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끝내는 말


      10대 후반의 시기에 ‘내가 누구인가?’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이 내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후 거북이처럼 느리게, 그러나 나름대로는 꾸준히 그러한 화두를 가슴에 안고 살아온 지 30여년이 지났다.  처음 그 답을 찾기 위해 몇 년을 씩씩거리다가. 아직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와 경험이 너무나 빈약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마땅히 ‘이제는 마음을 열고 배우며 살겠다!’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나는 작은 기쁨을 얻을 수 있었으며, 당시에 많이 들었었던 ‘ 문은 두드리면 열린다!’라는 지혜로웠던 이의 가르침을 신뢰와 함께 등짐에 넣어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뜻이 있는 곳에 역시 길은 있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런 저런 자료들이 내게 나타났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도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 않는가?!  90년대의 시작이 내게 새벽 6시와 같았다면 지금은 오전 10시쯤 된듯하다.  한동안 이방인들 속에서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나누느라 진땀을 흘렸었는데, 지금은 시끌벅적한 고향의 장바닥을 걷는 것 같다.  역시 고향은 어머니의 품속과 같고 삶에 기쁨과 웃음을 가져다준다.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여행길에서 내가 줍고 모아온 귀한 보석들이 있어서 지금부터 펼쳐놓고 함께 보고 즐기고 싶고, 또 자랑하고도 싶어서 지금부터 늘어놓는다.  사람마다 취미와 관심사가 같지 않으니 별반 신통치 않게 느껴지실지 는 모르겠으나. 여러분과 나는 같은 조상과 역사를 가지고  지구라는 별 위에서 함께 살고 있는 지구촌의 한 가족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니 잠시 멈춰서 살펴보아주기 바란다.  나는 이것들을 보며 너무나 큰 기쁨과 감사를 느끼기 때문이다.  ^__^  



  내가 모아 온 보석들


  神의 단편(斷片)인 靈.

  나(우리)는 이 우주-존재하는 모든 것의 원인자인 최고 창조주(神)의 단편(斷片)인 영(靈)으로 아버지 어머니 神과 함께 태초로부터 영겁의 시간 동안 존재해 왔다. 우리(나)는 스스로 존재한 어버이 창조주의 분신으로 그와 나(우리) 사이에 분리가 없었으므로 우리는 어버이 신의 모든 속성을 이어 받아  창조주의 손과 발로서 존재하는 모든 것의 원인이 되었다.


  전체의 일부이며 개별적 인격체인 神

  인간의 몸을 가지고 존재하며, 독립된 자로 인식하고 있는 우리의 개체의식은 스스로 존재한 ‘나는 나’일 뿐인 어버이 신과 하나이면서 또한 그-그녀의 확장된 자아이며 동시에 독립된 개체적 의식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이는 신비로운 神의 일면이다.


  도약의 발판

  이곳 지구는 제 1의 창조계가 어느 시점에서 그 고유한 본성인 진화와 확장에 어떤 정체가 있었을 때, 이를 타개할 새로운 에너지를 창조하기 위한 목적에서 특별히 선택되어 창조된, 제 2의 창조계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었으며, 지금 이 시기에 우리들 모두의 노력과 봉사로 그 목적이 성취되었다.


  인간이 창조한 환상

  창조주는 존재하는 모든 것 그 자체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에 내재하는 생명이며, 그것의 원인인 靈-의식이다.  神은 우리가 그 형상대로 창조된 멋진 수염을 가진 위엄 있는 할아버지와 같은 전지전능한 개체적인 인격자로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스스로 창조한 세계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그의 계획과 의지에 우리 인간이 따를 것인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하는지를 지켜보며 판단하고 심판하는 분이 아니다. 우주 만물에 충만한 생명은 지극한 사랑과 기쁨이며, 사랑이 아닌 두려움은 오로지 기쁨이며 사랑인 신이 스스로를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을 통하여 체험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창조한 거울이다.

  신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일관되어 작용하는 우주적 법칙과 원리에 의해 그의 의지를 펼친다. 인간과 우주 만물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신이란, 자신이 누구인지를 스스로 망각한 신의 단편인 인간들이 창조한 환상일 뿐이다.    


  인간이 된 神

  인간은 스스로 창조한 세계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그 속으로 뛰어 든 신이며, 자신의 체험을 무한히 낮은 곳까지 확장하고, 자신이 아닌 것을 통해 자신을 체험적으로 알기 위해 자신의 일부를 망각상태에 있게 한 게임의 창조자이며 동시에 게임의 당사자이다.
  따라서 인간은 인간이 되어보지 아니한 천사-靈보다 하나의 고귀한 체험을 더 가지고 있는 神이다.


  빛의 대천사였던 루시퍼

  많은 종교에서 가지고 있는 사탄(루시퍼)―마귀(魔鬼)는 원래 빛의 대천사 중에서도 뛰어났던 빛과 사랑의 대 천사였다. 그는 오로지 빛과 사랑이었던 원초(原初)의 창조계를 빛과 어둠으로 분리시켜 이원성의 세계를 창조할 때 어둠의 역할을 하기로 자청한 존재로, 그의 이러한 선택은 창조계를 더욱 크게 확장하고 넓히기 위한 계획에 자신을 내어준 지극한 사랑과 헌신-봉사의 행위였으며 이보다 더 큰 희생과 사랑을 우리는 찾을 수 없다. 자신이 아닌 두려움과 분노 속에 머문다는 것은 순간적인 희열의 순간을 가질지언정 대부분은 불안과 고통 속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으로, 이는 불이 물 속에 있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은 전지전능하다고 들었다. 전지전능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알 수 있으며, 모든 것을 뜻대로 즉각 창조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당신은 사탄이 창조주에 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창조주가 한 순간에 사탄을 빛의 대천사로 바꾸어버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확신하는바 창조된 존재인 사탄은 한 순간도 창조주를 대적 할 수 없다!  창조주의 뜻과 계획이 아니라면 빛의 대천사인 미카엘과 어둠의 천사인 루시퍼의 대결은 있을 수 없는 환상일 뿐이다!

  이제 이원성의 게임을 끝내고 제2의 창조계로 확장하는 시점에서 루시퍼를 다시 예전의 그로 되돌리는 유일한 길은, 그의 크나 큰 희생과 봉사를 이해하고 아직 빛 속에 머물러 온 빛의 천사들이 지극한 감사와 사랑 속에서 루시퍼를 껴안고 흘리는 눈물뿐이다.  그 때에 루시퍼는 자신이 누구였는지 다시 기억할 것이다!


  지옥은 없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죽음?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두려움이 있다고 보는데...  그것은 대부분의 종교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사후(死後)의 지옥이다! 죽음은 한 순간이지만 죽음 후에 오는 지옥은 영원하다! 한 순간의 고통은 곧 잊혀지지만, 영원한 지옥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고통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사탄이 사후세계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맞는 드라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배우지 않았다.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모든 신은 선하고 착하다고, 모든 빛과 어둠의 싸움은 빛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고, 우리는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하나님이 루시퍼보다 더 강하니 당연한 일이다.
  위대한 스승, 창조주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로 이 땅에 태어나 함께 걸었던 예수께서는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외쳤으며 ‘네 이웃의 잘못은 일곱 번씩 일흔 번 이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쳤다.  그는 또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지금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내가 확신하건대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그의 아들 예수의 사랑보다 절대 작지 않다!  그런데 누가 창조주이며 최고의 神인지 알지 못하여 우상을 섬긴다고, 영원한 불 속에 던져버린다고 들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나는 이 벽을 넘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벽을 허물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지옥은 없다!  보통의 인간도 살인을 한 자식이라도 불 속에 넣어 태워죽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대신하여 죽음을 감수할 부모는 많을 것이다!!

  예수가 비유를 들어 가르치셨듯이 부모가 애타게 기다리는 것은 한 솥 밥을 먹고 있는 말 잘 듣고 순종하는 자식이 아니라, 길 잃은 자식이며 방탕하여 어둠 속을 헤매고 있는 자식이며, 한 밤중의 작은 소리에 깨어나 대문을 열고 두리번거리는 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인 것이다.  
  만약 당신이 믿는 신이 있다면 직접 대면하여 이것을 물어보라!  남이 하는 이야기를 분별없이 그냥 믿지 말고…. 그들도 남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냥 전해주었을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백번 들은 것이 한번 본(체험한)것만 같지 않다’고 나는 알고 있다!


  죄 - 빗나간 화살

  인간은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망각하고 인간이 된 천사(神)이다. 자신이 인간이 될 때 모든 기억과 자신의 고유한 능력을 상실한 상태로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한 선택을 한 것은 위대한 희생과 봉사의 선택이었으며, 그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된 것은 우주-창조계가 어떤 시점에서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있게 되었으며,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어떤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시점이라 함은 창조계가 이원성의 세계로 변형된 후 많은 시간이 지나자 빛과 어둠 사이에 충돌이 시작되었고, 그것은 양대 세력간의 어마어마한 우주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수 백 만년 이상의 죽고 죽이는 전쟁이 계속되자 드디어 쌍방이 모두 지치게 되었고, 진화와 역동적인 생명력의 발현을 그 본성으로 가지고 있는 우주가 정체상태에 이르게 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지구가 선택되었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새로운 에너지를 창조하기 위하여 천사-神중에서도 강력한 힘과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존재들이 자원에 의해 이곳 지구로 오게 된 것이다.

  망각 상태로 생활한다는 것은 손과 발이 묶이고 눈과 귀가 가려진 상태로 살아가는 것에 비유될 수 있겠는데, 지구에 태어난다는 것이 그와 같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자청하여 이곳에 온 우리들에게 베일 저편에서 이러한 진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모든 천사- 대천사들이 항상 큰 감사와 존경심을 가지고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지금 지구상의 많은 종교에서는 인간을 비천한 존재나 죄인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데 이는 거꾸로 보고 있는 것이다. ‘죄’로 번역된 단어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의미는 화살이 과녁을 빗나간 것을 상징했고, 조화와 화합이 아닌 분리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위하여 큰 용기를 가지고 이곳 지구로 온 모든 존재는 참으로 위대한 봉사와 도전의 길을 선택했던 용사요 영웅들일 뿐이다.      


  윤회(輪廻)의 목적

  요즈음 공영방송에서 종종 인간 영혼의 윤회(輪廻)를 다룬다. 동양의 전통적인 개념에 윤회는 당연시 되었고, 초기 기독교도 윤회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으나 AD5세기경 성직자들의 회의에서 제거되어 사라졌다. (성경-마태복음 11장 14절에는 예수가 세례요한에 대하여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다’라고 언급하였다.)  

  윤회를 반복하며 다시 태어나는 것은 영(靈)―神이 인간의 몸을 가지고 얻는 많은 체험이 영을 크게 성숙시키기 때문이며, 원래 사랑과 기쁨과 감사, 영원한 삶이 근본 속성인 神이 그러한 본성에 반대되는 죽음. 두려움. 고통, 원망, 분노 등을 체험하는 것은, 神의 체험을 더욱 확장시키고 성숙시키는 귀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게임의 끝

  지금 우리가 지구에서 진행하고 있는 게임은 모두가 함께 상승하는 게임이다. 이번의 삶은 무수히 많았던 전생의 나와, 과거의 모든 조상들과 개개인의 삶의 카르마들을 해소해야 하는 생(生)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어렵다.  또한 이번 지구 인류의 각성과 상승은 전 우주의 상승을 이끌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제2의 창조계로 도약시키는 거대한 작업이기에 그만큼 더욱 어려운 것이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에 의해 바뀐다는 말이 있다. 예를 들어 가족 중의 한사람이 다른 가족 하나를 죽였다고 하자. 이것은 용서할 수 없이 큰 죄인데 나중에 그 내막을 알고 보니 그 한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모든 가족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이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만 할 것을 알고도 그와 같은 일을 저지른 그 사람에 대한 원망과 단죄(斷罪)가 감사와 연민으로 바뀌지 않겠는가?!
  이와 같이 이번 생의 우리가 모든 진실의 내막을 알게 되므로, 과거의 나와 다른 모든 이들의 카르마와 업이 해소되어지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 베일 저편의 형제들, 천사-대천사, 다른 행성의 형제들이 전해주는 소식은, 우리 인류의 성공적인 노력의 결과로 그러한 우주적 목표가 이미 확정되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남은 것은 영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결과가 우리의 3차원 물질계에 현현되기까지의 몇 년 정도의 기간인데, 그것은 지구의 시간 기준으로 2012년 이전이며, 2007년 9월 정도에 인류 의식의 양자적 도약이 기대된다고 한다.  


  상상력(想像力)

  모든 창조는 영(靈-의식)의 생각과 상상(想像)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것은 우리가 집을 지을 때 먼저 설계도를 그리는 작업과 같은 것이다. 지금의 우리가 어떤 것을 창조할 때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무지하고 무력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모든 제한된 의식을 놓아 보낼 때 우리는 예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상상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스스로 존재하는 神의 신비하고 독특한 능력이며 모든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원인이다. 神이 상상할 때 이 우주를 이루는 모든 물질적 요소들, 극미한 모든 의식을 가진 미립자들이 이에 즉각 반응하여 형태를 이루는 것이 창조의 과정인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은 스스로 존재하는 神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능력이다.  


  가장 큰 신비

  가장 작은 씨앗이라는 겨자씨가 싹을 틔우고 거대한 나무로 커가는 것이 신비롭지 않은가?  산과 들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무수히 많은 꽃들이 드러내는 신묘(神妙)한 아름다움과 향기가 신비롭지 않은가?  벌레가 껍질을 벗고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것이 신비롭지 않은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온갖 동물과 새들이 뛰고 나는 것이 신비롭지 않은가?!
  하물며 이 우주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있는 우리 인간은 그 모든 것보다 특별한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새로운 고향

  우리는 고향을 떠나 이곳 지구로 왔다.  어버이 신의 지극한 사랑 속에서 그분들을 대신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을 더욱 빛내기 위해, 우리는 창조의 선봉에 선 귀한 창조주의 아들이며 딸이다.  이 우주를 존재하게 하는 것은 모든 것에 일관되게 작용하며 흐르는 많은 우주의 원리. 원칙들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모든 부모가 자식이 자신보다 더욱 큰 힘과 지혜를 가지는 것에 기뻐 춤을 추듯, 우리의 어버이 신의 최대의 기쁨은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자식들이 새로운 창조의 일선에서 이 창조계를 빛내는 일을 바라보는 것이다.

  자식이 하는 일에 일일이 간섭(control)하고 심판하는 것은 불신과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어버이 신은 두려움을 알지 못하시는 분이다.  그-그녀는 오로지 기쁨과 사랑 속에서 존재하시는 영원한 생명이며, 모든 것의 근원이며 ‘나는 나다 - I am that I am'로 자신을 표현하시는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시며, 그 피를 이어받은 우리 역시 그러하다.    

  우리의 귀한 벗 토비아스(Tobias)는 우리가 새로운 고향을 창조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몸을 벗을 때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제2의 창조계를 열어가는 이 시점에서는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새로운 고향이 되며,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이곳으로 온다고 한다.
  나는 그를 신뢰하며, 참된 영은 거짓을 모르기에 이것이 사실이라 믿는다. 우리가 모든 기억을 다시 되찾을 때 이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참으로 위대한 일을 이루는데 앞장을 선 어버이 신과 고향에 머물고 있는 많은 형제, 자매들의 극진한 사랑과 존경과 지원을 받고 있는 귀한 존재들인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내가 밝히고 싶었던 느렸지만 꾸준히 방향을 잃지 않고 계속했던 30여년의 인생길에서 모은 중요한 진실들이다.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 활용된 도구들은 많은 선각자들의 가르침과, 동 서양의 경전, 책들, 그리고 최근 몇 년 간 접하게 된 많은 채널메시지들이며, 이것들에 더하여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나의 직관과 내면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공명-공감으로부터 오는 신뢰다.  같은 내용의 글과 정보를 접하여도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같은 내용의 글이라도 1년 전과 지금 볼 때 그 느낌이 많이 다를 수 있고, 내가 준비가 안 되었을 때에는 전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진리는 느낌으로 전달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백합꽃의 향기,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말로, 글로 표현이 가능하겠는가?!  우리는 오감(五感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가지고 사물을 인식-분별하고, 오감에 더하여 육감(六感)이 있는데 이것은 ‘분석적인 사고에 의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는 정신작용’이다.

진리에 대한 이해는 논리적 사고-이론도 한 역할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다.  우리는 머리(논리적 사고)로 사물을 인식하지만 그것에 대한 옳고 그름, 긍정 부정의 분별은 가슴으로 느낀다.  큰 기쁨이나 슬픔을 맞았을 때,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프다.’거나 ‘가슴이 터질 정도로 기쁘다.’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