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VIP 고객만 섬기고 ‘단골’ 도 푸대접
소액예금 무이자 연체땐 경매 내몰려
사회환원 0.1%∼1.8%…기업에 못미쳐 지난해 은행들은 큰 돈을 벌었다. 한해 동안 8조원이 넘는 당기순이익을 올려, 지금까지 가장 많았던 지난 2001년(5조3천억원)의 기록을 단숨에 갈아치웠다. 은행들이 경영전략의 초점을 수익 극대화에 맞춰온 결과다.
하지만 은행들의 이런 ‘화려한 실적’을 바라보는 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 이면엔 몇십년 동안 거래해온 단골고객이라도 돈이 안되는 소액 예금자라면 은행 문턱을 높이고, 각종 수수료를 슬금슬금 올려온 영업 행태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또 예금이자는 좀 덜 주고, 대출이자는 좀 더 받는 방법으로 예대마진 폭을 넓혀 이익을 늘렸다. 반면 거액 자산가들에겐 각종 수수료를 면제해주고 자녀들의 선까지 주선해주는 등 아낌없는 서비스를 해주고 있다.

■ ‘서민금융’의 실종=서울 도봉구 삼양동 삼양시장에서 30년 가까이 계란과 과일 장사를 해온 김예분(57)씨는 최근 공과금이 빠져나가는 통장을 뺀 나머지 통장들을 모두 정리했다. 몇십년을 거래해온 단골고객인데도 서비스는 커녕 오히려 냉대를 받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엔 아침에 은행 직원들이 직접 나와서 잔돈을 바꿔주고, 해가 질때면 예금을 받아간 적도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그날그날 번 돈을 몇만원씩 입금하려면 직원 눈치를 봐야 하고, 동전을 가져가면 아예 받아주지도 않아.” 김씨는 지난달엔 매년 은행에서 받아 썼던 가계부를 얻으려고 은행에 갔다가 퇴짜를 맞았다. “새 지점장이 우량고객에게만 우편으로 보내라고 했대.”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서 호프집을 하는 김아무개(45)씨는 20년 거래를 해온 한 시중은행에서 빌린 돈 때문에 결국 집까지 날렸다. 김씨는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지난해 은행에서 빌린 700만원의 이자를 제 때 내지 못했다. 연체이자가 발생해 은행 독촉이 시작되자, 김씨는 시세보다 싸게 집을 내놨지만 팔리지 않았다. 결국 은행은 지난달 김씨 집을 법원 경매에 내놨다. 김씨는 “몇년 전 이 은행이 어려울 때 단골은행을 돕는다는 심정으로 다른 은행 적금까지 깨서 통장을 만들어준 적도 있었다”는 말과 함께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소연했지만, 은행 쪽은 “부실채권을 최대한 정리하라는 본점 방침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은행들은 고객 관리 비용을 줄인다는 이유로 ‘돈 되는’ 고객은 우대하고, 그렇지 않은 고객은 홀대하는 차별화 전략을 점점 강화하고 있다. 이미 대부분의 시중은행들은 10만~50만원 정도의 예금에는 이자를 주지 않고 있다. 반면 정기예금보다 0.5~1.5%포인트 가량 금리가 높은 특판예금은 예금 최소 금액을 5천만~5억원으로 한정해, 서민에겐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부실을 줄인다는 이유로 소규모 자영업자들과 중소기업들에 대한 대출 문턱도 크게 높여놨다. 은행들은 또 점포 리모델링을 통해 우량고객 상담실은 호화롭게 꾸미는 대신, 서민을 상대하는 창구는 일부러 좁고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은행들은 일제히 서민금융에 등을 돌리고, 이를 맡아야 할 저축은행이나 새마을금고 등은 아직 영세하거나 부실해 서민을 위한 금융서비스 공백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 이익의 사회 환원도 ‘쥐꼬리’=은행들은 수천억원에서 1조원이 넘는 순익을 올리면서도 이익의 사회 환원에는 매우 인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겨레>가 조사한 지난해 시중은행들의 사회공헌 관련 지출 내역을 보면, 당기순이익 대비 사회공헌 지출 비중이 0.1~1.8%에 불과하다. 이는 국내 기업의 평균치인 6~7%선에 크게 못미치는 것이다. 또 그나마 사회공헌 지출을 예산 항목으로 따로 잡아 체계적으로 집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북한 용천 폭발사고 성금, 남아시아 해일피해 성금 등 일회성 지원이 대부분이다.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아서 내는 성금이나 은행의 마케팅 비용 성격이 강한 스포츠와 문화예술 지원금 등도 사회공헌 사업비 항목에 집어넣어 액수를 부풀리는 경우도 많다.

최창현 산은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외국의 대형 은행들은 금융시장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소외계층을 위해 지역개발과 조합주택 지원 등 이익의 사회환원을 제도화하고 있다”며 “우리 은행들이 외환위기 이후 생존을 위해 수익 극대화 전략을 선택한 측면이 있으나, 더이상 은행 본연의 책임인 공공성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중 은행의 당기 순이익과 사회 공언사업비 비교
은행         당기 순이익(잠정치)       사업공헌 지출
국민        5552                             101
우리        1조9967                        115
신한         8441                            비공개
하나        5172                             60
외환        5221                             9.3
제일         미발표                         12
한국씨티  미발표                          3.7

자료:각은행,  단위:2004년 기준,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