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shaumbra.or.kr구현 시리즈 Embodiment Series
샤우드 2  발췌 요약  –   구현 속의 네 가지 피해야 할 명사형  (The Four –TIONs of Embodiment)
2004년 9월4일



[들어가기]



샤우드 – 샴브라가 학생이며 동시에 교사.  베일 저편의 모든 존재들이 샴브라의 에너지를 가져다가 다시 샴브라에게 되돌려 줌.  배우는 동시에 다른 모든 이들을 가르치고 있음.  이런 샤우드는 예전에 한 번도 쓰여진 내용도 아니며, 또한 한번도 경험되어 보지 못한 것임.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즉 인간인 우리) 보다 훨씬 더 장대한 존재 – 예전 어떤 천상의 가족들 중 하나의 지도자들이기도 하였고 다른 차원 속에서 교사들이었음.   지금 존재하는 모든 것 대신 배우기 위해 지구의 삶이라는 환상 Illusion 속에 살고 있음.   이 환상을 깨뜨리고 그것을 뛰어 넘어야 함

최근 콜드레 그리고 샴브라가 매우 수동적인 것이 아닌가하는 지적이 있었음.  만일 소위 능동적으로 이원성과 싸움을 한다면, 오히려 그 이원성에 에너지를 더해주는 셈이 됨.  단지 관찰하는 입회인 Observer 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려 들지 않아도 된다는 이해를 가져야 함.  몸이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은 세상의 변화를 위한 문제들을 스스로에게 짐지우기 때문임.   지금 할 수 있는 최상/최대의 일은 그저 세상을 사랑하고 용납하는 것임.  

실제로 샴브라는 자기들이 얼마나 비수동적 un-passive인지 모르고 있음.  새에너지 속 최첨단에 선 새로운 개척자 그리고 선구자로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일을 하고 있음.   이원성을 초월해 낡은 전투적 에너지를 벗어나 그것을 떨쳐버림으로써 우리 뒤에 오는 이들이 만일 변화를  선택을 한다면 그러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들을 수립하고 있음.   그들을 위해 이런 저런 해결의 실마리와 안내 지침을 심어 놓는 변화의 일군들임.  

오늘 베일 저편의 존재들이 축복의 에너지를 가지고 왔음.  축복의 에너지라는 것은 바로 우리들을 용납하고 경외하는 에너지,   중립적이고 잠재적인 상태로 있다가 앞으로 활성화되어질 에너지, 그리고 바로 우리들을 사랑하는 에너지임.




[오늘 방문자 오아마/람타]


오늘 방문자의 에너지에 근거해 오늘 샤우드의 에너지가 사뭇 다름.   콜드레, Tobias 그리고 샴브라의 에너지 뿐 아니라 오늘 방문한 오아마  O-Ah-Mah (다른 이름으로 람타 Ramtha) 의 목소리가 한데 섞인 샤우드가 진행중임.   많은 메시지 중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더 이상 의지 will 와 힘 force 이 필요치 않다는 것.

오아마는 의지를 사용해 자기의 이야기로 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킨 인물.   살상을 사랑했던 야만인 전투사.  수많은 전투 후 상처를 입고 7년 동안 병석에서 다른 이들의 수발이 없이 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지경에서 영과 인류를 향한 분노에 가득차 있었지만, 자신의 의지와 힘 하나만을 가지고 스스로를 치유해 냄.   그 어떤 천상의 그룹이나 천사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스스로 용감하게 그일을 해냄.   어떤 면에선 바보임 {웃음을 자아냄}

새에너지 속에서  힘이란 힘이 아니다  In New Energy, Force is No Force!   - 오늘 오아마 학파 Oamah School 가 가지고 온 힘이 아니라 용납과 경외가 필요하다는 가르침.  힘에는 반드시 되돌아 오는 반작용의 힘이 있음.  [Tobias 가 농담처럼 오늘 샤우드 속에 오아마의 목소리가 들어 있고 그래서 샤우드 속에서 언어화되는 모든 것들 특히 오아마의 말들에 대해 자기에게 책임이 없다고 말해 청중의 웃음을 자아냄]   모든 것이 정말로 부드럽고 평화적으로 이루어 질것임.  하지만 매우 높은 에너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실제로 그렇게 느껴지지 못함.   샴브라들이 불평을 함 – 과연 주위의 모든 힘들로 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서 힘으로 대항을 해야될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을  과연 무엇을 지켜낸다는 것인가?   이원성은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바로 이런 이들에게서 에너지를 파먹고 사는 셈.   샴브라들이 더 이상 전쟁을 중단하고 나면 이원성의 눈 앞에서 마치 공기처럼 기화해 버리면서 사라지게 되는 것임.  그러면 이원성은 다른 전투자를 찾아 갈 것임.

새에너지의 역학과 물리학은 물질적인 단계를 넘어선 것임.  에너지가 반응을 보이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장 場 임.   아원자 sub-atomic 적 단계로서 현실 reality 을 넘나드듬 (현실 속으로 들어왔다간 이내 현실 바깥으로 나가버림).   그렇다면 과연 우리들의 현실은 무엇인가?  우리가 인지하는 현실 이외의 우리란 과연 무엇인가?  





[현재의 순간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끝이 남]



우선 지금이라는 순간 속에 확고하게 접지함으로써 모든 것이 시작됨.   오아마가 말하길 더 이상 미로에 갇힌 쥐처럼 머리 속에서의 생각을 중단하고 창조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함.  

먼저 지금 이 방 안에서 그리고 이 순간 속에서 모든 것들을 느껴봄.  몸, 머리카락, 숨, 주위의 다른 사람들 그리고 소음들.  이 모두 지금 이라는 순간 속에 현존하고 있음을 느낌.  바로 이 장소에 깃든 몸, 마음 그리고 영을 마치 스냅 사진을 찍듯 확고하게 느껴야 함.  바로 이 지금  속에서 모든 것이 시작됨.  만일 지금 이 순간 속에 머물지 못한다면 결코 차원성의 복도 Corridor of Dimensionality 를 느끼지 못하고 말게 됨.  더 이상 다른 차원 속으로 확장해낼 수 없음.  스스로를 몸과 제한성 속에 머물지 않도록 허용하고 용납한다는 것은 결국 이 순간 속에서의 인간성 뿐 아니라 다른 차원성을 스스로에게 허락 Permission 하는 것.   스스로 인간됨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천상적인 존재임을 동시에 허락하는 것.  더 풍부하고 확장된 존재일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  전생애들의 측면들에 국한 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  내가 누구인가 하는 그 모든 것을 허락하는 것.

과연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그러한 허락을 해 줄 수 있는가?   현재 인간됨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용납하여 하늘 높이 날아 오를 수 있는가?

어떠한 한 점 point 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점을 공유하고 있는 수많은 장 場 들 속으로 근원적 에너지 Source Energy 와 새에너지가 들어오도록 하는 것.   과연 아틀란티스 시절 티엔 사원에서의 첫 모임을 기억하는가?   초차원적 현실 Trans-Dimensional-Reality 에 대해 토론하고 그 결과를 잘 감추어 두던 그시절?  물론 지금은 감출 필요가 없이 지금 이 순간 속에 다 드러낼 수 있지만.  우리는 같이 지구에서의 여정을 통해 지금 우리가 다가서고 있는 완성의 시점에 같이 도달하겠노라 결단하던 그 모임!   2천년전 예수아 시절을 기억하는가?  아니면 지구 다른 모퉁이에서 그리스도 씨앗을 가지고 들어오던 그 시절?  이제 지금 이순간 속에서 우리는 그 시점과 지금 이 시점 둘 모두 속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게 되었음.  바로 이것이 우리가 지구에서의 삶을 거듭해 온 이유.

이 모든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속에서의 확고한 접지에서 시작되고 끝이 남.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는 것은 지금 속에서만 가능함.  지금 이 순간에 촛점을 맞추고 나서 열어 젖혀야 함.



[구현 속의 네 가지 명사형]



오늘의 주제 – 네가지 명사형 –TIONS 또한  shuns [같은 발음 – 피해야 할 것들 이라는 의미] – 네 분야


1.        Distraction      마음을 빼앗아 혼란 시키는 것들


세상 주위, 가족 그리고 나 스스로에 의해 마음을 빼앗기어 혼란 속에 빠지지 말고, 지금 우리가 선택한 길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함.   사랑하는 이들, 돈, 직장에 관한 일들은 바로 우리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그저 그렇게 거기에 있을 뿐임.   과연 우리의 이해의 깊이가 얼마나 되는가 하고 시험하는 것임.    고의적으로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려고 하는 것이 아님.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라고 계획하여 그 누군가가 미리 심어둔 것들이 아님.  그저 자연스레 일어나는 일들에 불과함.

세계적 규모에서 역시 앞으로 3년 동안 진동적 에너지와 확장적 에너지의 굉장한 변화와 전환 Shift 이 일어날 것임.   양자적 도약이 과학, 종교, 사회사업 그리고 정부적인 차원에서 일어날 것임.  세계 전체가 변태 metamorphosis 를 하면서 수많은 혼란을 야기시킬 것임.

우리는 그저 우리가 선택한 코스에 머물기만 하면 됨.



2.        Translation    해독/번역



우리 주변 모든 곳으로부터 수많은 정보가 우리 속으로 다운로드 되고 있음.  하지만 그 정보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우리의 마음/지성 mind 은 전혀 알 길이 없음.   마치 낡은 컴퓨터에 최신 운영체계가 깔리어 PC 가 그 운영체계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음.  

우리는 과연 그 정보가 무엇인지 머리를 통해 파악하려 드는 것을 중단하고 에너지가 어찌 움직이는가 잘 느껴야 함.  [지금 샤우드가 진행되는 이 순간에도 역시 많은 다른 것들이 우리에게 다운되는 중이라고 함.  지금 떠들어지고 있는 말들은 실제로 그저 다운이 일어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 것에 불과하다고 Tobias 가 말함]  

인간의 마음은 차원간 정보 Inter-Dimensional Information 를 번역/해독할 능력이 없음.   마음은 그 정보를 해독해 언어화 articulate 하고 종류별로 상자에 분류하려 듬.  하지만 차원간 정보라는 과것은 마치 바람과도 같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저장에 저장을 거듭해 수북히 쌓이고 있음.

그렇다면 과연 어찌 번역하고 해독할 것인가?   마음/지성이 아니라   가슴 Heart  영혼 spirit 이라 불리우는 신성한 지성 센터 Divine Center/Divine Intelligence 를 활용해야 함.   이 신성한 지성은 언제나 거기에 있어왔지만 한번도 사용된 적이 없음.   신적 해독 체계  Divine Translation System 를 어찌 활성화시킬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 왕국의 왕인 우리 자신들이 스스로에게 그것으로 하여금 일을 하기 시작하라고 허락을 하기만 하면 됨.

마음으로 하여금 멀리 휴가를 떠나 보내고,  이 신적 해독 체계로 하여금 수많은 정보들을 번역해내도록 내버려 두기만 하면 됨.   지금 음악, 시, 그림으로 표현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표현들이 정보로 하여금 해독되어 지도록 허락을 하는 것이기 때문임.

우리가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그 정보들이 우리 속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내버려 둔다면,  우리의 지성/마음은 이 새로운 환경 속에 이내 적응을 해내고 곧 다차원적 차원으로부터 오는 정보를 해독하는 과정을 돕게 될 것임.

해독/번역은 우선 내적인 에너지의 움직임으로 감지된 뒤,  그 정보들이 수많은 단계를 거쳐 현재적 현실 Now-Reality 속으로 들어와, 결국 '아하'의 순간들을 통해 새로운 이해를 자아내어, 그 해독된 정보들이 그 어떤 지적인 설명도 필요가 없이 우리들 속으로 흡수되는 과정을 말함.



3.        Validation   인증

우리에게 하나의 모순 Conflict 이 있음.   우리는 이미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남들로부터 우리가 맞다는 인증을 찾으려 듬.   그 인증은 결국 낡은 이원적 에너지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것에 불과함.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나 사건들 속에서 인증을 추구한다는 것은 결국 이원성에게 다가가 인정을 얻어내려는 것임.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 곧 스스로를 의심하고 결국 부정 discount 해버리고 말게 됨.   신성한 순간 속에서 깊이 숨을 들이 쉬면서 스스로 해답을 말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함.  이 인증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우리와 이원성 사이에 놓여진 다리와도 같음.  의심의 다리임.  우리는 그 다리를 건너 이원성으로 다가가 결국 불인증의 딱지를 얻어 돌아옴.

우리는 더 이상 인증이 필요치 않음.   과연 우리는 이 인증이라고 하는 것을 떨쳐버릴 수 있는가?  인증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과거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데 필요했던 것에 불과함.  은행에 돈이 있어야하는데 잔고가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불인정하고 말게 됨.  또한 나의 생각에 따르는 이들이 몇이나 되는가 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인증하려 듬.  거의 모든 인간들을 바로 이 인증에 목말라하고 있음.






4.        Perception    지각


우리의 현실 Reality 은 변화하고 있음.  우리의 지각 역시 변화하고 있음.  주위의 모든 것들이 변화하고 있음.  이것은 바로 우리 스스로가 변화하기 때문임.   하지만 많은 샴브라들 역시 변화를 좋아하지 않음.  그저 더 낳은 똑같은 것 Better Same 을 원함.  

현실의 본성 Nature of Reality 은 더 이상 안정스럽지 못함.  또한 우리가 그렇다고 생각했던 것이 더 이상 아님.   현실의 본질/본성 역시 변화하고 있음.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전혀 다른 시각에서 보기 시작해야 함.  전혀 다른 종류의 지각을 가져야 함.   더 이상 고정적이고 정체된 지각이 아니라 자유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함.   앞으로 간다고 지각하는 그 순간 동시에 뒤로 가고 있다는 것을 지각할 수 있어야 함.  높다고 지각되어지는 것이 다른 시각에서 보면 낮을 수 있음.  모든 것들이 지금까지 그렇다고 보아온 것이 아님.  더 이상 직선적이고 삼차원적이어 한정된 시각으로만 보아서는 안됨.

우리가 자유와 주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어떤 현실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그 현실의 본성은 계속 변화하고 있음.  어떤 것에 대한 그 어떠한 가정 assumption 도 해서는 안됨.  우리의 지각을 변화시켜야 함.   우리가 무겁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그저 우리가 그것이 무겁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거운 것에 불과함.   분자와 원자들 사이에 있는 그 무엇이 그것을 무겁게 한 것임.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Tobias 나 변화 때문에 화를 낼 수도 없게 됨.   어떤 것이 차갑다고 지각될 때 따스하다는 관점에서 새롭게 쳐다볼 수 있어야 함. 이처럼 우리의 이야기에 대한 지각을 변화시켜야함.

어떤 그림이 단지 2차원적인 것에 한정되지 않음.  그림을 그린 화가의 관점도 있고 아니면 그림을 우리가 들여다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 저편에서 우리를 들여다 보는 관점도 가능함.  그러므로 새에너지적 차원의 깊이, 넓이 그리고 높이를 가늠할 수 있어야 함.

앞으로 몇 주 동안 우리는 우리 자신도 포함한  모든 것들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도전당하게 될것임.  우리의 전생애를 통털어서 모은 것 보다도 훨씬 더 커다란 우리 자신.

오아마 학파가 가르치는 것이 바로 현실의 본성과 비현실의 본성 Nature of Non-Reality 에 관한 것임.  더 이상 낡은 에너지에 근거한 치유가 더 이상 잘 이루어 지지 않음.   새에너지  물리학 New Energy Physics  을 위해 우리 자신을 잘 준비해야 할 때임.



[나아가기]



요약하면,  우리는 우리를 혼란에 빠지게 하는 것들을 그저 관찰하는 입회자로서 우리가 선택한 우리의 코스에 충실하기만 하면 됨.   정보는 언제나 거기에 있음.  우리의 지성이 더이상 해독해 내지 못하는 것을 우리의 신성을 사용해 해독해야함.   더 이상 이원성으로부터의 인증을 추구하는 것을 중단해야됨.  모든 것들을 더 이상 직선적이 아니라 다차원적인 전혀 다른 시각으로 지각해야 함.  그리하여 더 이상 변화에 대한 불평을 중단해야함.


새에너지의 힘은 더 이상 힘이 아니다.  New Energy Force is No Force!   바로 이것이 샴브라와 오아마의 가르침의 핵심임.   변화와 창조를 위해 더 이상 힘이 필요치 않음.

우리는 결코 홀로인 적이 없음.  하지만 우리는 참 오래동안 혼자였음.

그리고 참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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