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설명한 것처럼, 여러분이 지닌 진리와 빛을 타인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이르는 자연스러운 길의 일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진리를 증거하고 (요한복음 18:37), 제자들이 지닌 빛을 비추어서 (마태복음 5:16), 이 진리와 빛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말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기 이전에, 여러분부터 먼저 어느 정도 완벽한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는 말일까요? 그렇다면,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할 때까지, 히말라야의 동굴 속에 은둔해야 할까요, 아니면 현재의 의식 단계에서 여러분이 성취한 깨달음에 기초하여, 가르쳐야 할까요?


그렇다고 가르치기 이전에, 고차원적인 의식 수준에 이를 때까지, 은둔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려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때가 아닙니다. 내가 설명한 것처럼, 사람들은 개인적인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이러한 가르침을 이해하고, 적용하는데 있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의식 상태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만큼, 길(Path)에 대해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로 영적인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시작해야 합니다.


영적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일부는 분명히 완벽하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스승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과 서로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영적인 구도자들이, 오류가 없는 스승을 찾고자 하는 에고의 꿈(ego-dream)을 버릴 수만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궁극적인 이해를 지닌 존재는 지구에 존재하지 않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도와줄 수 있을 정도의 이해는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르치는 사람들은 배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들이 이전에 가르쳤던 것들을 뛰어넘거나, 다시 고침으로써, 자기 스스로를 초월하려고 해야 합니다.


내 말의 요지는 지구에는 영적인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며, 다행스럽게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역할을 받아들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르치는데 있어서, 이러한 사람들이 꼭 옳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들이 현재 이해하고 있는 수준과 그리스도의 신성에 기초하여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며, 이것이 최고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사람들이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말은 아니며, 또한 거짓된 스승이라는 말도 아닙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것을 흑백의 관점에서 논할 수 없으며, 따라서 참된 스승은 절대로 “잘못된” 말을 할 수 없으며, 잘못된 말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거짓된 스승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거짓된 스승과 불완전한 스승을 구별하기를 바랍니다.


완벽한 기준을 정하고, 그러한 기준에 따라, 삶을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가 거짓된 스승이라고 말하는 것은 추락한 의식이 만들어낸 또 다른 음모입니다. 거짓된 스승들은 이렇게 하기 위해, 이원성적인 의식을 이용하고 있으며, 따라서 자신들이 유일한 참된 스승들이며, 의견을 달리하는 모든 사람들은 거짓된 스승이라고 매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차이가 무엇일까요?


 

이 책에서 내가 설명했던 것처럼, 참된 영성(spirituality:靈性)은 전혀 오류가 없는 외적인 가르침이나 조직 혹은 스승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영성은 하나가 되는 길을 따르는 것과 관련된 것이며, 이 길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자기 초월의 과정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참된 스승이 되는 것은 궁극적으로 참된 것을 말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궁극적인 진리는 말로 표현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참된 스승이 된다는 것은 언제나 모든 외적인 가르침을 초월해 있는 진리의 영을 추구하는 것과 관련된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초월이라는 참된 길을 실천하고, 증명하는 것과 관련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가 있을까요? 궁극적인 진리를 찾아냈다고 생각하지 않고, 현재의 의식 상태를 언제나 초월하려고 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내 말의 요지는 영적인 개념들에 대해 다소 제한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인간적인 어떠한 결함과 개성들을 지니고 있는 스승들도 여전히 많이 있지만, 이들도 자기 초월의 길을 증명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참된 스승이라고 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거짓된 스승이 되게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개인이 자기 초월의 길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잘못될 수 없는, 즉 오류가 없는 인물로 규정함으로써, 문제 제기를 당하거나, 거부를 당해서도 안 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람들과 조직들이 오류가 없다고 주장하는 패턴이 계속해서 반복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가톨릭교회에서 이러한 패턴을 명확하게 볼 수가 있으며, 가톨릭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황을 의심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내가 설명한 것처럼,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참된 하나님은 숨길 것이 없으며,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자신의 진리를 찾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정확하게 말해,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께서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왜냐하면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7 - 7:8)


자신이 하나님 혹은 심지어 마이트레야와 같은 궁극적인 존재가 육화한 존재라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은 의심을 받아서는 안 되는 인물로 자처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언제나 거짓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창조주 혹은 상승한 존재는 육화하여, 내려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아주 미묘한 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여기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궁극적인 면에서 보면, 창조주께서도 어떤 특정한 정체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창조주께서는 대다수의 인간이 지닌 정체성을 훨씬 초월해 있는 정체성이지만, 그래도 정체성입니다. 그러한 정체성이 창조주이며, 이 형태의 세계가 존재하는 한(허공이 채워질 때까지), 그렇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주의 정체성은 지구 행성에 물질체로 내려오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육화했다고 주장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에게도 해당되며,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결코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러한 주장을 할 수도 있는 현재의 모든 스승들에게도 해당이 됩니다.


모든 존재들이 지니고 있는 의식적인 자아는 창조주라는 존재(Creator’s Being)께서 확장하신 분신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개별적인 정체성을 부여받았습니다. 따라서 이들이 창조주라는 존재로부터 나왔다고 하더라도, 창조주와 동일한 존재가 아닙니다. 내가 설명한 것처럼,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 똑같아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개체성을 유지하면서, 이와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님의 단계로 확장하도록 되어 있으며, 따라서 자신의 창조주와 똑같은 단계에 있는, 개별적인 하나님이 - 하지만 창조주와 똑같지는 않은 - 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지구에 존재하고 있는 동안에는, 이러한 정체성의 확장(하나님 단계로의 확장)은 결코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행성이 아직 상승하지 않은 구체 속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내 말의 요지는 개인은 하나님께서 육화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지만, 한 개인이 하나님께서 화신한 존재라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또한 하나님께서 화신한 것이라고 이해될 때에만, 이러한 주장이 옳은 것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느 한 인간 혼자만이 하나님께서 화신한 존재라거나, 온전하게 화신했다고 떳떳하게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에 존재한 적도 없으며,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개인이 그렇게 주장한다면, 이것은 그가 가장 교묘한 형태의 이원성적인 환상에 갇혀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환상은 모든 타인들 위에 분리된 자아를 올려놓고 싶어 하고, 분리된 자아를 신으로 둔갑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함으로써, 그 개인은 거짓된 스승으로 변질되고 마는 것입니다.


어느 개인이 자신은 하나님께서 육화한 존재이며, 창조주께서 개체화한 분신이라고 기억하고, 이를 받아들였다고 말하는 것은 일리가 있는 것입니다.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요한복음 10:30)”라는 것을 온전히 깨닫게 되는 것은 실제로 그리스도의 신성에 이르는 길의 일부이며, 이로 인해 여러분은 대다수의 다른 사람들과 분명하게 분리됩니다. 따라서 신성(Divinity)이 인간의 형태로 나타났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창조주께서 - 온전하게 - 인간의 육체로 화신했거나, 오로지 특정한 육체로만 화신했다고 말하는 것과는 똑같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자신의 근원과 하나가 되면, 다른 모든 사람들도 또한 창조주 존재(Creator’s Being)의 분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 위에 있는 존재로 자처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다른 사람들이 지구에서 여러분을 신으로 존경하고, 숭배하게 하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한 개인 속에 존재한다면, 마땅히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 속에도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여러분은 그들을 돕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여러분 속에서 신성한 것을 본다면, 그것은 그들이 자신들이 지닌 신성(Divinity)이 반사된 결과물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숭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역시도 타고난 신성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여러분이 따라왔던 길을 따라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여러분이 정말로 하나님께서 화현한 것이라면, 그들이 여러분을 지구에서의 신으로 떠받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은 모든 사람들 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을 떠받들게 될 것입니다. 창조주께서는 가장 비천한 하인(ultimate servant)이므로, 자신이 창조주의 분신이라고 깨닫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창조주께서 봉사하고 있는 것처럼, 봉사해야 합니다. 오직 거짓된 스승들만이 자신들을 섬기거나, 숭배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안다고(마태복음 7:15-20)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가 되는 길(Path of Oneness)이 현재도 진행 중이며, 내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떠한 스승도 여러분을 대신하여, 여러분을 진보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진보를 이해하고, 체화함으로써, 스스로 진보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자신의 의식을 끌어올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스승은 여러분이 영적인 길에서 한 단계 혹은 몇 단계를 나아가도록 도울 수 있으며, 여러분이 속임수를 꿰뚫어볼 수만 있다면, 심지어 거짓된 스승이라 해도, 어떠한 환상들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성장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지도자를 따르고 싶어 합니다. 따라서 거짓된 스승으로부터 가혹한 학대를 체험함으로써만,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구원에 대해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내 말의 요지는 길은 진행 중에 있는 과정이며, 여러분이 진정으로 충심을 다해야 하는 것은 길(path)과 지속되고 있는 여러분의 과정입니다. 만약 스승이 더 높이 오르도록 돕는다면, 그 스승으로부터 배우세요. 하지만 그 스승이 더 높은 곳으로 여러분을 데려다줄 수 없는 시점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다른 스승을 찾으라는 내면의 부름에 경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학생이 준비되면, 스승이 나타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하지만 학생이 새로운 스승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가 반복해서 나타나지만, 학생이 옛 스승에 너무 집착해 있는 나머지, 새로운 스승이 나타났는데도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승에 대한 보편적인 충성보다는, 특정한 스승에 대한 잘못된 충성심으로 인해, 많은 학생들은 영적인 진보에 방해를 받게 됩니다. 이제 새롭게 접근해가야 할 때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언제나 최고의 스승을 따를 수가 있으며, 동시에 더 높은 스승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도 꾸준히 넓혀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책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이 책이 궁극적인 가르침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러한 주제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이 행성에 주어진 가장 직접적인 가르침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최종적인 가르침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최종적인 가르침은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훨씬 많은 것들이 말해질 수 있으며, 훨씬 많은 것들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주어진 것은 인류의 의식과 가르침을 전할 메신저가 지닌 의식의 반영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망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이 책으로 인해, 여러분을 비롯하여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식을 끌어올리고, 하나가 되는 길에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감에 따라, 여러분은 외적인 스승을 통해서든, 아니면 자기 존재의 내면으로부터 더 높은 계시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항상 질문을 하려고 해야 하며, 현재의 스승을 뛰어넘어 보려고 해야 합니다. 스승이 참된 스승이라면, 스승은 단지 학생의 가르치는 능력을 강화시켜줄 것이며, 스승에 대한 학생의 이해를 높여줄 것입니다. 만약 스승이 거짓된 스승이라면, 의문을 통해, 여러분은 자유로워지게 될 것이며, 일시적으로 스승이 노출되고, 스승의 판단을 불러오게 될 것입니다. 이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현재의 수준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스승에게로 자유롭게 움직여가게 될 것입니다. 진지한 질문은 오로지 진행되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 성장을 촉진시키는데 도움을 줄 뿐이며, 거짓된 스승들이 멈추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의식의 성장입니다. 부디 세상이 이원성적인 종교로부터 벗어나게 하는데, 여러분이 해야 하는 역할을 찾아냄으로써, 거짓된 스승들이 실패하도록 기여해주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