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5장. 하느님을 보라(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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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누가 당신 삶의 창조자인가? 바로 당신 자신이다! 누가 당신 삶의 설계자인가? 당신 자신이다! 지금 당신의 모든 것, 그리고 지금까지 당신이 겪어 본 모든 것은 당신 자신의 집합적 추론을 통해서 창조해 온 것이다 - 하느님인 생각을 통해서. 당신은 당신 삶에 꼭 받아들이고 싶었던 것만 골라서 받아들였고, 당신이 받아들인 가치에 따라서 삶을 경험하여 왔다. 당신에게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받아들일지, 무엇을 경험할지를 결정하는 이는 당신이다. 바로 당신이다 - 당신 자신의 생각에 의해.

 

당신은 당신이 애쓰는 모습을 관망하고 있는 신의 노예도 하수인도 꼭두각시고 아니다. 당신은 오묘한 자유를 가지고 경외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당신들은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바에 따라 생각을 받아들이고 포용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 경외로운 힘을 가지고 당신 스스로 모든 것을 창조해 온 것이다. 당신이 하는 모든 생각이 당신 앞에 있는 운명을 결정한다. 당신이 갖는 모든 느낌이 삶이라는 길을 만들어 나간다. 당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무엇이든지, 당신 삶에서 그렇게 될 것이다. 하느님이 말한 바와 같이 "감성에 따라, 그렇게 될지어다."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침묵하고 있는 당신 존재 안에, 생각할 수 있는 능력과 창조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하느님이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당신이 선택했던 꼭 그대로이며, 아무도 당신이 그렇게 되는 것을 가로막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법제가이자 당신 삶과 그 환경의 창조자이다. 당신은 지금 생에서도 또 다른 생에서도 충분히 깨닫지 못했지만, 당신이야말로 현명한 지성을 가진 최고의 지배자이다.
 

한때, 당신은 꽃을 창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은 스스로 무엇을 창조하는가? 당신의 위대한 창조물이란 불행, 걱정, 여민, 괴로움, 증오, 불화, 자기부정, 노화, 질병, 죽음 등이다. 제한하는 믿음을 받아들임으로써 당신 스스로 제한된 삶을 창조하고, 그 믿음이 당신 존재 안에 확고한 진실로 자리잡은 다음 당신 삶의 현실이 된다.

 

모든 것, 모든 사람, 심지어 당신 자신에 대해서조차도 판단을 내림으로써, 당신은 자신을 삶과 분리하고 있다. 당신은 아름다움을 좇는 유행의 틀에 따라 살고, 또 제한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들로만 당신 자신을 에워싼다 - 그런데 제한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어느 것 하나도 도달할 수 없는 이상만을 받아들인다. 당신들은 어린아이로 태어나 자라서 성인이 되고, 점점 육신의 활력을 잃어가다가, 나이를 먹고는 마침내 사멸한다고 믿는다.

 

당신들, 한때 자유로운 바람이었던 위대한 창조의 신들은 이제 대도시에 떼지어 몰려 있으면서 문을 닫아걸고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실체가 되어 버렸다. 높은 산과 경이로운 바람 대신에, 고층 빌딩과 소름끼치는 의식을 소유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해야 될지, 무엇을 믿어야 될지,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할지, 자신이 어떻게 보여야 될지, 그 모든 것을 규정해 주는 사회를 당신들이 창조해 온 것이다.

 

당신들은 전쟁을 두려워하고 전쟁에 관한 소문도 두려워한다. 질병을 두려워하고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고, 남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도 두려워한다. 그러면서도 사랑이라는 애정에 굶주려 잇다. 자신에게 일어난 좋은 일에 대해 이의를 달고 그리고 다시 또 일어날 것인가 하고 의심을 한다. 성공과 명성, 황금과 돈을 위해서 시장 바닥을 기어다닌다. 아아! 참으로 보잘것없는 기쁨을 얻기 위해서.

 

당신은 생각으로 절망에 빠뜨렸다. 생각으로 자신을 보잘것없게 만들었다. 생각으로 자신을 실패하게 했다. 생각으로 자신을 병들게 했다. 또 생각으로 자신을 죽음에 몰아 넣었다. 이 모든 것을 당신이 창조해 왔다.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같은 내면에 있는 창조자, 한 생각을 품어 우주를 창조하고 천상의 별들을 영원히 타오르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가 믿음과 교리, 유행과 전통 같은 제한된 생각에 자신을 가두어 버린 것이다 - 제한된 생각에 의한, 제한된 생각으로. 그리고 지금까지도 진정한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된 것은 당신이 가진 불신 때문이다!

 

당신은 무엇을 불신하는가? 당신이 신체감각으로 감지할 수 없는 모든 것 -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으며, 만질 수도 없고, 맛볼 수 없으며, 냄새맡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나한테 믿음을 보여 보라! 내 손에다 놓아 보라. 감성을 보여 보라! 그것을 만져보고 싶다! 생각을 보여 달라.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태도를 보여 달라. 그것은 어떠한 모습인가? 바람의 형상을 보여 보라. 그리고 당신 삶의 귀중한 순간들을 앗아가는 그 '시간'을 보여 달라.

 

당신은 삶이라는 위대한 선물을 불신해 왔다. 또한 그 때문에, 당신은 더 무한한 이해가 생겨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삶 다음의 삶, 생 다음의 생을 거치는 동안, 당신은 이 세상의 환영에 너무 빠져 들어가서 당신을 통하여 흐르는 경이로운 불꽃을 잊어버렸다. 당신은 독존적이고 전능한 실체였지만 일천오십만 년 동안 물질 속에서 자신을 완전히 망각해 버렸다. 교리와 법, 유행과 전통을 창조하여 그것의 노예가 되었다. 국가와 신념, 성별과 인종에 의해 분열되었다. 질시와 비탄, 죄악과 두려움에 빠져 버렸다. 당신은 자신을 육체와 완전히 동일시함으로써 스스로를 생존에만 매달리게 만들고, 보이지 않는 당신의 진정한 본성 - 당신이 무엇을 선택하든지 그 꿈을 창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면의 하느님 -을 잊어버린 것이다. 불사라는 것을 당신은 공공연히 거부하였다. 그 때문에, 당신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리고는 이곳에 돌아왔다. 또 다시, 또 다시, 또 다시. 그리하여, 당신은 다시 이곳에 있다. 일천오십만 년 동안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럼에도 당신은 아직 그 불신을 계속 가지고 있다.

 

하느님, 생각 전체인 하느님은 정말로 웅장한 무대이다. 그는 당신이 스스로 대본을 쓰고 출연하여, 한 편 한 편씩 무대에 올려놓는 것을 허용한다. 막이 내리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면, 당신은 죽는다. 왜 그럴까? 최고의 법제가인 당신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삶은 모두 하나의 게임이다. 하나의 환영인 것이다. 모든 생이 그러하다! 그러나, 출연자인 당신은 그것만이 현실이라고 믿어 버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항상 있어 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될 유일한 현실은 생명이다 - 당신이 원하는 역할이면 어떤 것이든 그에 어울리는 게임을 창조하도록 허용하는 자유롭고 영원한 존재의 근원인 것이다.

 

생각으로 자신을 무지와 질병, 죽음에 빠뜨릴 능력이 당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더 위대해질 수 있는 능력 또한 당신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 단지 더 무한한 생각이 흘러 들어올 수 있도록 자신을 열어 놓음으로써. 그리하여 당신은 더 천재적이고 더 창조적이 되며,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맨 처음 몸을 창조한 신은 당신 안에 자리잡고 있는 힘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당신의 육신은 노화하거나 질병에 걸리지도 않을 것이고, 영원토록 죽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믿음에 매달려 당신의 사고를 제한하는 한, 아침해를 영광스럽게 하고 저녁 하늘을 신비롭게 해주는 무한을 당신은 결코 다시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당신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글쎄, 육신은 죽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말없이 생각하는 당신은 항상 살아 있다. 만약에 당신이 죽는 것을 선택해서, 당신이 이곳을 떠난다면, 당신이 죽는 것을 선택할지라도, 진정한 당신은 땅속에 묻혀 벌레에 먹히고 마침내 한 줌의 재로 되지는 않는다. 당신은 바람처럼 지속적이다. 당신이 가는 곳은 당신이 온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음 모험으로 무엇을 경험할 것인지 결정한다 - 그렇게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당신은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얼마나 많은 횟수가 될지 모른다. 당신의 본성을 하느님으로 파악할 때까지. 그러고 나면, 당신은 다른 하늘, 다른 곳에서 더 멋진 새로운 모험을 즐기게 되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사랑 받고 있다. 왜냐하면 당신이 무엇을 하든지, 당신은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걱정을 하는가? 왜 싸워야 하는가? 왜 스스로를 병들게 하는가? 왜 스스로를 슬프게 하는가? 왜 당신 자신을 한계 속에 구속하는가? 왜 떠오르는 아침 햇살의 광휘를 즐기지 못하며, 왜 바람의 자유나 아이들의 웃음을 즐기지 못하는가? 왜 투쟁 대신에 삶을 선택하지 못하는가?

 

당신의 생은 자꾸자꾸 반복한다. 당신의 씨앗은 항구적이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다. 아무리 불신이 깊어도, 아무리 당신의 왕국을 제한해도, 걱정과 실망이 많다 해도, 결코 없앨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 그것은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아무리 당신이 눈을 가리고 배척해도, 당신은 언제나 생명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느님이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그리고 그것은 당신이다.

 

당신이 지금 살고 있는 삶은 꿈이다. 웅대한 꿈이며, 말하자면 허울일 따름이다. 이 삶은 물질과 함께 노니는 생각이다. 이 삶은 당신의 감성을 이 세상에 얽매이게 하는 견고한 현실을 창조한다. 그리하여 꿈을 꾸고 있는 당신이 깨어날 때까지, 그러한 일이 계속 될 것이다.


한번도 진정으로 자신을 돌아다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당신은 당신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결코 알 수가 없었다. 당신은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인지 결코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하느님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은가? 가서 거울을 들여다 보라 - 바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가치 있음을 알라. 당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당신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묘사할 이미지는 없다. 또한 당신의 왕국에는 끝이 없다.

 

설법 중에 가장 위대한 설법은 산상에서 위대한 마스터가 행한 것이다. 그곳에 서서, 그의 말을 들으려고 온 많은 대중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을 보라." 그것이 그가 말할 필요가 있는 전부였다. 하느님을 보라. 왜냐하면 각자가 자신의 한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욕망, 질병, 빈부, 기쁨과 슬픔, 삶... 그리고 죽음까지도.

 

하느님을 보라. 이 말을 기억하라. 모든 것 안에 살아 있는 이는 바로 당신이니까. 어느 날 당신은... 하느님을 보게 될 것이다. 참 나에 가 닿아라.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