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앞장에서, 나는 여러분이 지구라고 부르는 이 작은 행성에 육화해 있는 한 개인으로서, 여러분이 직면해 있는 현실에 대한 이해를 전해주고자 노력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현재 직면해 있으며, 과거 여러 생에 걸쳐 오랫동안 마주 해오고 있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비교적 간단한 설명을 통해 마음, 즉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마음에 호소해 왔습니다.

하지만 나의 전(全) 존재에 대해 여러분이 더 많이, 그리고 충분히 체험하지 않게 하고, 나는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 마이트레야는 마음보다 더 큰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는 지구에 살고 있는 영혼들에 대해, 이 고향 행성 자체에 대해, 심지어 진실로 살아 있는 존재인 지구 어머니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지니고 있으며, 이 고향 행성에서 성장하고 있는 - 혹은 선택에 따라, 성장하지 않고 있는 - 진화하고 있는 존재들에 대해 균형과 비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이들이여, 나, 마이트레야는 진실로 내 가슴의 사랑으로 여러분을 맞이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지구에서 진화하고 있는 존재들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나는 여러분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를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로, 하늘에 계신 외적인 하나님으로, 심지어 하늘에 계신 분노하는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는 종교적인 전통 속에서 성장해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이들이여, 여러분들 중에는 하나님, 즉 하나님 아버지라는 인물(figure)에 대해 어떠한 사랑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일부는 운 좋게도, 하나님의 여성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보아왔으며, 그 존재가 성모 마리아가 될 수 있으며, 아니면 동양에서 숭상하는 여신들 가운데 한 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적어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보다 균형 잡힌 방식으로 체험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 창조주께서 여러분의 존재를, 여러분의 알파의 정체성을, 여러분의 의식적인 자아를, 그리고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바위 위에 쌓아온 오메가의 정체성을 무한히 그리고 조건 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닫는다면, 여러분의 사랑은 충만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여러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잠시라도 체험할 수 있다면, 그 사랑으로 인해, 여러분은 완전히 바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하위 몸체들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원성적인 의식의 모든 요소들은 떨어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에고도 사라지게 될 것이며, 여러분은 창조주라는 존재와 완벽하게 하나가 되는 느낌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내가 설명한 것처럼, 여러분의 의식적인 자아는 진실로 창조주 자신의 존재께서 개체화한 분신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유의지를 지닌 개별적인 영혼들을 창조하시고자 결심하셨을 때,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듯이, 창조주께서는 정말로 “이것은 너희를 위해 찢긴 내 몸(고린도전서 11:24)”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몸”, 하나님의 의식, 하나님의 존재는 수많은 조각들로 찢겨져, 수많은 개별적인 영혼들로 창조되었으며, 이 모든 영혼들은 형태의 세계 속에서 하나님을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구 행성에 육화해 있는 여러분은 지구에 존재하는 하나님 몸체의 일부이며, 나는 단지 창조주께서 여러분의 개별적인 존재에 대해지니고 계신 무한한 사랑과 여러분 각자가 다시 개별적으로 연결되기를 바랄 뿐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지구에 육화해 있는 하나님의 몸체의 가치 있는 일부로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개별적으로 이것을 받아들일 때, 여러분은 집단적으로도 함께 할 수가 있으며, 그렇게 되면, 보병궁 시대의 성령에 의한 진정한 공동체, 조건 없는 사랑의 참된 공동체, 마이트레야와 하나가 되는 참된 공동체를 형성할 수가 있으며, 모든 개인들은 하나님의 몸체 속에서 하나의 일부로서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내가 당초 에덴동산에서 이루고자 했던 것은 모든 존재들이 사랑받고 있으며, 더 큰 전체의 일부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최대로 가질 수 있게 하는 그러한 공동체였습니다. 불행히도, 동산에 있던 일부의 영혼들은 추락한 의식을 버리고, 하나가 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의식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나는 보게 되었습니다. 애석하게도, 나, 마이트레야와 하나가 되는 곳이었으며, 보호구역이었던 에덴동산을 이러한 영혼들이 떠나기로 결정하면서, 심지어 일부의 순수한 영혼들을 끌어당기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에 대해 내가 지니고 있던 사랑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존재들이 떠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성한 아버지의 대리인으로서, 에덴동산에 있던 나는 실제로 아버지의 사랑을 표현했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분리의 환상 속에 갇히게 되면, 창조주라는 존재를 체험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분리의 환상 속에 일단 갇히게 되면, 의식적인 자아는 자신이 창조주의 존재께서 확장하신 분신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됩니다.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여러분이 나왔던 창조주라는 존재의 온전함에 어떻게 다시 연결될 수가 있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사랑하는 이들이여, 분리 의식 속에 갇히게 되면, 여러분은 높았던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고 난 후에 남게 되는 물웅덩이와도 같은 신세가 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자신을 물웅덩이라고 여기게 되며, 여러분이 생명의 강으로부터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강물을 따라, 근원으로 되돌아가게 되면, 여러분은 자신의 근원이 창조주 그 자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지금까지 내가 할 수 있었던 역할은 내가 보살폈던 많은 영혼들이 분리의 길, 즉 죽음의 길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 외에, 달리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들을 멈추게 할 수가 없었으며, 실제로 멈추기를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내가 아버지의 의식, 즉 아버지의 사랑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이 말은 창조주께서는 자신의 분신들이 생명의 강과 분리되는 것을 허용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에 대해, 창조주께서는 어떠한 슬픔도 느끼시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이여, 하나님의 온전한 의식을 지니지 않은 존재로서, 나는 실제로 어떠한 슬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상실감을 느끼는 소유적인 사랑에서 나오는 인간적인 슬픔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슬픔은 하나됨의 세계(Sphere of Oneness)로부터 분리되는 영혼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명확하게 보고 있는 데에서 나오는 더 큰 슬픔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를 대신함에 있어, 나는 아버지의 사명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분리의 길을 따르는 존재들은 갈등과 고통만이 가득 차 있는 미래를 맞이하게 되면서, 자기 스스로를 책망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나는 명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혼들은 절대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자립에서 오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존재들을 끌어올려야 하는 스승으로서, 나는 허탈감과 슬픔을 지닌 채, 이러한 존재들이 내가 그들에게 제공했던 선물, 즉 하나가 되는 길(Path of Oneness)이라는 선물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이여, 마음속으로 여러분은 어떠한 것도 잃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반드시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본래의 영(lifestream)이 계속 존재하는 한, 영이 마음을 바꾸어, 생명의 계단을 다시 위로 오르기로 결심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확실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은 언제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바꾸기로 결심할 때, 얼마나 오랫동안 이원성이라는 시공간을 여행했느냐 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나는 그곳에 있을 것이며, 두 팔을 벌려 여러분을 사랑으로 맞이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아시다시피, 거짓된 스승들, 추락한 존재들 그리고 거짓된 신들이 주로 사용하는 책략은 여러분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면, 그러한 잘못을 절대로 만회할 수 없다고 믿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해 여러분이 어떠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지닌 적이 있다면, 의심을 품은 적이 있다면, 하나님에 대해 무신론적인 개념 혹은 기타 잘못된 개념들을 지녔었다면, 이들은 여러분이 하나님에게 돌아갈 수 없다고 믿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에 대해 여러분이 행한 것 혹은 믿었거나, 말했거나, 생각했거나, 느꼈던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계시므로, 이들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믿게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내면적으로는 이것이 거짓말과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이 책을 끝까지 읽기를 바라며, 이러한 환상은 여러분이 마음을 바꾸지 못하도록, 그리고 하나가 되는 길(Path of Oneness)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들이며, 하나가 되는 길이야말로, 고향인 아버지의 나라로 여러분을 확실하게 데려다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과거에 무엇을 했든, 그리고 무엇을 생각하고, 느꼈든 관계없이, 여러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과거, 현재 혹은 미래에, 여러분이 하나가 되는 길에 합류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하나가 되는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은 말 그래도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과거를 버리고자 한다면, 나를 비롯한 기타 모든 상승한 존재들은 여러분이 과거를 버리고, 참된 정체성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여러분이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협조를 제공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참된 정체성은 여러분의 신적 자아 속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물질세계에서 일어난 어떠한 것도 이러한 정체성에 영향을 미친 적이 없습니다. 나의 진정한 바람은 여러분이 추락한 의식과 추락한 의식이 주장하는 것, 즉 여러분이 영원히 길을 잃을 수 있으며, 분노하는 하나님이 자신의 나라로 여러분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므로, 지옥에서 영원히 불탈 수 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란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존재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만든 지옥으로, 그리고 추락한 존재들이 만든 집단적인 지옥으로 보내는 존재들은 바로 자의식을 지닌 존재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존재들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존재들은 아마 자신들이 용서받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너무 자만하여, 어떤 것에 대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환상으로서, 에고의 마음으로부터 생겨나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환상들을 꿰뚫어보고, 이것들을 버리고자 한다면, 마치 바울(Paul)이 다마스쿠스(Damascus)로 가는 길에서 눈부신 불빛과 마주쳤을 때,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듯이 (사도행전 9:18), 이러한 것들은 말 그대로 눈 깜빡할 사이에, 여러분에게서 사라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했으며, 기독교인들을 죽이도록 선동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하지만 바울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꿈으로써, 그는 그리스도의 으뜸가는 제자들 가운데 한 명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요한계시록 3:16)”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이 말의 의미는 여러분이 차다고 할지라도, 즉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래도 여러분은 자신의 삶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미지근하다면, 즉 자기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결심하지 않고, 자신과 자신의 믿음에 대해 점검해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는 그와 함께 일할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많은 일반 대중들처럼, 충분히 행복하지도 않고, 충분히 불행하지도 않는 검토되지 않는 삶(unexamined life:돌이켜보지 않는 삶)을 계속 살아가게 될 뿐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스스로 마비되었거나, 이 지구에서 볼 수 있는 상황들로 인해 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상황들을 진실되게 점검해본다면, 이 행성이 제공해주는 것보다, 삶에는 반드시 더 큰 것이 존재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논리를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한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불완전한 행성을 창조하셨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사랑하는 이들이여, 이것(검토되지 않는 삶)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으며, 따라서 삶을 살펴보고자 사람들은 반드시 더 큰 것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인식과 더 큰 것을 찾고자 하는 열망에서, 진보, 즉 하나가 되는 길(Path of Oneness)을 시작해야 하며, 따라서 불완전한 것들, 그저 그런 것들에 더 이상 만족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원성이라는 어둠 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실을 원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 KEY 33 : 모든 피조물들에 대한 온전한(non-dualistic) 복음 설교 (1/4)|작성자 목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