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학회의 설립  
                                        
신지학회 Theosophical Society


1873년에 블라바츠키 여사는 뉴욕으로 가라는 대사의 지시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이때 마흔 두 살의 블라바츠키 여사는 영적, 오컬트적 능력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에 이르렀는데, 마하트마들은 그녀야말로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계획을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합당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였습니다. 마하트마들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성스러운 지혜 ‘Theosophia’를 새롭게 세상에 알리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선각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서 검증하고 확인한 축적된 지혜’이자 진리의 나무로서, 세상의 모든 종교는 그 나무의 가지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블라바츠키 여사는 1874년에 헨리 올코트 대령을 만나게 됩니다.
올코트는 남북전쟁에서 대령까지 진급하였고, 링컨 대통령 암살사건의 수사책임자로도 이름이 알려졌으며, 블라바츠키를 만날 당시에는 뉴욕에서 법조계 일을 하면서 동시에 언론인 역할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강신술’이 사람들 사이에 매우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는데, 이러한 심령주의는 교조적인 신앙과 다윈의 진화론 같은 물질주의에 대한 반발이 그 부분적인 원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고 철학적인 기반이 전혀 없는 것이었습니다. 블라바츠키 여사는 강신술을 심령현상의 실재를 증명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강신술의 오류와 잘못을 지적하고 올바른 영의 실체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습니다.

블라바츠키와 여사와 올코트 대령은 유령의 육화현상으로 유명했던 버몬트의 치텐덴이라는 곳에서 만나 곧 친구가 됩니다.
모든 일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냉철하게 접근했던 올코트 대령은 블라바츠키를 통해 그가 갖고 있던 심령주의나 동양의 비의주의(esotericism)에 대한 견해에 일대 변화를 일으킵니다. 1875년에는 올코트 대령의 소개로 젊은 아일랜드계 변호사인 윌리암 콴 저지가 블라바츠키와 만나게되고, 이윽고 이들 세 사람은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에 관한 지식을 집대성하고 확산시키기 위하여’ 이에 관심을 가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협회를 설립합니다. 그들은 이 협회를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명칭을 따라서 ‘신지학회(Theosophical Society)’라고 명명하고, 올코트 대령이 회장으로, 그리고 블라바츠키 여사를 간사로 임명하였습니다. 이 초기 모임의 회원 중에는 토마스 에디슨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