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력의 핵심 , 기술정보




모든 기업은 시장정보, 상품정보, 기술정보 등 각종 정보를 경쟁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그 중

에서도 국내외 경쟁기업의 기술정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확보하려고 한다.

제대로 된 기술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두뇌·자금·시간 등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산업스파이를 활용, 기술정보 유출을 꾀한다.

기술정보 유출은 경쟁기업이 이 같은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는데 가장 큰 역점이 주어

진다.

이로 인해 절취보다는 복사, 그리고 협박보다는 매수를 앞세우는 등 갈수록 음성화한다. 그리

고 이 같은 음성화의 매개체는 주로 전·현직 임직원 등 내부자다.

이 때문에 기술정보 유출 방지를 위해서는 임직원의 마음을 잡아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지 않

게 하는 것이 선결과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료제공: 한국산업기술재단 기술과 미래

스파이(spy)란 상대방의 허점을 공략 하고 보안조치를 무력화시켜 유용한 정보를 획득하는 일

련의 과정을 가리킨다. 어원은 ‘멀리본다’, ‘숨겨져 있는 것을 목격 또는 발견한다’는 의미의

고대 프랑스어 ‘espire’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개념은 최근까지 국가 간 외교 및 군사에 관한 정보를 한 나라의 정부요원이 비밀리에 정

탐·수집하는 행위를 가리키는데 사용해 왔다. 하지만 냉전체제가 붕괴돼 더 이상 체제 대결이

무의미해지자 이제는 첨단기술을 개발한 기업을 상대로 한 기술정보 수집 및 탐지가 주요 활

동영역이 되고 있다.

이를 산업스파이라고 한다. 산업스파이의 세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글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데, 다음의 3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첫 번째는 경쟁기업의 간행물, 공공기관 조

사보고서, 경쟁기업 직원이 발설한 내용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경쟁기업의 퇴직사원 포섭, 특정 기술정보 입수를 위한 경쟁기업 임직원 스카우트

등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경쟁기업에 잠입 해 협박, 또는 직접 기밀서류를 강탈하는 것 이다.

이 가운데 첫 번째는 합법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세 번째는 확실한 불법이기 때문에

활용되지 않는다. 문제는 도덕적 해 이를 바탕으로 하는 두 번째 유형이다.



갈수록 확산되는 기술정보 유출


지난 2008년 1월. 우리나라 선박 건조 기술을 통째로 중국에 유출하려던 전직 조선업체 기술

부장 엄모(53)씨 등이 체포됐다. 국정원 요원들의 끈질긴 추적 끝에 기술 유출 직전 덜미가 잡

힌 것. 퇴직사원인 이들이 회사에서 불법으로 빼돌린 자료에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자랑하는

초대형 원유 운반선, 시추선, 천연액화가스(LNG)선, 자동차 운반선 등의 설계도면 뿐 아니라

조선소 건설 도면까지 포함돼 있었다.

엄모 씨는 해당 회사에 재직할 당시 회사 서버에 접속해 자신의 컴퓨터로 자료를 다운 받았다

. 그리고는 미리 준비한 외장형 하드 디스크에 저장하는 방법을 사용, 대용량의 기술정보를

빼돌린 것이다.

국정원 자료에 따르면 첨단산업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다 적발된 건수는 지난 2003년부터 2008

년 1월까지 총 127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도별 유출 건수를 보면 2005년 29건, 2006년 31건,

2007년 32건, 그리고 지난해 상반기 27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기업체 대부분이 기술 유출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

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 같은 적발 건수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확한

피해 금액을 산출하기 어렵지만 대략 187조5,5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기술 유출 분야는 디스플레이 장치에 서 신형 휴대폰, 메모리, 개인 간 파일 공유 (P2P),

DVD, 초음파진단기, 음식물쓰레기 처리장비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초박막 트랜지

스터 액정표시장치(TFTLCD) 나 메모리, 스마트폰 등 우리나라가 세계시장에서 우위를 점하

는 기술은 밀거래 품목 1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이 같은 상황이 자동차, 조선 등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글로벌

경제전쟁 시대에 국가 정보기관이 자국 기업을 돕기 위해 첨단과학기술 정보를 수집하는 것

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옛 소련이 붕괴된 후 미 중앙정보국(CIA)이 요원들에게 산업정보 수집 및 산업보안 활동을 요

구하자 일부 요원들은 “미국을 위해 죽을 수는 있다. 그러나 GM을 위해서라면…”이라며 거세

게 반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 같은 국가 정보기관 요원들의 반발은 옛날 얘기다. 그리고 기술정보 빼내기를 통해

경쟁우위에 서려는 기업들의 노력도 노골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이들의 유혹에 빠져드는 경

쟁기업 임직원, 그리고 엘리트 연구원의 수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도덕적 해이라는 구멍


기술력이 경제활동의 기본이 되는 사회에서 기술정보 유출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온다. 한번

유출되면 한 기업의 흥망은 물론 국가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남이 피땀

흘려 개발한 기술을 무단으로 빼돌리는 산업스파이는 기업이나 국가의 암적 존재다.

국정원의 설명에 따르면 기술정보 유출자의 95%는 전·현직 임직원, 즉 내부자라고 한다. 삼성

전자 휴대폰 기술 유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핵심적인 기술정보를 죄의식 없이 해외 또

는 경쟁기업에 부정하게 유출한다. 이것은 범죄행위다. 그렇다면 기업 임직원이나 연구원들

인 이들이 왜 이처럼 엄청난 일을 저지르는 것일까.

국정원이 소개한 불법 기술 유출 사례들의 동기를 보면 금전유혹이나 개인영리는 물론이고

처우와 인사 불만에 의한 사건이 많다. 심각한 고용불안을 느껴 기술 거래를 하는 경우도 적

지 않다. 해외업체의 불법적인 국내 인력 스카우트도 빈번히 일어나는 기술 유출 사례 중 하

나다.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 LCD 5대 핵심부품 중 하나인 LCD 컬러 필터 기술을 보유한 국내 모

중견기업의 핵심인력 3명은 어느 날 대만의 경쟁업체로부터 깜짝(?) 제의를 받았다. 연봉 10

억 원에 스카우트를 하겠다는 것.

한 번에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이들은 대만 업체의 제의를 수락했고, 자신들이 관여한

LCD 컬러필터 기술의 유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국정원이 기술 유출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수사를 벌여 유출 직전 검거됐다.

해당 기업은 8,000억 원을 들여 LCD 컬러필터를 개발했는데, 대만 경쟁업체는 기술자 스카우

트를 빙자해 30억 원에 기술을 빼내려 했던 것. 고용불안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상황 에서

엄청난 대가를 동반한 스카우트 제의는 일종의 탈출구로 보일 수 있다. 기술정보 유출과 관련

한 유혹은 피하기 어려운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기술 빼돌리는 수법도 다양


기술을 빼돌리는 수법도 다양하다. 대표적인 것이 e메일로 빼돌리기. 대부분의 정보가 A4 용

지로 200만. 300만장 분량에 해당하는 수십 기가바이트(GB) 규모여서 자료를 은닉하기 쉽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11월 유럽식(GSM) 스마트 폰 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려다 적발된 범인

들도 A4용지 100만장 분량의 기술정보를 DVD 와 e메일로 빼돌렸다.

이를 막기 위해 대기업과 주요 연구기관들은 e메일을 감시하는 보안솔루션을 비공식적으로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USB 등 휴대용 저장장치부터 종이 디스크, 라이터형 카메라 등 첨단

기기를 도구로 삼아 기술 유출을 시도하고 있는 산업 스파이들도 늘고 있다.

무형인 정보는 유출이 쉬울 뿐만 아니라 유형의 물건처럼 독점적으로 점유할 수 없는 특징이

있다. 동일한 정보를 복사하거나 이 메일 등을 통해 유출하면 원본에 대한 어떤 손상과 흔적

없이 수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

특히 빼내간 흔적 발견이 어려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임직원이 유출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

에 없다. 물론 이 같은 ‘보이지 않는 적’에 대비해 암호화 프로그램이나 파괴된 하드디스크의

완전 복구, 휴대폰에 남은 증거 포착, 그리고 용의자의 e메일과 계정 비밀번호를 푸는 첨단기

법이 개발돼 있다.

하지만 작심하고 감쪽같이 빼내가는 수법에는 사실상 당해낼 도리가 없다고 봐야 한다.




임직원 마음잡는 일이 중요


글로벌 경제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첨단기술 확보는 필수다. 그래서 정부나 기업 가릴 것 없

이 적극적인 연구개발(R&D)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기술개발 역량이 부족한 기업들의 경우

경쟁기업의 기술을 빼내는데 사활을 건다.

미국의 경우 전 세계 지적재산권 가운데 86%를 갖고 있지만 이 같은 지적재산권을 통해 확보

하는 수익 비중은 50%에 불과하다. 나머지 36%는 기술 유출을 통해 유실되고 있다는 의미다.

기출 유출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방이다. 일단 기술이 빠져나가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알토란같은 기술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튼튼한 장벽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을 유출하려는 마음만 먹으면 거리낌 없이 정보를 빼낼 수 있는 허술한 보안체계

가 문제다. CCTV 등과 같은 유형 의 보안시스템을 마련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산업보안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보안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해도 내부자, 즉 임직원과 연구원 이 회사에

불만을 갖고 있다면 알짜 기술이 빠져나갈 가능성은 클 수밖에 없다. 의도적으로 기밀을 빼내

려는 시도를 완벽히 저지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 유출 방지의 핵심은 결국 임직원의 마음을 잡는 일이다. 무엇보다 인간적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우수인력에 대 해서는 합리적인 보상도 뒤따라야 한다.

돈 앞에서는 양심도 한낱 장신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 즉 도덕적 해이에 대해서는 법과 제도의 정비를 통 해 철저히 걸러내는 노력이 함께 병행돼

야 할 것이다.

*김형자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