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의 사람들이 모든 종교를 위험한 것이라고 여긴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인식해가고 있지만, 그것은 진실로 종교에 균형 잡히지 않고, 극단주의적인 방식, 즉 광신적인 행위를 조장하는 방식으로 접근함으로써 생기게 되는 위험입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행위는 십자군 전쟁, 종교 재판, 마녀사냥, 그 외에 종교적인 동기에서 유발된 전쟁들을 포함하여, 온갖 잔혹한 행위들에서 명확하게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형태들을 급진 이슬람, 테러리즘의 정당화, 자살 폭탄, 기타 등등에서 아주 분명하게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무슬림과 기독교 문명 간의 충돌과 관련된 화젯거리가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종교가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것이 긍정적인 발전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발전이 긍정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이들 간의 대화가 단순히 종교와 종교가 미치는 외적인 영향에 대한 논의에 그쳐서는 안 되며, 이것을 반드시 뛰어넘어야만 합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종교 그 자체가 잔혹한 행위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완전히 세속적인 사회, 즉 종교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가 된다고 해서, 평화로운 사회가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종교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행위에 대한 한계를 정해주는 중요한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영원한 형벌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가능한 최고의 동기라는 말은 아니며, 단지 세속적인 사회에서 이것마저 사라진다면, 필연적으로 더 극단적인 행위들로 이어지게 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사례는 이미 몇몇 서구 국가에서 볼 수가 있으며, 이들 국가의 젊은이들은 갱을 조직하여, 어떠한 행동 규범도 존중하지 않고, 제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물질 우주를 벗어나면,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기회가 있으면, 가질 수 있는 것은 다 가지는 것이 좋다는 생각으로, 조직화된 범죄가 날로 증가하는 것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과학적 유물론과 세속화가 결합하게 됨으로써, 서구 사회에 생겨나게 된 유산이며, 또한 이것은 과학과 종교 간의 분리로 회귀하는 것으로, 이러한 분리는 명백히 이원성적인 의식에 의해 유발된 것입니다.


사회에서 종교가 해야 하는 역할에 관한 논의에는 인간의 에고와 이원성적인 의식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사실, 종교적인 광신은 에고와 에고의 성향으로 인해 촉발되며, 에고의 이러한 성향은 모든 주제를 이원성적인 양극단들 중에서 하나의 극단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흑백의 사고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며, 이로 인해 참된 종교는 당연히 오직 하나뿐이며, 만약 “우리의” 종교가 승리하지 못한다면, 전 행성은 파괴되고, 인간은 지옥에서 영원히 불타게 될 거라는 극단적인 사고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궁극적인 재앙을 막기 위해, 폭력 및 기타 극단적인 수단이 사용되는 것도 정당화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저주로부터 영혼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의 육신을 죽이는 것도 용인이 되는 것입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개념이 이원성적인 인생관으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에고가 지닌 전형적인 위선의 사례로서, 이기심이 이타심으로 위장하고 있는것입니다 정확히 말해,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를 외면하기 위한 구실로, 다른 사람들의, 즉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싸워야 하는 희생양이 되는 사람들의 눈 속에 들어 있는 가시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셨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인 광신 행위가 생기는 진짜 원인을 이해하고, 하나뿐인 참된 종교가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릴 수 있는 적기가 바로 지금입니다.


하나의 종교가 다른 종교들보다 우수하다는 생각은 에고로부터 생겨나며, 이것이 자신과 타인들을 비교하려는 에고의 자만을 부채질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도울 수가 있습니다. 그동안 종교는 에고에 의해 납치되어 왔으며, 어떠한 종교도 여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으므로 어떤 경우들에는, 도를 지나쳐, 극단적인 방식으로 종교에 접근하게 됨으로써, 대개는 폭력으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이러한 성향을 이해하고, 종교를 되돌리고, 에고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싸우기로 마음먹어야 할 적기가 바로 지금인 것입니다.


폐쇄되고, 논쟁이 존재할 때, 균형은 언제나 더욱더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 때가 되었습니다. 광신적인 행위들은 어둠 속에서만 성행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겁을 먹고, 논리적이고, 타당한 질문을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두 개의 종교가 똑같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로를 죽였던 십자군 전쟁과 같은 미친 행위들을 포함하여, 온갖 종류의 폭력으로 이어져 왔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이슬람에서 표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슬람의 온건주의자들은 급진주의자들로부터 너무 자주 겁박을 당함으로써, 침묵하고 있습니다. 서구에서는, 가톨릭교회에서 소아애(小兒愛) 스캔들이 비밀에 부쳐져 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많은 신도들과 지도자들이 사제들의 비밀을 폭로하면, 교회가 자신들을 지옥으로 보낼 거라고 겁을 주었기 때문에, 이들이 겁을 먹고, 침묵했기 때문입니다. 중세의 가톨릭교회처럼, 현대의 일부 근본주의적 교회들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보다 온건주의적인 기독교인들은 근본주의(원리주의)를 반대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을 꺼려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종교 논쟁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고, 솔직해져야 할 때라는 것을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지금 이 시기에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교회가 여러분을 지옥으로 보낼 권능을 가지고 있으며,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보고도 침묵해야 한다는 생각을 이제는 버려야 할 때입니다. 이들은 스스로 청산하기가 매우 어려운 카르마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광신적인 행위들이 드러날 수 있게 하고, 대중들이 겁을 먹지 않음으로써, 더 이상 이러한 행위들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이들에게 베푸는 자비입니다. 마찬가지로, 이것은 극단적으로 종교에 접근하도록 부채질하는 서구의 근본주의 지도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이제는 종교의 경전이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따라서 영원히 의심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믿음을 포함하여, 종교적 근본주의라는 모든 개념들을 버릴 때입니다. 내가 이 책에서 전해주는 가르침에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모든 경전은 받는 사람들의 의식 상태에 맞추어져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유목 민족에게 전해주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현대인들에게 전해줄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는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에 대해 결코 최종적인 말씀이 되도록 되어 있지 않으며, 오늘날에는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전해질 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이 책에서 전해주는 가르침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들은 종교와 과학을 하나로 통합하는 더 고차원적인 가르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과학과 종교를 조화시키는 세계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소위 과학과 종교 간의 전쟁이라는 것이 단지 또 다른 이원성적인 싸움이라는 것을 내면에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과학과 종교는 인류의 의식을 확장시키기 위한, 두 가지의 유사한 방식일 뿐이며, 양쪽에서 근본주의를 제외하면, 이 둘은 서로로부터 배울 수가 있으며, 이로 인해 이들의 세계관도 크게 신장되고, 세련될 것입니다.


내가 설명한 것처럼, 인류의 의식을 성장시키는 어떠한 영적인 주기들이 존재합니다. 이 행성은 보병궁 시대로 진입하고 있으며, 이 시대는 영적인 자유의 시대입니다. 결과적으로 상승한 호스트들은 어떠한 영적인 에너지들을 방출하고 있으며, 이 에너지들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사람들은 모든 측면들에서 자유의 중요성에 대해 눈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종교인들이 보병궁 시대에 대해서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은 아니며, 이 시대가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시대(New Age)”가 되겠지만,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이 에너지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 속에서도, 여러분은 이것을 목격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고도, 공산주의가 붕괴되지 않았나요? 또한 세계적으로 자유에 대한 가치가 전 세계에서 날로 각성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사람들이 압제에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었지만, 이제는 깨어나, 자신들의 자유를 빼앗으려는 세력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각성할 때가 되었으며, 이러한 세력들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언제나 어둠 속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늘 경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역사를 통해 살펴보면, 권력을 얻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소수의 엘리트들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며, 여기에는 일반 대중을 억압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도 포함이 됩니다. 역사적으로, 대다수의 잔혹한 행위들 뒤에는 이러한 권력 엘리트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들도 알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은 일반 대중들이 권력 엘리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진실로 각성하고, 이들의 압정에 더 이상 굴복하기 않겠다는 결심을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권력 엘리트들을 추락한 존재들로 인식할 수는 없지만, 권력 엘리트들이 존재하며, 엘리트들의 구성원들은 에고로 인해 눈이 멀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에고를 이해하면, 직접적으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에고를 어둠 속에서 계속 번창하도록 내버려 두면,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권력 엘리트가 될 것이며, 엘리트들은 에고가 갈망하는 권력과 특권을 얻기 위해, 일반 대중을 억압하려고 할 것입니다. 일반 대중이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계속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억압이 정보의 억압을 통해 나타나게 됩니다.


종교 분야에서,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물질적인 감옥 속에 가두어놓는 것은 매우 원시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때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억압받아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자유를 동경하게 될 것이며, 조만간 반란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대중을 통제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마음을 이용하여, 사람들이 정신적인 감옥 속으로 들어가서, 그곳에 계속 머물도록 프로그램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감옥 속에 갇히게 되면, 이들은 달리 살아갈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고 - 적어도 지구에 존재하는 한, -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종교는 대중들을 세뇌시켜, 현재의 상태를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소수의 권력 엘리트들이 거의 절대에 가까운 권력을 가진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가 되어 왔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게 될 때가 되었습니다. 외적인 종교의 성직자들이 사람들을 지옥으로 영원히 보낼 수 있는 권한을 지녔다고 믿을 때, 성직자들은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 거의 절대적인 힘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절대적인 힘은 절대적으로 붕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에고는 언제나 상황을 양극단으로 끌고 가게 될 것이며, 따라서 어떤 개인도 다른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간단한 사실은 두려움과 보상에 대한 약속을 교묘하게 결합함으로써. 종교가 대중을 억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한편, 사람들은 외적인 교회를 따르지 않으면, 지옥에서 영원히 불타게 될 거라고 믿으면서, 성장해 왔습니다. 더 나쁜 형태의 형벌은 거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지만, 내가 설명한 것처럼, 그러한 형벌은 결코 창조주께서 상상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원성적인 의식에서만 나올 수 있는 산물이며, 이러한 형벌에는 어떠한 실체도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도 결코 지옥으로 보내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정신적인 지옥을 만들어낼 수가 있으며, 이러한 사람들은 감정계에서 뿐만 아니라 물질 지구의 어떤 장소들에서 집단적인 지옥을 만들어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생명력 그 자체는 어느 누구도 그러한 지옥 속에 영원히 갇혀 있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끊임없이 초월하고 있는 우주 속에서,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멀리 떨어진 천상에서의 영원한 삶이라는 궁극적인 보상에 대한 약속은 궁극적인 형벌이라는 이러한 두려움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심리적인 효과로 인해, 여기 지구에서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학대와 억압을 받아들이도록 프로그램 되어 왔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천상에서 영원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오랜 기간에 걸쳐 소수의 권력 엘리트들은 종교를 이용하여, 현재의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종교조직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교회와 국가의 성스럽지 못한 동맹으로 인해, 사람들은 억압을 받아 왔으며, 종종 극한적인 상황에 내몰리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