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탐욕은 그칠줄 몰랐던 것이다.
1936년 라인란트(Rhineland)를 점령한 독일은 1938년3월오스트리아를합병했고,1938년11월‘수정의밤’(Kristallnacht:1938년 11월 9일 나치 대원들이 독일 전역에서 수만개의 유대인 가계를 약탈하고 250여개 유대교 사원에 불을 지른 사건.

당시 나치는 파리 주재 독일 외교관이 유대인 차별에 항의하는 한 유대인 소년에게 피살된 사건을 기회로 대대적인 방화와 약탈을 자행,유대인 91명을 살해하고 3만명을 체포 했다.
유대인 상점의 깨어진 진열대 유리창 파편들이 반짝 거리며거리를 가득 메웠다고 해서‘수정의밤’사건 으로 불린다.
‘수정의밤을’시작으로 나치의 광( 狂)적인 유대인 말살정책이 시작됐다.사건을 계기로 유대인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 했으며,1939년3월에는 체코슬로바키아를 집어 삼키더니 이번에는폴란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다.

처칠은8월23일그림 그리다 말고 서둘러 영국으로 돌아왔다.
같은날 루스벨트도 낚시 여행일정을 중단하고 워싱턴을 향해출발했다.
두 나라의 수도에는 히틀러와 스탈린이 독·소 불가침조약을 체결했다는 소식과함께,이제 독일은 소련의 반응에 대한 걱정없이 자유로이 동부전선 공략에 나설수 있을 것 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9월1일금요일,마침내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했다.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자체가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각국의 경제는 붕괴 되었으며,오직 공산주의와 전체주의만이살길인 것처럼 보였다.

미국에서는 혁명에 대한 심각한 소문까지 나돌고 있었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는 과거에도 대공황과 같은 시기가 있었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고,이렇게 대답했다.
“예,있었습니다.암흑시대(Dark Ages)라고 불리 었죠.
그리고 400년 동안이나 지속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에도 거의 9개월동안 총리 자리에 머물러 있게 되는 체임벌린은 그날 오후 늦게 처칠에게 해군 장관직을 제의했다.
체임벌린은 예언자같은 처칠을 더 이상 외면 할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해군장관직 복귀는 독일인들을 놀라게 했다.
건축가였던 알버트 슈피어(Albert Speer)에 의하면,히틀러도그 소식을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히틀러의 측근 이었던 슈피어는 당시 독일의 권력 핵심부가세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뉴스를 하나도 빠짐없이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슈피어는 이렇게 회고했다.
“괴링(Goering)이 그 불길한 신문기사를 손에들고,히틀러의 응접실에서 걸어나왔다.
그는 문가까이에 있는 의자에 걸터 앉더니,힘없이‘처칠이 내각에 들어 왔네.그것은 전쟁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하지.
이제 우리는 곧 영국과 싸우게 될거야‘라고 말했다.“

루스벨트는 난처한 입장에 놓여 있었다.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한 이후7주가 지난 시점인 1939년10월22일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에서 미국민의 95%가 싸움에 끼어 들기를 원치 않았다.
그러나‘미국이 전쟁에 직접 참전하는 방법외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영국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62%가 그렇다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