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도 개천절을 맞이하여 한국의 민족적 혼의 상징과 관련된 에너지적인 연결이 있겠습니다.

지난 메시지(한국, 한국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서 언급된 것의 연장선입니다.

2007년도 개천절의 의미는 남다른 면이 있습니다. 한민족은 고대로부터 하늘이 열리는 행사를 해왔던 민족입니다. 하늘이 열린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보이지 않는 비물리적 세계, 하늘의 영역이라고 하는 부분과 지상에 살고 있는 존재들의 에너지가 만나는 날을 의미합니다. 과거에는 이런 날들이 특정한 날에 특정한 에너지들이 결집되고 모아지면서 연결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00년도를 전후한 시점부터는 정해진 날이나 특정한 때에 하늘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항상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항상적으로 하늘이 열려 있는 세상을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물론 이것은 에너지적인 측면을 이야기합니다.

여태까지의 세계나 시간 과거의 경험 속에서 항시적으로 하늘이 열려져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새로운 에너지권이 지상에 뿌리를 내리고 발을 딛게 되면서부터 항시적으로 하늘이 열리는 경험을 많은 존재들께서 해오셨지요. 실은 이러한 하늘이 열리는 경험이 한민족이나 한국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지요. 전 세계적으로 걸쳐서 누구나 자신의 본연, 신성, 또는 근원, 근본이라고 일컬어지는 모든 것들이 발현이 되면 누구나 다 각자 자신의 하늘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2007년도의 개천절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큰 획기적인 사건이지요. 양자적 도약이라고 하는 것이 변환의 터널을 넘어가는 것이라고 했을 때 누구나 자신이 의도하거나 자신을 열려고 한다면 하늘을 여는 것과 바로 연결이 되는 시대가 된 것이지요.

이 시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이라고 하는 것이 진행되는 시기적 특수성이 있지요.

남북정상회담이라고 하는 것은 이원성의 세계라든가 기존의 지상의 메트릭스계에서의 첨예한 상징적인 요소인데, 그 남북한이 본격적으로 만나서 뭔가 시도를 한다는 것은 기존의 메트릭스계를 넘어서는 인간사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 부분이 앞으로 어떻게 얼마만큼 확장되어 질 것인가는 잘 모르는 일입니다. 여기에 관련되어진 에너지들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서 그로 인해서 펼쳐지는 여러 에너지들 간의 충돌과 갈등, 그리고 표출된 에너지의 흐름이 일어난 후에야 그 모습이 드러날 수 있겠지요.

현재로서 예상될 수 있는 것은 과거에 남북정상회담에 비해서는 상당히 진일보한 측면의 내용적 합의들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남북 정상이 원한다기보다는 한반도를 둘러싼 한국인이나 한민족의 이해와 염원, 바램이지요.

물론 현재의식적인 면에서 볼 때 남북한이 만나서 통일을 이루거나 하나 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갈등들이 있고, 갈등을 표출시키는 과정에서 이런 회담 자체를 반대하거나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표현되는 에너지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에 대해 배척이나 거부감을 갖기보다는 그 분들이 왜 그러한 지점에서 반대나 거부하는 의지를 표출하는가? 그 내면에 깔려 있는 에너지에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분단을 겪은 존재로서 갖는 굉장히 깊은 내적인 상처 속에서 이런 배척이나 거부감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분단을 경험하지 않았던 존재들은 정상회담이나 통일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분단으로 인한 또는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 속에서는 전쟁이나  분단의 과정을 체험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이것을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직접 경험한 세대들은 소용돌이치는 에너지의 한복판에서 이것을 겪었기에 자신의 문제와 이것을 떨어져서 바라보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정상회담이나 통일에 대해 반대하거나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분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들어주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이념적인 갈등으로는 우익이다, 좌익이다 급진적 좌파라고 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경험했던 존재들이 그들의 아픔이나 상처가 충분히 드러날 수 있도록 그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랬을 때 실은 함께 풀려날 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현재 표출되는 표면적인 의식 자체에 초점을 맞추지 마시고 그들이 내보내는 내면의 에너지에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표면적인 갈등, 대립을 넘어서기 상당히 어렵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과정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 되겠지요.

통일이 되거나 하나 됨으로 가는 과정 속에서 보면 제일 어려운 부분들이 실지로 이것을 경험한 세대들이 상처나 고통과 아픔을 강력하게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좀 더 강력하게 드러내어질 때 통일이나 하나 됨으로 가는 길이 좀 더 순탄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한 면에서는 정상회담을 둘러싸고 이런 에너지들이  표출되는 기회나 계기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07년도의 개천절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할 첫 번째 요소입니다.

두 번째는 분단이후에 북쪽 측에서 겪었던 에너지 영역입니다. 북쪽의 존재들은 내적으로 어떤 고립감, 봉쇄된 체제 속에서 세계에 대한 심각한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닫힌 세계 속에서 살고 있던 존재들은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이 알려질 경우 그 넓은 세계로 하루아침에 빗장을 열어 놓는다고 해서 쉽게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열린 세계에 대한 두려움…….

직접적으로 그것을 경험하기 전에는  바깥세계를 알 수가 없습니다. 저 바깥세계가 진짜로 안전한 곳인가? 이런 부분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먹고살기 어렵다거나 힘들다하더라도 실은 일정하게 닫힌 공간에서 사람들은 표면적으로 심리적 안정성이라고 하는 것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요소에서 보면 열려진 세계라고 하는 것은 반대로 굉장한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실은 북쪽에서 남쪽이나 다른 나라에서 갖고 있는 선의나 호의를 100% 받아들일 것이라고 단정 짓고 다가가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수십 년을 닫힌 세계 속에서 끊임없는 내적 통일성을 다져가면서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내적 통일성이 강하다고 하는 면이 어떤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점이 북쪽에 다가설 때 유의해야 할 요소입니다.

예를 들어 닫힌 세계 속에서 살고 있던 어린아이가 낯선 사람을 만날 때 갖는 것은 일차적으로 두려움입니다. 그것 때문에 실은 낯선 세계를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되고, 설령 좋다고 판단하더라도 두려움이 앞서기에 움츠러들고 적극적으로 교류하기 어렵게 됩니다. 안심하고 자신의 문을 스스로 열고나올 수 있는 분위기나 그런 에너지로 만나지 않는다면 상당히 어려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지금에서 제일 크게 부각되는 에너지 영역입니다.

이 두 가지 요소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이후 진행되거나 합의된 정도가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전 지구적으로 봤을 때 남북정상회담을 둘러싼 현재의 에너지 고리들은 확장의 영역에 있습니다. 남북한의 정상회담으로 열어지는 확장의 영역은 단순히 남북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다 알고 계실 겁니다. 보다 넓은 세계, 보다 열려진 세계로 나아갈 때  하늘과 인간이 연결되며 확장되는 측면 또한 같이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갈 때 자신 안에 내적으로 갖고 있는 두려움이 있는 반면에 밖에서는 안으로 치고 들어오려고 하는 부분에서 힘(압력)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어떻게 바라보고 풀어내느냐에 따라 열려지는 정도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영역이 남북한을 통해서 대표적으로 연출되고 있는 에너지 영역입니다. 표현이 좀 애매할 수 있지만, 북한이 어느 정도 열려지느냐는 것은 현재 지상에 살고 있는 존재들의 열려진 정도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쪽도 마찬가지 입니다. 현재 남쪽에 살고 있던지, 세계 어느 곳에 살고 있던 지간에 자신을 온전하게 여는 것이 자신의 우주와 자신의 하늘과 연결되는 정도라고 볼 때 남한과 북한 사이에 스스로 여느냐 열려고 하느냐 하는 이런 에너지의 표출이 같이 맞물려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현재 에너지 수위가 양자적 도약으로 명명되었던 시기 이후로 같은 흐름을 타고 있다는 측면에서 하나의 큰 사건이면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얀마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어떤 사회나 시스템이 더 이상 눌려진 상태로 그 틀을 유지하면서 갈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살면서 영이 육체에 갇히는 경험을 우리는 무수히 해왔습니다. 그 경험 속에서 강제와 고통이라고 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경험을 하게 되는데 강제와 고통이라고 하는 것이 체제나 제도,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으면서 지속적으로 힘이나 압력으로 누르는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물론 사회적 제도라는 것이 사회적 합의를 거치고 사람의 요구를 모아서 만들어진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이 내적으로 갖고 있는 영의 의지들이 더 이상 기존의 사회 제도나 닫힌 시스템에 의해 눌려지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에서는 한 존재가 자신을 전차원의 우주와 연결을 시켜냈을 때 모든 사회적 제도, 장치, 자신을 둘러싼 에너지 시스템 등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하나의 사건을 통해서 누가 무엇을 열려고 하느냐의 측면에서 남북정상회담이나 미얀마사태를 바라봐 주셨으면 합니다.

2007년도 개천절을 전후하여 남북정상회담과 아시아권의 미얀마사태를 연결해서 보았을 때 새에너지가 지상에 깔려서 가속화되고 확장되는 면에서 대표적인 두 가지 사건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2007. 9.30 )

출처 :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아이들  http://cafe.naver.com/newchildren.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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