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ohmynews.com/sub_class/class_view.asp?menu_code=c10400 부시 진영의 또 다른 '골칫거리' <화씨 9/11>
[현지 보고] 공화당 관계자들 "부시에 좋지 않은 영향 줄 것"으로 전망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명곤(kim5459) 기자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화씨 9/11>이 개봉한 지 1개월이 지나면서 워싱턴 정가에서는 이 영화의 영향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AP통신은 지난 22일 특히 수세에 몰려 있는 공화당이 이 영화로 매우 신경이 곤두서 있다고 보도했다. <화씨 9/11>이 개봉되기 전, 공화당 진영은 이 영화가 반 부시 그룹에나 호소하는 대수롭지 않은 '허풍' 정도에 그칠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화씨 9/11>은 개봉 1주일도 지나지 않아 <스파이더 맨2> 와 <노트북> 등 소위 '대박' 영화들을 상영하는 극장들에서 집중 상영되어 수많은 관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개봉 4주만에 9400만 달러 '대박'

지난 6월 25일 개봉한 <화씨 9/11>은 개봉 첫 주, 겨우 868개 극장에서 상영되었는데도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단기간 최고 수익 2196만 달러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 현재는 미 전역의 2천개가 넘는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으며, 지난 4주 동안 거둬들인 흥행 수익은 약 9400만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화씨 9/11>이 인기 상한가를 누리자 그동안 태연한 척하고 있던 부시 진영은 초조해 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선거가 3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더 이상의 악재는 곤란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부시 진영은 <화씨 9/11>의 등장으로, 미국 내 '반 부시' 분위기가 조성되자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 부시 진영은 지난 3개월 동안 거듭된 악재로 그야말로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 3월 22일 전 테러담당 보좌관 리차드 클라크가 <모든 적들에 대항하여>라는 책을 펴내 "부시 행정부가 테러 경고를 묵살해 9·11 테러를 막지 못했"으며 이를 기회로 부시가 "이라크전을 조작했다"고 폭로해 워싱턴 정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3월 말에는 이라크 팔루자에서 4명의 미국 민간인이 처참하게 살해돼 '피의 4월'을 보냈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는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가 <공격의 계획>이라는 책에서 "부시가 2001년 말부터 이라크 공격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고 폭로해 부시를 또 다시 곤궁에 몰아넣었다.

이어서 터진 이라크 포로 학대 파문은 5월 내내 부시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혔다. 일각에서는 부시를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할 정도로 부시는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이라크에서는 매일 평균 2명의 미군이 죽어 나갔고, 국민 여론은 물론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조기 철군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화씨 9/11>은 부시 진영에 화롯불 끼얹은 격

결국 '이라크 진창'에 빠져 허우적대던 부시가 예정된 날짜보다 이틀 앞선 지난 6월 28일 이라크 민간 정부에 정권을 막 인계하려던 찰나, 기다렸다는 듯 마이클 무어가 <화씨 9/11>을 들고 나온 것이다. 숨돌릴 틈조차 없을 만큼 계속된 악몽에 시달리던 부시 진영에 <화씨 9/11>은 뜨거운 화롯불을 끼얹은 격이 되고 말았다.

<화씨 9/11>이 일으키고 있는 뜨거운 바람에도 현재 부시 진영은 크게 내색은 하지 않고 있으나, 골머리를 앓고 있는 듯하다. 클린턴 대통령이 며칠 전 "느낌으로 보아 이번 선거에서 부시가 재선되기는 틀린 것 같다"고 한 것도 우연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22일 공화당 자문위원인 스콧 리드는 AP통신에 "<화씨 9/11>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 영화가 3~4% 정도의 유권자들 마음을 움직일지 누가 알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백악관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두 명의 고위 공화당원도 AP 통신에 "마이클 무어의 영화의 인기는 골수 민주당 지지자들을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 영화는 '정치적 골칫거리'(political headache) 를 제공하고 있다"며 크게 우려했다.

한편 <화씨 9/11>의 내용 중, 특히 '오일 머니'를 둘러싼 부시 가문과 빈라덴 가문간의 오랜 사업적 관계를 묘사한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부동층과 연성 공화당 지지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가능성이 많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공화당 선거전략가인 조 게이로드는 "어느 당도 지지하지 않고 있는 순진한 유권자가 무심코 이 영화를 볼 경우, 부시 대통령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갖게 될 것은 분명하다"면서 "만약 많은 사람들이 <화씨 9/11>을 볼 경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미국 성인 56% <화씨 9/11> 볼 판

AP통신에 따르면 지난 4주 동안 미국 성인 1200만 명이 <화씨 9/11>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갤럽이 지난 8일부터 11일에 걸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성인의 8%가 이미 <화씨 9/11>을 보았고, 18%는 앞으로 그 영화를 볼 예정이라고 답변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응답자의 30%가 이 영화가 비디오로 출시되면 빌려 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계산대로라면 미국 성인의 56%가 그 영화를 보게 되는 셈이다.

갤럽은 공화당원의 3분의 1과 부동층의 3분의 2가 극장이나 비디오를 통해서 <화씨 9/11>을 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화씨 9/11> 비디오는 9월 중순경 출시될 예정이다.

영화 <화씨 9/11>에 대한 일반 미국인들의 반응을 들어보았다.

퇴직 대학교수이며 2000년 대선에서 부시에게 투표했다고 밝힌 데니스 오브라이언은 "<화씨 9/11>이 부시에 대한 그의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고 밝히고, "그러나 <화씨 9/11>은 숨겨진 이슈에 대해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임이 틀림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영화를 통해 무어는 미국 정치에 있어서 오일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 보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플로리다 올랜도의 '세미놀 해럴드'의 출판국 디렉터이자 공화당원인 레이 찰스는 "영화가 사실들(facts)을 근거로 하기는 했으나 네거티브한 쪽만 골라 짜맞추어 다큐멘터리적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하면서도 "전쟁의 잔혹성을 감성에 호소한 면이 있어 반전론자들과 부시에 불만이 많은 소수민족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아이오와 공화당 의장인 마이클 매허피는 "영화의 영향은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들 것"이라면서 "일반적으로 4주 내지 5주 동안 영향을 미칠 것이며, 기껏해야 7월 한 달 동안 반짝 빛을 보고 말 것"이라고 영화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솔직히 말해서 누가 알겠는가. 막상막하의 대선 경쟁에서는 예상치도 않은 그 어떤 것이 당락을 결정지을 수도 있으니…."라고 말끝을 흐렸다.

"영화 본 후 마음 흔들려"

아이오와 드모인에서 영화를 본 로브 쉬슬리라는 남성은 "이 영화는 대통령을 신뢰하고 존경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많은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고 밝히고 "영화를 본 두 시간 후에 마음이 흔들렸다"고 고백했다.

같은 도시에 사는 퇴직 교사인 라보 맨이라는 남성은 "단지 영화 한 편으로 마음을 바꿔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운을 뗀 후, "그러나 부시와 체니로부터 이 영화의 내용이 부정확하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앞으로 영화 내용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다"고 말했다.

공화당 관계자들의 '염려'와 일반 미국인들의 반응으로 볼 때 결국 <화씨 9/11> 의 파급효과는 마이클 무어가 노린 것만큼이나 클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화씨 9/11>이 극장가에서 사라지고 비디오로 출시되어 선거일인 11월 2일까지 각 가정에서 볼 가능성을 감안하면, 부시 진영에 또하나의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미 국민의 구미에 맞춘 '1급 정치 코미디'로 불리는 <화씨 9/11>이 당초 무어가 의도한 대로 부시를 낙선시키는 데 얼마나 크게 영향력을 발휘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본 기사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발행되고 있는 시사-종합 주간지 <코리아 위클리>에도 실렸습니다.

2004/07/24 오후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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