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궁지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부의 사람들이 법칙 위에 존재한다는 개념이 완전히 틀린 생각, 즉 이원성적인 의식에서 생겨난 환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뿐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시지 않으십니다. (사도행전 10:34) 그리고 하나님의 법칙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의식이라는 결혼 예복을 입지 않으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2:11-12)


이원성적인 의식으로 생각해낼 수 있는 어떠한 계획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으므로,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을 속일 수 있는 방법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원성적인 의식이 상상의 세계(fantasy world)를 창조하여, 사람들 위에 엘리트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원칙들을 정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에만, 비로소 이러한 덫을 꿰뚫어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척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으며, 지구에서 여러 조건들을 만들어서, 그러한 세속적인 조건에 따라 살아가기만 하면, 천국으로의 입장이 보장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종교에서의 위선은 모든 틀린 생각들 가운데서도 정말로 가장 큰 오류입니다. 왜냐하면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속인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의 에고가 하나님을 속일 가능성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듯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마가복음 8:36) 결론적으로, 영적으로 가장 성숙한 사람들이라면, 언제나 진실로 가장 겸손한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겸손조차도 에고로 인해 왜곡될 수가 있으며,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겸손이라는 겉모습만 걸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찾고 있는 진정한 겸손은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잘못된 겸손이 아닙니다. 내가 말하는 겸손은 모든 존재들이 똑같은 근원에서 나온다는 사실에 기초한 겸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이 하나라는 것을 이해할 때, 모든 가치판단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모든 존재들은 똑같이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가 창조주 자신의 존재가 확장한 분신이기 때문입니다. 무한(無限) 속에는 비교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어떤 존재도 다른 존재보다 더 낫거나, 더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나면, 어떠한 사람들은 완숙한 경지에 이르러, 어떤 분야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정통해 있다는 것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떠한 가치판단도 하지 않고, 이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치판단으로 인해, 사람들은 타인들보다 더 낫다거나, 아니면 인간 사회 혹은 종교조직에서 특정한 지위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여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떠난 후, 누가 지도자가 될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는 이유로 제자들을 꾸짖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44) 왜냐하면 모든 생명의 가치를 깨닫게 되면, 이원성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자신만이 우뚝 서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끌어올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자만(自慢)의 특성은 다른 사람들을 평가절하하려고 하는 것이며,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요한복음 7:24)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처럼, 현재의 삶이 끝난 후, 우주의 결실(업보)을 받게 될 때, 여러분도 심판받게 되는 것은 신성한 법칙입니다.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임사체험을 했던 사람들을 통해 알려진 것처럼, 지난 삶을 되돌아보게 될 때, 모든 가식(假飾)과 모든 위선(僞善)은 사라지고, 자신의 삶을 보다 명확하게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여러분에게 진정으로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전해주는데, 굳이 영성인인 척할 필요가 있나요? 에고의 환상이라는 흔들리는 모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진리라는 바위 위에 집을 지음으로써, 진실한 것에 접근해 가는데 있어, 굳이 위험한 투자(fool's gold:빛 좋은 개살구)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엘리트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엘리트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과 이 엘리트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 간에 공생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이해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은 아니지만, 상위 10%는 우월감과 열등감이라는 역학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이것을 꼭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설명했던 것처럼, 일부의 존재들은 고차원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비전과 법칙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러한 리더들은 힘 있는 지위에 있었으며, 휘하에 아주 많은 존재들을 거느렸었습니다. 이들이 추락했을 때, 휘하의 많은 존재들이 자신들의 리더들을 따랐으며, 그 이후부터 이러한 존재들 가운데 많은 숫자가 자신들의 리더를 맹목적으로 따랐습니다. 최초의 추락이 있은 후, 오랜 기간에 걸쳐, 두 개의 독특한 정체성들이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이러한 정체성들은 물질 지구에 있는 일부의 존재들을 포함하여, 많은 존재들에 의해 강화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두 개의 독특한 정체성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거짓된 리더들의 정체성 : 이 정체성은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나으며,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도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말해, 하나님과 상호 교류(작용)를 하게 되면, 이러한 우월감을 유지할 수가 없으므로,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이들의 생존은 추종자 그룹, 즉 우월한 지도자들에게 복종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그룹이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러한 정체성을 따르게 되면, 대개 희생양이 되는 그룹의 사람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싸워야 하는 적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이러한 전투는 엘리트들이 자신들을 따르는 추종자들에게서 자유를 빼앗는 것을 정당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추종자들의 정체성 : 이러한 정체성은 자신의 삶과 구원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정체성입니다. 이러한 정체성으로 들어가게 되면,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으며, 영적인 자립을 하기 위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려고 하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존재들은 그리스도가 되려고 하지 않으며, 반면에 리더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무엇을 믿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줄 리더들이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리더들을 의심하지 않고 따른다면, 자신들의 구원은 보장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적을 필요로 하게 되며, 뛰어난 리더들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적들은 틀림없이 지옥에서 살아야 하는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추종자들은 리더들에 대해서는 열등감을 느끼지만, 적들에게는 우월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길을 잃게 되는 두려움을 상쇄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보게 되는 것은 리더와 추종자들 간에 분명한 상호 의존적인 관계입니다. 추종자들이 없다면, 리더들은 궁극적인 우월성이라는 환상을 유지할 수가 없게 되며, 리더들이 없다면, 추종자들은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지 않고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환상을 유지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추종자들은 이들의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다고 느낄 필요가 있으며, 따라서 자신들이 너무 열등하여,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리더들과의 관계를 통해, 리더들을 따르지 않는 “지옥에 떨어질 사람들(damned)”과 비교하여, 우월감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추종자들은 더 나아가, 그리스도가 되려고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의 리더를 자신들을 대신하여 구원해줄 거짓된 그리스도로 바꿔놓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들은 거짓된 리더들을 오류가 전혀 없는 상태로 격상시키게 되며, 그렇게 함으로써 맹목적으로 리더를 따르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말의 요지는 심리학자들이 열등 및 우월 콤플렉스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입니다. 어떤 존재가 영적인 스승으로부터 분리될 때, 에고, 즉 분리된 정체성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에고는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에고는 내재된 열등감이라는 콤플렉스를 만성적으로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에고도 지옥으로 떨어질 거라는 열등감을 지닌 채,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이것을 상쇄시키기 위해, 우월감을 만들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월 콤플렉스(superiority complex:흔히 자신의 열패감을 감추기 위한 것)는 단지 저변에 깔려 있는 열등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한 시도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지만 열등 콤플렉스는 하나님보다 낫다는 믿음으로 인해 추락이 있은 이후에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분명히 어떤 형태의 우월의식입니다. 하지만, 열등감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왜 굳이 하나님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했을까요? 왜 굳이 비교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내 말의 요지는 이전에 설명했던 똑같은 문제, 즉 “닭과 달걀, 어느 것이 먼저냐” 하는 문제로 종결된다는 것입니다. 진짜 요지는 열등감과 우월감은 단지 이원성 - 예수님께서 맘몬(Mammon)이라고 불렀던 것 - 이라는 동전의 양면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여러분은 하나님과 맘몬을 동시에 섬길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6:24) 이 말은 자신의 영적인 자유를 쟁취하기 전에, 열등감과 우월감을 필히 버려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이원성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극성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 둘은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는 다른 하나가 없이는 절대로 존재할 수가 없으며, 진정한 원인은 그리스도의 결핍으로, 하나님의 실체를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진리를 보게 되면,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존재께서 확장한 분신이며, 태생적으로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이 모든 것이 됨으로써, 위에서 모든 것이듯이 아래에서도 모든 것이 됨으로써, 어느 누구에게도, 심지어 창조주에게도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창조주의 존재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와 동시에, 다른 모든 존재들 역시도 창조주의 존재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어느 누구와 비교하여,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비교는 이원성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므로, 비교할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독특한 개인으로 창조되었으며, 여러분이 해야 하는 일은 자신이 지닌 개체성을 최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출 때,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독특한데, 비교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상위 10%는 열등감과 우월감이라는 모든 역학관계가 이원성적인 의식으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엘리트와 추종자 그룹이 존재하는 환경 속에서 성장해왔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러한 환경 속에서 추종자 그룹은 엘리트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희생자들은 추종자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러한 공생적인 관계에서 빠져나와, 맹목적인 추종자도, 권력에 굶주린 리더도 아닌, 하나님과 같은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이 이러한 외적인 정체성들보다 더 큰 존재이며, 이들의 의식적인 자아들은 이러한 역할에서 벗어나, 당초 창조의 목적대로 지구에서 영적인 존재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길로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종교가 유일한 참된 종교라거나, 아니면 다른 모든 종교보다 낫다고 느끼는 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열등감과 우월감이라는 역학관계를 극복해야만, 진정한 종교적인 포용력이 이 행성에 존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