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 산신령 바바지와 제자 구마니


히말라야 산맥의 하리아칸 지방에 있는 고산 동굴에는 나이가
정확히 몇살인지 알려지지 않은 바바지라는 이름의 산신령이
산다고 합니다.

지난 수천년간 하리아칸 바바지, 마하바타르 바바지, 시바 바바,
브하가반 사다시바, 바바지 마하라즈, 스리 사다시바, 마하무닌
드라, 그리고 스리스리 바바 등 많은 이름으로 불려온 그는
고산 동굴에서 고행하다 가끔씩 하산하여 보통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나 주의깊게 관찰한다고
합니다.

겉 모습이 고귀하고 근엄하다는 바바지는 성품이 너그럽고 친절
하며 때로는 어린아이 같다고 하는데 그는 여러번 티벳의 고승들
과도 함께 나타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잠을 자지않고 축지법으로 갑자기 나타나고 사라지며 오늘날
까지 만난 어떤 외국인들과 대화를 해도 그들의 언어를 모국어
처럼 유창하게 자유자재로 구사한 바바지는 언제 어디서 태어
났고 어떻게 수천년의 긴 세월이 지나도 모습이 똑같은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시다하스(요기의 비법)을 깨우쳐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바바지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의
얼굴을 보는 것 만으로도 천상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바바지 산신령은 세계 여러 신화에 등장하는 다른 산신령들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내려와 보통 사람들과 섞여 생활
하는 특징이 있고 히말라야 고원 마을에는 그와 관련된 수많은
전설이 전해온다고 합니다.

바바지의 제자가 된 구마니

히말라야 산자락에 있는 작은 마을 다이욜라에는 한때 마을로
하산한 산신령 바바지가 기거하도록 제자 구마니가 만든 소형
움막이 아직도 보존되고 있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농사일만 하여 글을 전혀 배우지못한 농부 구마니는
평소에 부지런히 일하고 신앙심이 깊었다고 하는데 어느날
부인이 아기를 낳자 무척 기뻐했지만 부부 둘이 먹고 살기도
어려운 처지에 어떻게 아기를 키우나 큰 걱정을 하다 어느 날
여러 고행자들이 히말라야 고산에 올라가는 것을 보고 농사일과
가족을 남겨둔채 부인과 친지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않고 훌쩍
고행자들을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산에서 여러 고행자들을 제자로 거느리고 있는 한 성자를
만나 그를 스승으로 섬기며 수행하기 시작한 구마니는 어느날
고행자들에게 음식을 공양하러 온 마을 사람들이 그를 발견하여
가족과 농사일을 팽개쳐 두고 아무런 말 없이 수행하러 산에
올라와 있던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산밑에서 그를 기다리며 어린 아기를 돌보고 있는 부인이 농사를
짓지못해 무척 고생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성자는 구마니에게
어서 집으로 가서 가족을 부양하라고 말했으나 그가 안가겠다고
하자 그러면 집으로 가서 고행자처럼 살며 그곳에서 신을 섬기면
좋은 스승을 만날 것이라고 설득해 그를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고 합니다.

그 후 성자의 지시대로 하산하여 농사를 짓고 살며 신을 섬기고
고행한 구마니는 어느날 나이가 지긋한 노인 한명이 집 근처
나무 밑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누구냐고 물었다가 그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나무 그늘에 앉자 그에게 다가갔다가 그의
몸에서 여린 광채가 나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란 뒤 그가
분명 고산의 성자가 말한 자신의 스승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를
위해 집 밖에 작은 움막을 만들어 그가 가족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기거할 수 있게 했다고 합니다.

당시 구마니를 찾아온 노인은 산 동굴에서 벌어진 옛 일을
잘 알고 있던 바바지 산신령이었다고 하는데 구마니가 정체
불명의 거지 노인을 데려다 움막을 지어주고 절을 하며 그를
위해 음식을 공양하는 것을 본 마을 사람들은 노인에게 가서
여러가지를 물어봤으나 그가 답변을 잘 못하고 기력이 없는 것
처럼 보여 그가 분명 가족에게 버림받은 노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인을 섬기는 구마니를 보며 끝내 실성했다고
판단하여 노인과 그를 무시한 마을 사람들은 구마니가 그를
계속 스승처럼 섬기고 위하는 것을 보고 노인을 주시하다 그가
예사로운 인물이 아닌 성인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구마니의
집 움막 앞에 몰려들어 모두 함께 앉아 고행했다고 하는데
구마니는 스승을 섬기는 제자의 본분대로 부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수확한 모든 농작물로 스승앞에 앉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 음식으로 만들어 대접했다고 합니다.

얼마후 집 안에 더 이상 자신들이 먹을 음식이 남아있지 않자
구마니를 남겨두고 아들과 함께 친정으로 간 부인은 끝내
그를 홀로 집에 남겨두고 친정에서 살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구마니는 그 후 1년간 어렵게 스승을 모시다 그가 알모라로
가야한다고 하자 스승과 이별하고 집에 홀로 남아 고행했으나
당시 주위에는 친구도 없고 음식도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밭을 거닐다가 청년 한명이 어께에
쟁기를 둘러메고 걸어오는 것을 발견한 구마니는 청년의
모습이 어께에 쟁기를 둘러맨 크리슈나신의 형제 발라람
신과 똑같은 것을 발견하고 그에게 큰 절을 올렸다고 하는데
당시 구마니로부터 큰 절을 받은 청년은 깜짝 놀라며 왜
자신에게 절을 하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자신의 눈에는 모든 사람들이 신으로 보인다고 말한
구마니는 청년이 아무리 자신이 돈없고 집없이 직업을 찾아
떠도는 쟁기 일꾼이라고 설득해도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그를
집으로 모신 뒤 바바지 산신령을 모시듯 그가 아무리 마다해도
정성껏 스승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끝내 구마니의 정성에 탄복해 어찌할 수 없어 자신이 쟁기
일꾼 일 뿐이라고 더 이상 말하지 않은 청년은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가 가까와 오는데 구마니의 집 근처 농경지가
전혀 손질되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구마니의 양해를 얻은 뒤
쟁기를 이용해 밭을 일궈주고 씨를 뿌려줬다고 하는데 일을
마친 청년은 일자리를 찾으러 간 듯 작별인사 없이 농장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해 가을 수확한 쌀이 예년보다 50배나 더 많은 것을 보고
크게 놀란 구마니는 자신의 농경지에 씨를 뿌려주고 간 인물이
발라람신이었다고 확신했다고 하는데 구마니가 마을에서 큰
부자가 됐다는 소식을 들은 그의 부인과 아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알모라로 떠나며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라고 약속한
스승을 기다린 구마니는 아무리 고행을 하며 기다려도 그가
오지않자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어느날 바바지를 찾아 가족들
에게 양해를 얻고 집을 떠났다고 하는데 알모라에 있는 고행자
들의 동굴을 헤매다 수소문 끝에 바바지를 다시 만난 그는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리며 좋아하다 스승이 히말라야의 바드리나스
신전으로 갈 참이었다며 함께 가자고 하자 큰 영광으로 생각
하며 무척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날 오후 바드리나스 신전을 향해 떠나다 알모라의 다른 두
고행자들이 자신들도 같이 떠나겠다고 말하는 것을 본 바바지는
그들에게 동의를 하거나 거절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러한
반응을 본 고행자들은 바바지와 구마니를 쫓아 바드리나스
신전을 향해 함께 걸었다고 합니다.

당시 축지법을 이용해 산길을 오른 바바지는 상당히 높은
비탈길 위에 있는 신전을 무척 빨리 올라갔으나 구마니와
두 고행자들은 뒤쳐졌다고 하는데 갑자기 구마니 앞에 큰
호랑이 한마리가 나타나 바로 덮칠듯 어흥하며 우는 것을
본 고행자들은 구마니에게 도망치라고 말한 뒤 그가 피신
하는 것을 확인하지도 않고 그대로 도주했다고 하며 당시
호랑이를 보고 놀라지 않은 구마니는 스승을 계속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길을 막은 호랑이가 비켜주기만을 원했
다고 합니다.

그러자 곧 침착해진 호랑이가 옆으로 길을 비켜줘 신전으로
올라간 구마니는 그곳에서 스승과 함께 고행을 하고 다시
알모라로 돌아왔다고 하는데 바바지가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
가라고 하자 스승과 작별한 구마니는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며 오랜 고행을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우치고
역사 속에 신실한 바바지의 제자로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위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과연 무엇일까요? 혹시 우리 주위
에도 바바지 같은 산신령이나 쟁기로 구마니의 밭을 갈아준
발라람신 같은 신선들이 보통 사람과 함께 섞여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출처:http://www.ddangi.com/1-1192.html

l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