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어온 바로는
일단 난 이 사랑이란 단어에 대해 부정적이다.
진리와 사랑이란 것은 그닥 연관성이 없어보인다.
그냥 진리는 수소분자 2개와 산소 1개가 합치면 물이 되는 이러한
상식적인 내용이라 보고
이러한 상식적인 접근으로 나아가야 덜 헤매게 된다고 생각한다.
종교도 그렇고 탈종교나 영성체험도 그렇고
사랑이란 단어가 이렇게 자주 나오고
사랑이란 것에
의미부여를 해야되나?
에 대해 오랜기간 생각을 해봤다.
인간이 느끼는 감각에서 받아들이는 것이나
감정적인 부분에서
사랑이란 감정이
가장 자극적이고 황홀함을 일으키는 부분이 있기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교회나 그와 관련 단어들 그리스도나 임마누엘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던지
채널링등에서
갑자기 나오는 사랑한다라는 메세지등
인간이든 신이든
누군가가 인간에게 접근하거나
관리하는 면에 있어 사랑만큼 달콤하고 효과적인 단어가 있을까 싶고
그러한 이유로 사랑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의심을 하는 편이다.
한때 잠시 주변에 채널적 환경이 있었을때
솔깃하게 다가온 단어가 사랑이란 단어였다.
갑자기 옆에 있던 이가 상위자아가 접속됫다고 사랑한다고 전해달라든지..
대화 좀 해보자하면 사랑한다는 멘트가 심심찮게 나오고
의식체들과 논쟁중에서 느닷없이 사랑한라던지..
시간이 지나 복기해보면 아무의미 없는 정보이거나
상대방쪽 의식체나 아니면 나와 관련된 의식체가
속이거나 자기들 방식대로 이끌어 가려는 일종의 수단 같은 것이었다.
예전 채널러에 채널된 존재와 논쟁중에
현재 상황과 맞지 않는 대답과 멘트들이 이어지며
사랑이란 것으로 포장해 넘어가려길래..
현실적 삶의 모순들에 대해 비판을 했고
사랑 따위의 말들 말고 사실적인 내용을 말해보라고 좀 파고든 적이 있는데
그렇게 강하게 접근하니 그 존재도 사랑이야기는 더 안하고 사실적인 대화 모드로 나에게
반박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되었다.
내가 너희 고차원 존재란 이들도 완전하지 않으면서 왜 완전한척 하냐?고 따지면
그들도 신나이 내용 형식의 포장된 내용이 아닌 인간들의 단점을 지적하거나
느닷없이 당신이 이 삶을 선택하기로 해놓고 이제와서 따지면 어떻하냐는 등의 항의성 멘트나
사실적인 대화들이 오고 갔었다.
나는 그러한 인과율에 맞는 이야기로 파고들땐 항상 무언가 중요한 사실을 얻을수 있었지..
사랑이니.. 우주니... 우리는 하나이니.. 너가 신이라든지 달콤한 두루뭉실한 말들로는
아무 의미 없는 내용들에 휘둘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현재로선..
의식적 깨어남과 자각에
사랑이란것은 아무 상관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생각한다.
부처의 가르침을 제대로 공부한적은 없지만
부처가 고통에서 벗어나라고는 했어도
사랑을 강조한것 같지 않다.
그나마 사랑이란것이 의미가 있을때는
아마도 자신에게 집중하는 자기사랑의 측면이 아닐까 한다.
그와 달리
타인에 대한 사랑은 단순 이타주의나 박애 휴머니즘등은
본인이 이러 저러한 체험을 하다 보면
순간 마약을 하거나 뽕맞은 비정상적으로 기분이 업되는
경우가 있는데 ..
그러한 감정에 취하다 보면
사랑이란 개념으로 수렴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예전 알던 교인중엔 성경 읽다가 갑자기 눈물을 펑펑 쏟더니
다들 예수의 사랑을 모두 느껴야 된다고
밖으로 뛰어나가 지하철 전도를 하는 경우라던지..
사회에서 비난받는 jms에서도 예수의 사랑을 체험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한 jms 신도는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해 너무 기쁜 나머지
매일 예수님과의 사랑에 대한 일기장을 적었다고 했었다.
그당시 그러한 현상을 이해하는데 힘들었지만..
지금은 이해가 간다.
사이비든 이단이든 정통이든..
상관없이
성경이란
도구를 가지고 일종의 종교생활
수행?을 하다보면 누구에게나 나타날수 있는 현상일 뿐이란 것..
결론은 천지불인
천지는 어질지 않다라는 것이다.
고요히
- 2022.05.14
- 01:44:19
- (*.56.73.203)
누구나 과거에 상처는 있는 법입니다.. 여기에서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특히 더하겠구요.
제가 상식과 객관을 언급한것은 과거의 기억에 대한 인과성보단
정신세계 오랜 체험과
나름의 분석력으로 영성쪽을 바라보다보니 인지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성경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 않는 편이라 앞으로 기분이 어짢으실수도 있으니
먼저 양해 바랍니다.
백신을 맞아도 사람마다 부작용이 천차만별이듯이
뉴에이지이든 성경이든 불교이든 어디든
누구나 타고난 시나리오에 따라 마음이 가거나
맞는 곳이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다면 성경에 정착하게 되는 것이구요.
우주의 절대 지존이나 창조주 같은 것은 없으나
우리 인간이 상상할수 없는 능력의 존재들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살이 곤충 입장에선 우리 인간은 영겁의 세월을 사는 상상할 수 없는 존재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 인간이 절대적이거나 대단한 존재가 아닌 것처럼요.
인류탄생부터
태어남의 이유와 죽음 이후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의 dna에 수천년 이어져오다보니
인간은 본능의 깊숙한곳에 신이나 절대자에 대한 경외함이나 두려움이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런것이 보통 이슬람이나 기독교, 성경, 불교의 지옥 등을 대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잘 나타나구요.
인간이 관념적으로 알아온 사랑의 하나님 절대적인 하나님의 존재는
없다고 생각하고
저는 기존 선입관이나 관념없이 그냥 있는대로 바라보고 조망하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그냥 존재계 전체로 보기에
사랑이나 기도 감사의 부분적이거나 특정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큰 의미부여를 하지않습니다.
샴브라는 성경이나 기독교의 업그레이드 형태로 보는편입니다.
선,악 도덕적인 면을 떠나서 성경 보단 전체 의식이 확장이 되다보니..
내용의 질적 측면에선 기독교 채널러보단 샴브라 채널러들이 더 깊은
정보를 다룬다 생각합니다.
성경이든 샴브라든 채널이든 정도의 차이가 있지
다들 부분적으로는 진실의 조각들을 가지고 있다 생각하구요.
핵심은 그네들이 말하는 게 어디까지 숨김과 의미없는 반복이고
어디까지가 의미있는 내용인지 분별력이 있어야 겠지요.
아다무스건 무슨 대천사이건 고진재이건 모두 에고는 있습니다.
아주 솔찍한 구약의 하나님도 강한 에고가 있구요..
고진재가
에고가 없을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선입견이자 관념이라 보고
그러한 관념으로 인해
채널러들이 나름 뛰어난 감각을 소유함에도 불구하고
고진재나
인간 이상의 고차원 존재들에게 대부분 현혹당하는 것 같구요.
댓글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며
자기사랑은 요즘에 들어와서 하고 있는거 같습니다.
사랑이란것이 의미가 있을때는
아마도 자신에게 집중하는 자기사랑의 측면이 아닐까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네 자기사랑부터 해보시는게 어떨까요?
"자신의 에고를 만난다는것 직시한다는것은 자신안의 어둠을 본다는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