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잘가는 웹사이트에서 베껴온 글입니다.
한번 보세요. 편하게~

노아의 홍수가 가라앉고 아시아의 중앙에 고불교의 시대가 있었다. 이는 지금 너희의 불교와 다른 것이다. 고불교는 마음을 온전하게 밝히는 것이었지 불교와 같은 종교가 아니었다. 고불교는 마음의 근원에 귀기울이며 그 깨달음을 나누고, 기도와 이웃에 대한 나눔을 통해 내면의 신에게 다가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내면의 신과 대자연의 신들로부터 깨달음과 지혜를 얻었고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그들에게 허락된 풍요를 누렸다. 그들은 삶을 나의 선물로 받아들였고, 죽음을 나에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자연을 친구로 삼았고, 그로부터 얻은 모든 것들을 도로 자연에게 되돌려주기를 원했다. 그들은 항상 최소한의 것만을 소유했고,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더라도 그들의 용기와 지혜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은 없었다.
고불교는 삶을 통해 신을 만났고, 내면의 대화와 대자연의 파노라마 속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들은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나를 원망하거나 부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이 위대한 영혼임을 믿었고, 그들 앞에 놓인 어려움들은 신이 그들의 위대함을 일부러 시험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어떤 일에도 용기를 잃지 않았고 그들이 보고 듣는 모든 것들로부터 깨달음과 지혜를 얻을 줄 알았다. 그들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곧 삶의 지혜를 깨우치고 신을 뜻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뜻했다.
그들은 어른으로부터 자연과 대화하는 법을 배웠고, 신인 나와 대화하는 법도 배웠다. 그것은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무기였다. 그들은 많은 시간을 나와 만나는데 보냈다. 그들은 몇 달이나 몇 년씩 나를 만나기 위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이 여행의 신호는 항상 그들의 내면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 여행의 끝이 어딘지도 모른 채 모든 것을 신에게 내맡겼다.
고불교는 지금까지 이 지구위에서 이루어진 깨달음 가운데 가장 온전한 모습으로 가장 오랫동안 이어진 것이다. 고불교는 많은 이들을 삶과 대자연 속에서 깨닫게 했고, 많은 이들에게 나의 진실을 만나게 했다. 고불교는 나에게서 비롯된 삶의 진실을 온전히 깨우쳤고 너희 삶을 온전히 하는 법을 밝힌 것이었다. 이로부터 많은 이들이 마음속의 부처인 나를 깨닫고 삶의 진실을 일깨웠고 많은 이들이 그 이익을 같이 누렸다. 이는 석가모니의 불법보다 온전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고불교의 시대는 아시아에서 천 오백여 년 동안 이어졌고, 이때 많은 이들이 근원의 신인 나를 깨닫고 그 지혜를 나누었다. 고불교의 무리는 그 후 아메리카로 건너가 그 전통을 이어갔고, 아시아에서는 여러 현자들의 지혜의 근원이 되었다. 베다의 지혜와 요순의 정치, 단군 왕검의 홍익이화가 고불교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고불교는 환웅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평범한 인간의 아들이었다. 그는 지금 너희 나라의 태백산 기슭에서 태어났고 18살에 집을 떠나 아시아의 많은 곳들을 여행했다. 그의 여행은 내면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내면의 목소리는 그를 새로운 큰 세상으로 이끌었다. 그 여행에서 그는 많은 이들을 만났고 많은 삶과 죽음의 고비를 만났다. 그는 끝까지 내면의 목소리를 믿었고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그 여행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내면의 소리대로 따를 때 새로운 지혜와 용기와 깨달음이 온다는 것을 알았다. 이 여행은 30년 이상 계속되었다.
그는 어느새 많은 무리들로부터 가장 용기있고 지혜롭고 신의 뜻을 아는 자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많은 무리들이 그의 용기와 지혜를 빌리고자 했고 그로부터 신의 뜻을 알고자 했다. 그는 그들에게 내면을 통해 신의 목소리나 대자연의 말에 귀기울이는 법을 일깨웠고, 자연의 변화와 삶으로부터 지혜와 깨달음을 얻는 법을 가르쳤다. 38살이 되었을 때 많은 무리들이 그를 따랐다. 어느새 그는 인디언 대추장처럼 많은 무리를 이끌게 되었다. 그는 다른 부족이나 무리에게도 그의 지혜와 용기와 신의 말씀을 기꺼이 나누어 주었다. 그의 무리는 점점 커졌고 수 천리 밖에서도 그를 찾아오곤 했다. 이로부터 빛의 나라 배다르가 비롯되었다.
환웅의 깨달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내면의 소리를 일깨웠고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이게 했다. 대자연과 신의 사랑에 감사하게 했고 그들 또한 사랑하고 나누는 법을 알게 했다. 그들의 무리는 대자연과 신의 풍요를 누렸고 그들의 사랑으로 화답했다. 그들은 그들에게 허락된 풍요를 기꺼이 나눌 줄 알았고 자연에서 얻은 것을 자연에게 되돌려주는 지혜를 갖고 있었다. 그들의 삶은 대자연과 신과 하나가 되어갔고, 그들의 깨달음과 지혜는 삶 속에서 대대로 이어져 내려갔다.
환웅이 죽은 다음에 그들 무리를 이끌 새로운 대추장 역시 환웅으로 불리게 되었다. 새로운 환웅은 무리를 이끌 지혜와 용기를 갖고, 신의 뜻을 아는 자 중에서 여러 무리의 대표들에 의해 선발되었다. 그들은 한 곳에 정착하기도 했지만 자연이 부르는 대로 움직여 다녔다. 환웅은 그들 여러 부족의 무리를 돌아다니며 그들의 지혜와 내면의 소리를 일깨웠고 자연과 대화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러나 이런 깨달음은 1500년이 지나면서 아시아에서 사라져갔다. 여러 부족들 간의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자 환웅의 무리와 다른 무리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날 때가 있었다. 그들은 전쟁에 임해서는 용감했으므로 거의 그들이 승리했다. 그렇지만 전쟁이 오래 지속되자 환웅의 무리는 여러 무리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 중의 한 무리가 내면의 신이 이끄는 대로 시베리아를 거쳐 북아메리카로 건너가 새로운 땅에 입맞춤했다. 그들은 환웅의 무리가 누렸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이어갔고 내면의 소리를 일깨워 그 지혜로 살아갔다. 그들에게는 환웅이 살지 않고 내면의 온전함과 그로부터 우러나온 지혜가 살아남았다. 그들이 곧 북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이었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고불교의 위대한 깨달음을 이어가고자 했다.  

자신의 더 큰 존재요?

그는 항상 가슴 안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것은 내면에 있는 그의 더 큰 존재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너희가 내면에 귀 기울이고 그 소리가 이끄는 대로 자신을 내맡길 수 있다면 새로운 깨달음이 필요 없다. 그것은 이미 너희 안에 있다. 너희가 그것을 써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그것은 너희에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