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와에 있을 때 실성한 듯한 한국계 입양아를 본적이 있다.
Elizabeth Kim은 혼혈아로 어렸을 때에는 한국에서 어머니를 잃고 미국에 입양되어서는 Ten thousand sorrows (만가지 슬픔)을 겪었다.






만가지 슬픔 Ten thousand sorrows
엘리자베스 김





엄마

엄마는 유교적 가부장제가 짓누르는 숨막히는 시골로부터 벗어나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정겨운 대화를 원했으며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었다. 그리고 그 꿈을 좇아 동구 밖의 길을 따라 서울로 향하였다. 엄마는 서울의 한 냉면 집에서 일하다가 한 단골 손님과 친해졌다. 그는 먼 미국에서 온 미군이었다. 그는 사전을 찾아가며 자신의 가족과 고향, 그리고 조그만 성조기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곳에서는 모두가 자유롭다고 말하였다. 마음을 열 수 있는 대화에 굶주려 있던 엄마에게 그는 좋은 상대였다. 엄마는 바로 그 남자에게 빠져들었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엄마는 이 남자만은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며, 미국에 데려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떠나 가버렸다. 엄마의 걸음걸이는 어느 새 느릿느릿 처지고 경쾌하던 목소리도 활기가 없어지고 몸은 점점 가누기 힘들어졌다. 배가 불러오자 엄마는 일자리를 잃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과 버림받았다는 마음의 상처로 엄마의 마음은 이미 찢어질 대로 찢어졌다. 엄마는 결국 미군 병사의 아이를 밴 채 천한 존재가 되어 마을로 돌아왔다. 엄마는 전부터 알고 있던 마을의 외떨어진 오두막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비좁은 데다가 외져 있어서 버려진 빈집이었다. 엄마는 그저 쉬고 싶었다. 그때부터 엄마는 마을에서 소외당한 채 살아갔다.

나는 그곳에서 태어났다. 엄마에게는 자신의 사랑을 필요로 하며 하루 종일 자기와 함께 있는 딸이자 동지가 생긴 것이다. 엄마는 나를 무명천에 싸서 등에업고 들로 일하러나갔다. 엄마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아이를 혼자서 돌보아야 했다. 매일 매일 등이 휘어져라 일하면서도 극도로 가난하게 살았다. 엄마는 앞으로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에게는 꿈도 없었으며 이런 상태에서 벗어날 가망도 없었다. 나는 일할 수 있게 된 후로는 엄마와 나란히 일했다. 가끔은 일손을 멈추고 손을 엉덩이에 올린 채 뻣뻣해진 등을 펴주거나 어깨를 풀어주고 손가락도 움직였다.

우리는 언제나 손을 꼭 잡고 다녔다. 벼를 심고 가꾸어 소중한 쌀을 수확하는 논 속에 맨발로 서서 몇 시간씩 일한 후 우리는 매일 황톳길을 따라 집으로 갔다. 길을 오갈 때 나와 눈이 마주치면 엄마는 미소를 지어 주시곤 했는데, 그 입가에 살짝 피어오르는 엄마의 미소를 보기 위해 나는 자꾸만 엄마 쪽으로 고개를 쳐들곤 했다. 길을 오갈 때 엄마는 내게 꽃들을 꺾어도 좋다고 하셨다. 우리는 그 꽃묶음을 조그마한 옹기 그릇에 예쁘게 꽂았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우리는 있는 반찬을 모두 꺼내 저녁상을 준비한 다음 마당으로 가져갔다. 그곳은 우리 집에서 가장 외진 곳으로 거기서는 마을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자줏빛 산자락이 칠흑같이 변해 가는 것을 바라보며 저녁을 먹었다. 엄마는 주걱으로 밥을 푼 다음 고개를 숙이고 내게 두 손으로 밥공기를 건넸다. 그러면 나 역시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밥공기를 받았다. 두 사람은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매운 김치를 맛보았다.

엄마는 나를 벽 쪽에 눕히고 당신 몸으로 감싸 추운 밤 공기로부터 최대한 나를 보호하려고 하셨다. 밤이 되어 문 밖에서 차가운 바람이 을씨년스런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우리는 서로 꼭 달라붙어 몸뚱이의 온기를 느끼며 잠이 들었다. 엄마는 내게 단순한 엄마일 뿐 아니라 이야기꾼이자 놀이 동무, 속 깊은 친구이면서 내 보호자이기도 했다. 내 기분을 맞춰 주고 응석을 받아 주셨다. 그리고 당장 쓰러질 듯이 피곤하셨을 텐데 밤늦도록 나와 놀아 주셨다.


생활

엄마는 매우 아름다웠다. 혹단처럼 새까만 머리카락은 폭포수처럼 엉덩이까지 흘러내렸고 피부는 실크처럼 보드라웠다. 예쁜 입술은 매끈하게 굴곡을 이루었고, 높이 솟은 이마는 고결해 보였다. 조그마한 코는 오똑하고 보기 좋게 솟아 있었다. 엄마의 손은 거칠고 굳은살이 박혀 있었지만 손길은 솜털처럼 부드러웠다. 나는 엄마의 머릿결을 무척 좋아했다. 머리카락 속에 내 손가락을 넣기도 하고 머리카락으로 고리를 만들어 장난을 치기도 했다. 가끔씩 엄마가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을 때면 등뒤로 가서 엄마의 검은 머리카락 속에 내 머리를 들이밀기도 했다.

저녁 때 너무 피곤하지 않으면 엄마는 아리랑이며 내가 좋아하는 민요들을 불러 주셨고 우리는 함께 춤을 추었다. 엄마는 진정한 음악인이란 정해진 틀을 따르기보다는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흥에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방구석에 서서 눈을 꼭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내 작은 몸 안에서 흥이 일어나는 것이 느껴지면 을씨년스러운 방과 더러운 방바닥은 어느 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우리는 비단자락을 살짝 쥔 채 끝없이 펼쳐진 대리석 홀에서 화관무를 추고 있었다. 주위에는 아름다운 음악이 울리고 밤에 피어난 향긋한 꽃들로 공기는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마침내 엄마와 나는 가쁜 숨을 내쉬며 한 덩어리가 되어 이부자리 위에 쓰러졌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기는/ 너무도 지루하고 힘들지만/ 정상에 올라가면/ 언제나 햇살이 따뜻하게 비취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힘들고 괴롭지만/ 이 길고 긴 강을 건너고 산을 넘으면/ 평화롭고 잘 사는 세상이 오리라.

엄마가 등을 벽에 기댄 채 책상다리를 하고 땅바닥에 앉으면 나는 엄마의 무릎 사이에 앉아 엄마의 가슴 위로 머리를 기댔고 엄마는 팔을 둘러 나를 안아 주셨다. 엄마의 한복은 오래되고 닳아빠진 무명 천으로 벌써 몇 군데가 반질거리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부드럽고 아늑했다. 소매통이 넓었기 때문에 엄마는 나를 안아주실 때 양손을 반대편 소맷자락 속에 집어 넣으셨고, 그러면 내 몸 주위에는 엄마의 단단한 팔로 만들어진 부드러운 원이 생겼다. 나는 무릎을 끌어당겼고 엄마는 소매 끝을 내 맨발가락 아래로 집어넣어 발을 따뜻하게 해 주셨다.

나는 엄마가 숨을 쉴 때마다 엄마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머리 위로는 필경 엄마가 먼 산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나도 한동안 산을 바라보았지만 이내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안전함과 평안함, 그리고 만족감이라는 달콤한 기분에 젖어 나는 엄마의 품안에서 잠들었다. 잠결에 이따금씩 내 머리 위로 엄마의 가벼운 키스가 사뿐 내려앉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가 일하는 곳에서는 저 멀리 마을이 조그맣게 내려다보였다. 장엄한 산봉우리에 둘러싸인 마을은 마치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듯 신비롭게 보였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그 마을은 뿌연 안개에 잠긴 산봉우리가 둘러쳐져 있고, 발 아래로는 너른 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저녁이면 우리는 마루에 앉아 조용히 먼 산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자연을 숭배했다. 그리고 내게 땅에서 자라는 여러 가지 멋진 야생 식물과 개나리, 목련, 연꽃등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 우리가 밤낮으로 보는 산 못지않게 우리는 그런 것들도 사랑했다.


승천

동짓달의 매서운 바람이 차츰 잦아들며 우리의 조그만 집에는 얼음장같은 추위가 내려앉았다. 코를 알싸하게 휘감는 겨울 공기는 금새라도 부서질 듯 투명했다. 그 날 저녁에는 늘 상에 오르던 김치와 밥 외에도 특별히 고추장과 마늘을 넣어 만든 두부 요리가 올라왔으며, 입가심으로 모과 차까지 곁들여 나왔다. 엄마는 보통 때보다도 생기가 넘쳤고 나를 마치 당신의 어린 딸이 아닌 동갑내기 친구라도 되는 듯이 대하셨다. 엄마의 보드라운 얼굴은 홍조를 띠었지만 말하는 동안에는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저녁상을 치우고 바닥을 쓴 다음 엄마는 밑이 시커멓게 그을은 솥에 물을 가득 부어 아궁이 불 위에 올려놓으셨다. 물이 알맞게 데워지자 엄마는 내가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재빠르면서도 정성스런 손놀림으로 나를 씻기고 깨끗한 한복으로 갈아 입혔다. 길이가 발목까지 오는 무명 치마에 짧은 저고리였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늘 하얀 수건 아래에 감춰져 있던 나의 길고 검은 곱슬머리를 빗질한 다음 총총 땋아 주셨다.

엄마는 당신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러므로 언제까지나 날 보호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혼혈아를 낳고 또 키움으로써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알고 계셨다. "이 세상 어딘 가에는 네가 사람 대접을 받으며 살 만한 곳이 있단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생은 만가지 기쁨과 만가지 슬픔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들 하나 하나가 결국은 우리를 평안함으로 이끄는 디딤돌이 된다고 하셨어. 세상에 진정한 끝이란 없는 거야. 사람 목숨마저도 그래. 밤은 낮이 되고, 어둠은 빛이 되고, 죽으면 다시 태어나듯 세상사는 그렇게 돌고 도는 거란다."

그런 후 엄마는 나를 와락 끌어안고는 애정 어린 말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내가 얼마나 귀한 딸인지, 얼마나 예쁘고 착한지 거듭 말씀하시며 당신의 목숨보다 나를 더 아끼고 사랑한다고 하셨다. 잠시 후 엄마는 품에서 나를 떼어 내더니 대나무로 짠 커다란 광주리 안에 들어가 있으라고 하셨다. 성글게 짜여진 대나무 틈 사이로는 너울거리며 타오르는 촛불과 나무로 만든 조그만 부처 상 앞에 꼼짝 않고 앉아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방안은 엄마가 낭랑하게 불경을 외는 소리로 가득 찼다. 그 맑은 목소리는 높아졌다 낮아지기를 반복했다.

초가 거의 타 들어가 방안이 어슴프레한 빛에 잠겨 있을 때, 밖에서는 정적을 가르는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음성이 들렸다. 일행중 외삼촌이 엄마의 머리채를 휘어잡아 일으켜 세우더니 외숙모에게 엄마의 손과 발을 묶으라고 했다. 엄마는 저항하지 않고 계속 눈을 감은 채 나지막이 자비로운 부처님을 향해 불경을 외웠다. 엄마의 틀어 올린 머리는 어느 새 풀어져, 등뒤로 검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외할아버지는 때가 타서 거무스름해진 굵직한 대들보 위로 밧줄을 올렸다. 입술은 꼭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재빠르게 밧줄로 올가미를 만들어 엄마의 숙인 머리에 씌웠다. 그들이 밧줄을 세게 잡아당기자 엄마의 몸이 천장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제 대나무 틈 사이로는 공중에서 흔들리는 엄마의 맨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엄마의 새하얀 맨발은 마치 화관무라도 추는 듯 요란하게 흔들리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발가락은 마치 발끝으로 회전이라도 하려는 사람처럼 바닥을 향해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숨이 끊어져라 큰 소리로 엄마를 불러대며 하얗게 축 처진 발에 마구 입술을 부벼 댔다. 외삼촌은 내 깨끗한 한복을 잡아 찢더니 제단에 있던 성냥갑을 집어들어 성냥개비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억지로 내 다리를 벌리고 살을 불로 지지기 시작했다. 나는 극심한 고통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내 눈앞에는 오로지 빙글빙글 돌아가는 하얀 불꽃만이 아른거렸다.


입양

아이들을 보러 온 입양객 들이 방안을 걸어다니면 나는 입술이 저릴 정도로 미소를 지었다. 내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행여라도 날 데리러 온 사람이 내가 잠든 사이에 왔다가 그냥 가 버리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내가 눈을 감고 있으면 그 사람은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내가 입양돼온 미국의 서부, 차창 밖으로는 광대한 모래 황무지만 펼쳐져 있을 뿐 야생 진달래가 핀 언덕이나 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산은 있었지만 메마르고 헐벗었다. 소나무 촘촘히 박힌 산비탈이 구비를 돌며 구름 속으로 아련히 사라지는 대신 멋대가리 없는 돌무덤만 쌓여 있었다. 은행나무도, 연꽃도 없었다. 우중충한 철쭉 덤불과 한 번 찔리면 눈물이 날 정도로 뾰족한 바늘이 돋친 선인장만이 전부였다.

이 지역에 사는 야생 동물들은 이 지옥 같은 사막 생활에 적응한 동물들이었다. 구석진 그늘에 숨었다가 독침을 내 뿜는 왕 전갈이 있었으며 뼈와 가죽만 남은 코요테들은 황혼 무렵 주택가로 내려와 애완 동물이나 산토끼를 잡아먹었다. 뱀은 모래 위로 곡선을 그리며 이 덤불에서 저 덤불로 돌아다녔다. 집채만한 거미도 부엌 문 위의 처마에 거대한 거미줄을 쳤으며 갈색 거미는 독을 내뿜으며 사람의 살을 파먹기도 했다. 밤이면 코요테의 울음소리와 코요테에게 잡아먹히는 가엾은 동물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 처절한 울음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나는 밤마다 베개로 귀를 막곤 했다.

양부모님은 냉혹한 눈동자에 경직된 미소를 띤 기독교 열성 분자였다. 두 분은 인본주의 는 사탄을 따르는 이념이라 믿었다. 양부모님에게 인권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하느님의 이름 아래서 라면 어떤 잔혹한 행위도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양부모님은 로봇이었다. 그들은 성경 외의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자유로운 사고방식이란 다 허튼 소리야. 우리의 정신과 감정은 오직 하느님의 말씀으로만 가득 차야 하기 때문에 다른 생각이 끼여들 자리가 없는 법이야."

양부모님의 믿음은 24시간 감시가 필요했다. 두 분은 내게 베드로 전서 5장 8절을 읽어 주셨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우리는 우리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영혼까지 감시 해야했다. 그 감시란 끝이 없었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하더라도 늘 부족했다. "많은 사람들이 부름을 받지만 선택받는 사람은 매우 적다."

기독교는 그 교리 자체가 모순이 많았다. 한쪽에서는 인간의 마음은 거짓되며 세상 무엇보다 사악하다고 써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인간은 신의 형상을 본 따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렇다면 신의 마음 역시 거짓되며 세상 무엇보다 악하다는 말인가? 또한 열심히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 주장은 예정설과 모순되었다. 우리가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 받아들여 삶의 지침으로 삼는 성경 말씀이라는 것 역시 마구잡이 식이었다. 구약의 경우가 더욱 심했다. 구약에는 너무도 많은 법칙이 정해져 있어서 그대로 산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구약의 어떤 부분은 지켜야 하고 또 어떤 부분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누가 정하는가?

나는 어째서 그토록 자상하고 동정심 많은 예수님이 아이들을 고통받도록 내버려두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해 낸 유일한 해답은, 진짜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하느님 아버지이고 그분의 아들인 예수님은 사실 별로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사랑으로 충만한 분이시지만 권한은 별로 없는 예수님인 것이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얼마나 잔혹한 분인가 하는 증거는 얼마든지 있었다. 내가 아는 하느님 아버지는 분노의 하느님이었다. 단지 어깨 너머로 자신이 살던 도시를 한 번 바라보았다는 이유만으로 롯의 아내를 소금 기둥으로 만든 분이었다. 교훈을 주기 위해 아버지에게 딸을 제물로 바치라고 강요하시고 노아의 가족을 제외한 온 세상을 물로 멸망시킨 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지옥 불에 빠져 사탄의 군대들로부터 영원히 고통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에 믿음으로 받아들이려 애썼다.


자애

나는 달라이라마의 글을 사랑한다. "내 종교는 자애입니다." 그 말은 과거에 만난 사람이든 현재 만나는 사람이든 앞으로 만나는 사람이든, 또한 그 말은 내 자신에게도, 내 고통과 질시, 두려움에도 자애로워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불교를 공부하며 엄마에게 그리고 내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기분이었다. 내 과거와 화해하고 내 인생의 다른 사람들이 내게 씌워준 거짓된 가면을 벗어버릴 수 있었다.

나는 정식으로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세상에서 나 자신만큼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생애 처음으로 모든 일이 좋아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 자신을 극진히 대하기 시작했다. 내 목적지는 평화와 만족, 사랑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나는 내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그 무한한 가능성에 경외감과 기쁨을 느꼈다.

내게 있어 버림받았다는 두려움은 엄마가 죽던 날 밤부터 시작되었다. 내 안의 많은 두려움은 바로 그 날 밤 탄생되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날 것이다라는 생각은 평생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몇 번이고 그 날 밤을 회상했으며 그 때마다 늘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 엄마가 그런 식으로 날 떠난 것에 대해, 그리고 그 현장을 목격하도록 방치한 것에 대해 내가 엄마에게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인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째서 엄마는 나를 다른 곳으로 보내지 않았을까? 어째서 당신이 직접 나를 고아원에 데려가지 않았을까? 어째서 그 모든 사건을 똑똑히 볼 수 있는 곳에 숨으라고 했을까?

나는 늘 엄마가 돌아가시던 밤의 꿈을 꾸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꿈도 바뀌어 가고 이제는 그 꿈에서 위안을 얻을 정도가 되었다. 꿈속에 나는 그 방으로 들어가 밧줄을 자르고 엄마의 목에 걸려있는 밧줄을 풀어 엄마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파랗게 질린 그 가여운 얼굴에 예전과 같은 아름다운 홍조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키스를 했다. 옛날에 엄마가 그랬듯이 이제는 내가 엄마를 껴안고 앞뒤로 흔들었다. 그리고는 엄마의 부릅뜬 눈을 감기고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나는 겁에 질려 있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 아이가 내 가슴속으로 녹아들 때까지 꼭 껴안았다. 이제 다시는 외롭지 않을 거라고 나는 아이에게 말해 주었다. 엄마가 죽은 것은 네 잘못이 아니라는 말도 해주었다.

삶이란 거대하고 다양한 빛깔의 모자이크를 이루는 한 파편에 불과했다. 그것들은 꿈의 덧없는 그림자와 같았다. 우리의 고통도 그와 같을지 몰랐다. 두려움과 희망, 꿈, 슬픔, 이 모든 것들은 녹아버리고 남는 것은 우리의 가장 깊은 자아의 빛과 온기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