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흉기 ‘키보드 워리어’

‘악플’로 연예인 등 무차별 공격… 의외로 소심한 성격 많아
염강수기자 ksyoum@chosun.com    입력 : 2007.01.23 00:36

“간만에 미소가 지어지는 훈훈한 소식” “잘 죽었다” “ㅋㅋㅋ”

지난 21일 자살한 가수 유니(26·본명 허윤)가 인터넷 악성 댓글과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기사, 지난 10일 개그우먼 김형은(26)이 사망했다는 기사에는 이런 댓글이 붙어있다. 죽음조차 조롱하는 우리 인터넷 문화의 섬뜩한 현실이다.

사회적 흉기인 ‘악성댓글’(일명 악플·악성 리플라이)을 집중적으로 생산하는 ‘키보드 워리어(keyboard warrior)’, 즉 ‘인터넷 전사(戰士)’가 인터넷에서 활개치고 있다. ‘키보드 워리어’는 인터넷에서 상습적, 집중적으로 악플을 생산해내는 이들을 부르는 말로, 사이버 세상에서만 ‘전사·싸움꾼’ 노릇을 한다는 경멸적 의미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연예인과 관련한 각종 루머와 악담뿐 아니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일반인들의 프라이버시까지도 파악한 뒤, 인터넷에 유포한다. 정보를 악의적으로 가공하기도 한다.

연간 500여 건의 사이버 명예훼손 관련 신고·상담을 받고 있는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심한 경우 깨어있는 동안 거의 ‘키보드’만 두드리는 사람도 있다”며 “그러나 글의 공격성에 비해 실제 인물은 보통 사람보다 더 소심해 보여 놀랐다”고 했다.



익명을 전제한 인터넷상의 이름(ID)을 통해서는 직업, 연령 등을 파악하기 어려워 ‘키보드 워리어’의 특성을 단적으로 정의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이버 명예훼손 담당 경찰, 정신과 전문의, ‘댓글’ 관련 피해자와 포털 관계자들은 이들의 특성을 이렇게 간추린다.

▲일상에서는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고 소심한 편이고
▲초·중·고생, 무직이 많고
▲다른 가족없이 원룸 등에 혼자 사는 사람이 상당수라는 것이다. 이들은 또
▲특정 연예인이나 특정 정당에 대한 ‘안티’ 세력이 아니라, 주목을 받는 이슈나 인물에
무조건적으로 악플을 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정신과 남궁기 교수는 “상사의 불합리한 주문에는 순응하는 듯하다가 자기보다 힘이 약한 후배의 말에는 버럭 화를 내는 사람처럼, 특정 환경에서 평균 이상으로 공격성을 표출하는 사람은 ‘악플’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

2005년 애인이 자살한 이후 인터넷에 신상과 사진이 공개돼 ‘애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인물’로 몰렸던 A(32)씨. 그는 “수사기관에 의뢰해 찾은 ‘악플’ 작성자들은 20~30대 초반으로 무직자 등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이 많았다”며 “검찰에서 만나면 ‘미안하다’며 소심한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A씨는 현재 악플을 단 네티즌뿐 아니라 네이버, 다음 등 4개 포털에 대해서도 소송을 제기했다. 1심 판결은 오는 2월 2일 나올 예정. 이 판결 여부에 따라 ‘키보드 워리어’의 운신의 폭도 달라질 전망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1/23/20070123000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