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눈까지 내리는 추운 날씨 속에 A씨(서울 관악구 봉천동)는 결혼후 소중히 써오던 TV, 라디오, 소파 등 살림살이 전부가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는 걸 지켜봐야 했다. 8년전부터 해오던 옷가게가 지난해 10월쯤 망하면서 A씨에게 남은 것은 3억여원의 빚뿐. 집을 팔아 ‘빚잔치’를 벌였지만 그러고도 남은 게 있어 압류당했던 살림살이를 이날 경매한 것이다.
그의 마지막 재산은 경매 시작 20여분만에 낯선 사람의 소유가 됐다. A씨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뿐”이라며 긴 한숨끝에 눈물을 닦아냈다.

B씨는 19일 자신의 식당에서 사용하던 냉장고, 식탁에 불판까지 낙찰가 350여만원에 넘겼다. B씨는 “10년 정도 장사했지만 지난 2년처럼 어려웠던 적이 없었다”며 “기울기 시작하니 어떻게 감당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솥단지를 내던지며 시위하던 식당 주인들의 심정이 꼭 나하고 같았다”고 했다.

재산을 날린 채무자들의 사정도 딱하지만 채권자들의 심정도 그에 못지않다. 특히 가까운 사람이라 믿고 빌려준 돈을 떼인 사람들은 처음엔 배신감에 치를 떨지만 막상 경매장에 오면 측은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채권자 C씨는 B씨와 30년을 알고 지낸 고등학교 동창이다. 경매장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던 C씨는 “믿고 줬던 돈을 날렸다고 생각해 봐라.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면서도 “세간살이 모두를 넘기는 걸 막상 보니 이 돈을 꼭 받아야 하는 내 처지가 한심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중앙지법 신태성 집행관은 “압류나 경매집행을 나가면 울면서 사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칼을 들고 협박하는 경우도 있다”며 “전 재산이 눈앞에서 날아가는데 그 심정이 오죽하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확정판결에 따른 강제경매와 근저당권에 근거한 임의경매 등을 포함한 민사집행사건은 2003년 36만5225건으로 2002년 25만6917건보다 42.2%나 늘었다.

채권자가 법원을 통해 채무자에게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는 독촉사건도 크게 늘어 2003년 133만8000여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2002년의 65만여건에 비해 두배 이상 는 것으로 역대 최고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