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리처드 클라크 전 백악관 테러담당 보좌관이 ‘모든 적들에 맞서’라는 책 출간과 청문회 출석을 통해 “클린턴과 부시 행정부가 알 카에다의 위협을 긴급한 현안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주장했을 때만 하더라도 엄청난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부시 진영이 이에 대해 연속적인 악수를 둠으로써 이 문제는 대선을 앞둔 미 정가에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난주 있은 9·11 진상조사위 청문회에 출석한 콜린 파월 국무,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 핵심 각료들은 한결같이 “부시 행정부는 알 카에다의 위협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고 즉각적으로 대응했다”며 클라크의 주장을 반박했다. 뿐만 아니라 부시 진영은 클라크에 대해 기회주의자라느니, 충성심이 부족하다느니, 책을 팔기 위한 상술이라느니, 민주당을 돕기 위한 책략이라느니 하면서 원색적으로 그를 비난했다.

부시 진영이 클라크에 대해 뭇매를 가한 것은 클라크가 클린턴 행정부에 비해 부시 행정부의 잘못을 더 강조한 점도 있지만 대선을 앞두고 부시의 장점이 훼손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국가안보는 부시 대통령이 ‘전쟁대통령’으로 자칭할 정도로 최대의 치적이자 11월 대선에서 가장 내세울 수 있는 장점으로 여기고 있는 분야다. 이러한 상황에서 30년간 행정부에서 반테러 분야에서 일해온 전문가인 클라크가 이를 공격했으니 부시 진영이 비상에 걸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부시 진영의 이러한 반격은 오히려 역풍을 초래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대한 논리적이고 실질적인 반박보다는 인신공격에 치우친 비난은 오히려 클라크의 말에 신빙성을 더해주었다. 여기엔 대통령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청문회 증언은 거부하면서 TV에는 수시로 출연해 클라크를 비판하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 보좌관의 태도도 한몫하고 있다.

27일 발표된 뉴스위크 등의 여론조사를 보면 부시 대통령의 대테러정책에 대한 지지율이 1주일 새 65%에서 57%로 떨어졌다. 클라크의 주장이 믿을 만하다는 대답도 52%에 달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8일 ‘군색한 방어’라는 사설에서 “부시 진영은 부족했던 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인신공격을 하지 않으면서 강력히 반박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정동식특파원 dosjeong@kyunghyang.com〉
  최종 편집: 2004년 03월 28일 19: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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