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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밥 한입 먹어봤으면…” 日 아사자 일기 충격
동아일보 | 기사입력 2007-10-13 03:21 | 최종수정 2007-10-13 06:25
[동아일보]
재정 개혁의 일환으로 사회복지비 삭감을 진행 중인 일본에서 약자들의 비명이 커지고 있다.
7월 10일 일본 기타큐슈(北九州) 시에서는 52세의 독신남성이 집에서 죽은 지 한 달여가 지난 시체로 발견됐다. 그의 마지막 일기는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가 먹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10월까지 택시운전사로 일했던 이 남성은 병이 들자 12월 시 복지사무소에 생활보호를 신청한 뒤 월 8만 엔(약 63만 원)씩을 받았다. 그러나 올해 2월부터 복지사무소 직원이 “슬슬 일을 하면 어떠냐”고 권해 결국 4월에 생활보호 자퇴원을 제출했으나 일기엔 “일할 수 없는데도 일하라고 한다”고 푸념했다.
그의 일기장에는 “25일간 밥을 먹지 못했다” “집 근처 도로변에서 풀을 뜯어먹었다”는 등의 내용도 있다.
기타큐슈 시에서는 이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다. 2005년 1월 간병보험 대상자였던 68세의 독신남성이 생활보호를 거절당한 뒤 혼자 죽었고, 2006년 5월에는 신체장애인이었던 56세 남성이 미라 상태로 발견됐다.
시 당국에는 비난이 쏠리고 있다. 8월 24일 시민단체인 ‘생활보호문제 대책 전국회의’는 ‘지원을 끊은 이후 생활을 확인하지 않은 것은 위법’이라며 시 당국을 고발했다.
일본 정부는 생활보호 가구가 최근 10년간 1.7배나 늘자 고령자 생활보호비 가산금과 모자가정 가산금을 폐지하는 등 제도 개혁에 나섰다.
한편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 사건을 전하며 “일본의 지방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납세자의 돈을 사용하면 시민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도쿄(東京) 호세이대 스기무라 히로시 교수의 말을 소개했다. 스기무라 교수는 “지방정부에 가난한 사람들은 시민이 아니며 납세자만이 시민”이라고 꼬집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충치 앓는 미국
성인 29% 비싼 진료비 못대 치료 못받아▼
제때 충치를 치료받지 못한 어린이들이 잇따라 세균감염으로 사망했다. 치과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상황에서 비싼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한 부모가 자녀의 치료를 미뤘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미국의 미시시피 주와 매릴랜드 주에서 올해 일어난 일이다.
치과 치료비가 급증하면서 충치 등 기초적인 치과치료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미국에서 급증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11일 보도했다.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가장 최근 통계인 2003∼2004년 기준으로 충치에 걸리고도 치료를 받지 않은 성인 비율이 29%에 달했다. 어린이의 경우도 27%였다.
가장 큰 이유는 치과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미국인이 전체 미국 인구 3억 명 중 1억 명에 이르기 때문. 미국에서는 일반 건강보험과 치과 건강보험을 별도로 가입한다. 일반 건강보험은 미가입자가 4000여만 명이다.
회사의 건강보험 지원이 없을 경우 4인 가족 기준 일반 건강보험료는 매달 900달러, 치과 건강보험료는 200달러 정도를 내야 한다. 본인이 보험료를 모두 부담해야 하는 자영업자의 경우 매달 두 가지 건강보험료로 1100달러(약 105만 원)나 지출해야 하는 셈이다.
인구는 늘어나는데 만성적인 치과의사 부족으로 치과 치료비는 빠르게 올라 미국의 성인들은 1인당 매년 평균 600달러를 치아 관리에 쓰고 있다.
빈곤층은 정부가 치료비를 부담하는 ‘메디케이드’를 통해 치과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치과의사 상당수가 메디케이드 환자를 기피해 대학병원 등 정부 지원을 받는 치과에 환자들이 몰려든다. 이런 병원에선 간단한 치료도 예약 후 6개월을 기다려야 할 정도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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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지구를 관리하면서, 진화의 흐름을 맡고 있는 신들입니다. 앞으로의 여러분의 흐름에 대해서 설명해 갈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사회는 급속한 파동의 변화에 의해, 경제적인 정체나 사회적인 불안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현상은 어떤 의미로는 예정되어 있던 흐름이고, 본래는 그렇게 곤란하거나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여기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 시대에 이런 상황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어, 그것을 전제하여 흐름을 만들어 오고 있습니다.
다만, 지구 자신의 흐름이 본래의 흐름과는 급속히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어, 그에 따라 여러분의 사회의 흐름도 꽤 변화해 나가는 상황입니다. 지금부터 조금씩, 그것이 나타나게 됩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처음부터 이해하고 있던 사회의 흐름과는 다른 흐름이 지금부터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예정하고 있거나, 경험해야 할 흐름이 나타나지 않게 되거나, 전혀 예상하고 있지 않은 사태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한 흐름에 들어가게 될 경우에,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어떤 삶의 방법을 해 나가면 좋은 것일까요? 적어도 “산다고 하는 의사”가 있는 한 확실히 흐름을 진행시켜 나갑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구가 진행되어야 할 새로운 흐름이나 여러분이 자신을 위해서 바라고 있는 흐름과는 다른 흐름이 됩니다. 지구는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우선은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당초의 예정으로는, 지구는 매우 괴로운 현상을 인류와 함께 경험하고, 그 괴로운 경험의 배움을 통해 인간애를 배우고, 분쟁의 허무함을 배워, 정말로 사랑을 몸에 익힌 사람들만이 지구에 남겨진다는 흐름이었습니다.
이 방식으로는 지구에 남겨지는 인류는 매우 적게 되고, 이 지구가 본래의 역할을 연기하는데 필요한 인류의 수를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조금이라도 많은 인간이 사랑을 몸에 익히게 되고, 지구와 함께 걸어 갈 의사를 가지는 사람을 좀더 늘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흐름에서, 인간이 정말로 사람을 사랑하게 되기 위해서는, 진정한 사랑을 이해하고, 그것을 구현하고 있는 사람들을 차례로 늘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금의 시점에 있어, 사랑을 구현화하고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고, 여기로부터 급속히 퍼져가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지구를 진행시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상태입니다.
지금 그 때문에 근본적인 수정을 하고 있어, 완전히 별개의 흐름으로 인류가 사랑을 몸에 익히고, 지구와 하나가 되어, 우주의 많은 동료들과 함께 지구가 변화해 나갈 수 있는 흐름으로 유도해 가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구가 진행되어야 할 새로운 흐름, 지금 그것을 큰 폭으로 수정 하고 있어, 여러분도 그 흐름에 맞추어지도록, 조정이 취해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 지구에서, 인간끼리 아직껏 서로 싸우고, 서로 컨트롤하며, 생명을 빼앗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을 볼 경우, 반드시 다른 인간의 생명을 빼앗고 싶다거나, 부정하고 싶다는 생각은 그렇게 강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지상에서 전개되고 있는 전쟁의 상당수는, 인간 이외의 의사가 움직이고 있어, 그 강한 영향력 가운데에서, 인간이 다른 생명을 빼앗거나 타인을 부정하는 언동을 취하고 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그러한 에너지로부터 해방되어 눈을 떴을 때에, 비로서 생명을 빼앗는 것의 어리석음이나 타인을 부정하는 것의 허무함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의 관점에서는 인간을 컨트롤하고 있는 강한 에너지를 얼마나 인간으로부터 떼어내, 한사람 한사람이 눈을 뜨고 타인을 배척하는 것의 허무함을 깨닫게 되는 것인가, 그것을 향해 대폭적으로 계획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와중에 있는 인간을 보더라도, 공식적으로는 분노를 드러내고, 생명을 빼앗는 것을 당연한 일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눈앞에 상대의 가족이 있고, 그들이 즐거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에는, 반드시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역시 타인을 생각하는 기분이 마음 속에 남아 있어, 미움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럼 왜 타인의 생명을 빼앗으려 하고 있는가? 그것은 자신의 본심은 아닙니다. 사람은 아무도 자신과 같은 동료를 죽이고 싶다거나, 부정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인간이라도 같은 형제이고, 동료이며, 함께 지구에 왔다는 생각이 반드시 어디엔가에 있습니다. 비록 종교가 다르고, 민족이 다르며, 국가가 달라도, 같은 인간이고, 이 지구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동료라는 것을 어디에선가는 반드시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한 같은 동료를 왜 미워하고, 목숨을 빼앗는 것일까요? 목숨을 빼앗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아직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가를 알지 못하고, 의지가 약해, 무심코 강한 사람이 말하는 대로 따라 버립니다. 결과적으로 목숨을 빼앗으려고 하는 강한 에너지에 져 버려, 그것이 말하는 대로 따라 버립니다.
확실히, 사람을 사랑하고, 자신의 사랑을 많이 몸에 익혀, 그에 따라 지구를 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태연하게 타인을 부정하는 다른 에너지와 연결된 채로, 사랑을 몸에 익히려 해도, 그것은 실현되지 않습니다. 사랑이라 생각해도, 실제로는 분쟁 가운데에서 만들어진 사랑이고, 우주로부터 본 진실의 사랑과는 거리가 먼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는, 지구를 좌우하고 있는 그러한 지배적인 에너지로부터 완전하게 떠나, 자기 자신의 영혼이나 근원과 연결되어, 다른 에너지의 괴뢰가 아니라, 그리스도로서 한사람 한사람이 행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구를 좌우해 온 큰 에너지의 괴뢰로부터 떠나 신의 동료가 되어, 그리스도로서 직접 지상을 걸어가는 것, 이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인간이 지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새로운 흐름으로 가지고 갑니다.
확실히 지구에는 아직도 경험해야 할 현상이 남아 있습니다. 아무래도 경험하지 않으면 안되는 현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은 다른 세력의 괴뢰가 되어 있는 경우의 현상입니다. 그곳으로부터 멀어져, 신과 연결되어, 그리스도로서 역할을 행하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많아지면, 경험해야 할 현상은 줄어들게 됩니다. 이제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반대로, 기쁨을 가져오는 현상을 그리스도들이 만들어 갑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 지구상에서 무엇을 행해 가는 것일까요? 한사람 한사람,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는 곳,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 있겠지요. 우리는 “아무도 무리해서 특별한 워크를 해 주세요” 라거나 “싫은 사람을 무리하게 좋아해 주세요” 라거나 “괴로운 것을 굳이 경험해 주세요” 와 같이 말할 생각은 일체 없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자신을 컨트롤해 온 커다란 에너지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에 묶여 있는 자신을 깨달아, 그 속박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되어, 정말로 자신이 연결되어야 할 빛과 연결되고, 자신은 신의 일원으로서 지상을 걸어가는 것, 우선은 그것을 행하기를 바랍니다.
“그 사람은 싫다, 이 사람은 이렇게 해야 마땅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러한 관념으로 타인을 컨트롤하거나 세상을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어 가려는 풍조가 있습니다. 이러한 것의 대부분은, 지구를 좌우하고 있는 다른 세력의 에너지이고, 그 흐름을 연기하고 있는 한, 그들의 괴뢰가 되어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로부터 완전하게 단절되고 해방되어 그리스도로서 행동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그것이 그 사람의 마음을 해방하는 것 인가, 그 사람의 마음에 정말로 빛을 가져오는 것인가?” 그것을 잘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입다물고 상대에 맞추어 간다. 강한 것에 거역하면 위험하기 때문에, 적당히 맞추어 간다. 트러블을 일으키고 싶지 않기 때문에, 괴로워도 참는다.” 이것은 다른 세력을 정당화하는 행동이 됩니다. 조금이라도 자신이 그곳에 불합리함을 느끼고, 지구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 있다면, 당당히 표현하고, 말해갈 필요가 있습니다.
확실히 처음에는 무시되고 업신여겨지거나 부정되겠지요. 거기에 져서, 곧바로 상대에 맞추어 버리는 것, 이것이 많은 사람의 패턴입니다. “우선 한 번은 용기를 내 해 보지만, 역시 안 되는 것은 안되므로, 결국은 상대에 맞추어 버린다.” 이런 경험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해 오고 있을 것입니다. 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의 노력은 하지 않는 것인지…. “내가 그렇게 하면서 상처 받거나, 세상을 살아가기 어려울 테니까…” 그렇게 말하겠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속박하고 있던 에너지로부터 나오기 위해서는, 그만한 큰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더구나 자신의 의지로 뛰어들었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로 나올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의지로 그들의 괴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편이 편하기 때문에…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그 편이 유리하니까…."그러한 이유를 붙여, 자신이 직접 뛰어들었습니다. 따라서 그곳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로 나올 필요가 있습니다.
그를 위해서는 큰 에너지가 필요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도우려고 해도, 실제로는 도울 수 없습니다. 스스로 들어간 사람은 스스로 나올 수 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한 번이나 두 번, 잘 되지 않았다고 해서 단념해 버린다.” 그럼 언제 나올 수 있을까요? “입다물고 있고, 가만히 있으면, 언젠가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언젠가는 우주의 동료들이 와, 도와줄 것이다, 언젠가는 세상이 바뀌어 잘 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유감스럽지만, 그처럼 의지가 약한 사람은 지구에는 남을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의 의지로, 강한 힘으로 나온 사람만을 지구는 필요로 합니다. 의지가 약한 사람은 커다란 사악한 에너지와 함께 다른 별에서 배우게 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지킬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몸을 지킬 수 밖에 없습니다.
지구를 구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우선 자신의 몸을 구해 주세요. 지구를 좌우하고 있는 세력의 괴뢰가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한사람 한사람을 만들어낸 그리스도로서 자립하는 것인가? 여러분에게는 이것 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대로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있을수록, 그들과 연결된 에너지가 강해질 뿐이고, 시간이 흘러갈 만큼, 사악한 세력과의 연결의 에너지가 강하게 되어 갑니다.
“눈치챈 단계에서 곧바로 나온다. 눈치챘을 때에 곧바로 에너지를 자르고, 자신의 의지대로 자립하고자 애쓴다.” 한사람 한사람이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커다란 우주의 동료들은, 한사람 한사람이 확실히 빠져 나올 수 있도록 다양한 구조를 만들어,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한사람 한사람이 나오는 것은, 한사람 한사람의 의지와 행동으로부터 일으켜집니다. 의지가 약한 사람, 행동력이 약한 사람은 우리조차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가족이 신경이 쓰인다, 친구가 신경이 쓰인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선 먼저 자신의 몸을 구해 주세요. 자신의 몸이 그들의 괴뢰에 속해 있으면서, 타인을 사랑하거나 사람을 구하려고 해도, 그것은 진실의 사랑과는 결합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말에 항상 속여져, 영원의 사랑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랑에 속고 있는데 지나지 않습니다. 우선은 꼭 본래의 것에 관심을 가져, 자신은 무엇을 해야 마땅한지, 어디로 향해야 할 것인지, 정말로 그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