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의 다룬 내용을 토대로, 지구가 이원성적인 종교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분명히, 우리는 이원성적인 의식의 모든 요소로부터 종교를 자유롭게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아왔던 것처럼, 이원성적인 의식은 오로지 어둠 속에서만 생존할 수 있으며, 어둠 속에서는 이러한 의식이 보이지 않거나, 그 의식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더 잘 알 수 있었다면, 더 잘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원성적인 의식은 속임수와 조종이라는 장막 뒤에 숨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원성적인 환상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데에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며, 이러한 사실은 주류의 종교들이 이원성적인 의식과 인간의 에고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있으며, 인류를 속임으로써 하나님의 계획에 고의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존재들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지 않는 것만 보아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아무리 인간적인 노력을 해도 이것은 실현될 수 없지만, 하나님과 함께라면, - 이원성을 초월하려는 인간을 통해 행동하는 - 종교 논쟁의 분위기와 내용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실현하기 위해, 이미 충분한 사람들, 즉 상위 10%의 사람들이 육화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이원성적인 세력들이 만들어놓은 연막(smokescreens)들을 꿰뚫어볼 수 있는 의식 상태에 이미 도달해 있습니다. 하지만 이원성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승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사람들은 종교적인 주제에 대해 자유로운 토론을 하지 못하게 하는 위협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위협은 교회마다, 개별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세계적인 규모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억압과 위협이 수백 년 혹은 천 년 동안 진행됨으로써, 많은 종교인들은 두려워서, 종교에 대해, 특히 자신들이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해 중요한 의문들을 물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위 10%의 사람들은 이러한 위협을 빠르게 극복할 수가 있지만, 어려운 문제는 종교와 하나님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특정한 종교들을 믿고 따르는 신도들 중에서 임계 수치의 사람들이 어떻게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원성적인 세력들은 아주 단호하고, 인간을 조종하는 면에서, 아주 능수능란합니다. 이들은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실질적으로 이 행성을 마음대로 지배해 왔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사람들이 추락한 존재들과 이들이 끼치는 영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추락한 존재들로 인해 이러한 상황은 과거에 만들어졌으며, 그 시기에 이들은 이 행성에 자신들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자신들의 정체성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없애 버렸습니다. 따라서 박테리아의 존재에 대해 알기 전에는 질병에 대한 보호 조치를 취할 수 없었던 것처럼, 사람들 역시도 추락한 존재들과 거짓된 신들의 조종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 했던 것입니다. 진실로, 무지는 축복이 아닙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내가 이 책을 통해 전해주는 많은 사실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어떠한 저항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나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진리를 전해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상위 10%의 사람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진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 중에는 진리를 온전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현대의 심리학자들은 도망 아니면 싸움(fight or flight response)”이라는 심리 기제를 알고 있습니다. 위협을 받을 때, 본능적으로 사람들은 도망가려고 할 것이며, 도망갈 수 없다면, 돌아서서 싸우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기제(機制:심리 작용)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위압적인 위협에 직면하게 되면, 이들은 도망이나, 싸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그 대신에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머리를 모래 속으로 묻는 것처럼, 위협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원성적인 의식이 지닌 상대적인 논리를 이용하여, 이들은 메시지 혹은 메신저를 대수롭지 않다고 여길 것이며, 혹은 위협을 무시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서 내가 전해주는 온전한 진리에 너무 압도당해, 진리를 인정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힘이 어떠한 이원성적인 힘들 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사람들이 내면적으로 알지 못한다면, 이들은 이원성적인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확히 말해, 이러한 이유로, 이원성적인 세력들은 아주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고, 인식되지도 않았던 것이며, 따라서 무지의 베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벗어나지 못하게 했던 기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지 속에 남아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만약 사람들이 이원성적인 세력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면, 이들은 자신들의 자유에 이러한 세력들이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심각한 위협이 될 거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러한 세력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아직까지 믿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원성의 위협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위협을 인식하고 있다면,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계속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메시지를 무시하는 것에 대해서도, 정당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될 것입니다.

내 말의 요지는 상위 10%의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 이 책에서 내가 전해주는 직접적인 진리에 기초하여, 메시지를 전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책과 관련하여, 내 의도는 이원성을 초월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잘 가르쳐서, 이들이 마지막의 조치를 취하게 함으로써, 이원성적인 의식과 이원성적인 세력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해줄 온전한 진리를 성취할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해 그러한 자유를 찾고 난 다음,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들도 자유롭게 될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함에 있어, 가능성의 예술(art of the possible)을 반드시 실천해야 합니다. 내가 설명한 것처럼, 여러분이 특정한 환경 속에 육화하게 된 것은 그러한 환경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알기 위해, 그러한 환경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다음, 이러한 체험을 잘 활용하면, 그러한 사람들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이들에게 진리를 가장 잘 전해줄 수 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것이 어려운 난제가 될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일부의 사람들은 내가 보다 자세한 설명을 해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하지만 성숙한 학생이라면, 반드시 영적으로 자립하게 되는 시험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성모 마리아의 책과 이 책에서, 우리는 여러분의 외적인 마음이 자신의 상위 존재와 연결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제공해주었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상위 존재와 연결되면, 고차원적인 진리를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과 관련하여, 내면으로부터 지침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은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속에 존재하는, 자신이 누구이며, 여기에 왜 왔는지에 대한 기억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다음, 여러분은 반드시 참된 자신(who you are)을 받아들여야 하며, 또한 외적인 근원이 아니라,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의 상위 존재로부터 정확한 지시를 받는 것이 여러분이 가진 사명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가르침들을 반드시 체화해야 하며, 그래야 본보기가 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상위 10%의 사람들이 이원성에서 벗어나서, 이러한 사실을 공개적으로 증명하는 것을 목격하게 될 때, 일반 대중들도 점차적으로 이원성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장에서 내가 전해줄 내용은 드러나야 하는 것이 무엇이며, 이 시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몇 가지의 일반적인 지침들입니다.

서구 사회에서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 내적인 존재의 내면에서 - 종교에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볼 수 있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며, 이것은 가톨릭교회에서의 소아애(pedophilia:어른의 어린이에 대한 성애)와 같은 스캔들에 의해 증명되고 있으며, 그 외의 사건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말대로 살지 않고, 교회의 영적 가르침을 통해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살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종교에 속임수적인 요소가 존재하며, 그러한 것들이 불과 몇 세기 전에 기독교회에서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 지도자들의 행위에 혹은 외적인 조직의 경직성에 실망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성장하면서 믿었던 교회들이 현시대에 필요한 영적인 욕구를 더 이상 충족시켜줄 수 없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과거 속에 갇혀 있으며,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삶에서 마주치게 되는 여러 도전들에 결코 적응할 수 없거나, 적응하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 말의 요지는 서구 사회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불만을 품고 있지만,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종교에 뭔가가 잘못되어 있으며, 뭔가가 빠져 있는 것처럼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빠르게 마음의 문을 열고, 전통적인 종교에서 벗어난 설명들을 찾고 있으며, 따라서 대다수의 영적인 사람들과 상승한 호스트들은 사람들의 비전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서구 세계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간의 에고와 이원성적인 의식 때문에,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사회 및 교회에서 상황이 뒤틀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조금만 도와주면, 교회에 잘못이 있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이 에고로 인해 생겨난 것이란 사실을 빠르게 알 수가 있으며, 에고는 종교가 지닌 당초의 목적, 즉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슴속에서 인지하고 있는 목적을 왜곡시키기 위해, 이원성적인 의식을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 즉 에고를 찾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조운동(self-help movement)을 통하여, 이들은 에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된 이 운동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에고의 존재를 포함하여, 인간의 심리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점들(dots)을 이어주는 획기적인 발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러한 발전을 통해 사람들은 인간의 에고가 수천 년에 걸쳐 어떻게 종교에 영향을 미쳐왔으며, 종교적인 모든 삶에 에고의 속성들이 실제로 어떻게 왜곡시켜 왔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종교에 계속 참여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종교를 보다 높은 단계로 올려놓는 것이 가능하며,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종교를 포기한 많은 사람들도 자신들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실제로 종교 그 자체가 아니라, 에고에 기초한 종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내 말의 요지는 종교는 우리 사회에서 이원성적인 의식이 작용해서는 안 되는 하나뿐인 영역이라는 사실을 임계 수치의 사람들이 알게 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에고에 대한 평형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원성적인 의식은 반드시 공개적으로 논의되고, 노출되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마치 여러분의 종교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던 것처럼, 시간은 그냥 조용히 다가와, 말없이 머물렀다가 흘러갈 뿐입니다. 사람들은 위선자를 위선자라고 부르고, 종교에서 모든 위선을 제거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들은 새로운 지평을 열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이전에는 종교적인 토론에서 금기시되어 왔던 많은 것들을 논의할 수 있고, 심지어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추락한 존재들과 거짓된 신들도 아주 잘 알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이러한 흐름을 늦출 수는 있지만, 멈추게 할 수는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러한 흐름을 늦추게 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두려움을 이용하여, 과거의 경전에는 오류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근본주의적 (원리주의적) 종교로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게 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추락한 존재들 중에서 보다 진보한 일부는 개방을 멈추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따라서 자신들이 선정하는 분야로 논쟁을 이끌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추락한 존재들이 사용하는 좌우명(motto)은 언제나 이길 수 없으면, 함께 하라(beat ‘em — join ‘em)”이었으며. 종교 논쟁을 막다른 골목으로 유도함으로써, 문제의 핵심을 흐리게 하여, 이 행성을 계속 통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일부 추락한 존재들은 모든 종교에 몸담고 있는 현대인들의 믿음을 말살하고, 과학적 유물론을 하나뿐인 참된 종교로 격상시키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다수의 영적인 사람들은 논쟁에 참여하여, 자신들을 자유롭게 해줄 진리를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즉 영적인 자유를 빼앗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도록, 논쟁을 올바른 궤도 위에 올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해야 하는 도전과제입니다. 다시 말해 종교 논쟁에 참여하여, 이원성적인 의식에 갇혀 있는 - 이들이 무의식적으로 갇혀 있든, 아니면 이들이 봉사하고 있는 세력들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갇혀 있든 - 사람들에게서 주도권을 빼앗아 와야 합니다. 주요한 목표는 새로운 방식으로 종교에 접근하는 방법을 마련하는 것으로, 다시 말해 현시대에 종교를 분명하게 이원성과 인간의 에고 너머로 끌어올리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지금은 이 행성에 비-이원성적인 종교가 태어나야 할 시기입니다. 따라서 나는 에고의 영향이 노출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특정한 지역들에 대해 몇 가지 조언을 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