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재의 나를 전제로 합니다 *

내안에 수많은 나를 포함해 우리 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나가 아닙니다.

나는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형상을 유지하는 것은 내가 모습이 아닌 내 형상의 각 각의 모습입니다.
그 전체가 나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안에서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단지 존재하고만 있습니다.

내가 드러날때 또는 관계를 이룰때에는
그 없음에서 있음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나는 음 양으로 나뉘어 지지 않습니다.
단지 더 깊은 곳에 머물다가 그 안에서 존재로써 양이고,
좀더 내가 나의 다른 의식적차원으로 드러날때는 거기서 또 양이고,
내가 지금 밥을 먹거나 농구를 즐기거나 할때도 거기서 또 양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다시 깊은 곳으로 돌아갈때도 음으로 돌아간것이 아닌
그 자체로 그 곳에서 양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침묵을 하든 수많은 표현을 하든 항상 양이라는 것이지,
음 양으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즉 어떤한 상태라도 침묵한다고 해서 표현하지 않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어떤 잣대로 그것이 말을 해야 한다든지, 무엇을 보이도록 표현해야지
양이라 구분지었을때 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자신이 50개의 단계적 자아가 존재한다고 한다면
어느 단계에서 말로 표현하고 글로 표현되어져야 된다고 했을때
그 상위자아들은 모두 침묵의 형태로 존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각자 각 단계에서 열심히 드러나 있는데도 인식을 하지 못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 상위자아 하위자아 구분했는데 나가 사라진 상태 안에서는
  각 자아들이 무한해지기에 각 극으로써 동일함으로 평등합니다.)


그러나 모든 존재들은 이미 자신은 모르고 인식하더라도
이미 침묵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글에 화가 나거나 자신안에 어떤 분노가 나왔을때
자신이 욕을 하고 하는 표현하더라도, 그 자기 자신의 그 상위 자아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머리안에서의 뜻들도 사랑을 모태로 하여 구조가 형성되어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자기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미쳐 알아차리지 못할때에도 말입니다.

당신이 어떤 말을 어느 순간에 하여도 그대는 이미 나를 사랑하고 있고,
우리를 사랑하고 있고, 당신 자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좀더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말 한마디라도 사랑으로 표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항상 모든 존재는 모든 전체의 자신을 자신안에서 이미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안의 다른 나들이 침묵을 지킬때에는
현재의 선택된 나를 너무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을때도 있고,
현재 선택된 어느 정도의 나의 무리안에서 소외되었을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은 존재하는 각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 뜻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나안의 우리와 나밖의 우리와 모두 자신과의 대화입니다.
또한 나란 존재하지 않기에 하나 하나의 흐름들입니다.



항상 양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어느 하나의 나의 의식적 선택을 기준지어서 음 양 으로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머리 또한 가슴으로 분리 되었던 것은
둘 모두 하나이지만 가슴은 유지하고 머리는 체험을 하는 방향으로 하기 위해서이고
가슴의 사랑이 모두 머리로 흘러가게 될때 역전이 되어
자신의 마음이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상대적인 공간이 형성되어집니다.

즉 나의 존재는 나의 형태를 비롯 모든 나라고 이름지어질 수 있는 모든 것이 사라지더라도
또한 나이외의 모든 존재가 사라져고 단 하나 흐르는 바람결만 잠깐 존재하여도 나는
그 기억으로 영원히 존재할 수 가 있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머리와 가슴은 연결되어 영원히 서로 순환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슴과 머리가 함께 사랑의 순환을 하여야 합니다.

그 자체로 가슴과 머리가 구분되어지지 않게 되었고,
자신이 그 뚜렷한 흐름만을 인식하게 될때 자신은 이미 그 너머에 존재합니다.

머리의 공의 중심점을 찾고, 가슴의 공의 중심점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 점은 이미 존재하지 않고, 단지 자신의 수많은 내안에 나를
고요히 유지시키는 나침판 역할을 하게 됩니다.

어떤 자신이라 여기지 않는 다른 모든 관계성안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일어날때 즉각적인 반대극성의 반응이 일어나
나의 모든 것을 이 하나를 표현한다고 말할 수 있으나

이 나침판은 그전에 먼저 공의 상태로 자신을 돌리고,
그  안에서 수많은 나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나안에서 가슴과 교류하며 나안에서 해결되어집니다.

나오는 것도, 받는 것도 나의 것이기도 하지만 모두 나의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것에 그리 얽매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나의 목소리들이 반응에서조차 사라집니다.
이렇게 머리는 사랑이 되어집니다.

머리라 했지만 의식이 존재하는 의지라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겁니다.
:뜻"이라 하겠습니다.


가슴의 두려움을 해소하고, 머리의 질서가 잡히는 것이
마음이 편안하게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