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에 대하여 /  인애란


형형색색으로 다르게 생긴 수십 억의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고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그리고 같은 나라, 같은 도시, 같은 시간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우리가 만나고 우리 곁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인연인가!


우리의 인연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필연의 뿌리가 있다.
적절한 시공간의 안배와 놀라운 섭리가 그 안에 있는 것이다.
아주 작은 인연조차도 그냥 스치는 게 아니고,
그냥 맺어진 인연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같이 부딪치는 사람들 중에서
커피의 단맛을 내주는 각설탕처럼 우리의 삶에 녹아들어
서로 살아가는 이유를 깊이 공유하게 되는 좋은 인연이 있다.
설탕이 언제 단맛을 내는가?
바로 자신의 존재를 녹여 없앨 때이다.
좋은 인연은 이미 헌신과 희생을 통하여
이루어진 만남이라는 것이다.
삶의 특별한 선물로 받아들이고
더욱 귀하고 아름답게 키워가야 할 것이다.


더러는 아픈 상처를 남기는 안타까운 인연도 존재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무엇인가를 이미 저버렸을 것이다.
결국 이별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도,
바람처럼 싸늘하게 흩어져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수많은 생의 비밀을 간직한 의미로운
인연인 것이다.


우리가 만나게 되기까지 옹송그린 그 여정의 비밀을
생각하며 살았더라면. 진작 그랬더라면
우리에게 다가온 인연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을 것이고,
곁에 머무르는 사람들을 무엇보다 아꼈을 것이다.
사소한 잘못으로 등돌리거나 서로에게 깊은 상처도
주지 않았을 거라는 뉘우침도 하게 된다.


현자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는 배우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고 한다. 아름다운 인연을 통해 배우고,
영성을 깨우치는 정신적인 인연을 통해 배우고, 또한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인연을 통해서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인연 따라 마음 열어 받아들이고, 그 인연이 지나가면
물의 흐름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흘러가는 물을 억지로 붙잡을 수 없다.
그저 스치는 하나의 작은 인연조차 아름답게 스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인애란 에세이집 <그대 홀로 있기 두렵거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