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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썽많은 전범법을 폐기하라”는 미국의 줄기찬 압력에 벨기에가 또 한발 물러섰다.
기 베르호프슈타트 벨기에 총리는 23일 “현행 전범법을 개정해 독자적으로 공정한 재판을 진행할 수 있는 민주국가에는 적용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집권 연정을 이끌고 있는 사회당과 자유당이 이 같은 개정 방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1993년 처음으로 제정된 벨기에 전범법은 전쟁범죄나 반인륜범죄에 대해서는 발생장소와 행위자의 국적과 상관없이 벨기에 법정에 세울 수 있게 해그 동안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피델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등 수많은 국제 지도자를 겨냥한 소송이제기됐다.

하지만 이 가운데 실제 기소와 판결까지 이뤄진 경우는 벨기에의 전 식민지 르완다에서 94년 일어난 대학살 사건 하나 뿐일 정도로 각국의 반발이거세 벨기에는 올 초에도 법안을 일부 개정, 행정부의 판단 하에 해당 국가로 소송을 이관할 수 있도록 한 바 있다.

여기에 최근 이라크전을 계기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등에 대한 소송까지 제기되면서 미국 등으로부터 “브뤼셀에 세워질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사령부 건설지원자금을 중단하겠다”는 위협과 함께 법의 완전폐기를요구 받아 왔다.

조만간 의회에 상정될 새 법안에 따르면 가해자나 피해자가 벨기에 국민이거나 벨기에 거주민인 경우로 소송 대상을 한정하고 있어 그 동안 국제 인권단체들이 소송을 통해 각종 국제 분쟁의 정당성을 물었던 ‘선전용 법’으로서의 역할은 사실상 상실할 것으로 보인다.

베르호프슈타트 총리는 “법 개정이 미국의 압력에 의한 것은 아니며 취지를 살리면서 일부만 개정할 뿐 폐기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지만 “미국의 협박에 무릎을 꿇었다”는 비아냥은 면하기 어렵게 됐다.


브뤼셀=AP 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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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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