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회원님들이 진아를 알았냐...근원을 알았냐...라고 물어보시기도 합니다.
그러면 저는 진아를 알았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진아는 평상심입니다. 진아의 정의가 저마다 제각각이겠으나 주로 통칭되는 것을 보면 진아는 깨달음 이후의 에고가 사라진 것을 말하는 것 같네요.
그런데 우리가 에고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좀 부정한 것들.....분노, 성욕, 짜증..이런 것들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화장실에서 똥 쌀 때(부정한 감정들)는 에고이고 좀 평안한 나를 진아라고 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정신적인 감기에 들어서 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을 때는 에고, 좀 평안해지면 진아라하면...
에고와 진아는 한몸을 단순히 상태에 따라서 구분한 것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이 이런 용도로 진아를 씁니다. 영성계의 스승들은 진아이고 나는 에고이고....그 분들도 '나'라는 개체의식이 있는 분들입니다. 오히려 영기장상으로는 진아를 찾아 나...즉 에고를 잃어버릴 때에...명상을 위한 명상이 되고, 요가를 위한 요가가 될 때에
나를 잃어버리게 되고 이상한 잡들이 나 대신에 들어옵니다. 요가마스터나 명상마스터 같은 잡이지요.
진아를 찾아 나를 잃어버린다....
사실 진아와 에고는 한몸입니다. 불이(不二)....
한몸인데도 나를 부정하면서 또다른 나를 찾아가니 영기장으로 요가마스터와 명상마스터 같은 잡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금강정경》의 제15회 <비밀집회경 秘密集會經>의 범본에서 "둘이 아닌 일체 제법은 그러나 둘의 모습을 가진다(Advya Sarvadharmas tudvaya Lak ita )" 라고 했다.
색깔 친 글은 퍼온 글입니다. 이 말은 떫은 감이 단맛으로 변하여 단감이 된다면
중생의 번뇌는 보살이 중생을 이해하는 사량심으로
중생의 탐심은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로
중생의 진심 즉 분노는 보살이 중생을 방해하는 사마를 격퇴하고자 하는 강한 분노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중생의 에고는 보살의 에고로 흔적이 남아 이 우주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진아라는 거창한 단어를 굳이 안써도 근원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안써도
충분히 제 흐름에서는 소명을 하는 것이고 흐름에 순일하게 맡겨 소명을 한다면
저는 충분히 진아의 모습을 띈 에고로서 활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아를 알았느냐라고 하면 내가 곧 진아이다라고 합니다.
영성계에서는 진아나 깨달음이라는 거대 담론에 함몰되어 자신의 현재 모습, 자신이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서는
큰 고민이 없어 보입니다. 좌공부 자체가 배를 만들고(좌설정),진화가 그 배로 우주라는 광대한 에너지의 세계에 나아가는 여정이라면 배를 튼튼히 만들고 지향점이 분명해지는 효과가 있기에, 어설프게 진아 나부랭이, 깨달음 나부랭이, 마음 나부랭이를 말하는 영적 넝마주의보다는 100배 낫습니다. 그리고 그 설계의 효과도 있기에 만약 깨달음으로 나아간다면 깨달음에 필요한 인과 연을 짜게 됩니다.
굳이 좌공부가 아니더라도 어느 한 공부를 2년 이상 하게 되면 공력이 생깁니다.
스스로를 깨달음에 묻어 버린다거나 영성이라는 포장지에 스스로를 감싸지만 않는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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