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 장미 십자회 -완전한 인식으로 구원에 이르는
기독교 신비주의 체계  


작성자 : 이윤규

다음의 글은 격월간 정신세계 과월호 중에 연재되었던 이재실님의 글을
정신세계사 홈페이지(mindvision.org)에서 퍼온 글입니다.

장미십자회
완전한 인식으로 구원에 이르는 기독교적 신비주의 체계
이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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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그 누가 장미와 십자가를
결혼시켰을까?”
괴테는 비교(秘敎) 색채가 농후한
「신비」라는 제목의 시에서
이렇게 묻고 있다. 괴테가 상기시키고
있는 것은 바로 장미십자회의
수수께끼이다. 괴테의 의문대로,
누가 장미의 상징과 십자가의 상징을
결합시켜 신비주의적 기독교 신앙을
이끌어 갔을까?




17세기에 개화한 장미십자회는 고대의 미트라·엘레우시스 비의, 중세의 성당 기사단과 카타리 파(派) 등과 더불어 중요한 비교적(秘敎的) 비밀결사의 하나를 이룬다. 이러한 신비주의적 비밀결사들은 입문의식과 복잡한 제의(祭儀)가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폐쇄적인 종교집단과 확연히 구분된다. 비교(秘敎, esoterism)라는 단어가 그리스어 ‘에이소테오(eisotheo)’ 즉 ‘들어가게 하다’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으로 볼 때, 비교적 비밀결사의 감추어진 진리에 접근하고자 하는 속인은 반드시 입문의식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가 이미 내포돼 있는 셈이다.
장미십자회의 신비주의적 교의에 접근하기에 앞서서, 우선 장미와 십자가에 담겨 있는 상징부터 읽어보자. 장미십자의 형태는 붉은 색 십자가의 중심부에 놓여진 한 송이 붉은 장미를 표현하고 있다. 십자가가 붉은 것은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신비한 피가 튀어 물들었기 때문이다. 십자군 원정 당시, 기독교 기사들이 휘날리던 깃발에 그려져 있던 이 상징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번째 의미에서 볼 때, 십자가는 구세주의 지혜이자 완전한 인식을 나타내며, 장미는 정화의 상징이자 육욕을 물리치는 금욕의 상징이다. 또한 장미는 온갖 더러움을 정화시키는 연금술의 대작업을 나타내기도 한다. 한편 두 번째 의미에서 장미십자는 헤르메티즘적인 우주창조를 보여준다. 즉 이 의미에서 본 장미십자는 신성한 창조적 에너지를 상징하는 십자가(남성적 표상)가 원초적 물질(여성적 표상인 장미로 상징된다)로 이루어진 모태를 수태시켜 우주를 탄생시킨 것을 상징하고 있다.

장미십자회와 크리스찬 로젠크로이츠

장미십자회의 정확한 창립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1600년 무렵을 전후하여 퍼져나가기 시작했으나, 조직에 대한 비밀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회원들의 서약이 절대적으로 준수되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장미십자회의 정체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한 장미십자회는 1614년에 비밀결사의 존재를 세상에 공표하였다. 그와 동시에 저작들이 연달아 발표되었는데, 특히 『교단의 명성』(1614)과 『교단의 고백』(1615), 『크리스찬 로젠크로이츠의 화학적 결혼』(1616)은 장미십자회의 3대 선언으로 일컬어진다. 세 저작 모두 익명으로 출간되었지만, 세 번째 저서는 요한 발렌틴 안드레의 저작으로 추정된다.
첫 번째 저서인 『교단의 명성』은 장미십자회의 창시자라고 알려진 크리스찬 로젠크로이츠(이 저서에서는 이니셜인 C.R.로만 표기했다)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와 그의 교리를 담고 있다. 독일 태생의 로젠크로이츠는 16세 되던 해부터 동방을 여행하면서 각지에서 현자들에게 언어, 과학, 의학, 마법, 카발라 등의 가르침을 받은 후, 독일로 돌아와 비밀결사를 창시하고 비교(秘敎) 연구에 몰두하였다. 또 이 저서에 따르면, 장미십자회가 소유하고 있는 영적인 지식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아담이 에덴에서 나온 뒤에 전해 받은 것이라고 한다. 이 영적 지식에는 파라켈수스 주의와 헤르메티즘이 확실하게 드러나 있다. 따라서『교단의 명성』에서는 카발라에 대한 찬양과 파라켈수스에 대한 경의를 뚜렷하게 읽을 수 있는데, 이것은 곧 장미십자회의 사유체계의 근원을 나타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두 번째 저서인 『교단의 고백』에서는 창시자의 이름을 ‘C.R.’이라는 이니셜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밝히고 그의 탄생 연도인 1378년까지 명시하면서, 신앙과 교리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이 저서를 통해서 주장하는 것은, 여러 차례에 걸친 종교전쟁에 의해 피폐해진 시대에서 빠져 나오려면 인간과 사회가 갱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제 장미십자회는 성서의 감추어진 의미를 밝혀주는 아담의 언어나 에녹의 언어를 일부라도 계시해줄 시점에 서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저서인 『크리스찬 로젠크로이츠의 화학적 결혼』은 앞의 두 저서와는 전혀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요한 발렌틴 안드레의 저서인 이 책은 소설 형식을 취하여 왕과 여왕의 결혼, 그 결혼식에 초대받은 크리스찬 로젠크로이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상징적 소설이자 통과의례적 소설인 이 저서의 주제는 영적인 결혼이다. 앞서의 두 저서에서 크리스찬 로젠크로이츠는 청년으로서 동방 여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교단을 창설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 소설에서 그는 왕과 왕비의 결혼식을 보는 가운데 통과의례를 거쳐 인식을 얻는 노인으로 등장한다. 이야기는 7일 동안에 걸쳐 전개되는데, 연금술 대작업의 여러 단계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특기할 것은 영국의 연금술사이자 주술사였던 존 디(John Dee)의 『상형문자 단자』(1564)의 영향이다. 소설 초반부에 왕이 크리스챤 로젠크로이츠에게 보낸 결혼식 초대장에는 이런 신비한 기호가 함께 그려져 있다. 디의 단자(모나드)1) 는 점성술과 연관된 연금술2) 의 상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기호는 완전한 통일성의 상징으로서 『크리스찬 로젠크로이츠의 화학적 결혼』의 심오한 의미를 보여주는 동시에, ‘전체로서의 하나, 하나로서의 전체’라는 연금술의 기본 교리를 연상하도록 해준다.

구원의 인식에 이르는 ‘영적인 연금술’

장미십자회의 독트린을 집대성한 것은 17세기 전반 영국에서 영적인 연금술을 실천하던 로버트 플러드(Robert Fludd)이다. 그는 오랜 시간을 바친 복잡한 작업을 통해 장미십자회를 지원하였다. 플러드가 체계화시킨 장미십자회의 종교철학적 독트린은 방대하기 이를 데 없다. 그것은 광대한 신지학적 체계일뿐만 아니라, 헤르메티즘, 연금술, 카발라, 신 플라톤주의, 그노시즘의 지대한 영향을 받으면서 중세와 르네상스기를 은밀하게 관통하던 온갖 비밀 전승을 혼합한 기독교적 신비주의의 체계이다.
독일에서 발간된 장미십자회의 3대 선언서를 통해서 읽을 수 있듯이, 장미십자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영적인 연금술이다. 장미십자회에 흡수된 영적인 연금술의 목적은 신과의 내적인 접촉을 통하여 결정적인 계시를 받고 최종적인 구원을 가져다 줄 인식을 얻는 데 있다. 따라서 장미십자회는 인간은 잠재적인 완전함의 씨를 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사고에 기반을 두고 있다. 플러드가 “가장 고귀한 초석인 예수는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이다. 물론 이러한 사고방식이 영적인 연금술 특유의 것이 아니라, 인간은 물질세계로 떨어진 신성의 일부라는 그노시즘적 사고에서 유래한 것임은 확실하다.
존 디의 단자(모나드)의 상징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존재는 유일한 존재의 다양한 양상으로서 종국에는 원초적 통일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 비록 비속한 금속이 되어버린 인간일지라도 연금술의 대작업을 거쳐 영적인 화금석을 추구한다면, 흑화 단계인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사실상 이 전적인 변성에 비한다면, 범용한 금속이 황금으로 변성되는 것은 부수적인 결과에 불과한 것이다. 영적인 연금술사들에게 진정한 변성이란 물리적 세계에 스며있는 숙명적 존재의 인간조건에서 벗어나 삶과 죽음의 수수께끼를 완전히 깨달은 초월적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영적으로 재생되어 의식이 깨어나면, 인간은 신을 이해할 수 있는 은총을 발견하게 된다. 플러드의 말대로 “불순한 금속은 순수한 금으로 변성할 것이고, 인간은 순수와 완전이라는 원초의 상태를 되찾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장미십자회는 에덴과 같은 세상으로 복귀하고자 꿈꾼다. 마치 에녹과 엘리야가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죽음과 부패를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져 영적인 스승이 되었듯이, 장미십자회는 완전한 존재가 되기를, “해와 달처럼 빛나는” 영광된 영적인 육체를 획득하기를 추구해마지 않았다.

프리메이슨과 신지학, 인지학에 준 영향

이쯤에서 일반 장미십자회원(rosicrucien)과 ‘장미십자(Rose-Croix)’라고 불리는 존재들을 구분해야 할 것 같다. 이 구분은 비밀결사의 위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장미십자회 회원 가운데 하위에 속하는 일반 회원들은 ‘미지의 상좌들’에 대해서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하위의 일반 회원들은 ‘장미십자회원’이라고 불렸던 반면, ‘미지의 상좌’인 스승들이야말로 진정한 ‘장미십자’라고 불렸다. 이들은 완전한 지식을 획득하였고, 영적인 화금석을 소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초인적인 능력과 불노장생의 비밀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장미십자들은 자신들끼리만 알아볼 수 있을 뿐이어서,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장미십자를 만나보려고 애를 썼지만 모두 허사였다고 한다.
18세기까지 지속된 장미십자회는 곧 이어 프리메이슨단이라는 또 다른 비밀결사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장미십자회의 교리의 일부는 신지학회의 창시자인 블라바츠키 여사에게 흡수되었고, 인지학의 주창자인 루돌프 슈타이너도 수년 동안 장미십자회를 연구했다. 더구나 19세기와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장미십자회 계열의 수많은 조직들이 결성되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열거하자면, 1888년에 결성된 ‘황금새벽회’를 비롯하여 ‘장미십자 카발라회’ ‘카톨릭 장미십자회’ 등이 있었고, ‘A.M.O.R.C.’이라는 약자로 많이 알려져 있는 ‘장미십자 고대 신비회’는 20세기초에 결성되어 현재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이다. 그러나 이런 현대의 조직들이 장미십자회의 교리의 맥을 잇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미 ‘비밀결사’의 의미를 상실한 이상, 장미의 선홍색도 많이 퇴색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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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재실 씨는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현재 부산외대불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르노블 학파로서 신화 분석·비평을
전공했고, 문화와 문학에 나타난 동서양 신화를 비교 연구하고 있다.
엘리아데의 『이미지와 상징』『대장장이와 연금술사』 『종교사 개론』,
시몬 비에른의 『통과제의와 문학』 등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장편소설 『오디』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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