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모두는 하느님의 이상을 품고 있는 거룩한 존재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그 분의 이상의 씨앗이 심겨져 있습니다.
우리들의 영혼을 통해 빛나고 있는 이상의 이미지는 결코 분리를 통해서는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를 통해서만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때 모든 사람의 얼굴들속에서 나를 보게 되리라는 그분의 말씀이 실현될 수 있습니다.

저는 어제 그 실현을 체험하였습니다.
두어시간 가량 거리를 돌아다니며, 그들의 겉모습에서 은은하게 비쳐져 나오는
고귀한 이상의 이미지들을 볼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본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제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모든 곳에서 나를 보게되리라는 그분의
말씀속에서 진정한 하나가 무엇인지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분리된 자아를 통해 결코 너희는 나를 볼수없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 모두에게는 하느님이 살아 계시며, 그리고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제가슴에 밀려오는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가 아니라 진실로 살아있는 생명력으로 넘치는 고귀한 하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서로에게서 진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서로에게서 그림자를 보는 시늉을 하고 있을뿐입니다.
빛과 어둠에 대한, 선과 악에 대한 서로를 바라는 생각의 눈은 단지 그림자일뿐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서 진실의 눈을 가리는 장애물일뿐입니다.

가슴으로 표현되어지는 모든 것은 존중받고 허용되어져야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그 자신을 표현하고자하는 열망이 숨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신적인 것이 아니라 너무나 인간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간적인 모습이 바로 하느님이 인간들을 통해 그의 이상을 표현하고자
하는 삶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실수와 성공 그 무엇도 좋습니다.
예언이 실패해도 좋으며, 어떤 비젼이 연기되어져도 좋습니다.
그 모두가 그의 이상을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적인 삶을 통해 연출되어지는데,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존중하고 허용해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모든 것이 우리들 자신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 삶은 서로 다른 길이 아니라 분리와 단절이 없는 하나의 길이 때문입니다.

연약하고 실수투성이 처럼 보이는 인간을 사랑하는 천사가 우리들 모두에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 천사 또한 우리들 자신이며, 실수투성이 인간 또한
우리들 자신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우리들 자신을 허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러한 모든 것을 존중하고 허용할때 분리는 우리들의 삶에서 사라져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