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그 사람이랑 도저히 일을 같이 못하겠어요.
   그는 늘 부정적이고 안된다는 말을 너무 자주하거든요."

  "내가 보기엔 부정적인 건 자네도 마찬가지야."
    
  "왜 그렇죠? 전 항상 모든지 잘 되리라는 희망을 지니고
   밝게 일하려고 하는데요."

  "자네의 파트너를 부정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 그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자네야."

  만나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은 당신의 눈입니다.
  그 누구의 눈도 아니고 당신의 눈인 것입니다.
  당신은 한번도 남의 눈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당신에게 무엇이 보이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보는 것이 무엇인가가 중요하지요.

  어둠으로 그를 바라보면 그는 한없이 어두워질 것입니다.
  어둠은 의심을 부르고, 그의 밝은 부분마저도 감춰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어둠은 당신으로 하여금 '더 나은 것'을 찾게 합니다.
  더 나은 사람, 친구, 사랑, 일.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 보다 더 나은 사람을 꿈꾸게 하지요.
  
  하지만 당신의 눈에서 어둠이 걷히지 않는 한,
  모든 것은 마찬가지이며, 똑같을 것이며, 고독과 실망은
  반복될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무엇을 찾겠다는 말인가요?

  밝은 사람은 스스로 밝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는 것을, 만나지는 사람을 비추는 사람입니다.
  그이의 밝은 면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며,
  그를 그렇게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냥 보이는 것들이 밝은 시선에 의해 밝아지는 것입니다.  
    
  당신의 눈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창조적이고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힘을 지니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 힘을 이미 지니고 태어나 살고 있음을 잊고 사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일이지요.

  이 어려운 일은 이미 이루었으니,
  이제부터는 밝게 보며 편하게 사세요.

  사춘기 시절처럼
  어둠이 아직도 사귀자고 조르면
  그렇게 하십시오. 다만,
  
  시간에게 기회를 주고 자기 성장의 기회를 주세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돌아가는 것에 가깝지만,
  어쨌든 사람은 성장이라는 것을 합니다.
  
  어린 시절, 당신을 즐겁게 했던 '딱지놀이'가
  지금의 당신에게는 즐거운 놀이대상이 아닙니다.
  이웃집 아이가 딱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질투한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아이가 딱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시기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그 친구도 딱지가 많다고
  행복해하지는 않겠지요.

  인생은 추억입니다.
  독자들 중 죽고 싶은 당신의 이 순간도 추억입니다.
  
  당신의 죽고 싶은 이유는
  이웃집 아이가 딱지를 억지로 빼앗아 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인생의 어떤 비참한 순간도, 죽고 싶고, 끊고 싶은 순간도,
  지나고 보면, 이러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자살은 자신의 성장기회를 스스로 끊는 것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놓여있는 자신의 모습을,
  지금 삶에 반응하는 자신의 감정들을,
  자기 존재의 모든 것이라 여기며 자신을 어느 한 곳에 붙들어 매는
  행위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아무리 아무리 그렇게 한다고 해도,
  당신은 성장할 수 밖에 없답니다.
  
  어둠은 빛의 장식용 도구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어둡게 살고 누군가를 어둡게 본다는 것은,
  그녀의 은빛 귀걸이나 눈 가의
  여섯번 째 잔주름에만 몰두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언젠가 당신의 사랑은 그녀의 은빛 귀걸이와 잔주름에 의해
  부정될 것입니다.  
  
  몇 십년 후, 어느날, 어느 골목길에서,
  아! 하고 그녀의 참 모습을 깨닫고
  추억을 더듬어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당신에게 있을 것입니다.
  
  밝은 사람은 어둠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어둠의 가치를 인정합니다.
  근사하고 아름다운 어둠의 귀걸이를 고를 줄 아는
  사람이 그 사람입니다.
  어둠의 머리카락에
  마요네즈 팩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장신구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빛과 어둠은 장신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에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진정한 빛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의 건강한 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말이지요.
 
 인생은 추억입니다.

  선호하는 사상도, 특정 메시지도, 연구와 탐구도,
  당신의 추억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똑같은 모습과 내용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며,
  영원히 당신 곁에서 당신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수준에 따라 적절한 때에 바뀔 것이며,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첫만남은 신선한 자극이 될 것이지만,
  언젠가 당신은 그것을 추억으로 보내야만 합니다.

  당신을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게 만드는 것이 집착입니다.
  당신이 특정 수준과 특정 이미지에 집착을 하게 된다면,
  그것이 당신을 넘어서게 될 것입니다.
  신념이, 사상이, 당신을 넘어서게 되는 것은 필히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가슴은 당신의 눈 아래에 있는 것이지,
  당신의 머리 위에 달려있지 않은 것입니다.  

  당신이 뭔가를 배우게 하는 것은, 당신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은,
  시간입니다. 실로, 시간이 당신의 스승이며 동료이며 사상이자 메시지인 것입니다.
  집착은 시간에게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집착은 멀리 보는 시력을 저하시키고, 지금이 깨달음이고 최고수준이라는
  환상에 당신을 붙잡아 버립니다.
  실로, 당신에겐 여전히 딱지놀이가 최고의 놀이인 셈이지요.

  지금이 깨달음이고 최고 수준이 아니라,
  지금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고 지금이 최고 수준으로 가는 과정입니다.
  항상 시간의 흐름 속에 이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당신의 텔레비전에서 좀 더 떨어지세요.
  가까이에서 보면 눈 나빠진다고 했던 어른들의 잔소리는
  단지 안과에 들일 돈이 아까와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멀리 볼 수 있는 시력을 감퇴시키는 것은
  '집착의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

 남들이 당신의 한 모습만을 보고,
당신의 모든 것을 그 모습대로 평가한다면,
불쾌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남들이 바로 당신의 모습입니다.

당신 자신에게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이야말로, 당신 자신의 한 모습만을 보고
당신의 모든 것을 평가하거나,
항상 그 모습만이 당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지요?

남들도 당신에게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남들이 당신의 한 모습만을 보고,
당신의 모든 것을 그 모습대로 평가한다고
생각하는 당신은,

그들의 한 모습만을 보고 있는 것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그 모습대로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

당신이 완전히 자신을 바꾸고
모든 심리환경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체질까지 바꾸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기를 소망하지 마세요.

의지는 좋지만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하루에도 수도없이 바껴지고,
다르고, 다양하며, 수많은 변신을
하고 사는 사람이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도'라는 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레'를 만났을 때, 또는 '미'를 만났을 때에
나타나는 화음의 색채는 다르지요.
그 속의 '도'는 변하지 않았지만,
다른 것과 어울리게 되면
그에 맞는 늬앙스로 변하는 것입니다.

'도'라는 근본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길입니다.
왜 이것을 바꾸려고 하나요?
그것은 이미 만나지는 것들이나
시간에 따라서 다양한 소리를 내며
수많은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변하지 않는 '도'라는 근본음입니다.
만약 도라는 음이 왜곡이 된다면,
다른 음과 만날 때마다 바뀌어버린다면,
화음은 무너지고 조화는 불안성에 갈길을 잃고 말 것입니다.

문제는 관념입니다.
당신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스스로 규정하는 그 관념.
그것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을 변화시키기를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도'라는 근본음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다른 음들과 만났을 때 달라지는 그 화음의 늬앙스를
'늘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세요.

이미 다양한 자신을 인정하세요.

선율과 화성은 같지만,
만나지는 인연과 에피소드에 따라서
그 의미와 색깔이 무한히 바뀌고 변신하는
자신을 직시하세요.

그리고 자신을 고정된 자기관념에서 해방시키십시오.

이것이 진정 자신을 바꾸는 일입니다.
이것이 '도'라는 당신의 근본음을 지키는 일이며,
당신의 길(道)을 가는 일입니다.

*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들에게 인정을 받고,
그들에게 다 잘해주고,
그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챙겨주리라는
욕심을 버리고,

자신에게 좋은 사람,
자신에게 예의를 갖추고 조언을 해주는 사람.
바라보는 곳이 비슷한 사람.
많지 않더라도 그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 사람들에게 잘해주고,
그 사람들과의 시간을 기뻐하세요.

이것은 편애나 편견이 아닌,
당당한 자신의 선택과 선호이며,
어울릴 없는 사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에
대한 경계입니다.
이것은 그 사람들을 향한 부정적 경계가 아닌,
자기보호적 경계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만을 사랑하세요.
그리고 그 외의 사람들은 그냥 놔두세요.
미움도 좋음도 없는 상태에서 그들을 인정하고
그냥 놔두십시오.

이것이바로 균형적인 사랑이며,
협화음과 불협화음이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
당신이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까지
잘해주려 하고 챙겨주려고 한다면,
당신은 그들의 세계를 망가뜨릴 수도 있습니다.
또한 당신은 그들에 의해 병이 들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들을 두려워하거나
증오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고,
무엇이 진정한 평등과 조화와 사랑인지를
보다 깊이 생각하세요.

조화적 안목을 잃어버리면
추구하는 대상은 갈길을 잃어버립니다.
헤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충실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 까지도 사랑하는 것임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

당신이 이루는 작은 가정에서 태어나는 사람들은,
흘러 흘러 먼 미래에
별 하나를 이룰 수 있는 인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들이 바라보는 빛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가정이 바로 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 역시 하나의 가정에서 흘러나온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당신 자신과 당신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가정을
결코 작은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세상 전체로 생각하며,
따뜻하게 사랑을 가지고 아름답게 엮어가세요.

그러면 당신은
이 세상에 왔다 간 어느 성자 보다도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