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큰누나집을 방문했다. 큰누나가 은행에서 퇴근하고 들어와 저녁을 사먹자고 했다.
     나는 근처 중국집의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다. 누나에게 뭘 먹을거냐고 물어보니, 한참을 들
     여다보면서, 고추잡채를 먹어보자고 했다. 고추잡채는 무려 20000원, 아직 한번도 먹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으로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다. 얼마 안돼서 음식이 왔다.그런데
     이게 무엇인가? 잘게 썰은 피망만 가득하고, 해물, 고기는 간간히 몇점만 떠 있었다.
     이게 20000원 짜리 음식이란 말인가. 누나와 나는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 " 이건 술안주로
     적당하겠다. 술이나 한잔 할까? " 누나가 제안을 했다. " 나 술 않하잖아. "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일이 있을까? 이곳은 음식을 성의 있게 하기 때문에 그동안 단골이었는데, 거금
     20000원짜리 음식이 이렇게 형편없을수가... 마침내 누나가 젓가락을 놓았다. 그리고는 전
     화를 걸었다. " 이리 오셔서 한번 보세요. 어떻게 피망만 가득하고 성의없는 음식을 만들었
     어요? " 그런데 중국집 사장의 반응은 더욱 놀라웠다. " 전혀 그런일이 없습니다. 맛있게 드
     세요. " 뻔뻔한 사장의 답변에 누나도 놀란듯했다.
     나는 이때서야 감을 잡았다. 누나 돈 20000원이 죽은 돈이었구나....

     죽은 돈이란 무엇인가....
     만원 한 장에는 그 만큼의 가치가 있다. 괜찮은 식사 두세끼를 해결할수 있고, 만원을 벌기
     위해서 노동자들은 두세시간의 중노동을 해야한다. 아르바이트 비용이 2000원대이니까 5시
     간 노동의 가치가 있다. 이처럼 돈은 그 액면가치 만큼의 수고와 노력, 정성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같은 돈에 담긴 정성의 가치를 인식하지 않고 있지만, 돈은 그야말로
     인간의 많은 정성이 담긴 에너지 덩어리이다. 죽은 돈이란 쉽게 말해서 가치를 잃어버린 돈
     이다.

     백화점에서 호가하는 사치품들, 액면가에서 10배를 부풀려 속였더니 더 잘 팔리더라....
     이것을 믿고 사는 돈많은 아주머니들의 사치에 사람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지만, 사실
     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돈 많은 아주머니가 가진 돈이 '죽은 돈' 이기 때문이다. 일반인
     같으면 5만원에 살수 있는 핸드백을 가치가 떨어진 죽은 돈으로는 50만원, 100만원을
     내야 구입할수 있는 것이다.  바가지로 떼돈을 벌었다고 좋아하는 백화점 사장은 그 돈을
     가지고 룸싸롱에서 날린다. 양주 몇잔과 노래 몇번 부르고, 수백만원을 버린 것이다. 또 이
     돈을 손에 넣은 검은 양복의 아저씨들도 전혀 액면가치에 걸맞지 않게 쉽게 돈을 써버린다.
     흔히 검은 돈이라고 일컫는 이 죽은 돈들은 그런 세계에서 돌고 도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나는 누나가 참고 용서하기를 바랬지만, 중국집 사장의 무책임한 태도를 그만 두고 볼수 없
     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걸어서 당장 음식을 찾아가라고 호통을 쳤다. "누나 큰
     소리는 내지마." 라고만 당부하고 나는 내 방으로 들어왔다. '사장이 무책임하게 나오는걸로
     봐서 음식비 20000원은 죽은 돈이 분명하다. 저렇게 화낼 일이 아닌데, 그렇다고 말릴수도
     없고... ' 그런데 의외로 중국집 사장은 들어오자마자 자신이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용서를
     빌었다. 누나도 별다른 말없이 화를 풀었다.

     이 경우는 어떻게 되는가.... 중국집 사장의 사과하는 마음이 죽은 돈 20000만원을 소생시
     켰을 것이다. 한동안 가치를 잃었던 검은 돈에 아저씨의 정성이 응기(應氣)되어서 새롭게
     20000만원의 가치를 회복한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돈과 물질에 가있고,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돈과 물질을 얼마나 소유
     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결국, 돈에 인간들의 마음이 연결되어 있으며, 세상은 물질의 원리
     로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