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여자라서 좋은 이유  

작성자    고은광순 작성일    2005-04-11  

여자라서 좋은 이유// 여성의 파워-태생적으로 진화된 여성성

1998년 호주제폐지를위한시민의모임을 만든 직후 매달 동숭동 대학로에서 호주제폐지를 위한 거리서명을 받아왔다. 이후 2003년 국무회의에서 정부방침으로 호주제폐지를 결정한 후 거리서명을 중지했으니 만 5년을 거리에서 직접 대중과 만난 셈이다. (호주제가 위헌 판결을 받은 것은 2005년 2월 3일, 폐지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날은 2005년 3월 2일이다.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이날들을 잊지 말도록 하자!)

거리에서 서명을 받다 보면 간혹 마쵸남(남성우월주의자)들을 만나게 된다. 젊은 마쵸도 있지만 할아버지 마쵸도 있는데 어느 날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가 서명대 앞으로 가까이 오더니 지팡이를 들어 하늘을 찌르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닌가.

“아, 아담이 먼저지 이브가 먼저여? 남자가 앞에 서고 여자가 뒤에 따라와야지, 여자가 앞에 나서고 남자보고 뒤따라 오라능 거여, 뭐여?”
“할아버지, 할머니랑 나란히 손잡고 가시면 되지 왜 앞뒤로만 다니려고 하셔요? 논두렁길만 있는 거 아니잖아요.”
할아버지는 손을 홰홰 내 두르며 대답도 아니 하시고 멀리 가 버렸다. 할 얘기가 또 있었는데...


아담이 먼저 태어났으니 남자가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마쵸들이 미국에도 있었는지, 어느 미국의 여성학자가 성경의 원문을 써 놓고 다른 주장을 하는 글을 보았다.
the LORD God formed the 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and... (창세기 2장 7절: )
Then the LORD God made a woman from the rib he had taken out of the man...(창세기 2장 22절) 아담은 dust(먼지, 티끌)로 만들어졌고, 이브는 rib(갈비뼈)으로 만들어 졌으니 먼지로 만들어진 이브 보다 뼈로 만들어진 이브가 더 낫다는 말이었다. 흔히 우리들은 하나님이 ‘흙’으로 아담을 만들었다고 알고 있고 한글 성경에도 분명히 그렇게 나와 있지만 오... 영어성경을 뒤져보라. 그녀의 말대로 남자는 땅위의 티끌을 모아 만들었다고 분명히 써있지 않은가. 한글로 성경을 번역한 사람은 그것을 감추고 싶었음이 틀림없다.


어찌 되었든 ‘먼지 출신과 뼈 출신’이야기는 그 할아버지에게 설명할 기회가 없었다. 물론 남녀관계에서 자꾸 유치하게 상하, 선후를 따지려는 사람들에게야 이 이야기가 쓸모 있겠지만, 우리 여자들은 이런 이야기 말고도 좀 더 우아한 논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만 대응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


생화학을 하는 사람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보다 더 진화한 것이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젠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남성적인 성향을 공격, 지배, 경쟁, 투쟁, 과격... 등으로 본다면 여성적인 성향은 협동, 존중, 배려, 상생, 온순... 등으로 볼 수 있는데 시민의식이 성장하지 못했던 야만적 시대에서야 남성적 성향이 강해야 영웅대접을 받고 우월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겠지만, 양성평등, 소수자 인권보호, 세계 평화 등이 보편적 가치로 등장하는 진화한 사회에서는, 당연히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협동하고 상생하려는 여성적 가치가 보다 더 ‘높은 수준의’ 사회구성요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전에 ‘열등한 것’이라고 평가받았던 여성성은 이제 인류를 구원할 ‘귀중한 것’이라고 제대로 평가받는 세상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또 다른 생물학적인 이야기. 호주제폐지를 극렬히 반대하는 어떤 단체는 여성운동가들을 빨갱이, 전통파괴자로 몰아붙이면서 남성에게는 Y염색체가 있기 때문에 부계혈통제가 타당하다는 주장을 주야장창 해왔다. Y염색체는 대대손손 후손을 찾을 수 있게 해 준다나 뭐라나. Y염색체에 대한 연구는 영국에서 강력범죄의 95%가 남성들에 의해 저질러지기 때문에 범죄예방의 차원에서 연구된 것이며 선후대의 관련성을 찾기 위한 도구로는 50점 밖에 줄 수 없다. 여성들에게는 의미 없는 방법이니까. 반면에 남녀 모두의 모계를 알아낼 수 있는 100점짜리 방법으로 미토콘드리아 추적법을 들 수 있다. 정자는 세포핵만 난자 속으로 들여보내기 때문에 모든 인류는 엄마 난자 속에 들어있던 미토콘드리아를 물려받는다. 따라서 선후대의 관련성을 찾기 쉬운 것으로 따지자면 오히려 모계혈통제를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

지난 2월 헌법재판소는 호주제는 개인(여성)을 가족 내에서 존엄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가의 유지와 계승을 위한 도구적 존재로 취급하고 있는데 이는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하도록 되어 있는 헌법(36조 1항)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명쾌한 판결을 내렸다. 그러니 이제 오로지 남자에게만 씨앗이 있다거나, Y염색체를 가졌다는 이유로 부계혈통제를 사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지는 이 땅에서 생물학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모든 방면에서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이 지면을 빌어 의심나는 점을 덮어두지 않고 생물학자에게 참고진술을 요구했던 헌법재판소 판사들에게 감사드린다. 이에 화답하기 위해 데미 무어의 임신한 나체사진을 준비하여 판사들에게 보여주며 “우리 족보와 반대로 생물학적인 족보는 암컷, 즉 여성의 혈통만을 기록하며 부계혈통주의는 생물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명쾌한 진술을 해 주신 최재천 교수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인체의 세포핵에는 22쌍의 보통 염색체와 1쌍의 성염색체가 들어 있는데 1쌍의 성염색체를 구성함에 있어 여성은 엄마에게서 받은 X 1개와 아빠에게서 받은 X 1개를 합해 XX를 가지고 있고 남자는 엄마에게서 받은 X 1개와 아빠에게서 받은 Y 1개를 합해 XY를 가지고 있다. 최근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영국, 독일의 과학자들은 성염색체의 하나인 X염색체의 염기서열을 완전히 해독했다고 한다.

이번 연구결과 X염색체는 전체 인간게놈 중 약 4%에 해당하는 1천98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21개 정도의 유전자만 가지고 있는 허약하고 부실한 Y염색체에 비해 50배나 튼튼하고 강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X를 두 개 가진 여성은 결함이 발생했을 때 서로 보완해줄 수 있지만 XY를 가진 남성은 서로 바람막이를 해줄 수 없기 때문에 색맹, 혈우병, 대머리 등 각종 유전적 장애에 더 많이 시달리게 된다.

하기야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종을 재창조하는 것이고 이는 신의 역할을 대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성의 몸이 훨씬 안정적이고 건강해야 하는 것이니 남성들은 이를 두고 질투할 일은 아니다. 다만, 혹시 여성의 생리를 불결하거나 재수 없는 것으로 치부했다거나 임신한 여성을 성적으로 매력 없고 일의 능률도 떨어지는 귀찮은 존재 정도로 이해해 왔다면 이번 염색체의 연구 결과를 보아서라도 그간의 편견을 멀리 멀리 던져버릴 일이다.

비폭력적 성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다. 자궁으로 아기를 품고 젖으로 아기를 키워낼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한 축복이다. 무엇보다 다른 생명체를 사랑으로 대할 줄 아는 성품을 가지고 태어나 더 많이 발휘할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다만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복종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길들여지는 것은 오히려 타고난 본성을 억압하는 것이므로 마땅히 거부하고 변화시켜야 한다. 여성이 조연 역할만을 강요당할 때 우물 속에서 여성의 적은 여성일 수 있지만, 여성이 주인공으로 활동할 수 있는 우물 밖에서 여성의 적은 여성일 수 없다. 나는 여성운동을 하며 만난, 사랑이 풍부하고, 감성이 풍부하고, 영혼이 자유로운 자매들과 함께 숨 쉬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 여성, 당신은 우주가 어떤 생명체보다 더욱 공들여 만들어낸 소중한 꽃이다. 생명이 붙어있는 날 동안 더불어 행복할 것을 궁리하라. 그리하여 늘 행복하라!

(엘르 기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