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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날아라님은 정말 잘못 알고 있는 지식을
옳바른 정보인줄 본인도 알고 있으며
그것을 남에게 전달하여 잘못 인도하고 있는 경우도 더러 있었읍니다.
또한 그렇게 오인되 정보를 얻고도
잘못된 정보인줄도 모르고 감사까지 하는 경우가 있었읍니다.
이것은 다른 회원들 입장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그릇 인도하는 날아라님 입장에서도 조심해야할 사항입니다.
옳바른 정보인줄 본인도 알고 있으며
그것을 남에게 전달하여 잘못 인도하고 있는 경우도 더러 있었읍니다.
또한 그렇게 오인되 정보를 얻고도
잘못된 정보인줄도 모르고 감사까지 하는 경우가 있었읍니다.
이것은 다른 회원들 입장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그릇 인도하는 날아라님 입장에서도 조심해야할 사항입니다.
2007.04.06 11:43:44 (*.255.183.84)
다 옳은 것은 애초 없습니다. 다만 이곳을 꾸려나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심기에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이곳에서만 옳은 무엇이 있고 이 범주를 벗어나도 옳은 것이 있다면 조금더 큰 옳음이고 하겠지요. 하지만 이 사이트가 무엇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까? 옳고 그름을 따져 그 사람을 뭐라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행하는 행동이 결과적으로 사람들을 싸우게하고 갈등하게 하기 때문에 자제를 부탁하고 권고하고 경고하는 것이지 그가 가진 뜻이 옳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가진 태도가 문제인 겁니다.
2007.04.06 15:29:17 (*.255.183.84)
주장은 틀릴 수도 옳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또한 그것을 풀기 위하여 이러한 장소가 있는 것입니다. 토론하기 위해서...
하지만 방법과 태도가 틀렸다는 겁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또한 그것을 풀기 위하여 이러한 장소가 있는 것입니다. 토론하기 위해서...
하지만 방법과 태도가 틀렸다는 겁니다.
2007.04.06 15:40:36 (*.255.183.84)
3번쩨와 5번째는 제가 적었습니다. 이름을 쓰는 것을 잊었군요. 익명 게시판을 오물의 배출구로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한성욱.
2007.04.06 18:40:59 (*.144.73.83)
옛날 옛적에
인간을 너무나 사랑했고 인간을 너무 사랑스러워 했기에 십자가에 못 박힌 위대한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제 나는 그 분을 세 번이나 만났습니다.
첫 번째 만났을 때 그 분은 경찰에게 창녀를 감옥으로 보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만났을 때 그 분은 의지할 곳 없이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만났을 때 그분은 교회 안에서 교회 설립자들과 주먹으로 치고 받으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대는 당신과 같이 웃었던 사람이 누구인지는 잊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대와 함께 눈물 짓던 그 사람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입니다.
7세기전에 일곱마리의 하얀 비둘기가 깊은 계곡에서 날아 올라 흰 눈으로 뒤덮힌 산꼭대기로 날아 올라갔습니다. 그 비상을 바라보던 일곱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나는 일곱 번째 비둘기 날개 위에 검은 점이 있는 것을 보았노라."
오늘날 그 계곡에 사는 사람들은 흰 눈이 덮힌 산꼭대기로 날아간 일곱 마리의 검은 비둘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
그러나 가득 찬 손을 내밀어도 아무도 받는 이가 없다는 것은 절망스러운 일입니다.
내가 그대 앞에 맑은 거울로 다가서면 그대는 나를 들여다 보며 그 속에서 자신의 영상을 발견하고 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을 사랑해"
그러나 사실 그대는 내 안에 있는 그대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샘솟지 않는 사랑은 말라죽어가고 있는 사랑인 것입니다.
인간 속에는 두 사람이 존재합니다.
한 사람은 어둠 속에서도 깨어있고 다른 한 사람은 빛 속에서도 잠들어 있습니다.
당신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즐길 때 그것은 더이상 미덕이 아닙니다.
백 년마다 한번 씩 나자렛 예수와 기독교도들의 예수는 삼나무 숲 속에서 만나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언제나 나자렛 예수는 이렇게 말하며 헤어집니다.
"나의 친구들이여,
우리가 결코 일치할 수 없음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예수의 가시관을 만드는 손조차 전혀 일하고 있지 않는 손보다는 낫습니다.
유다에 대한 유다 어머니의 사랑이 예수에 대한 성모 마리아의 사랑만 못했을까요?
소금속에는 무언가 신성한 것이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바다에도 우리 눈물속에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커다란 자아의 한 조각일 뿐입니다. 우리는 한 조각의 빵을 원하는 입이며 갈증으로 마른 목을 축이려고 잔을 들고 신 앞에 서 있는 손일 뿐입니다.
인간을 너무나 사랑했고 인간을 너무 사랑스러워 했기에 십자가에 못 박힌 위대한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제 나는 그 분을 세 번이나 만났습니다.
첫 번째 만났을 때 그 분은 경찰에게 창녀를 감옥으로 보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만났을 때 그 분은 의지할 곳 없이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만났을 때 그분은 교회 안에서 교회 설립자들과 주먹으로 치고 받으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대는 당신과 같이 웃었던 사람이 누구인지는 잊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대와 함께 눈물 짓던 그 사람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입니다.
7세기전에 일곱마리의 하얀 비둘기가 깊은 계곡에서 날아 올라 흰 눈으로 뒤덮힌 산꼭대기로 날아 올라갔습니다. 그 비상을 바라보던 일곱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나는 일곱 번째 비둘기 날개 위에 검은 점이 있는 것을 보았노라."
오늘날 그 계곡에 사는 사람들은 흰 눈이 덮힌 산꼭대기로 날아간 일곱 마리의 검은 비둘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
그러나 가득 찬 손을 내밀어도 아무도 받는 이가 없다는 것은 절망스러운 일입니다.
내가 그대 앞에 맑은 거울로 다가서면 그대는 나를 들여다 보며 그 속에서 자신의 영상을 발견하고 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을 사랑해"
그러나 사실 그대는 내 안에 있는 그대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샘솟지 않는 사랑은 말라죽어가고 있는 사랑인 것입니다.
인간 속에는 두 사람이 존재합니다.
한 사람은 어둠 속에서도 깨어있고 다른 한 사람은 빛 속에서도 잠들어 있습니다.
당신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즐길 때 그것은 더이상 미덕이 아닙니다.
백 년마다 한번 씩 나자렛 예수와 기독교도들의 예수는 삼나무 숲 속에서 만나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언제나 나자렛 예수는 이렇게 말하며 헤어집니다.
"나의 친구들이여,
우리가 결코 일치할 수 없음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예수의 가시관을 만드는 손조차 전혀 일하고 있지 않는 손보다는 낫습니다.
유다에 대한 유다 어머니의 사랑이 예수에 대한 성모 마리아의 사랑만 못했을까요?
소금속에는 무언가 신성한 것이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바다에도 우리 눈물속에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커다란 자아의 한 조각일 뿐입니다. 우리는 한 조각의 빵을 원하는 입이며 갈증으로 마른 목을 축이려고 잔을 들고 신 앞에 서 있는 손일 뿐입니다.
날아라님은 겸손 해야하고 남의 의견을 근본적으로 수용하시고 빛의 지구 사이트에 오르는 바른 메세지에 태클거는 어둠의 짓은 하지말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글이 매맞을 짓을 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