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ucc.media.daum.net/uccmix/news/ 미국CBS ‘60분’의 기나긴 침묵  

[미디어오늘]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에서 있었던 미군의 충격적인 이라크 포로 학대 사건의 폭로 과정은 미국의 다중적인 언론 상황을 잘 보여준다.

그 어느 나라보다 자유 언론을 구가하고 있다는 미국이지만 정부의 보도 통제가 여전하고, 언론의 자기 검열 또한 적지 않다는 것을 새삼 드러내주고 있다.

미국 CBS방송의 간판 시사프로그램 <60분 Ⅱ>(60 minutes Ⅱ)팀이 미군의 포로 학대 사진들을 첫 보도한 것은 4월 28일. 그러나 60분팀은 2주 전 쯤에 이미 이들 사진을 확보했으며 당초는 4월 20일경에 이를 보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CBS 60분팀은 이 보도의 방송을 연기했다.

CBS의 사진 입수 사실을 안 리차드 마이어스 미 합참의장의 보도 유예 조치를 받아들인 것이다.

마이어스는 미국인 인질의 안위와 팔루자의 전투 상황 등을 고려해 보도 유예를 요청했다.

미 합참의장 요청으로 8일 이상 보도 미뤄60분팀은 보도를 미루다가 시사주간지 ‘뉴요커’의 탐사전문기자 세이무어 허시가 미군의 이라크포로 학대에 관한 장문의 기사를 쓸 것으로 알려지자 마침내 4월 28일 기사를 내보냈다.

만약 뉴요커가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면 CBS의 보도 유예가 얼마나 더 오래갔을 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60분팀의 책임 프로듀서인 제프 페이저는 “보도 유예는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고, 일반적인 사례가 아니지만 (인질들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는 등) 아주 비상한 상황이었던 만큼 유예 요청을 외면할 수만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런 해명은 미국 언론계 내에서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포인터 미디어연구소의 밥 스틸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인질들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점에서 보도 유예를 결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2주씩이나 보도를 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기사 내용을 볼 때 그것을 계속 보도하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60분팀은 자체적인 판단만으로 이같은 보도 유예 결정을 내렸던 것일까? 아직까지는 회사 고위 관계자의 지시나 통제가 있었다는 보도는 나오고 있지 않지만 최근 월트 디즈니가 계열 영화사인 미라맥스에서 제작한 부시 일가와 빈라덴가의 ‘이상한 관계’를 추적한 ‘화씨 911’(마이클 무어 감독)이란 다큐멘터리의 배급 금지를 요구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뉴욕타임스는 “디즈니사가 영화 개봉 저지에 나선 것은 플로리다의 각종 사업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CBS를 소유하고 있는 비아콤은 MTV를 비롯해 다수의 케이블 채널과 파라마운트 영화사 등을 거느리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복합 미디어 그룹의 하나다.

당연히 월트 디즈니 만큼이나 정부와 여러 가지로 이해 관계가 걸린 사업이 많다.

미 국방부의 전방위적 로비가 있었다면 당연히 비아콤의 수뇌부 역시 이들의 로비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드러난 확증은 없지만 60분팀의 2주에 걸친 ‘이상한 침묵’은 어쩌면 군산미디어복합체인 미국의 정보통제 메카니즘의 한 단편일 수 있다.

사실 미국의 미디어 통제는 비단 자국 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영국의 BBC 인터넷판은 최근 아랍권의 대표적인 위성방송인 알자지라에서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카타르 정부의 요청으로 ‘충격적인 참상’ 보도를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하는 메모가 보도국 간부들에게 전달됐다고 보도했다.

정보 통제가 막지 못한 ‘양심의 고발’ 그러나 미국과 미군의 이런 정보 통제가 성공을 거두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그들은 동료 군인의 야만적 이라크 포로 학대에 분노한 한 병사의 양심의 폭로를 막지 못했으며, 뉴요커 기자의 끈질긴 탐사 보도를 저지하지 못 했다.

또한 그들은 알자지라 기자를 팔루자에서 격리시키는 데도 실패했다.

대량살상무기도, 빈라덴과의 연계도 찾지 못한 명분없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이제 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 사실의 폭로로 ‘민주주의를 위하여’라는 마지막 명분마저 스스로 짓밟은 채 ‘더러운 전쟁’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것은 곧 미국 내에서도 ‘부시의 전쟁’이 고립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지옥’과도 같은 수렁에, 더구나 6개월 이내에 파병한 상당수 국가들의 철군이 예상되는 마당에 우리가 뒤늦게 발을 담글 이유는 없다.

양심의 고발과 용기있는 언론의 보도는 비단 아부 그라이브나 워싱턴에만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미디어오늘 백병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