이 대신 짊어진다고 신을 사랑하는 것이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보나요...그것은 신에 대한 조건적 사랑에 불과하죠....

종교적 사고방식과 같이 인간이 죄를 받아 타락했다는 원죄의식 그리고 신(권력)에게만 혹은 깨달음 하나에만 구원을 바라는 의식이라면 그런것은 나에게는 없습니다...

자하토라

2011.10.26
18:54:38
(*.148.77.198)

훌륭하군요.

 

결국은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은 못하고 감사하고 슬프고 즐기자.

멋집니다.

 

바로 그것이 현재 세상의 악한 현상이며 영혼의 정신병이죠.

 

무엇이든지 완벽하지가 않죠. 그것이 거짓이라면 진실을 타자해야 남과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죠.

 

"이 지배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즐거움과 슬픔과 행복은 지배자때문에 있습니다.

저는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싶습니다."

 

저주나.

네라

2011.10.26
19:02:51
(*.34.108.120)

제가 말한것과 정반대 되는 소리를 하는 군요....게시판 글을 잘 좀 읽으십시요....

 

우리 안에서 저희들끼리 행복해하는 돼지가 진정한 행복이냐고 물었던게 납니다...그래서 앎이 중요하다고....적반하장식으로 덤탱이 쒸우는 소리는 그만하고....이런 자기 변론의 소리는 이제 그만좀 하고 싶군요...

 

선악은 당대의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고, 실수와 잘못을 교정하고 배우고 발전한다면 선악이라는 것은 결국 없는 겁니다...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절대적인 선악 그 자체가 여러분을 지배하고 여러분을 옥죄는 굴레입니다...책임감은 있지만 죄책감은 없습니다

 

 

자하토라

2011.10.26
19:07:45
(*.148.77.198)

위대하고 훌륭합니다.

 

선악이라는 것이 결국은 없다.

의식에서 그것이 없습니까?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까?

 

만약에 진실로 결국은 없다곸ㅋㅋ 알면, 창조물은 다 망한 꼴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신은 무엇이든 가능한데, 창조물을 괴롭게 하면...그때도 "선악은 없습니다!"

이러시지는 않겠죠.

네라

2011.10.26
19:24:01
(*.34.108.120)

예수님도 당대에는 죄인으로 형을 당하셨습니다...예수님은 법정에서 엄연히 심판을 받고 죄인으로 당대 최고형인 십자가형을 받아던 겁니다...그러나 예수님이 죄인입니까? 누가 선과 악을 판단할수 있나요? 우리는 그저 옳은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나아가고 행동할수 있을 뿐입니다....선악은 없습니다...다만 어둠이 있는데 어둠이란 죄책감 공포 권력(의종성)을 말합니다....그것이 신과의 분리를 일으킵니다....여러분 자신의 책임을 방기해버리는 권력에 대한 의존성, 그럭저럭 안이함  수동성에서 벗어나 여러분 자신의 주권을 찾는 것! 그것이 신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하토라

2011.10.26
19:34:05
(*.148.77.198)

예수님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신과 채널링을 하십시오.

작정하고 다른 창조물과 하십시오.

님이 진실을 알게되면, 결국은 다 분별하죠.

 

선과 악을 판단할 수가 있죠. 항상 어떤 현상이든지 명확하게 분별하면 답이 나옵니다.

그리고.................그것은 개나 소나 할 수가 없죠.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인류를 기계로 통제하는게 답이라고 하잖습니까.

 

제가 암산으로 변수,요인,요소의 논리를 할때...얼마나 빨리 하는지는 아십니까?

몇초면 몇만개의 계산이 끝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의식이 되죠.

전 그것을 안 믿어서 검증까지 합니다.

 

아주 느리게 사고를 의식하는 명상으로 말입니다.

펜 꺼내고 종이에 적으면서 하죠.

네라

2011.10.26
18:59:16
(*.34.108.120)

여러분들을 보면 낙원에서의 추방-원죄론은 단지 지구에서 영과 육의 분리된 사건뿐만이 아니라, 저 상위우주에서 영과 영혼이 근원(하나님)에서 나온 것 자체를 분리라고 죄악시하기까지 하는 것을 봅니다...그러면 창조는 어디에 있습니까....그것은 창조자를 악당으로 보는 태도이지요....여기서 누구보다도 신에 합당한 창조를 찬미함으로서 창조자를 존중하자는 것이 누구라고 봅니까...그러한 지성이 결여된 원죄론은 어둠의 것으로 그렇게해서 여러분은 여기에 있는 여러분 자신을 근본적으로 사랑할수가 없는데 단지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원해주는 존재일때만 그 사랑이 조건적으로 가능한거죠....자기 자신의 영혼을 잃고 무분별하고 맹목적인 권력추종을 낳는 원죄론은 파기 되어야 합니다...그것이 빛이 아닙니다....

자하토라

2011.10.26
19:05:09
(*.148.77.198)

님에게는 영혼의 자유의식이 없습니까?

글이 훌륭하군요.

 

하느님이 모두를 사랑합니다.

하느님은 모두의 곁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이 뭐하든 말든 간에 언제나 자유여야 합니다.

 

팔이 원하는데로 변태가 돼야 조금이라도 더 편하죠.

네라

2011.10.26
19:09:16
(*.34.108.120)

제가 말하는 것이 그 영혼의 자유입니다...원죄론(죄책감)과 신을 권력추종으로 모시는 그것이 신의 사랑이 아니고 그 영혼의 자유가 아니며, 그 영혼을 제약한다는 이말입니다...그래서 종교의 맹목적 믿음에서 벗어나 앎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고....글을 잘 읽어보세요...내글이 너무 수준이 높나...

자하토라

2011.10.26
19:12:47
(*.148.77.198)

원죄론은 개그죠.

권력추종으로 모시는 것도 개그입니다.

 

그런데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신도 즐깁니다. 이 매우 낮은 곳에 거하는 집단분자같은 비둘기스러운 현상.

 

신은 창조물이 되어 즐기면 안됩니까?

하기야 이런 정황에서 그런 식으로 신앙이 되면 신이 타락할 확률이 높겠죠....

 

높습니까?

 

절대로 그렇지가 않죠. 신은 하려는데로 합니다.

 

창조할 때 동의하고 했답니까?

 

결국은 님도 신을 싫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가 없죠.

네라

2011.10.26
19:16:26
(*.34.108.120)

참 저위에선 누군가의 지배아래에서 그저 즐기고 놀자라는 것이냐며 나에게 핀잔을 주더니만

 

님이야말로 그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모든것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것은 기본적인것이고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이제 신과 함께 빛을 구하고 행동하고 일하는 것도 받아들일겁니다...그것도 자유입니다...

자하토라

2011.10.26
19:19:46
(*.148.77.198)

님은 개나 소나 지식을 탐구하여 진리를 알고싶어하는 이 시대에, 그런 말을 하십니까.

 

'신과 함께 빛을 구하고 행동하고 일하는 것도 받아들일겁니다'

개그죠.

 

도대체, 이 현상이 영혼의 안전에 요인이 될 것이라고 착각을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네라

2011.10.26
19:27:32
(*.34.108.120)

빛이 그 앎입니다...진리를 알고 싶어하는 것이 앎을 통해 달성되는 겁니다...그것이 빛입니다...그런뒤에 행동이 오는 겁니다...하다못해 자기가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 검색을 하거나 묵상 명상을 하거나 하는 것도 행위이지요....알고 나서도 행동하지 않는 것은 앎이 아니고 빛이 아닙니다... 행동은 자발적이기에 스스로 주인이 된사람....신과 완전히 일체된 사람만이 할수가 있는 겁니다...

네라

2011.10.26
19:14:09
(*.34.108.120)

자유를 원한다면, 자유는 그 자유를 위해 일하고 행동하는 사람에게 옵니다...용기가 없다면 자유를 논할 수는 없겠죠....앎을 추구하는 것을 수고라고 여겨선 안됩니다....그저 편한 상태가 자유가 아닙니다.... 누가 뭐라하지말고 난 이대로 있었으면 좋겠어 수동성이 자유인가요? 돼지도 우리안에서 편안해 합니다...

자하토라

2011.10.26
19:17:37
(*.148.77.198)

그렇죠. 여전히 이렇게 막연하고 부정확하게 말씀하셔야 겠습니까?

"자유는 그 자유를 위해 일하고 행동하는 사람에게 옵니다."

잔혹하게 진실을 타자하면 즐겁죠. "그것이 몇광 년 후일지도 모르지만."

 

편한 상태가 자유가 아닙니다. 천문학적인 숫자의 변수를 고려했을 때.......어떤 경우가 자유죠.

 

그리고 님도 결국은 신앙을 좋아합니다.

자하토라

2011.10.26
19:23:54
(*.148.77.198)

신이 착했으면 최소한 이렇게는 합니다.

 

창조하고 창조물을 행복하게 하고 고통받지 않도록 하죠.

하지만 이 주제를 논하기에는 너무 이르죠.

 

님의 신앙에 문제가 무엇인지 자각은 하십니까?

전혀 자신의 안전에 요인을 다른 존재의 능력과 관계된 것으로 착각하여 거짓을 영혼의 마법으로 알죠.

자하토라

2011.10.26
19:27:09
(*.148.77.198)

지난 몇세기동안 활발하게 일어난 종교전쟁은

 

완전히 철학으로 알 수가 있는 궁극의 답을 무시한 것입니다.

 

요컨대, 지도자들의 선택은 창조물을 불행하게 만들고 저주하는 것이죠.

그들의 돼먹지 못한 선택때문에 다 망했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합니까?

 

당연히, 시체를 끄집어 내서 인간으로 만들고 대가를 치러야 본보기입니다.

네라

2011.10.26
19:30:31
(*.34.108.120)

위에선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고 자유고 어쩌고인양 말하더니 ....

신에 대한 그런 부정성은 님의 자유가 아닙니다...그것이야말로 감옥입니다...

제가 할말은 위에 다 했습니다...

여러분 주권은 스스로 찾아라 이말입니다...신 탓하지 말고.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잘 분별해서 읽을수 있겠죠....

자하토라

2011.10.26
19:43:46
(*.148.77.198)

신에 대한 그런 부정성이 저의 자유가 아니죠.

제가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신이 창조물을 없애는 것.

베릭

2011.10.26
19:48:23
(*.156.160.6)
profile

복종 실험 권위 혹은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부정하거나 정의롭지 못한 지시

한 개인이 자신의 자아잃은 채 얼마나 쉽게 복종하는가가장 잘 보여준 연구이다.


 

실험의 목적을 모른 채 실험 참가자는 선생님(T: teacher)의 역할을 맡는다.

칸막이 뒤에는 학생 역할을 맡은 사람(L: learner)이 문제를 풀고 있고

선생님은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을 16V씩 올리라고 실험자(E: experimenter)에게 지시받는다. 물론 실험자와 학생은 사전에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고 실제로 전기충격을 받지는 않는다.

오직 선생님만 이 실험의 목적과 내용을 모르고 있다. 일종의 몰래카메라인 셈이다.

선생님 역할을 맡은 참가자는 지시받은 대로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충격의 수준을 올렸고

그 때마다 학생은 괴로운 척 하는 연기를 했으며

따라서 참가자들은 대부분 몇 번 정도 전기충격을 주고는 더 이상 못하겠다고 실험자를 돌아보며 얘기했다.

그러나 실험자가 “그 정도의 전기로는 사람이 죽지 않습니다.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라고 하자 놀랍게도 참가자의 무려 65%(40명 중 26명)이 450V에 해당하는 전기충격에 도달할 때까지 버튼을 계속 눌렀다.

상식적으로 450V의 전기라면 거의 모든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원숭이조차도 자신이 어떤 버튼을 눌렀을 때 다른 원숭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 버튼을 오래 동안 누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 버튼을 누르면 먹이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째서 인간은 이런 일을 하는 것일까? 원숭이보다도 더 우수한 생명체라고 자부하면서 말이다.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 

 

1) 자기합리화와 책임감의 회피가 만들어내는 복종 

 

이 실험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실험자가 책임을 지겠다는 메시지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실험자는 심리학 연구에 상당한 경험이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따라서 일종의 ‘권위’가 있는 셈이었다.

450V의 버튼을 눌렀던 참가자들은 실험이 모두 끝난 뒤 왜 전기충격을 계속 주었느냐는 질문에

“지시대로 따랐을 뿐”이라는 핑계를 댔다. 

권위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책임을 지지 않아도 괜찮다핑계를 가능하게 한다.

만일 그 실험자가 어리숙하고 경험이 적어 보이는 나이 어린 조교라 해도 그런 핑계가 가능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왜 가능했었는지 답이 나오기 시작한다.

권위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책임을 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핑계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행동을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면서도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 일을 저지른 고위공직자나 금융계 인사가 검찰에 출두하면서

수치스러워 하거나 반성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당당한 얼굴로 이런 투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바로 조직이나 윗선을 위해서(즉 지시를 받아서)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양심 종종 이 권위와 맞바꾼.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이 정말 부도덕하거나 나쁜 짓이라는 것을 몰랐을까?

수사나 조사과정에서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파급효과에 대해서 당시에는 잘 몰랐다고들 하지만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 왜일까? 신경과학적 방법을 사용한 심리학 연구들은 그 몰랐다는 변명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거짓말 하지 말라고 말이다. 

 

 

2)부정함의 지각수용은 별개의 문제다

 

심리학뿐만 아니라 경제학, 사회과학 등 사회과학 분야 전반에 걸쳐 자주 사용되는 게임 형태의 실험과제가 있다.  이른바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라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는 A와 B 두 명의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A에게 10만원이 주어진다. 

A는 자신이 받은 돈의 일부를 B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데 얼마를 주는지는 자유이다. 

그리고 B는 A가 주는 돈을 받거나(수용) 그 제안을  거부할 수 있다.

B가 A의 제안을 수용하면 그 제안대로 각자 돈을 나누어 가질 수 있으며

만일 거부하면 A와 B모두 돈을 전혀 받을 수 없다.

만일 A가 돈을 5대 5로 나누자고 제안한다면(아마도 이 제안은 공정한 제안일 것이다)

B는 둘 모두 돈을 받을 수 없는 ‘거부’를 하지 않고 ‘수용’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문제는 A가 자신이 8만원을 가지고 B는 2만원만 가지라는 (즉, 불공정한)제안을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러한 불공정한 제안을 대부분의 B들은 거부한다. 그런데 이는 어찌 보면 바보 같은 일이다.

왜냐하면 A의 제안을 수용하면 어쨌든 2만원의 공돈이 생기는데 이를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이러한 불공정한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가질 수 있는 돈이

자신의 1~2개월 치 월급에 해당하는 돈일 경우에도 거부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정도로 불공정함이나 불평등함을 혐오한다.

자신이 무언가를 가지지 못해도 불공정한 제안이나 지시 내리는 사람이

큰 이익을 취하는 것막으려 한다는 것이다 

최후통첩 게임에서 불공정한 제안이 이루어지면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이 제안을 거부한다.

 <출처: gettyimages>
 
 이후의 신경과학 연구에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이를 설명해 준다.

사람들은 최후통첩 게임에서 불공정한 제안을 받을 경우, 배외측 전전두피질

(DLPFC: 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이 평상시보다 훨씬 더 많이 활성화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이 뇌영역이 ‘불공정함’을 알아차리게 만들어주는 곳일까?

이후의 연구들은 조금 더 복잡한 이야기를 해 준다.

이 영역 중 일부가 바로 ‘신뢰’를 담당하는 곳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영역이 손상된 환자제안을 하는 사람얼마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를 판단하는 능력

떨어지고 대부분 마냥 믿는 경향성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믿기 때문에 불공정한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를 자주 경험한다.

가족 혹은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부적절한 제안이나 지시를 받을 경우

‘이러지 말아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일을 결국 하는 이유가 그들을 믿기 때문이다.

 

 

3) 배외측 전전두피질

 

보다 중요한 점은 이 영역이 손상된 환자들조차도 자신에게 주어진 제안이 얼마나 불공정한 것인가를

이야기해 달라는 요청에 정상인과 다르지 않는 판단 능력을 보여줬다.

즉, 불공정함지각하는 것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며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무작정 실행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한다는 것이다.

뇌의 다른 영역이 손상되어  지적인 판단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4)자유로워지기 위한 신뢰, 비겁함을 덮어주는 신뢰


그런데 어떤 대상이 충분히 신뢰할만하지 않은데도

믿어버리고 싶은 욕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앞서 논의했듯이 신뢰를 주거나 권위를 부여해 버리면

내 행동의 잘잘못이 가져야 하는 책임이 나로부터 떠나기 때문이라는 암묵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닐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픈 강한 욕구가 존재하며

이러한 합리화를 위한 가장 쉬운 방법내 행동의 원인

나 자신이 아닌 외부의 다른 곳에 두는 것이다.

한편으론 비겁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론 어리석은 생각일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세상은 그 행동의 책임을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더 강한 정도로 물을 테니 말이다.
 
 

같은 이유로 DLPFC가 손상된 환자들은 상대방이 지나치게 모험적인 사업 제안을 해도

받아들이는 경향성이 정상인보다 더 높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 판단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하토라

2011.10.26
19:51:24
(*.148.77.198)
네라

여러분들을 보면 낙원에서의 추방-원죄론은 단지 지구에서 영과 육의 분리된 사건뿐만이 아니라, 저 상위우주에서 영과 영혼이 근원(하나님)에서 나온 것 자체를 분리라고 죄악시하기까지 하는 것을 봅니다...그러면 창조는 어디에 있습니까....그것은 창조자를 악당으로 보는 태도이지요....여기서 누구보다도 신에 합당한 창조를 찬미함으로서 창조자를 존중하자는 것이 누구라고 봅니까...그러한 지성이 결여된 원죄론은 어둠의 것으로 그렇게해서 여러분은 여기에 있는 여러분 자신을 근본적으로 사랑할수가 없는데 단지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원해주는 존재일때만 그 사랑이 조건적으로 가능한거죠....자기 자신의 영혼을 잃고 무분별하고 맹목적인 권력추종을 낳는 원죄론은 파기 되어야 합니다...그것이 빛이 아닙니다....

자하토라

2011.10.26
19:54:10
(*.148.77.198)
네라

참 저위에선 누군가의 지배아래에서 그저 즐기고 놀자라는 것이냐며 나에게 핀잔을 주더니만

 

님이야말로 그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모든것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것은 기본적인것이고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이제 신과 함께 빛을 구하고 행동하고 일하는 것도 받아들일겁니다...그것도 자유입니다...

자하토라

2011.10.26
19:59:18
(*.148.77.198)
 
삭제 수정 댓글
2011.10.26 18:54:38 (218.148.77.198)
id: 자하토라자하토라
profile

훌륭하군요.

 

결국은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은 못하고 감사하고 슬프고 즐기자.

멋집니다.

 

바로 그것이 현재 세상의 악한 현상이며 영혼의 정신병이죠.

 

무엇이든지 완벽하지가 않죠. 그것이 거짓이라면 진실을 타자해야 남과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죠.

 

"이 지배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즐거움과 슬픔과 행복은 지배자때문에 있습니다.

저는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싶습니다."

 

저주나.

 

 

 

님은 망했죠.

 

이제는 누구도 철학의 판도에서 벗어날 수가 없도록 문화와 관습이 자리잡았습니다.

결국은 무엇입니까?

 

선조는 거의 다 범죄자, 허접, 성경을 보십시오. 그것이 세련됬다고 사고하십니까?

 

하느님은 얼마나 착하시길래, 악한 창조물에게 고통을줍니까.

애초부터 고통을 없게했으면 될것을 가지고..

하느님이든 신이든, 전혀 착한 자가 아니죠.

악한 자는 맞죠. 물론 착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해결책은 신이라는 초자연적 존재를 없애는것인데,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저주나.

베릭

2011.10.26
20:30:30
(*.156.160.6)
profile
네라

 

영성이라는 것은 이런 고단수(?)의 심리학영역을 넘어 그 이상을 보는 겁니다....누가 그 용기 있는 길을 가겠습니까...

 그리고 사람이 무슨 말을 하면 너와 나에서 좀 벗어나서 전체 공동의 관심사 입장에서 좀 봅시다.

 
네라

여러분들을 보면 낙원에서의 추방-원죄론은 단지 지구에서 영과 육의 분리된 사건뿐만이 아니라,

저 상위우주에서 영과 영혼이 근원(하나님)에서 나온 것 자체를 분리라고 죄악시하기까지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창조는 어디에 있습니까....그것은 창조자를 악당으로 보는 태도이지요....

여기서 누구보다도 신에 합당한 창조찬미함으로서 창조자를 존중하자는 것이 누구라고 봅니까...

그러한 지성이 결여된 원죄론은 어둠의 것으로 그렇게해서

여러분은 여기에 있는 여러분 자신을 근본적으로 사랑할수가 없는데

단지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원해주는 존재일때만 그 사랑이 조건적으로 가능한거죠....

자기 자신의 영혼을 잃고 무분별하고 맹목적인 권력추종을 낳는

원죄론은 파기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빛이 아닙니다....너 아니면 나 그리곤 없습니까....

 

*********************************

지구 스케일을 다루고 있는 이 사이트에서

너무 공동체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불평불만을 안가져서도 문제지요...

 

단순히 기득권층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이 신의 법칙에 맞고 합당한 것이고 옳은 것이라면 왜 불만을 가지겠습니까....

이 세계를 이 세계를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루시퍼와 아눈나키입니다

 

그리고 나 나름대로는 창조주의 복을 누리고 있고 행복하다고 봅니다...

슬픔은 슬픔대로 기쁨은 기쁨대로 행복하지요...선악이 아니라

실수하고 잘못이 있더라도 배움이 있기에 발전이 있기에 그것이 가능한겁니다....

이런 면에 입각해서 절대적인 원죄의식과 권력추종에 대하여(반하여)

줄기차게 산다는 것 자체가 자체를 긍정하자는 것이 내 글이 아닙니까...

 

종교의 신도 심리적으로 보면 권력추종의식(누군가 책임을 대신 전가하는)에 지나지 않고  큰 의미에선 모든 사이비의 권력문제가 '죄책감, 공포, 권력'에서 비롯됩니다....

죄책감을 신이 대신 짊어진다고 신을 사랑하는 것이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보나요...

그것은 신에 대한 조건적 사랑에 불과하죠....

종교적 사고방식과 같이 인간이 죄를 받아 타락했다는 원죄의식

그리고 신(권력)에게만 혹은 깨달음 하나에만 구원을 바라는 의식이라면 그런것은 나에게는 없습니다..

 
네라

예수님도 당대에는 죄인으로 형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법정에서 엄연히 심판을 받고 죄인으로 당대 최고형인 십자가형을 받아던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죄인입니까? 누가 선과 악을 판단할수 있나요?

우리는 그저 옳은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나아가고 행동할수 있을 뿐입니다....

선악은 없습니다...다만 어둠이 있는데 어둠이란 죄책감 공포 권력(의존성)을 말합니다....

그것이 신과의 분리를 일으킵니다....

여러분 자신의 책임을 방기해버리는 권력에 대한 의존성, 그럭저럭 안이함  수동성에서 벗어나

여러분 자신의 주권을 찾는 것! 그것이 신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네라

여러분들을 보면 낙원에서의 추방-원죄론은 단지 지구에서 영과 육의 분리된 사건뿐만이 아니라,

상위우주에서 영과 영혼이 근원(하나님)에서 나온 것 자체를 분리라고 죄악시하기까지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창조는 어디에 있습니까....그것은 창조자를 악당으로 보는 태도이지요....여기서 누구보다도

신에 합당한 창조를 찬미함으로서 창조자를 존중하자는 것이 누구라고 봅니까...

러한 지성이 결여된 원죄론은 어둠의 것으로 그렇게해서 여러분은

여기에 있는 여러분 자신을 근본적으로 사랑할수가 없는데

단지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원해주는 존재일때만 그 사랑이 조건적으로 가능한거죠....

자기 자신의 영혼을 잃고 무분별하고 맹목적인 권력추종을 낳는 원죄론은 파기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빛이 아닙니다

 
네라

제가 말하는 것이 그 영혼의 자유입니다...

원죄론(죄책감)과 신을 권력추종으로 모시는 그것이 신의 사랑이 아니고 그 영혼의 자유가 아니며,

그 영혼을 제약한다는 이말입니다...

그래서 종교의 맹목적 믿음에서 벗어나 앎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고....

 

네라

여러분 주권은 스스로 찾아라 이말입니다...신 탓하지 말고.

글을 읽는 사람은 잘 분별해서 읽을수 있겠죠....


 

베릭

2011.10.27
10:11:02
(*.156.160.133)
profile

복종 실험    올린이 :네라

경계선의 설정을 정확히 해야 한다고 생각이 되네요.

신뢰를 해야하는 대상

신뢰를 해서는 안되는 대상의 차이점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

 

권위 혹은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부정하거나 정의롭지 못한 지시에

한 개인이 자신의 자아를 잃은 채 얼마나 쉽게 복종하는가!


 1)<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 >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라고 하자

놀랍게도 참가자의 무려 65%(40명 중 26명)이 450V에 해당하는 전기충격에 도달할 때까지 버튼을 계속 눌렀다.

상식적으로 450V의 전기라면 거의 모든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원숭이조차도 자신이 어떤 버튼을 눌렀을 때 다른 원숭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 버튼을 오래 동안 누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 버튼을 누르면 먹이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째서 인간은 이런 일을 하는 것일까? 원숭이보다도 더 우수한 생명체라고 자부하면서 말이다.  
 
 2)< 자기합리화책임감의 회피가 만들어내는 복종

: 권위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책임을 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핑계를 가능하게 한다.

 

이 실험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실험자가 책임을 지겠다는 메시지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실험자는 심리학 연구에 상당한 경험이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따라서 일종의 ‘권위’가 있는 셈이었다. 450V의 버튼을 눌렀던 참가자들은

실험이 모두 끝난 뒤 왜 전기충격을 계속 주었느냐는 질문에 “지시대로 따랐을 뿐”이라는 핑계를 댔다.

만일 그 실험자가 어리숙하고 경험이 적어 보이는 나이어린 조교라 해도 그런 핑계가 가능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왜 가능했었는지 답이 나오기 시작한다.

권위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책임을 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핑계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행동을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면서도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 일을 저지른 고위공직자나 금융계 인사가 검찰에 출두하면서

수치스러워 하거나 반성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당당한 얼굴로 이런 투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바로 조직이나 윗선을 위해서(즉 지시를 받아서)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양심을 종종 이 권위와 맞바꾼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이 정말 부도덕하거나 나쁜 짓이라는 것을 몰랐을까?

수사나 조사과정에서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파급효과에 대해서 당시에는 잘 몰랐다고들 하지만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

왜일까? 신경과학적 방법을 사용한 심리학 연구들은 그 몰랐다는 변명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거짓말 하지 말라고 말이다. 
 
 3)< 부정함지각수용은 별개의 문제다 >

: 최후통첩 게임에서 불공정한 제안이 이루어지면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이 제안을 거부한다 

 

 (즉, 불공정한)제안을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러한 불공정한 제안을 대부분의 B들은 거부한다.

심지어는 이러한 불공정한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가질 수 있는 돈이 자신의 1~2개월 치 월급에 해당하는 돈일 경우에도

거부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정도로 불공정함이나 불평등함을 혐오한다.

자신이 무언가를 가지지 못해도 불공정한 제안이나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큰 이익을 취하는 것을 막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후의 신경과학 연구에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이를 설명해 준다. 사람들은 최후통첩 게임에서 불공정한 제안을 받을 경우,

배외측 전전두피질(DLPFC: 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이 평상시보다 훨씬 더 많이 활성화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이 뇌영역이 ‘불공정함’을 알아차리게 만들어주는 곳일까? 이후의 연구들은 조금 더 복잡한 이야기를 해 준다.

이 영역 중 일부가 바로 ‘신뢰’를 담당하는 곳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 영역이 손상된 환자는 제안을 하는 사람이 얼마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를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대부분 마냥 믿는 경향성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믿기 때문에 불공정한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를 자주 경험한다.

가족 혹은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부적절한 제안이나 지시를 받을 경우

‘이러지 말아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일을 결국 하는 이유가 그들을 믿기 때문이다.
 
 

4)< 배외측 전전두피질 >

 보다 중요한 점은 이 영역이 손상된 환자들조차도

자신에게 주어진 제안이 얼마나 불공정한 것인가를 이야기해 달라는 요청에 정상인과 다르지 않는 판단 능력을 보여줬다.

즉, 불공정함을 지각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며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무작정 실행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한다는 것이다.

뇌의 다른 영역이 손상되어  지적인 판단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5)< 자유로워지기 위한 신뢰, 비겁함을 덮어주는 신뢰 >


그런데 어떤 대상이 충분히 신뢰할만하지 않은데도 믿어버리고 싶은 욕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앞서 논의했듯이 신뢰를 주거나 권위를 부여해 버리면

내 행동의 잘잘못이 가져야 하는 책임이 나로부터 떠나기 때문이라는 암묵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닐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픈 강한 욕구가 존재하며

이러한 합리화를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내 행동의 원인을 나 자신이 아닌 외부의 다른 곳에 두는 것이다.

한편으론 비겁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론 어리석은 생각일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세상은 그 행동의 책임을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더 강한 정도로 물을 테니 말이다.

 

같은 이유로 DLPFC가 손상된 환자들은

상대방이 지나치게 모험적인 사업 제안을 해도 받아들이는 경향성이 정상인보다 더 높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 판단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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