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주의의 위험성 [... Why Is It so Dangerous? ]                   글쓴이 : 익명        
What is Fundamentalism and Why is It So Dangerous?
  
[ 본 글에서 <근본주의>라는 용어는, 기본적으로 기독교 근본주의를 의미하기는 하지만, 무슬림, 몰몬교 근본주의를 모두 가리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먼저, 근본주의는 하나의 “ ~ 주의” 로써 다른 많은 (영지주의, 몰몬교, 제칠일재림교등의) “ ~ 주의”  들과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에 걸쳐 기독교를 병들게 했으며, 위험한 이단이다.

이들 “ ~ 주의” 들은 구세주 중심이 아닌 무엇인가 다른 것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성격지어진다.

근본주의와 연관되는 가장 큰 위험은, 그들의 말이 정말로 그럴 듯하게 들린다는데에 있다. 기독교인들은 수시로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그들의 하는 말은 전부 그대로 받아들인다.

많은 근본주의 목사들은 카리스마적인 지도자 노릇을 하며, 설득력 좋은 달변가들이다. 그들은, 누구나 일생 중에 이루고자 하는, 그런 열정과 사명감과 헌신함을 갖고 있다. 그들의 메세지에 쉽게 감동과 은혜를 받는다.

문제는 그들이 잘못 된 것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앙의 단순화 된 해석, 도덕과 옳고 그름의 단순화 된 개념에 대한 사명감이며, 기존의 것을 고수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데에 대한 사명감이다.

그 결과 그들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을 말하게 된다.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문제, 그리고 삶의 문제등에 대해 해답을 갖고 있는 듯이 보인다. 모든 것이 참으로 간단하고 명확하며 정말 쉬워 보인다.

  
<9/11 테러 공격에서의 종교의 역할>이라는 뛰어난 기사를 쓴 Neilson박사가 질문을 던진다:

“어떤 것이 근본주의가 되게끔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근본주의 세계관이 어떻게 테러 행위에 영향을 주었는가?”

  

그의 기사 중 일부이다 ㅡ

무슬림이든 기독교든 근본주의자들의 최우선 주제는, 이 세상 다른 그 어느 것보다도 우선하여, 하나님을 숭배하고 떠받들며, 두려워하고 복종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하나님보다 나중에 생각한다.

  

이 강하고 의무적인 헌신은, 완전히, 철저히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게 되면, 세상을 흑과 백으로 보게 되고,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의 중간은 있다고 해도 극히 미미한 것이 된다.

  

여기에 얹혀지는 것이 문자주의 성향이다. 만약 성경이 말하기를 노아가 방주를 짓고 온 세상의 모든 동물들을 두 마리씩 태우고, 지구 전체가 물에 잠겨 있는 동안 떠 다녔다고 한다면, 그 일은 실제 있었던 일이 된다.

  

질문은 할 필요없다. 그것은 실제 있었던 일이고, 동물과 홍수와 고대의 선박, 지질학상 기록등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논리적으로 일치하는지의 여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근본주의자의 의식구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요소는 현 시대에 대한 거부감이다. 동 시대에 있어 서양에서의 가치는 신이 매기는 가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꼭 맞지는 않는다. 사람의 의무는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이지,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법은 분명하고 지켜져야 하고 존경 받아야 하며,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그 결과, 사회의 이슈들에 대한 근본주의자의 관점은 보수적일 수 밖에 없게 된다. 근본주의자들은 방송 매체에 나타나는 성, 성의 뒤바뀐 역할, 기타 다른 여러가지 서양 문화를 하나님의 뜻에 전혀 맞지 않고 완전히 벗어난 것이라 해서 심한 혐오감을 갖고 있다. 하나님이 좋아 하시지 않는다. 용서하시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을 열심히 따르는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 중에 그 누가

<이 세상 다른 그 어느 것보다도 우선하여, 하나님을 숭배하고 떠받들며, 두려워하고 복종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하나님보다 나중에 생각한다>

라는 내용에 반대할 수 있겠는가?

  

만약 하나님이 하나님이고, 지극히 높으신 분이고, 전지전능한 창조자이시고,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의 주님이시라면,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외에 우리가 다른 어느 것을 할 수 있겠는가?


근본주의의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그들이 최우선으로 여기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특정의 단순화 되고 한계가 있으며 사람의 머리로 하는 이해이다.

세상이 이전에 항상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그러하기를 하나님이 원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 근본주의자들이 이해하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법은 어릴 적부터 가르쳐진다. 근본주의자들은 그래서 기독교인도 이슬람 교인도 아닌, <그들이 떠받드는 모든 것>을 지키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그리스도를 닮은 것이 아니고 바리새인에 훨씬 더 가깝다.

  

그리스도는 문화적, 그리고 사회적 혁명가로서, 우아하게 사는 상류사회 인간들을 무시하고 종교 율법을 자주 깨뜨렸으며, 소외된 계층과 어울리고, 텅 빈 미신에 가득 찬 사회의 전통과 믿음이라는 것에 전반적인 변화를 꾀하였다. 현대주의자이고 윤리적 상대론자라는 것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린 부분적 이유도 되는 것이다. 만약 그가 21세기의 우리 속에 섞여서 살고 있다면, 근본주의자들은 그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알아 볼 수 없어서, 또 다시 그를 십자가에 매달게 될 것이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믿는 것이 근본주의의 중요한 문제점이다. 그들은 진리를 안다고 믿고 있으며, 그들의 이해가 백퍼센트 정확하며 의심은 가질 수도 없고 양보도 있을 수 없다.

그들의 입장은 < 절대적으로 타협 불가능>이다.

무엇이 옳고 그르며, 무엇이 도덕적이고 비도덕적인지, 그들은 안다고 믿는다. Neilson박사의 지적대로, 이것은 문자주의 성향에서 나오는 것이다.

  

문자주의는 그러나, 그들의 믿음이 가지고 있는 경직성을 변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믿음이 성경에서 문자 그대로 직접 온 것이기 때문에 진리이고, 그래서 의문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배운다. 성경의 해석은 단 한가지만이 허락되며, 그리고 그 한 가지 해석이 자기네가 배운 그 해석인 것이다.

  

  

강한 믿음을 갖는 것은 별도의 문제다. 사람은 누구나, 바꾸거나 재평가하고 싶지 않은 강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사람들은 어차피 무엇인가를 믿으며, 모든 것에 대해 항상 질문을 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들이 자기네들과 다른 믿음을 갖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허용하지 않을 때에, 근본주의는 선을 넘어서게 되고 위험하고 파괴적인 것이 된다.

  

강한 성격의 사람이 자신의 믿음을 양보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다른 믿음을 다른 사람이 믿고자 하는 것을 그냥 둔다고 할 때에는, 그것이 근본주의자들에게는 양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낙태를 살인이라고 믿는 근본주의자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은 용납을 못 하게 된다. 자신들이 낙태를 거부하고 자녀들과 동료들에게도 그렇게 할 것을 가르치는데에 그치지 않고, 어느 누구든지 낙태를 할 수 없도록 법을 통과 시키려는 일에 강박 관념을 갖게 된다. 사실은 많은 생각있는 기독인들은, 최소한 어떤 특정 상황 하에서 만큼은 낙태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본주의자들은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며, 그 사람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나타내는 것을 막기 위해 극단의 방법을 기꺼이 취할 수도 있다 ㅡ 테러 협박을 하고, 낙태 의사를 살해하고 낙태 병원을 폭파하는 등 여러가지 테러 전략을 쓴다.

  

  

근본주의는 종교의 자유에 부합되지 않는다.

  

종교의 자유는 다른 사람들이 다른 믿음을 가질 권리를 존중해 주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를 갖기 위해서는, 비록 나는 그것이 틀렸다고 생각 할지라도, 다른 사림이 그것을 믿을 권리는 존중해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원을 받았다가도 죄에 다시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독인과, 한번 구원 받으면 영원히 구원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기독인은, 서로가 서로의 믿음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불행히도, 미국 건국 초기에는 이 점이 이해되지 않았다. 유럽에서 “나라의 교회”와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박해를 받은 그들은 이 나라에 와서 자신들의 믿음대로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믿음만이 옳은 믿음이라 생각했고,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오기 시작하자, 옛 나라에서 자기들이 당했던 것과 똑같이,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박해 하였다.

  

좋은 예가 버지니아에서의 침례교인 박해 사건이다. 그들을 변호하고 감옥에서 나올 수 있게 해 주었던 패트릭 헨리조차도 처음에는, 버지니아에서 예배의 자유를 보장하는 장치에 서명하는 것에 선뜻 나서지 않고 주저하였다.

  

종교의 자유를 갖는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미국에서 아주 느린 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으며, 아직도 다른 사람의 믿음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은 충분히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이해되어지지 않고 있다.

학교에서 선생들이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교실 한 구석에 조용히 서 있어야 하는 유대인이나 이슬람 어린이의 곤혹과 불편함을 이해하지 못 하는 소위 “기독교인”들이 아직도 너무나 많이 있다.

  
근본주의는 민주주의와 맞지 않다.

  

무슬림 국가들에서 (아야톨라 혹은 탈레반등의) 근본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라.

근본적으로 다른 믿음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동의하지 않을 권리를 인정할 때에 서로 평화적으로 함께 살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다수결의 원칙은 민주주의의 기본 성격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기 쉬운 사실은, 민주주의에서 다수라고 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지속 되려면, 다수는 반드시 소수의 권리를 보호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다수는 반드시, 사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좋은 것에 자신과 자신의 행동을 제한 하여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 나라의 인구 구조에 변화가 생겨서 무슬림이 다수가 되었다고 할 때, 모든 사람이 메카를 향해 하루 다섯 차례 절해야 하는 법을 통과 시킬 수는 없다. 다수로서 법안 통과에 필요한 찬성표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법을 통과 시킨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일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가 지속 되려면, 다수는 자기네가 소수일 때 대접 받고 싶은대로 소수를 대접하여야 한다. 근본주의자들은 그렇게 하질 않는다. 그들에게는, 그들과 다른 믿음을 갖고 다르게 사는 사람들은 잘못 된 것이고 <하나님이 좋아 하시지 않는다. 용서하시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을 열심히 따르는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근본주의는 기독교와도 맞지 않는다.

  

기독교는 자유의 종교이다. 기독교는 관용과 다양성의 종교이다.

기독교는 모든 시대에 모든 문화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종교이다.

  

근본주의는 문화적 동질성과 고정된 행동 양식, 그리고 사회적 상호 교류를 통제하는데 있어서의 변할 줄 모르는 전통과 규정에 전념한다.

  

남의 나라 남의 문화에 가서 그곳 사람들에게 서양식 옷을 입게 하고 헌금 봉투에 뭐라고 쓰는지 가르치는게 기독교가 아니다.

  

근본주의는, 죄를 보면 그것을 힐난하고 “옳은 것”을 위해 버티고 서 있는 것에 관한 것이다.

  

성자를 위하는 것과 똑같이 죄인을 위하는 것이 기독교이다.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 요소를 이해하고, 자신과 가족 친지에게 해를 입히는 사람들을 치유와 용서로 인도하는 것이 기독교이다.

  

  

  

근본주의자들은 자기네들이 기독교의 근본을 지킨다는 것을 우리보고 믿으라고 하겠지만, 아니다.

그들은 자기네들의 위치와 문화와 권력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에 근본이 있고, 많은 근본주의자들이 기독교의 근본의 일부 혹은 전부를 지키고는 있다, 그러나, 기독교와 비슷해 보이는 이 유사성이 바로 근본주의를 그렇게 위험하게 만드는 점이다.

  

  

  

오늘 날 세계에는 세 가지 형태의 주요 근본주의가 있는데, 기독교 근본주의, 이슬람 근본주의, 그리고 몰몬 근본주의가 그것이다. 모두가 가부장적이고, 모두가 비슷한 사회적 지침을 아래와 같이 채택하고 있다.

  

  

인종 차별과 분리

  

이슬람 근본주의는 유대인을 혐오한다

  

몰몬 근본주의는 흑인을 하등 동물로 취급한다. 인종간 결혼은 사형감이다.

  

기독교 근본주의도 인종간 결혼에 반대하며, 일부는 백인 우월주의와 재건 그룹에 연관되어 있다.

  

  

  

여성의 예속화

  

이슬람 근본주의는 여자를 재산으로 취급하며, 여자는 자식을 낳아야 천국에 갈 수 있다.

  

몰몬 근본주의는 일부다처제를 명령하며, 여자들은 그에 대해 말 할 권리가 없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여성을 목회자로 임명하지 않는다. (최소한 국내에서는 그러하며, 외국에 나가서 선교사 노릇을 할 수는 있다.) 남자를 가르치거나 감독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남자가 참석하는 집회에서 연설을 할 수 없고 심지어는 기도조차 못 하는 경우도 있다. 남편에게 절대 복종하여야 한다.

  

  

  

폐쇄적인 성 윤리

  

이슬람 근본주의는 남편에 대한 여성의 봉사 의무를 특히 강조한다. 혼전 관계나 성 윤리에 관계된 다른 지침을 어길 시에는 가혹한 벌을 받는다.

  

몰몬 근본주의에서는 모든 성적인 활동을 지도자가 통제한다. 당신이 맘에 안들게 행동하면, 당신의 마누라와 아이를 빼앗아 다른 남자에게 줄 것이다. 혼전 관계나 혼외 정사에는 가혹한 벌이 따른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성 도덕 위반시 감옥에 넣거나 벌금을 물린다.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의 집에서 성행위를 갖는 것 조차 금지 시키는 법안을 세울 것을 주장한다.

  

  

  

  

근본주의는 두려움에 근거한 어둠의 종교 분파일 뿐이다.

근본주의는 종교의 자유와 맞지 않다. 민주주의와도 맞지 않는다.

  

커져만 가는 근본주의는 그리스도의식의  영성과 사회와 나라와 우리의 자유에 위협이 된다.
근본주의의 위험을 폭로하기 위해 모두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