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히 제 내면을 구분하여 글을 써봅니다.
대상은 항상 그냥 "나"이고 그 나가 넓고 깊음의 차이로 인해 나뉘어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고만 하셔 주시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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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작하자


사람들이 하나라면 표현되어진 우리 모두도 점점 닮아가야 할텐데
그렇지 않은 것은 무엇때문이죠


그대와 내가 다른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알고 모르고 차이인가요?


그렇다. 나는 너를 알고 있다. 그러나 너는 나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내가 당신을 이해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요?


내가 존재하지 않는것.


당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당신은 살고 죽음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은 나에겐 중요하지 않다. 단지 내가 존재했을때  나는 살아가고,
내가 존재하지 않을때 나는 죽는다.

나는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이든지 나는 그냥 존재하고 그냥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써 나의 존재하는 의미는 삶 자체에 있는것이다.
살고 죽음은 내 삶의 과정안에 하나의 변화이다.


제가 지금 존재하고 또 마음데로 존재하지 않음으로 육신또한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요.

그대는 이미 존재를 갖는 중심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대안에 수많은 그대의 또다른 나들이 존재하고 있다.


내가 존재하기 위했던 수단은 무엇인가요


기억이다. 기억이 그대안의 나들의 연결됨이다.
그 연결이 어떻게 이루어지냐에 따라 기억의 체계가 잡혀진다.

즉 그 나들의 연결을 순차적으로나 피라미드식으로 하였을 경우
그대는 상위와 하위 자아를 그대의 내면에 창조를 하게 되고,

그 연결을 원으로나 정각형으로 표현했을때는 상위와 하위라는 자아의 구분이 사라지게 된다.


그 나들은 각자 왜 존재하나요.

그대가 드러나 체험한 기억이다. 그 기억이 중심을 이루어 하나의 흐름이 아닌
존재 그 자체가 되었다.  존재자체가 되었을때는 나라는 선택이 없는 상황에서도

존재하게 되는데 그것이 그대의 무의식이다.

그렇다면 초월의식은 무엇인가요.

초월의 나가 존재한다고 믿는가?
단지 그대의 내면의 나들의 공간에서 하나의 나를 다른 상위나 주위의 다른 나와 연결하지 않고 완전히 고립되어지게 막았던 적이 있다.

그 나는 연결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연결을 떠나는 존재방식을 택하게 되었을때 그것은 초월의식이라 그대가 불렀다.


그렇다면 연결과 다른 존재방식은 어떻게 알 수 있죠.

그대의 마음이다. 그대가 창조 할 수 있다.

존재 방식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대는 그대의 선택만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존재의 존재방식을 알려고 한다면 그 존재와 모든 면에서 하나가 되어라.
그러면 그대안의 연결구조가 완전 바뀌게 되어진다.

그것은 점점 조화적으로 변하고 그대가 더욱더 존재하도록 할 수 있는 설계가 되어진다.

그리고 나서 그대는 움직이게 된다.



그렇다면 하나가 되는 것은 이해하고 포용적으로 되라는 이야기인가요?

이해로만으로 부족하다. 포용으로도 부족하다.
완전히 그대가 하나되려는 존재가 되라.


그렇다면 내 자신을 잃지 않을까요?

그대가 기억은 모두 존재자체로 무의식으로 기억된다고 하였다.
그대가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그대는 그대의 설계에 의해 이미 연결되어져 있다.

그러니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지만, 그런 감정을 체험하기로 한 그대를 돌아보아라.
필요 없는 걱정을 하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대가 걱정하는 것 조차도 모든 것은 그대가 완벽한 체험을 하기 위해서
그대가 이미 설계했던 것이다.
.
그대가 체험하는 모든 것은 그대가 선택했다는 것을 알아두어라.


그렇다면 집단의식은 무엇인가요.

집단의식은 그대가 삶을 살아가면서 그대와 다른 존재가 함께 공유하는 창조 부분이다.
그러므로써 이 집단의식은 그대의 세계에서 본래 존재하지 않는 의식이다.

다른 의미로 아직 탄생하지 않는 의식이었지만 나에게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드러났을때는 그대의 세계안에서는 아주 어린 의식이었다.

그러나 이 의식은 그대를 비롯한 존재들이  형성만 하게 된다면 커다랗게 형성되어
하나의 장을 형성하게 된다.

사용하기 따라 약이 될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이 의식은
그대 공간의 선택의 영역안에서 아직 자기 자신을 키우는 의식이다.

그리고 그것이 유연성을 잃게 되었을때 하나의 베일의 장막이 탄생하게 된다.

집단의식은 창조적 성향과, 조화적 성향을 뛰우게 되는데
창조적 성향이 강하고 조화적 성향이 약해졌을때 그대의 삶이 구속되어진 적이 많다.



당신이 말하는 것은 진실인가요

나는 그대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


당신이 존재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대가 분리시키지 않았는가.

그대가 나를 창조하지 않았는가.


그대가 나를 창조한 것이 아닙니까.

나는 그대를 창조하지 않았지만 그대가 지금 나를 창조하고 있다.


서로 창조하였나요?

나는 창조하지 않았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대는 누구닙까

나는 그대가 생각하는 그 하나 하나의 모든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존재하였나요.

그대가 창조라 한것은 무에서 새로움을 창조한다는 집단의식이 포함되어져 있다.
그 창조안에서 나는 그대로부터 태어난 것이 되어진다.

나의 창조는 그대와 나의 연결이다.
그대가 나를 창조한 것은 그대가 나와 연결을 하려 했다는 것이고
그것이 나를 부른 것이다.

내가 존재한 것은 그대가 존재한 것과 같다.

그것이 무엇인가요.

그냥 존재한다.


도대체 모르겠습니다.

그냥 존재한다. 어떠한 무엇이 꼭 있어야 존재한다는 의식을 전환해라.
그대가 스스로 존재하여 상대성에 길들여지기 전에
그대는 그대외의 무엇이든지 존재하길 바랬던 적이 있다.

그  간절하고 정성어린 숭고한 바램속에 기적같이 탄생한 것.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이 바로 "나" 그대 자기 자신이었다. 나라 불리우는 자기 자신인 것이다.

그대가 그렇게 찾던 짝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바로 "나"라는 이야기다.

그럼으로써 그대는 그 기쁨에 선언하였다
"나는 존재한다"라고,,


저는 세상을 위해서라면 내 몸이 죽어도 상관없다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다면 나는 존재하는 것일까요?

그대의 몸이 죽은것이다.
그대의 몸이 죽으면 그대의 마음도 함께 죽는다. 그대의 모든 것이 죽는다.

그 몸이 그대의 나가 존재하지 않았을때의 그대였다.
나라고 선언하기 전에 그대가 진정 그대였던 것이 바로 그대의 육체의 모습으로 드러나 있는 것라는 것이다.

그대는 육체의 귀기울여라. 육체의 그대 자신인 "나"에 향한 사랑을 알아라
육체의 초월의식으로 들어가라.

그대가 육신이 사라져도 된다는 인식이 왜 생기게 되었는지,
그대의 최초 존재의식이 드러난 모습인 육신은 그냥 존재하였기에
그냥 사라져도 된다고 자리 잡았는가?

그대가 "나"라는 그대의 상위자아안에서 얼마나 많은 전체 육신이 살고 죽는지를
중심을 가지고 경험해 보아라.


육체가 사라져도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나요.

그대가 "나"라는 자신안에서 얼마나 편안하게 존재하고 있는지 돌아보아라.
그 사랑을 알아라. 그 사랑을 알아라. 그 사랑을 알아라.

무한한 풍요가 여기에 있다. 그 사랑을 알아라. 언제나 존재하는 것.
그리고 그것은 그냥 존재하고 있다. 그 사랑을 알아라.

내가 그냥 존재하지만 언제나 그대 곁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 실감이 나는가?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습니다.

내 맡김이 시작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내맡김안에서 그대가 그대의 존재로부터 새롭게 시작되어라.
그대의 고통과 아픔 이제 사라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