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똑같은 하루가 계속 반복되기만 한다!'

만일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난 어떤 행동을 할까?
매일 같은 장소에 같은 사람들만을 지겹게 만나면 아마도 죽고 싶어질 것이다.
하루 이상을 더 살 수 없는 답답함 때문에 말이다. 매일 똑같은 날이 끝도 없이
반복되는 챗바퀴 속에 갇혀 있다면... 죽어도 또 죽어도 매일 같은 삶을 살아야만 한다.
그렇다면 죽음을 통해 현실을 벗어날 수도 없는 그 답답함이 밀려들 것이다...

그렇다면, 유일한 선택은 하나! 그냥 그 챗바퀴같은 삶을 '수긍'하는 것이다.
그런 삶이 '왜' 계속되고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다면, 그냥 수긍하고
살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재미'를 나름대로 발견하고 싶어질 것이다.
정확히 정해진 시간에 누군가가 내 앞을 지나갈 것임을 알게 된다면 호기심이 생긴다.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들의 신상정보를 소상히 묻고 싶어질 것이다. 심지어는
그렇게 지겹게 나를 재촉하던 보험설계사의 간청을 모두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터무니없이 생겨날 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과 약자들을 도와줄 때
그 기분이 어떤 것인지 느껴보고 싶어질 수도 있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은 바로 이런 상황 속에 빠진 주인공의 선택을 보여준다.
주인공 남자는 평소에 배울려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배운다. 피아노 연주,
얼음조각...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사랑스러운 여기자에게 접근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려고 시도해본다. "난 신God이에요. 믿기 어렵겠지만, 이 동네 사람들
모두를 잘 알지요... 저사람은 개똥이, 약혼자와 결혼하길 망설이고... 저 사람은 봉순이,
자신이 멍청하다고 생각해요... 이제 5초 후면 접시가 깨질 거에요. (와장창...) 봤죠?
난... 하나의 신 a God이라고요!"

그러나 그런 시도도 소용이 없다. 다음날 아침 6시만 되면 또 같은 날이 전개되고
주위 사람들은 같은 스케줄 속에서 산다. 그럼에도 주인공 남자는 끊임 없이 삶의
재미를 찾아 나간다. 자신이 맘에 두고 있는 여자에게 온갖 특기를 다 보여준다.
그리고 그 여자와 달콤한 하루밤뿐인 데이트를 보낸다. "내가 가장 슬픈건...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다시 당신이 기억을 잃는 다는 거에요..."

그리고 자신이 아무리 신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더라도, 그날 죽을 수 밖에 없는
한 노인의 운명을 자신이 뒤집을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같은 날에 벌어지는
같은 일들을 자신이 아무리 뒤바꾸려 해도 도무지 바뀌지 않는 정체성과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한계는 이 챗바퀴 하루살이를 '신선하고 새로운
내일'로 연장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허식적이고 의례적으로 타인들을 도와주기만 하던 그가... 무언가 가슴 설레는
기쁨으로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쓰기 시작하면서.. 무엇보다도 자신의
연인에게 아무런 '욕심'없이 사랑을 고백하고 밤을 보낸 다음날,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새로운 '내일'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주인공은 한없이
기쁜 마음으로 눈덮힌 마당을 깡총깡총 뛰어 다닌다... 그 날이 자신의 날인듯!


이 영화는 몇가지 가르침을 내게 주었는데... 그건 지구상에 몸을 입고 내려온
고귀한 영혼들이 느끼는 한계점이 모두 비슷한 과제라는 것이다. 다름 아닌,
'기억상실증'과 '지루한 한계에서 오는 무기력증'이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대부분
정말 한명의 신God과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과거 생애에는 부족할 것이 없고
모든 것이 평온하기만 했던 창조자로서 살았다는 점을 기억하지 못할 뿐....
또한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건 매일같이 불만이 되고... 죽고 싶어지고... 죽지 못하면 화가 된다...
삶을 있는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마음을 쓰면서 즐기는 여유를 잃어버리기 쉽게 된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그냥 삶을 '수긍'하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그리고 거기에 한가지 가장 중요한 요소, '사랑'스런 마음씀씀이만 녹아든다면,
우리는 정말 기적같은 새로운 '내일'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영화속 주인공처럼!
여기에는 어떤 욕심도 없다. 그냥 받아들이고 인정한 뒤에, 조그만 일상에서
재미와 사랑스러움을 느끼고 싶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마법과도 같은 변화가
뜻하지 않은 기적적인 순간에 일어난다. .... 한가지 더! 그런 기적적인 순간이
정말로 곧... 시작될 것임을 알고 사는 사람은 삶의 지루함을 창조적인 새로움으로
바꾸기 더욱 쉬울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2004년 6월 마지막날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