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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08년 04월 22일(화) 오전 05:11
北 노동당 작가 탈북 후 시집 펴내
(서울=연합뉴스) 함보현 기자 = "밥이라면 / 시퍼런 풀죽으로만 알던 아이 / 생일날 하얀 쌀밥 주었더니 / 싫다고 발버둥치네 / 밥 달라고 내 가슴을 쥐어뜯네"('밥이라면')대량 아사자를 낸 1990년대 중반 북녘에서 주민들이 겪은 '고난의 행군'이 한권의 시집으로 묶여 나왔다.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장진성 지음)는 본인이 "품에 안고 두만강을 건넌 시"라고 소개한 것처럼 탈북한 시인이 최악의 식량난 속에서 스스로 겪고 목격한 처참한 생활상과 북한 김정일 정권에 대한 분노를 고스란히 담았다.

시인은 머리글에서 "나는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작가동맹중앙위원회 맹원, 조선노동당 작가로 근무했던 탈북 시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북한에선 시인이라면 귀족작가라고 한다. 나의 첫 독자도 김정일이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시인은 그러나 노동신문에 자신의 시를 싣던 시절을 떠올리고는 "그것은 노예의 행복이었다"고 고백하고 "가장 가난한 나라에 가장 부유한 왕이 살고 있음을 알았을 때 나의 양심은 탈북을 선택하게 했고 마침내 2004년 남한으로 입국하게 됐다"고 밝혔다.

"남한으로 가면 반드시 300만 아사를 폭로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북한에서 메모했던 글들을 품고 넘었다"는 시인은 삶과 죽음의 칼날 위에 선 북한 주민들의 섬뜩한 풍경을 시집에 담았다.

두껍고 질긴 나무껍질을 삶아 먹기 위해 양잿물을 섞어야 했던 여인의 떨리는 손부터 남은 숟가락을 팔아 아버지 제사상을 차린 가족, 매일 쌀 다섯 알을 모아 아들의 생일밥을 마련한 어머니, 어젯밤 먹었던 꿈이 제일 맛있다고 말하던 동생, 쌀을 훔친 죄로 처형당하는 농사꾼….

표제시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에서는 죽을 병에 걸린 어머니가 딸을 살리기 위해 딸을 팔러 시장에 나섰다.

"…한 군인이 백원을 쥐어주자 / 그 돈을 들고 어디론가 뛰어가던 그 여인은 // 그는 어머니였다 / 딸을 판 백원으로 / 밀가루빵 사 들고 어둥지둥 달려와 / 이별하는 딸애의 입술에 넣어주며 / 용서해라! 통곡하던 그 여인은"시인의 말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남는 것"이었고, 사자(死者)가 "신통히도…살아있는 우리보다 훨씬 편안한 모습"처럼 느껴질 것 같다.

그래서 시인은 김정일에 대해 "한 줌도 못 먹는 백성들을 / 한 줌으로 우롱하는 / 네가 있는 한 / 줴기밥 이 나라에 / 더운 밥 세상이 언제 오랴"라고 탄식하고, "간부 놈들 백성 것이면 / 밑에까지 반반히 핥아내는 / 에라 그 값이다 / 똥값이다"라고 욕도 한다.

그는 출퇴근길에 시체들 옆을 지나곤 했다며 "살아서 마주 볼 양심이 어디 있으랴 / 아침이여 나를 사형해다오"('나는 살인자' 중)라고 되뇌었고, 남녘에서 동료가 권하는 식후 커피를 두고서는 "북한 밥이 생각나 / 나는 커피를 굶었네"라고 말한다.

시인은 71편의 시를 통해 북녘에서의 삭막한 기억을 풀어내면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 내일을 향한 희망의 끈까지 놓지는 않았다.

"작아도 / 생명의 힘으로 / 천하의 캄캄칠야 / 초월하던 희망의 점 // 내 맘 속엔 언제나 / 그 반디벌레가 있다"('반디벌레' 중)시인 정호승은 시집 말미의 '해설'에서 "이것은 시집이 아니라 통곡"이라며 "우리들이 배불리 한끼 밥을 먹을 때, 우리는 굶주리는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갑제닷컴 펴냄. 172쪽. 8천원.

hanarmdr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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