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게시판
과정에서의 실패에 관대해야 성공이 나올 수 있다. 결국 실패에서 답을 찾아내기도 하는 것이다. 특히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시도나 연구는 실패의 위험성도 상대적으로 크다.
그런데 실패를 두려워해서 소극적인 연구, 즉 성공가능성이 보장된 뻔한 연구만 집중한다면 어떨까? 연구의 상상력이 부재한 채, 현실적인 쉬운 연구만 한다면 어떨까?
연구 성과는 혁신적일 수도 없고, 비슷비슷한 연구만 양산해내기 쉽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연구관행에서 이런 암울함이 배어 나온다.
한국의 학계에선 정부연구 지원비가 나오는 매년 수 만 건의 연구가 있지만 연구종료시점에 결과물이 보고되지 않는 연구는 없다. 연구 마감시한이 되면 부실한 연구를 대충 마무리해서 적당한 타협을 한다.
연구가 실패해서 지연되면서 받는 불이익보다는 어떻게든 연구결과를 제때에 보고하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연구비를 신청할 때부터 획기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보다는 실패 가능성이 적은 안전한 주제로 접근한다.
중복연구도 많고, 이미 검증된 연구를 재탕 삼탕하는 경우도 많다. 연구결과물의 양적 평가가 가지는 성과주의의 영향이다. 획기적인 연구를 위해 몇 년간 집중하는 것보다는, 안전하고 평이한 연구라도 수시로 해서 실적을 쌓는 것이 더 좋은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실패가 없는 연구를 하는 한국의 학계에는 성과주의도 문제지만, 상상력 부재도 문제이다.
원로물리학자 고등과학원 김정욱 명예교수는 사이언스 타임즈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이 한참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학문적 방황(intellectual wandering)이 없이 노벨 과학상을 기대하긴 어렵다.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노벨 과학상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지금처럼 주입식 교육이 교육의 중심이 되고 전부가 된다면 '한국의 아인슈타인'은 탄생할 수 없다"라고 한바 있다.
주입식 교육은 모방에서 나오는 것이고, 창의력이 나오려면 학문적 방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이론을 응용만하거나 안정되고 쉬운 연구 속에서는 결코 독창적인 이론이 나올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의 학계 풍토나 학생들에겐 주입식 교육이 너무나 익숙해져서, 호기심이나 상상력이란 것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동안의 주입식 교육을 고치지 않고서는 결코 한국의 학문적 진화나 세계적인 기술 강국이 되기는 어렵다는 말이 된다. 오죽했으면 미국 교수들이 한국 학생들에 대한 일반적 평가가 공부도 잘하고 성적도 우수한데, 논문은 별로 독창적이지 못하다고 한다.
하버드대학교의 유머 과학잡지인 AIR(Annals of Improbable Research)이 노벨상을 풍자해서 1991년부터 제정된 이그노벨상 (Ig Nobel Prize)이 있다. 이그노벨상은 고정관념이나 일상적 사고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발상이나 획기적이고 이색적인 업적을 통해 발상의 전환을 이뤄낸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상의 취지는 독특하면서 상상력 넘치는 아이디어들을 치하하고 과학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다.
가령, 영국의 하워드 스테이플턴은 고주파 10대 퇴치기 '모스키토'를 발명해 평화상을 수상했다. 10대들에게만 들리는 고주파 소리를 흘림으로써 조용한 식료품 가게와 쇼핑몰에서 고함을 지르거나 욕설을 퍼부으며 어슬렁거리는 불량 청소년들을 모기 쫓아내듯 몰아내 쇼핑몰에 평화를 가져왔다는 것이 그에게 평화상을 수여한 이유였다. 수학상을 받은 호주의 피어스 반스와 닉 스벤슨은, 단체 사진을 찍을 경우 눈 감은 사람이 한 명도 없게 하려면 최소한 몇 장을 찍어야 하는지를 수학적으로 계산해 내는 실험을 했다.
웃자고 만든 상이 아니라, 상상력을 통해 발상의 전환을 이루고 이것이 인류에 기여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관성적 접근을 벗어나 상상력을 통한 획기적 접근을 한 연구들이 재평가를 받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연구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시도되어지길 기대하는 것이다. 인류를 위한 과학연구의 혁신과 진보를 위해서는 독특한 상상력에 대해서도 가치를 인정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연구자의 도전이 필요한 것이다.
비단 노벨과학상만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실패를 두려워 늘 안정적이고 뻔한 길만 찾아가서는 성공에 이르지 못한다. 대학생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찾기 위해 공무원시험이나 각종 고시에만 매달리는 것도 우려스러운 일이다.
미래는 늘 도전하는 자의 몫이다. 현실에 안주하고, 현실에 타협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면 결코 혁신적인 미래란 존재할 수 없는 것 아닌가? (www.digitalcreat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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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에서의 실패에 관대해야 성공이 나올 수 있다. 결국 실패에서 답을 찾아내기도 하는 것이다. 특히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시도나 연구는 실패의 위험성도 상대적으로 크다.
그런데 실패를 두려워해서 소극적인 연구, 즉 성공가능성이 보장된 뻔한 연구만 집중한다면 어떨까? 연구의 상상력이 부재한 채, 현실적인 쉬운 연구만 한다면 어떨까?
연구 성과는 혁신적일 수도 없고, 비슷비슷한 연구만 양산해내기 쉽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연구관행에서 이런 암울함이 배어 나온다.
한국의 학계에선 정부연구 지원비가 나오는 매년 수 만 건의 연구가 있지만 연구종료시점에 결과물이 보고되지 않는 연구는 없다. 연구 마감시한이 되면 부실한 연구를 대충 마무리해서 적당한 타협을 한다.
연구가 실패해서 지연되면서 받는 불이익보다는 어떻게든 연구결과를 제때에 보고하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연구비를 신청할 때부터 획기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보다는 실패 가능성이 적은 안전한 주제로 접근한다.
중복연구도 많고, 이미 검증된 연구를 재탕 삼탕하는 경우도 많다. 연구결과물의 양적 평가가 가지는 성과주의의 영향이다. 획기적인 연구를 위해 몇 년간 집중하는 것보다는, 안전하고 평이한 연구라도 수시로 해서 실적을 쌓는 것이 더 좋은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실패가 없는 연구를 하는 한국의 학계에는 성과주의도 문제지만, 상상력 부재도 문제이다.
원로물리학자 고등과학원 김정욱 명예교수는 사이언스 타임즈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이 한참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학문적 방황(intellectual wandering)이 없이 노벨 과학상을 기대하긴 어렵다.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노벨 과학상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지금처럼 주입식 교육이 교육의 중심이 되고 전부가 된다면 '한국의 아인슈타인'은 탄생할 수 없다"라고 한바 있다.
주입식 교육은 모방에서 나오는 것이고, 창의력이 나오려면 학문적 방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이론을 응용만하거나 안정되고 쉬운 연구 속에서는 결코 독창적인 이론이 나올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의 학계 풍토나 학생들에겐 주입식 교육이 너무나 익숙해져서, 호기심이나 상상력이란 것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동안의 주입식 교육을 고치지 않고서는 결코 한국의 학문적 진화나 세계적인 기술 강국이 되기는 어렵다는 말이 된다. 오죽했으면 미국 교수들이 한국 학생들에 대한 일반적 평가가 공부도 잘하고 성적도 우수한데, 논문은 별로 독창적이지 못하다고 한다.
하버드대학교의 유머 과학잡지인 AIR(Annals of Improbable Research)이 노벨상을 풍자해서 1991년부터 제정된 이그노벨상 (Ig Nobel Prize)이 있다. 이그노벨상은 고정관념이나 일상적 사고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발상이나 획기적이고 이색적인 업적을 통해 발상의 전환을 이뤄낸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상의 취지는 독특하면서 상상력 넘치는 아이디어들을 치하하고 과학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다.
가령, 영국의 하워드 스테이플턴은 고주파 10대 퇴치기 '모스키토'를 발명해 평화상을 수상했다. 10대들에게만 들리는 고주파 소리를 흘림으로써 조용한 식료품 가게와 쇼핑몰에서 고함을 지르거나 욕설을 퍼부으며 어슬렁거리는 불량 청소년들을 모기 쫓아내듯 몰아내 쇼핑몰에 평화를 가져왔다는 것이 그에게 평화상을 수여한 이유였다. 수학상을 받은 호주의 피어스 반스와 닉 스벤슨은, 단체 사진을 찍을 경우 눈 감은 사람이 한 명도 없게 하려면 최소한 몇 장을 찍어야 하는지를 수학적으로 계산해 내는 실험을 했다.
웃자고 만든 상이 아니라, 상상력을 통해 발상의 전환을 이루고 이것이 인류에 기여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관성적 접근을 벗어나 상상력을 통한 획기적 접근을 한 연구들이 재평가를 받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연구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시도되어지길 기대하는 것이다. 인류를 위한 과학연구의 혁신과 진보를 위해서는 독특한 상상력에 대해서도 가치를 인정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연구자의 도전이 필요한 것이다.
비단 노벨과학상만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실패를 두려워 늘 안정적이고 뻔한 길만 찾아가서는 성공에 이르지 못한다. 대학생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찾기 위해 공무원시험이나 각종 고시에만 매달리는 것도 우려스러운 일이다.
미래는 늘 도전하는 자의 몫이다. 현실에 안주하고, 현실에 타협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면 결코 혁신적인 미래란 존재할 수 없는 것 아닌가? (www.digitalcreator.co.kr)
둘다 세기의 인물이면서, 혁신적인 성과를 만들었고, 상상력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활용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즉, 두 사람의 경쟁력은 바로 상상력이라는 점에서 같은 경쟁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개미 같은 작은 곤충이 축구공 위에 있을 때, 과연 개미는 공이 둥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이 말년에 손녀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 아인슈타인의 실험 방법 중 비과학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는 상상력을 통한 실험이 많았다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아인슈타인은 스스로를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광자라고 상상하는 머릿속에서의 실험을 했었다고 한다. 스스로 광자가 되었으니 광자의 입장에서 보고 느낀 것을 상상해내고, 다른 광자를 쫓아가는 상황을 상상하기도 했다.
물리학의 실험치고는 독특한 셈인데, 가장 과학적일 것 같은 과학적 발견에서 가장 비과학적일 것 같은 실험 방법이 사용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위의 질문을 던진 아인슈타인은 머릿속으로 스스로를 축구공 위에 있는 개미라 상상하고 개미의 입장에서 문제를 생각해봤을 것이다. 물리학이 숫자와 계산, 공식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과 상상 속에서 더욱더 진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호기심 많고, 상상력이 많았던 아인슈타인의 모든 연구와 과학적 발견의 시작에는 상상으로 풀어낸 호기심이 있었다. 천재 물리학자로 기억되고 있는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은 그가 가진 상상력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존에 있던 것을 발전시키는 것과 기존에 없던 개념을 새로이 만들어 새로운 전기를 마련케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전자와 달리 후자에는 상상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을 통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자신의 외부에 있는 광대한 지식과 연결시키는데 능숙한 사람이었다. 바로 날카로운 상상력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천재의 대표명사이자 세계 최고의 과학자라고 해도 무방할 아인슈타인이 수학을 잘 못했다면 믿어질까? 아인슈타인은 상대적으로 수학에 약했고, 세부적인 수학적 계산을 동료 수학자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카네기는 남의 상상력도 제것처럼 활용하는 재주를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생전에 자신이 직접 쓴 묘비명에 이렇게 썼었다. '여기, 나보다 현명한 사람을 주위에 모으는 기술을 알고 있었던 한 인간이 잠들어 있다.' 그는 우선 명확한 목표를 설정한 뒤 관련전문가와 상상력을 지닌 사람들, 그리고 그의 능력을 현실화시키는데 필요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을 자신의 주위로 끌어 모았다.
상상력을 얻는 방법은 자기의 것을 키우거나, 상상력이 높은 사람과 손을 잡거나 두가지이다. 카네기는 이들 두가지를 모두 활용했다. 자신에게 상상력이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부족하다면 상상력을 가진 이들을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상상력이 풍부하더라도 자신의 상상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상상력까지 활용한다면 금상첨화인 것이다.
카네기의 문제해결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제일 먼저 지금 염려하고 있는 문제들이 무엇인지 종이위에 구체적으로 적어내려간다. 적다보면 진짜 문제와 별 문제 아닌 것을 가려낼 수 있다. 진짜 문제를 가려낸 후에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다른사람에게 맡겨야할 일을 종이 위에 적어내려간다.
그런후에는 일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먼저해야할 일과 나중에 해도 될 일을 정하고, 먼저해야할 일부터 차례로 몰두한다. 생각의 정리 습관인 것인데, 생각을 글로 구체화한다는 점에서 생각을 시각화하는 상상과 같은 접근이다.
최고의 물리학자, 최고의 사업가로 손꼽히는 두사람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결국 상상력에 있었다. 남들과 다른 획기적인 시도와 발상에서 그들의 성공이 출발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고 있는 각종 선입견과 고정관념, 보편성과 현실안주 등을 떨쳐버리는 것에서 우리의 상상력은 시작된다. 상상력이 모호하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혁신과 기회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접근 도구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과연 당신의 상상력은 안녕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