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와닫았던법문들  



법문일:1996.11.17 마음 주장자만이 재난 막을 수 있어  중 발췌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는 길에 예언자가 많이 있었습니다. 예언자가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하되 그 중에는 마음에 달렸다고도 했습니다. 마음의 주장자만이 모든 재난을 제거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신통을 알아도 도가 아니라고 한 거와 같이 알긴 알아서 말을 했으나 실천을 할 수가 없는, 그야말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고 있습니까? 전 세계와 더불어 지구의 수명을 늘리는 것도 그렇고 줄이는 것도 그렇고 모두가 여러분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역사를 본다 하더라도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모두 불, 물, 종교로 인해서 일들이 많이 벌어진 사연들을 볼 때 지금은 더군다나 깨이고 물질세계로 치닫기 때문에 정신세계는 미약해지는데 누가 그것을 대치해 나가겠습니까? 본래 정신계와 물질계가 둘 아니게 돌아가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서 이렇게 움죽거린다는 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를 소인이라고 하기도 하는 것은, 내 앞에 컵이 있는 것은 아는데 그 컵에 물을 담아서 내가 먹고 남에게 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마음공부를 열심히 해서 만약에 유와 무를 둘 아니게 수행하는 자, 무의 과학자, 무의 실천자들이 이러한 문제로 공부를 한다면, 자기 주장자의 자유자재권을 얻었을 때 비로소 세계를 건질 수가 있고 지구의 수명을 끝없이 가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대신심의 묘덕(妙德) 중 발췌



[문] 말세를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 현 시대를 후천세계니, 말법시대(末法時代)니 하고 부르면서 구세주를 기다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과학자들은 그런 말들을 하나의 신화로 치부해버립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답] 우주의 이법(理法)은 자재(自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정된 미래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자재법은 중생 누구에게나 다 갖추어져 있는 것이며, 그 법리(法理)를 성취한 사람(부처)은 이 세계의 흐름도 자유로이 조절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후천세계도, 말법시대도 다 예정된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소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언자는 작은 바가지 안에서 계산하고 예측하는 것이지만 그 바가지 밖에서 바가지를 통째로 움직이는 이법(理法, 부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설사 말세가 닥친다고 해도 하등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끝 세상이 곧 처음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말세를 부르는 것도 나요,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도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나 자체를 알면 그 모든 의문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나를 발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법문일:1996.10.27" 대자유의 삶, 그 운용의 묘법(캐나다법회) 중 발췌

내가 아까 말했죠. 물을 보기만 하고 ‘저기 물이 있더라.’ 하고 예언만 하면 그 예언자는 소인이라는 것입니다. 물이 있다는 것을 번연히 보고 알면서도 남을 주지 못하고 자기가 먹지 못한다면 그것은 소인의 예언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소인이라고 말씀하셨던 거죠. 자기가 실천을 하는 것만이 도라는 겁니다. 내가 물을 봤으면 갖다 주고, 갖다 먹을 수 있어야 만이 도라는 것이죠.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우주 만물의 과학자요, 무(無)의 과학자인 것입니다. 유, 무를 한데 합친 과학자이시죠. 이렇게 말한다면 선구자라고 해도 되고 구원자라고 해도 됩니다. 어떠한 이름을 갖다 붙인다 하더라도 손색이 없는 분입니다. 또 그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그럴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됩니다.

최첨단의 기술로 이 우주를 내다 본다고 하더라도 그건 도가 아니니라 했단 말입니다. 그건 왜냐? 그 5신통이라는 건 컴퓨터의 부속품에 해당합니다. 즉 대뇌의 정수에 자동적인 컴퓨터가 있는데 그 컴퓨터에 정보를 입출력하기 위한 부속품과 같다는 얘기예요.



질문 2005/01/16

또 한 해가 밝았습니다. 그렇지만 시작이 그렇게 밝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경제 침체와 참혹하리만큼 가해지는 대자연의 시련들이 더욱 새해를 어둡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어려운 시대를 슬기롭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공부해 나가야 하는지요?

큰스님 말씀  

가까운 여러 나라에서 난리가 나서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마음들이 어떻습니까? 어떻게 해야 잘 살 것 같습니까? 누가 대신 마음을 내 주고 누가 대신 살아 주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한생각이 여러분을 편안하게 살게 할 수 있고 여러분의 한생각이 여러분을 괴롭게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게 당연한 사실이니까요.

정녕코 제각기 자기 자신을 이끌어 가는 자기 주처가 바로 자기한테 있다는 사실을 아신다면, 그거를 여러가지 이름으로 부르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살아나가려면 공생이라야 되고, 이 몸을 보더라도 공생이어야 하고, 몸의 움죽거림을 봐도 공심이라야 하고, 몸의 움죽거림을 봐도 공용입니다. 그리고 공체이고 공식을 합니다. 그렇게 인간 모두가 더불어 살아나가는 현실입니다. 항상 그런 말을 여러분한테 해 드렸는데 그것을 어느 때는 백 번을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다가 어느 땐가 모르게 가슴에 와 닿을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모두 편안하게 사실 수가 없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 때문이고 차원에 따라서 분별에 따라서입니다. 꼭 그렇게만 생각이 되거든요.

이 세상 진리라는 것은, 예전에도 얘기했지만 구리는 구리하고 첨보가 되고 금은 금하고 첨보가 되고 무쇠는 무쇠하고 첨보가 되고 철은 철대로 첨보가 되고, 이렇게 제각기 천차만별이 다 그렇게 끼리끼리 만나서 부합이 되는 거죠. 그래서 그 에너지의 근본은 한군데서 나지만 갈래갈래 차원대로 끼리끼리 뭉쳐지는 것은 여러분이 지금 세상 살아나가는 도리를 보신다면 다 아실 겁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사는 이 지구가 곱게 가느냐, 좀 거북하게 가느냐, 아주 거북하게 가느냐 하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물로 죽고 불로 죽고 지진이 나서 죽고 이렇게 했지만 지금은 마음에 따라서 문제가 일어난단 말입니다. 이 마음이라는 게 얼마나 귀중한지 모릅니다. 마음은 한 찰나에 전 우주를 도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따로따로 용해가 있고 그런 게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은 따로따로 분별을 하겠지만 아는 사람들은 그러지를 않아요. 그래서 때에 따라서는 공용이라고 그러죠. 공용을 하고, 때에 따라선 공체로 공심으로 공생으로 공식을 한다는 얘깁니다.

경전엔 원식이라고 그랬지만 우리가 지금 세상에 알기 쉽게 누구나가 다 알게끔 공식인 것도 똑같습니다. 이 몸 하나를 보더라도 공생으로 산다는 걸 아시죠? 공용으로 산다는 것도 아시고, 공심이 돼서 천차만별의 마음을 낼 수가 있다는 것도 아시구요. 그러면 그거를 퍼 집어서 하나로 공식으로 뭉쳐서 우리가 여여하게 해 나간다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차원에 따라서 살지만 지금 처음 듣는 사람도 있고 또 여러 번 들었어도 이해가 가질 않는 분도 있고, 또 이해가 넉넉히 가는 분도 있고, 이해를 아주 잘해서 아주 여여하게 사시는 분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여여하게 하고 알고 가고 보고 이러는 것만, 그것만이 도가 아니라고 그랬습니다. 전부 첨보해야 됩니다. 그래 진실을 그대로 실천을 해 나가는 거죠.

그래서 살기 힘든 분들은, 여유가 없는 분들은 마음내는 게 무조건입니다, 무조건. 이것저것을 따지고 하는 게 아니에요. 따지면, 이것은 그르고 이거는 옳다 이렇게 가면 공법은 못됩니다. 그래서 천차만별로 여러분에게 말을 어떻게 해야만 옳겠느냐? 세 가지로 나누어서, 삼 분단으로 나누어서 이렇게 말할 때에 여유가 없는 분들은 여유가 없는 대로 그냥 무조건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 편안하게 살리기 위해서, 우리가 한 생을 살다가 가는 것이 소꿉장난하다가 하루 저녁에 해가 지면 다 헤어지는 거와 같은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렇게 살 게 아니라 아주 모르는 분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고 안다고도 생각 마시고 그대로 편리하게 생각하세요. 편리하게 하시고 무조건 자기 주인공에다 모든 거를 놓고, 편안하게 말입니다. 거기다 놓지 않으면, 그 기둥 자기 주장자에다 놓지 않고는 안 되는 거니까요. 이 우주의 삼라만상 모두가 통신처가 거기니까요.

그래서 놓고 가되 만약에 지구의 어느 편에 무슨 일이 생겼다, 일이 생긴다 이럴 때 어떻게 생각을 해야 편안하게 사시겠습니까? 이거는 누구도 해결을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러나 마음은 해결을 할 수가 있다 이 소립니다. 내 마음이 공심으로 공생으로 살기 때문에 공용을 하고 공체로서 공식이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렇게 맡기면 그대로 일체가 속속들이 다 연락처가 되는 겁니다. 공심으로 공용을 하게 되죠.

그러니깐 우습게 듣지 마시고 우습게 알지 마시고 자기를 진짜로 믿어라 이겁니다. 자기 껍데기를 믿으라는 게 아니라 자기 내면처를 진짜로 믿어라 이겁니다. 지금 내면처가 아니라면 일체 부처님도 상봉을 못하게 되어 있다 이겁니다. 이 세상에서 대신 죽어 줄 수도 없고, 자 줄 수도 없고 먹어 줄 수도 없고 아파 줄 수도 없고, 여러분한테 먹고 잠자고 그래 줄 수도 없지 않습니까? 대신 누가 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모두가 자기 생각으로 인해서 외부의, 내부나 외부나 다 살고 또 여러분의 말 한마디 부드럽게 하는 데에서 남이 섭섭지 않게 생각하고 유하게 생각을 하고…. ‘그게 뭐 그런다고 뭐 되나?’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구요. 항상 그렇게 버릇을 하면 모두 습이 그렇게 된단 얘깁니다. 그렇게 해 보지 않던 분은, 죽어도 그렇게 안 되죠.

그러니 자기 중심을 항상 확고하게 세워 놔야 합니다. 자기가 살려면 자기 자리를 자기가 꼭 지켜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세계적으로나 지구적으로 그런 문제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기 심봉을 놓치지 않고 항상 관하시면서 생활해 나가시기를 꼭 당부합니다. 자기는 자기만이 살릴 수 있어요. 그래야 가족도 사회도 모두 살릴 수 있을 것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