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종교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인 religion 을 살펴본다면

    <re(=again)+lig(=bind)+ion(명사형 접미사)   =  다시 결합하다. > 

 다시 결합한다는 의미로 이는 하나님과 분리되었던 인간이 하나님과 다시 하나가 되고

잃어 버렸던 자신의 참 자아를 찾아 다시 결합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읍니다.

 

     만드는 사람은 활을 다루고
     뱃사공은 배를 다루며
     목수는 나무를 다루고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다루네!  - [선지식 석가모니]

 

     "Those who know all, but are lacking in themselves, are utterly lacking."

     "모든 것을 알되 그 자신을 모르는 자들은 아주 모르는 자이니라."    - [예수 그리스도]

 

로봇이나 미생물에 대해서는 박사이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 모른다면

이는 안타까운 일 일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허다히 많은 학문들과 정보 지식들이 있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 탐구하고 자신을 다루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고 고귀한 학문일것입니다.

 

이와같이 자기 자신을 탐구하여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 진아와 합일 - 하나님과 다시 결합하는것

그와같이 이 세상에서 수많은 학문이나 가르침중에 가장 가치있고 소중한 가르침

그것이 종교 라고 하는것의 본래 의미 입니다.

 

성현들은 바로 이것에 대해서 가르침을 펼치셨고 그분들의 순수한

본래 가르침(본교)이 있었읍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분들의 가르침은 점차 왜곡되었고

심지어 사람들에 의해 편집되고 조작된 문구까지 삽입되게 되었으며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여러 차례 번역되면서 본래의 순수한 가르침은 엉뚱한것이 되어 버렸고

이것이 오늘날의 종교라고 하는것의 상황입니다.

 

성현들은 자기 자신을 우상숭배하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우상화시키고 숭배하기에 이르렀읍니다.

 

성현들의 본래 가르침은 차별이 없고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속으로 의미하는 바는

언어가 다르고 표현이 다를지언정 모두 하나의 진리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이 종교 저 종교, 내 종교, 네 종교 와 같은 종교적 상황들이 생겨나기에 이르렀읍니다.

 

성현들의 순수한 본래의 가르침은 정치적 목적과 특권층의 권력을 유지하고

경제적 이익을 위해 왜곡된것이 오늘날의 종교 입니다.

 

성현들의 본래 가르침은 끊기고 법맥이 끊긴채

엉뚱한 교리들이 현란한것이 오늘날의 종교 입니다.

 

그렇기에 종교라고 한다면 문제성이 있다는것을 떠올리게 되고

그리고 그것을 따라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거나 종교를 무조건 반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종교라고 하는것은 성현들의 왜곡되지 않은 순수한 본래 가르침이 있었고

그것이 왜곡된 오늘날의 종교라고 하는 상황을 정확히 구분해야만 하며

종교는 나쁜것이라고 성현들의 본래 가르침까지 도매금으로 매도해 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

 

어떤것을 반대하는것은 단순히 그 대상에 대한 반대적인것일 뿐 그것은 같은 수평선 상에 있는것이지

그것을 진정으로 넘어서거나 초월한것은 아니라고 라즈니쉬가 이야기했듯이

 

종교라고 해서 무조건적이고 무차별적으로 종교를 반대한다면

이것 엮시 종교에 반한 반종교 사상 밖에 되지 않을것입니다.  

 

어떤것을 반대하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물론 어떤 특정한 정확히 잘못된 포인트도 집힐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빌미로 다른 옳바른것까지도 무차별적으로 전부 도매금으로 매도한다면

이것 또한 잘못된것이며 이것 또한 맹신이고 미신이며

반종교라고 하는 또 하나의 다른 형태의 종교가 아니면 무엇일까요?

 

성현들은 사람들의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서 그리고

이 상황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자유와 해방을 얻을수 있을지를 가르쳤읍니다.

그것은 그저 단순히 지식적이며 테크닉 적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면 그뿐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 자신을 따르지 않고는 아버지 하나님께 이를수 없느니라!]

 

모든 사람 각자 자기 자신이 길이고 생명이니 그 자신에 의하지 않고는 하나님에 이를수 없다는 의미이며

여기에는 예수님을 우상숭배할것도 없고 그저 하나의 지혜와 테크닉일뿐입니다.

종교니 종교가 아니니 할것도 없을것입니다.

 

컴퓨터를 다루는 법을 알아야 컴퓨터를 할수 있듯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아야 자기 자신도 다룰수 있을것입니다.

 

연꽃이라고 하면 불교를 떠올리지만

연꽃은 우리 내면의 챠크라에 대해서 그렇게 표현한것일뿐 그것을 꼭 불교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을것입니다.

 

여기에서 종교라고 한다면 연꽃의 진정한 의미도 모른채 석가 탄신일날 연꽃을 사고 팔고 한다면

단순한 의례적 상황이라면 그것이 종교적 상황이고 그런점을 주의하면 되는것이지

종교는 나쁜것이라고 해서 불교는 나쁜것이므로 불교를 따를 필요가 없다면

챠크라도 배제되어야 할것이며

종교라는것을 나쁘게 인식함으로써 크라도 나쁘고 챠크라 수련까지  해서는 안될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결론에 이르게 되서는 안될것입니다.

 

여기에는 오늘날의 불교는 법맥이 끊겼고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등행사를 하면서도 연꽃의 의미조차 모르고 그와같은 수행을 하지 않으며

이러한 면이 생략된채 수트라에 치우쳐 있는데 비해

연꽃이 챠크라를 의미하듯이 불교 경전의  많은 내용들이 실은 사람과 관련된 비유와 표현이며

이와같이 사람에 대해서 기술하고 그러한 방법을 논한것이 탄트라이며

그런 길이 더 옳바른 길이라고 알고 그와 같은 길을 갈때

것이 오늘날의 종교라고 하는 잘못된 상황을 타파할수 있는 진정한 길이 될수 있을것입니다. 

 

 

     [여호와의 의로운 해가 떠올라 치유의 광선을 발하시리니~   ]

 

우리의 내면에는 신성이 존재하고 그 신성의 빛은 하늘의 태양보다도 더 눈부신 태양입니다.

여호와는 우리 내면의 신성을 성경에서 그렇게 표현했을뿐입니다.

이러한 문구를 종교적으로만 보고 종교는 나쁜것이라고 무조건 버린다면

자신의 신성에 대한 지혜도 버리는것이 될것입니다.

 

물론 저 문구를 버린다면 지금은 정보화 시대로써 많은 다른 성자들이 이와 유사한 표현을 한것이 있기에

그런것을 참고 삼아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공부하는 계기로 삼을수도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성자들이 잘 표현하지 않은 또는 다른 정보 쏘스에도  잘 나오지 않는

그런 정보들도 종교 경전이라고 하는것에는 들어 있읍니다.

 

오히려 단순히 깨달은 사람들 또는 채널링과 같은것들은

아직 그런 정보에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라고 할수 있읍니다.

또한 깨달았다는 사람들 또는 채널링 정보와 같은것들이 정확도나 진실성이 떨어지는 이유도

바로 그러한 정보에 바탕을 둔 경지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채널링뿐만 아니라 종교 자체까지도 전체적인 문제입니다.

성현들 본래의 가르침인 본교가 아닌 종교가 종교인 상황적 문제입니다.

 

종교가 본교에서 멀어져 오늘날의 사람들이 종교라고 인식하는 그런 종교가 되었지만

또한 법맥이 끊겨져 있음에도 불구라고 비록 비유로 표현되어져 있지만

어떤 실마리와 같은것들이 여전히 남겨져 있고

그러한 종교 경전으로써의 중요성과 가치는 여전히 지니고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전속의 가치를 발굴하지 못하고 필요한 정보까지 배척하고 짓밟는다면

그것 역시 잘못된 믿음과 사상으로써 큰 실수를 범하는것이 될것입니다.

 

인류가 태양신을 숭배하게 된 이유나 시작은

원시 시대에 인류가 힘이 없을 때 하늘의 태양은 찬란히 빛나고 모든것에 생명을 주고

너무나 위대하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태양을 신앙한것이 아닙니다.

 

아틸란티스의  성자들은 아틸란티스 침몰후 세계 각 지역으로 파견되어

다시 원시문명으로 돌아간 사람들에게 처음 나타나서 한 말이

나는 태양이다! (자신이 신성을 의미) 라고 한것이

태양신 신앙의 시작이고 원류 입니다 .

 

이러한 우리 자신의 내면의 신성 태양을 여호와로 신앙하는것도 문제이지만

예수님이 나는 신의 태양이다! 라고 한것을 Sun 을 Son으로 왜곡시켜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로 숭배하는것도 문제이지만

또한 내면의 신성인줄 모르고 단순히 하늘의 태양으로 생각한다면 그 엮시 문제일것입니다.

이런것이 단순히 하늘의 태양이고 종교라는것이 이런것에서 비롯되었고

그렇기에 종교는 별거 아니라고 한다면

이 엮시 우리 내면의 신성 태양을 가르치는 종교 본래의 가르침과 거리가 멀뿐더러

전혀 엉뚱한 왜곡된 가르침이 될것입니다.  

 

성현들의 가르침은 이와같이 역사와 시간이 흐르면서 왜곡되거나 악용될것을 우려하여

많은것들이 비유와 상징으로 되어 있으며 또한 성현들마다 표현방식이 다르지만

그 이야기와 경전의 내용들은 그저 사람에 대해서 기술한것

사람이 어떻게 자유와 해방에 이를수 있는가에 대한 길에 대해서 설명해 놓은것일 뿐입니다 .

 

사람은 누구나 5장 6부를 갗추었고

사람은 모두 같기 때문에 사람을 다루는 방법도 같을수 밖에 없읍니다.

이 사람 치료 방법이 다르고 저 사람 치료 방식이 다를수 없듯이

경전에 천신이 천억이라도 그 하는 말은 모두 같다!  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이 자유와 해방에 이르는 길 - 수행법도

성현이 천명 만명일지라도 표현은 다를지언정 모두 같을수 밖에 없읍니다.

 

그저 사람에 대한 표현들이고 그를 바탕으로한 방법과 체계적 학문임에도

이를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본다면

기독교에서 한의학이나 침술을 사탄적인것으로 보는것과 다를 바가 없을것입니다.

 

종교가 나쁜것이라고 해서 성현들 본래의 가르침인

그러한 지혜와 기술까지도 함부로 짓밟아 버려서는 안될것입니다.

 

 

  

 빛의

 

오늘날의 왜곡된 종교는 빛의 몸을 잘 가르치지 않지만

성현들의 본래의 가르침은 빛의 몸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한 본래의 가르침은 빛의 몸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체계 입니다.

 

부처님이 법화를 설하실때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서 쫓겨났는데

이들은 법에 대한 - 빛의 몸, 깨달음을 이루는데 있어 체계를 잡고 있지 않고 결과만 있었던 사람들로

나무의 뿌리와 줄기는 없이 열매만 있었던 사람들이었읍니다.

 

성현들의 본래의 가르침은 어떻게 하면 어떤것들에 도달할수 있는지

뿌리에서 열매까지 체계적으로 가르칩니다.

체계를 잃어 버리면 오늘날의 왜곡된 종교가 되고

체계를 갖추면 성현들 본래의 가르침이 됩니다.

 

체계가 없으면 또한 오늘날의 채널링이 됩니다.

채널링은 훌륭한 진리가 많지만 그러나 뿌리와 줄기가 생략된채

곧바로 사람들을 하늘로 띄워줍니다.

라즈니쉬가 말한대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으면 그들이 인정하는 말들만 해대면 됩니다 .

바로 아름다운 말들, 멋진 말들, 감동적인 내용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말들로 채워서 말하면 됩니다 .

그리고 정확하게 중간단계어떤 과정이 되는 중요한 연결 고리를 끊어 버리면

이는 사람들을 어둠에 인도하는 좋은 수단이 됩니다.

 

빛의 몸은 바로 평상위의 등불과 관련 있읍니다.

예수님이 이야기 한대로 입니다. 아무도 등불을 평상위에 두지 평상 아래 두지는 않읍니다 .

평상 위는 바로 빛의 몸의 전 단계 수련이며 최소한 여기까지 가야  아직 빛의 몸은 만들수 없더라도

생명의 연장과 함께 중요한것은 진실을 옳바르게 볼수 있는 힘 - 최소한의 바른 통찰력을 얻게 됩니다. 

 

채널링은 바로 이 전단계 경지에서 이루어지는 정보들 입니다.

그리고 평상 위에 도달하기 이전에 사람들은 세상을 구원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랬을 때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여 둘 다 구렁텅이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채널링이 발표되고 한 동안의 시일이 지나면

그 내용은 진실성에 문제가 있네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평상 위가 되기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법을 펴는것의 문제에 대해

예수님은 좀더 배우다가 최소한의 바른 통찰력을 갖추면 그때가서 다른 이를 가르치라고 합니다.

너희 귓속에 듣게될 것을 너희 지붕에서 다른 귀들에게 선포하라 고 합니다.

지붕이 되기 전의 수련을 불교에서는 성문이라고 합니다.

성문은 진리,  법문을 듣고 그것에 의해 수련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말 그대로 듣는 사람이지 사람들을 교화하거나 가르치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현들 본래의 가르침은 이와같이 어떤 체계가 있으며 반대로

채널링도 오늘날의 왜곡된 종교도 평상 위가 무엇인지 모르며

성문 연각이 조금 색다를 뿐 구분이 가지 않으며 이러한 상황을 일러 종교라고 하며

이러한 상황을 바르게 파악하면 그것은 성현들의 본래의 가르침이 되며

또한 종교를 부정하다가 성현들 본래의 가르침까지 도매금으로 넘기고 무조건 반대하고 부정하면

그것은 종교를 부정하는 반 종교적인 또 하나의 종교가 탄생하게 됩니다.

 

더 무서운것은 평상 위를 가르치면서도 훌륭한 진리를 사람들에게 가르치는것 같지만

실은 평상 위가 아닌것들입니다.

 

빛과 물질 사이에 해당하는 그 과학을 채널링은 가르쳐 주지 않읍니다 .

종교라고 하는것들의 경전은 성현들 본래의 가르침을 찾아 잘 헤아려 본다면

오히려 그 비유와 상징은 능히 풀어 헤칠수 있으나

채널링은 더 여러차례 또는 더욱 고도의 또는 풀어 헤쳐봐야

빛의 몸을 이루는데는 결정적인것을 얻을수 없는 내용들로 구성됩니다.

 

빛의 마스터들은 어둠의 마스터들이나 관련 세력에게 자신들의 가르침이 함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은닉해 놓았기 때문이며 채널링은 모든 사람들이 쉽게 볼수 있는 자료이므로

이런곳에 함부로 정보를 공개해 놓지는 않읍니다.

 

사람들이 왜곡된 종교를 생각해서 종교를 나쁘다고 하지만

종교가 왜곡되기 이전의 성현들의 본래의 가르침은 정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

 

비록 왜곡된 가르침 속에 수많은 모래알 속에 숨겨진 희귀성 가치의 사금이지만

모래만 보고 모래들을 버리다가 사금까지 도매끔으로 넘겨 버려서는 안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