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헌님 글입니다. 양해 부탁드림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수행에 임해 봅시다.



믿음론이 이제는 수행법이 나오는 단계까지 갔나 의심이 가지만, 저로써도 여러분들께 수행법을 전해 드리고, 그 공덕마저도 받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 합니다. 한톨의 공덕이라도, 응원이라도 필요가 요즘 같습니다.

약한 소리를 하는 듯하지만, 호사다마라 하였습니다. 저를 좀 응원해주시고, 기도를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이 수행법은 아래의 믿음론들을 읽고 이해했다는 가정하에서 쓰겠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미세한 믿음의 차이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에너지라는 것이 뭔가 특별한 것으로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복잡할 수록 수준이 낮은 에너지에 해당할 뿐입니다. 깨달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팔만사천가지의 법이 다 무엇입니까? 가장 간단한 것이 진리일 것입니다.

수행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주요 정신인 쉬운 진리.......이러한 성질이 수행법에도 미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어떤 경우에도 진리는 쉽게 이해될 수 있게 풀어야 하며, 수행도 쉬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확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쉬움에 있어서도, 그 완성도에 있어서도 말이죠.

정신이 중요합니다. 믿음이 실상이라 하였고, 그 생에 다 못이루더라도, 그 믿음만은 반드시 어느생에서든지 이루어 진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천대받던 소리꾼, 기생, 광대들이 이 시대에는 스타로 대접받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의 이러한 정신, 믿음이 비록 이 생에서 꽃을 못피운다 할지라도, 반드시 꽃은 피고 열매는 맺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에너지의 생성은 믿음의 변화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너무나 황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예전에 단전호흡을 한때나, 기도를 할때나, 참선을 할때와는 너무나 차이가 나는 수행법입니다. 믿음의 다스린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그때부터 자신의 영혼을 컨트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영혼을 컨트롤하고, 움직이고, 성장시켜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왜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해보지 조차 못했을 까요?

그것이 바로 의식과 잠재의식의 수준차이 때문입니다. 어릴때는 영혼을 스스로 어느정도 컨트롤할 수 있었던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스스로 영혼을 어느정도 느끼고, 그것을 컨트롤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영혼이 하는 일도 어느정도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여러가지 이유로 저는 완전히 껍데기 뿐이 되어 버렸습니다. 영혼의 호흡같은 것은 없는 그저 육체 뿐인 의식뿐인 존재가 되어 버리고, 공부만 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믿음론의 독자여러분!

변화가 도래할 것입니다. 분명 여러분들이 저보다 수행에 있어서, 더 나은 상황일 것입니다. 저는 너무나 많은 문제들을 가져왔었고, 그것들을 해결해 오고 있지만, 아직 많은 문제가 저를 붙잡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여러분들의 작은 기도라도 필요할 것입니다.

분명 변화가 도래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믿음의 시스템의 이해와 이 이해를 통해서 스스로 믿음의 시스템을 변화시킴으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변화가정에서 너무나 많은 착오와 실패를 격었습니다. 희생을 치렀습니다. 한 3년이 그러한 과정에 쓰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저의 희생과 실패의 결실을 보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시스템이란 영혼의 시스템이며, 뇌와 영관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행동의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것을 변화시키는 과정은 자칫잘못하면, 어려움을 낳았습니다. 쉬운듯 하면서도 곤란한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결과(물론 이것이 완벽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제가 급해서 먼저 내 놓는 것입니다. 어느정도 도움을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 입니다) 단순하고 간단합니다 만 그 본모습은 대단한 변화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영혼의 성장과 컨트롤이 가능하게 되실 것입니다.

우리는 순수한 믿음을 스스로 만들어 본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바로 이것이 우리의 너무나 큰 맹점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의식의 차원에서만 머물고 잠재의식으로의 전이를 해 내지 못한 원인이었습니다. 왜 우리는 아무런 조건없이 스스로 무언가를 창조적으로 믿어 보지를 못했단 말입니까?

왜 자신의 믿음에는 근거가 있어야 했고, 근사하고, 휘황찬란한 무언가가 있어야 했습니까?

그것은 믿음의 시스템에 대해서 무지해서 일것입니다. 믿음이 에너지며, 믿음이 실상이되며, 믿음이 운명을 만드는 원리에 대해서 몰라서 믿음에 대해서 창조적인 입장을 취해 보지를 못한 것이고, 항상 확인에 의지해서 얻고, 인과에 의지해서 얻어온 것입니다. 기분좋음의 상태를 무언가 확인해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분좋음이란 무엇입니까? 행복과 가까운 궁극적인 목적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것을 왜 우리는 항상 무언가 다른 것에 의지해야 얻을 수 있었단 말입니까? 아니 그렇습니까?

즉 ~ !

주종이 바뀌어져 있는 것도 우리는 모르고 살아 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색즉공을 말하고, 전체 곧 허상이다는 것을 말하면 무엇합니까? 현실에서 연결이 안된다면 말입니다. 솔직히 출가하지 않고서, 속세에서 도를 운운한다는 것은 더더욱이 현실의 변화로 연결한다는 것은 어렵디 어려운 일이며, 탁상공론에 해당될 일입니다.

하지만 시간은 절간에서든 아파트 안에서든 가고, 우리는 곧 죽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는 진리를 접하고, 깨닫고, 수행을 해야만, 이 육도윤회의 사슬속에서 몰라서 당하는 고통의 고리를 끊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선은 알기만 하면 됩니다. 알기만 하면 그때부터 아주 긴시간의 스케줄이 짜여 질 것입니다. 믿음이란 믿음속에서 전지 하고 전능합니다. 비록 불신때문에 금방 일어나는 변화는 아니라도, 믿음은 배신하지 않고서 결과를 믿음이 바탕이 이세상속에 드러낼 것입니다.

지금 믿음론을 읽는 독자분들은 언젠간 어느생에선간 완성된 믿음론을 접하게 되실 것이라 믿는 바입니다. 큰 수레가 돌아가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믿음의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운명의 수레....한 생을 돌리는 수레이자 여러생을 돌리는 수레이자 영원을 돌리는 수레를 말입니다.

삶속에서 확인이 중요합니까? 믿음이 중요합니까? 이를 선뜻 말씀 못하시는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주종이 바뀐 때문입니다. 믿음이 확인을 지배해야 하고, 더 우선해야 할 것을 확인이 믿음을 끌고 다닌 현실입니다. 오랫~돈안 말입니다. 아니면 믿음론을 읽지 않았다면 평생을 그럴 수도 있을 것이며, 읽고도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먹어야 에너지 생기는 것인줄 알고, 사랑한다는 소릴 들어야 사랑이 있음을 알고, 사치를 해야 부유한 것을 알고,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저의 소리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현실이 그렇습니다.

다시 묻습니다. 확인이 중요합니까? 믿음이 중요합니까? 확인이란 믿음을 위해서 쓰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확인이 아무리 많아도 믿음이 없으면 헛것입니다. 껍데기란 말입니다. 육체가 아무리 쾌락에 닿을 만한 일이라도, 정신적인 맘적인 여유가 없으면 쾌락이 실제로 생기지는 않습니다. 먹고, 마시고, 자고, 성교를 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껍데기 뿐이고, 실제적인 쾌락은 맘적인 받침, 정신적인 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쾌락을 실제로 느끼는 것은 맘이란 것입니다. 육체는 도움에 불과한 것입니다. 기분좋은 상태 즉 행복한 상태가 목적이라 할때에 우리는 무언가 성공이 필요하고, 무언가 연인이 필요하고, 무언가의 과정과 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거추장스럽고 휘황찬란 한 것들은 오히려 방해만 됩니다.

정말 시장할때에는 여러가지 진수성찬이 많은 것 보다, 입에 맞는 한가지만 있는 것이 더 맛있습니다. 처럼 단순해 지는 것이 오히려 자신의 영혼을 똑바로 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기분좋은 상태를 위해서 그것을 그냥 믿는 것은 아무래도 한번도 안해 보셨을 것입니다. 이러한 시스템의 부재! 이 것이 바로 그동안 한번도 영혼을 스스로 성장시켜 보지 않았고, 컨트롤해 보지 않은 이유라고 저는 지금 말하고 싶습니다. 조금은 어이가 없을 것입니다.

큰 변화는 지금 시작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확신합니다. 그동안 꽁꽁 틀어 막혀 있던 믿음의 한 루트가 트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에너지의 루트, 영혼의 루트 말입니다.

성공을 확인하고, 연인의 이벤트를 확인하고서 얻는 기분좋다는 믿음의 상태보다, 지금 우리가 아무것 없이 그냥 기분좋다는 믿음을 창조해서 얻어지는 기분좋다는 믿음의 상태가 더 크다고 말씀을 드린 다면 .........

사실 신념의 마력을 실행해 보면, 처음 상상할때가 가장 좋습니다. 확인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그러한 껍데기를 의지해서 믿음을 얻으려 한다는 것은 정말 주종이 바뀐 구차스런 일에 불과 할 것입니다. 현실 도피적이고, 현실 외면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엄청나게 많은 실패와 오류를 격은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죽으며, 인생이란 확인의 시스템에 불과하며, 영원을 사는 것은 바로 우리의 영혼 즉 우리의 신념입니다. 이 신념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믿음의 시스템을 관리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정말 해야될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곧 우리의 주체가 믿음이지(영혼), 확인(육체, 인생, 성공)이 아님을 알 것입니다.

지금 이 글에서 쓸 저의 수행법이란 바로 확인을 거치지 않고서 바로 믿음을(영혼을-에너지를) 생성시키는 것입니다.

단전호흡이나, 참선과 같은 것에 비해서는 너무나 간단하고, 수행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정확히 이해하고서 수행하면 이것 보다 확실한 것은 또한 없을 것입니다. 간단하고, 쉬운 것이 더 진리에 가깝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행복하다라는 믿음을 지금 이순간 아무런 이유없이 믿어 보십시오. 눈을 감고, 되뇌이면서 행복이라는 믿음을 창조해 내어 보십시오. 그 믿음은 잠재의식으로 갑니다. 왜냐 순수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왜 영혼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되는지를 말입니다?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 부디 오래 이 카페에 남으셔서 많은 글과 믿음론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아무런 이유없이 믿음을 스스로 창조해 낼 수 있는 것이 곧 스스로 영혼을 성장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창조한 믿음은 분명 존재하며, 그것은 마치 최면을 통해서 의식의 껍질을 벗기고 암시를 통해서 잠재의식에 믿음을 심은 것과 비슷한 차원의 믿음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도 생생히 깨어있는 상태에서 말입니다. 이 것은 기도의 원리와도 비슷하지만, 기도의 원리를 더 깊이 파헤치고, 더 근원적으로 영혼의 루트를 찾아서 내 놓은 수행법인 것입니다. 아무리 단전호흡을 오래하고, 지식(숨참기)를 오래해도, 이렇듯 쉽게 형성한 믿음으로 나타나는 에너지에는 닿지조차 못하는 것입니다.

행복, 건강, 사랑, 깨달음... 스스로 우선은 업을 한번 만들어 보십시오. 업이라는 것은 다음생에 받을 것이라, 업이라기 보다는 운명이라 해야 겠군요. 이번생에 곧 닥칠 운명을 스스로 제조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 운명을 움직일 영혼도 같이 클 것입니다.

그리고써 차차 깨달음으로 가는 거 세련되고, 더 분명한 수행법을 만나 보도록 합시다. 그것은 분명 이 보다도 더 이해가 쉽고, 실천도 쉬울 것입니다.


                                  진실과 미스테리에서 옮긴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