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요즘 삶의 낙을 만들어 주시고 계시는 어떤 형님과의 편지를 그분의 허락을 받고 올리는 것입니다. 저의 권유(?)로 빛의 지구의 글들을 눈팅(?)중이신 제가 존경하는 분이죠.
수 많은 편지를 서로 주고 받고 있지만 어쩐지 이번 편지는 이곳에 올리면 좋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올립니다. 편지로만 대화를 하는 것은 현재 한국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오해 마시길..... ㅎㅎㅎㅎ
그럼...

제목 | 선 그리고 악  
보낸날짜 | 2006년 6월 08일 목요일, 오전 08시 12분 44초 +0900  

   보낸이 | "SanXXXn KIM" <niceXXX@XXXer.com>    

IP : 211.218.151.54    
  

받는이 | "Bach." <rageagainsthan@hanmail.net>

  
지금, 프랑스 시간으로 새벽 0시40분입니다. 역시나 아직도 확실하지 않은 향후 진로 때문에 머리도 좀 아프고, 어제의 화기애애한 투자회의 이후 약간 맛봤던 프랑스 포도주의 맛이 다시 생각도 나고, 프랑스와 중국이 축구 평가전도 하고.. 그래서 포도주 한 병을 사왔는데.. 지금껏 홀짝거리고 있습니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좀 찜찜하게 중국을 3:1로 이겼고, (밤 11시에 승부 종료. 유럽이 대체로 고위도 지방이라 여름 해가 길어서 우리보다는 경기 시간이 좀 늦은 편입니다.),
이후 이런저런 생각에 성욱씨와 피닉스의 토론을 다시 읽어 보고.. 빛의 지구에서 눈팅도 좀 더하다 글을 씁니다. 그냥 이런 저런 의문이 좀 들었습니다.
(우리말에 "...다"로 끝나는 표현은 우리말을 외국인들에게 가르칠 때 그들도 재밌어 합니다. 일본어도 마찬가지죠. 뭐.. 까.. 네.. 이런게 많듯이..^^ 언어적으로는 모르겠는데 문장 말미의 변화가 적기 때문에 시적 또는 노래 가사적으로는 사실 좀 아쉬운 점이 있죠..)

선과 악에 대한 토론..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가 참 어렵습니다. 심정적으로 또는 본능적으로는 선이 무엇인지 아니면 적어도 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습니다만 그것을 객관적인 정의로 말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신 생각해봤습니다. 지금껏 인류 역사에 있어 극선과 극악으로 부를 만한 사람이 있던가..

예수. 극선에 속한다고 생각되나 예수가 과연 실존 인물이었던가에 대한 의심도 많습니다. 아주 극단적인 이론 중에는 예수는 가공의 인물이고, 성경 신약의 예수 부분은 불교 법구경 등의 차용이 아닌가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제가 처음 성경의 신약을 제대로 읽고 난 후 첫 느낌이 석가모니와 참 비슷하다..였습니다. 이런 상상도 했더랬죠. 삶이라는 것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에서 고귀한 왕자로 태어나 결국 가진 것 없이 살다 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더니 인간들이 한 두 세대만에 잊어먹더라.. 그래서 이번에는 반대로 아주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영적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줬어도 인간들은 한 두 세대 만에 지들 마음대로 해석하더라..
어쨌거나 예수가 말한 사랑은 유대교 및 현대 기독교가 너무 오염시켰으므로 일단 판단유보입니다.^^

석가. 예수보다 대략 500여년 앞서고 역사적인 존재증거도 많다고 합니다. 딴거 다 떠나서 철학적으로 대단한 선생으로 불릴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결국 극선이냐.. 이건 잘 모르겠습니다. 석가모니가 말한 핵심도 결국 "왜?"를 스스로 생각해보라 이런 것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시 말합니다만 방금 말한 성찰은 성욱씨를 통해 얻게된 아주 소중한 한걸음입니다. 어쨌거나 왜?를 향한 걸음이 선악 구분에 그리 함부로 쓰일 수 없음에는 저를 일깨워준 성욱씨도 동의하시리라 봅니다.

테레사 수녀? 잘 모르겠습니다. 본인의 몸을 불살랐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평생을 헌신한 사람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선의 전형적인 표본으로 즉, 철학적 지침으로 삼을 수 있을지는 판단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삶의 한 표본 내지 선생님으로 추앙될만한 충분한 모범을 보인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테레사 수녀처럼 살아버리면 이 세상은 결국 퇴보해버릴지도 모릅니다.

제가 자본에 대해 무척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자본이 분명히 물질문명을 발달시키는 중요한 도구였고, 물질문명이 이처럼 발달하지 않았다면 과연 제가 성욱씨와 이렇게 대화할 수 있는 여러 조건에 도달할 수 있었던가를 돌이켜볼 때.. 자본은 "필요악"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반대로 악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김일성? 특히 미국에 물든 한국의 개신교 목사님들은 입에 거품 물고 김일성과 김정일을 욕합니다. 하지만, 전두환과 비교해보면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죠. (목사님들 중에 전두환을 위한 조찬 기도회 참석한 분 많습니다.--;) 그럼 전두환이 악일까요?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분명합니다. 그의 죄과는 결코 씻을 수 없습니다. 사람을 그렇게 많이 희생시켰고, 한국 현대사의 긍정적 흐름을 뒤로 몇발짝 물러서게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런 죄과가 분명하다 한들.. 김일성 또는 전두환을 극악에 분류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 감정적으로는 "내 손으로도 죽여버리고 싶은 놈" 분명합니다. 하지만, 유영철이라는 현 시사적 존재에 이르기까지 저 역시 뭔가 태풍의 결과를 만든 나비의 날개짓을 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더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히틀러가 있습니다. 사람을 희생시킨 숫자로만 보자면 김일성, 전두환, 박정희를 능가하는 역사적 기록에 분명히 남은 악마일 수 있습니다. 스탈린도 아마 숫자로 치면 쌍벽을 이루겠지요. 하지만 흐름 속에 지나가던 그를 과연 악마로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죄를 용서하자는 말이 아니라.. 그런 죄를 저지른 그 영혼을 과연 악마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몰아붙일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마음 한 구석에는 히틀러나, 스탈린이나, 전두환을 능가하는 더 잔인한 악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분명 있을 것입니다.
쓰고 보니 저를 너무 비하한 것 같아 반대로도 말하고 싶네요.^^ 제 마음 속 다른 한 구석에는 테레사 수녀가 지녔던 마음 비슷한 것도 분명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또 궁금합니다. 사람 마음 속에는 이렇듯 선과 악이 공존하는데.. 왜 유달리 기독교에서는 "마음 속의 악을 버리라."는 메세지만 되뇌일까요?
그렇게 보면 역시나 불교가 그래도 한 수 위인 것 같습니다.^^ 불교는 적어도 마음에 공존하는 선과 악이 있으니 그 중에 선을 많이 키우도록 노력하라고 하니까요.. (저만의 착각인가요?)

몇 시간 지나면 또 일을 하러 가야하니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야겠네요.--;

대화의 상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한성욱씨. 고맙다와 감사하다의 차이를 일깨워준 것도 성욱씨입니다. 그래서 다시금 고맙습니다.
이런 큰 고마움을 소주로만 갚자면 성욱씨 간이 다 녹아내릴 것이니.. 좋은 포도주도 좀 물색해놔야겠습니다.^^------------------------------------------------------------------------
새로운 기부 문화의 씨앗, 해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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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낸날짜 | 2006년 6월 08일 목요일, 오후 14시 44분 53초 +0900  

   보낸이 | "Bach." <rageagainsthan@hanmail.net>      

받는이 | "Sanxxx KIM" <nicxxn@naxer.com>

소속기관 | 고려품세, 밴드"Why."

  
악을 부정시하고 이분법의 논리로만 따르는 이들을 물들이는 모습... 그것은 마치 극선을 추구하는 듯한 모습이지만 실상은 그 자체가 갖는 극악함의 포장에 불과합니다. 악이란 것은 다분히 상대적인 개념인데도 너무도 그것을 절대적인 개념으로 포장하고 특히나 기독교의 교리에 어긋나는 부분(그것은 원래의 기독교의 교리가 아닌 교회의 힘을 증폭시키기 위한 수정으로 생겨난 가짜 교리...)은 모두 악으로 규정하고 있으니 그들이 부르짖는 실재의 악보다 더 악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오류적인 이분법은 근원적인 신으로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막는 사상*사고의 틀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신은 결코 개입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숨기려는 의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절대적인 선의 추구는 반대로 악에 대한 경멸로 이어지고 두려움으로 이어져 우주의 본질을 깨닿는데 결정적인 방해 요인으로 작용한다고도 생각할수 있습니다.



극선...극악...흠...

순환하는 모습을 지닌 우주... 그것은 우주내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에 대응이 되는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그것은 흡사 만족과 불만족의 모습과 같은 양상인데 따라서 극의 무엇은 존재하지 않는 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불만족은 항상 만족이라는 경험을 목표로 하지만 다시 항상 원래의 모습으로 회귀하려는 성질을 갖습니다. 그것은 불만족이 그런 것이 아니라 만족 또한 재차의 만족을 위해 불만족을 필요로하는 모습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한 파괴는 태초의 탄생을 만드는 다시금의 기회가 되는 것과 비교를 한다면 다소 억지일까요? 그것은 역시나 순환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맥락으로 인간만의 한계적인 사고가 만들어 내는 분리적인 사고는 항상 극의 무엇을 찾으려고 하지만 우주는 인간이 바라는 그런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항상 "극의 무엇"으로 이루어 지지는 않는 다고 봅니다.
결론을 이끌어 내기엔 너무도 피상적인 생각이지만 저는 그러한 까닭으로 극선이나 극악의 구분은 무의미 하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우주도 무척이나 한계적인 모습을 지닐수도 있으므로 그 한계속의 절대질량이나 절대온도등의 극적인 양상(그것은 빛과 어둠에 대한 부분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지만 저의 머리의 한계인지 도통 상상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이 존재 할수도 있겠지만 그것의 확장에 대한 가능성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므로 확정적인 것은 없다고 봐야 옳지 않겠나 합니다.

그러나 혼동하지 말아야 할것은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은 말그대로 현상에 대한 상대적인 객체 수용적이며 그 편차가 심한 판단에 대한 부분이므로 그런 무엇이 언제나 불변적인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론적으로 파고들면 예수나 붓다등의 대성인들도 육체를 종속해야만 하는 한계를 지니므로 극선과 극악의 어떤 범주에도 포함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선이란 것이 어떤 것이고 악이란 것이 무지한 인간들에게 어떻게 이해될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예를 만들어준 고마운 선지자가 아니었나 합니다.



뉘우침...그것은 후회입니다. 후회를 한다고 해서 우주는 후회를 하기 전의 시점으로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결코 돌려 놓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모든 종교들은 후회...즉 뉘우침으로 죄를 용서 받는다는 식의 교리를 설파합니다. 하지만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이 우주적인 모습을 갖는다면 결코 "죄"라는 것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다고 봐야겠습니다.

우습게도 각 종교들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죄"라는 "선"에 반대되는 개념을 공포적으로 주입시키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이 오로지 신으로의 회귀와 용서의 구함으로 이룩되는 것과 같은 잘못된 믿음을 강요합니다. 안타깝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야기 하는 것은 결코 종교나 법률이나 인간성이 무의미 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제가 부르짖는 말들은 아마도 한참후의 진리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아직 무지하고(전반적인 인류의 평균적인 모습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물질(재산)적인 부분과 상당히 연관성이 있습니다. 평등한 교육의 조건이 주어지고 전쟁이나 여타 인간이 인간을 벌하지 않는 지금보다 훨씬 평화로운 사회가 구현 된다면 우리는 결코 지금보다 서로를 해치지 아니할 것이며 그것은 자연스러운 안정의 모습으로 작용하여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이 없이도 모든것을 똑바로 바라보는 계기가 될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만, 그것을 바라고 네사라나 첫접촉이니 뭐니를 바라는 모습들이 아니기에 제가 쌍수를 들고 경계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위험하며 진리가 진리로 다가오는 것을 막는 현실의 벽이 존재함으로 우리는 한동안은 종교적인 두려움으로 생기는 도덕에 대한 부분을 우리의 방패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상당히 느린 방법이겠지만 급진에 따른 반발력 보다는 피해에 대한 감내가 덜 필요한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물론 급진적으로 바뀌는 환경이 온다고 하여도 더 나아진 환경을 이용하여 많은 이들에게 보다 본질적인 의미로의 접근을 꾀할수 있다면 영성계에서 바라는 많은 현상들은 긍정적인 무엇을 내포하겠지만 인간은 항상 나태하여 즐길줄만 알지 결코 나아가지않을 것만 같은 불안함이 드는 마음입니다.^^:::



아마도 얼마가지 않아 종교는 대대적인 변혁이 없다면 스스로 붕괴하고 말것입니다. 스스로 붕괴하기 전에 모두를 멸하는 자폭이나 하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ㅎㅎㅎ 제가 방금 웃었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를 지닌다고 봅니다. ㅠㅠ



형님께서 이번 편지에 말씀하신 부분중에 "제 마음 한 구석에는 히틀러나, 스탈린이나, 전두환을 능가하는 더 잔인한 악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분명 있을 것입니다.
쓰고 보니 저를 너무 비하한 것 같아 반대로도 말하고 싶네요.^^ 제 마음 속 다른 한 구석에는 테레사 수녀가 지녔던 마음 비슷한 것도 분명 있습니다." <<< 요것이 정말 찌르르한 구절로써 제게 다가옵니다. 아마도 그것이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명확한 해답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그것은 인간본성뿐만 아니라 우주의 본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둘다 지니지만 어떤 것을 취하느냐에 따른 일시적인 상태... 그리고 회귀... 그것의 반복...

아마도 분명히 이처럼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는 반복의 이유야말로 우리가 얻어야할 "왜?"라는 질문을 대답해줄 중요한 단서가 아닐까 합니다.



형님...^^ 저 와인 정말 좋아합니다. 하지만 입이 싸구려인지 아메리칸 와인처럼 달콤한 맛을 상당히 즐깁니다. 가끔은 떫은 것도 먹어 보고 싶어하지만 역시나 최종 선택은 달콤한 와인입니다. 저렴하기도 하구요.ㅋ^^

그리고 치즈도 좋아하는데 까망배르니뭐니 씁쓸하고 마치 삭힌 홍어 냄새와 맛이나는 치즈는 엄두도 못냅니다. 고작해야 체다치즈 정도...스모크치즈 정도를 즐기는데 생각해 보건데 아직은 세련된 미식가는 아닌듯 합니다. ㅎㅎ 솔직히 캐비어를 모르고 한스푼 가득담아 올린 크래커를 한입에 쏙~했다가 완전히 넉다운한 적도 있습니다....ㅎㅎㅎㅎ



이런 이야기를 왜 하냐면요^^ 소주보다는 와인에 강하기 때문에 혹여 소주만 줄창 마시게 되는 상대적인 불행이 우리가 만나는 날로부터 연속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살짝쿵 와인을 마시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ㅎㅎㅎㅎ





PS...형님은 보통 어떤 꿈을 꾸십니까? ㅎㅎ 수면중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저는 요즘 상당히 묘한 꿈을 많이 꿉니다. 예를 들어 코앞까지 다가온 달(지구?)을 손으로

        만진다든가 악마와 천사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든가...ㅎㅎ

        아참 이번 편지는 빛의 지구에 한번 올려볼까합니다. 허락해 주신다면요.^^

        형님의 답장을 포함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