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신제국이 들어서서 3천년 내지 4천년이 되었을 무렵에는, 이 오시리우스 운동이 아틀란티스 사회에 심각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마침내 아틀란티스인들은 이제 이오니아 사람들을 살육함으로써 이들 숭배자를 말살시킬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래서 아틀란티스의 중추 지배층은 레무리아를 파괴하기 위해서 사용했던 계획의 수정안을 이용해, 다시 이오니아를 파괴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런 해결책은 아틀란티스인들이 플레이아데스. 켄타우루스 그리고 다른 변절자 동맹자들에게서 도움을 얻는 것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시간이 다소 걸렸고, 마침내 이오니아 사람들은 그들의 말살음모를 누치채게 되었다.  이오니아인들은 발달한 과학 지식 덕분에 이미 조기 경계망을 개발해 놓고 있었기에, 그들을 파멸시키기 위해 사용될 수도 있는 어떠한 달의 이동도 도표로 나타낼 수가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아틀란티스인의 모든 공격에 재빨리 반격할 수가 있었다.  이오니아 사람들의 이와 같은 능력은 거꾸로 아틀란티스의 계획이 스스로 파멸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었다.

아틀란티스가 파괴될 당시에 아틀란티스의 왕은 아틀라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당시에 아틀란티스의 중추 지배층의 대다수 사람들은 이오니아가 파괴되면, 이오니아에 있던 추방된 집단과 그들의 지하운동이 어떻게 반발을 하게 될지 궁금하게 여겼다.

아틀란티스 사회의 중추가 알고 싶었던 것은 이 공격이 지하운동이 지니고 있는 모든 위협을 정말로 종식시킬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였다.  이런 가능성은 또한 리비아/이집트 제국과 그 중추적 지배층도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이오니아가 공격을 당하면 자신들이 어찌될지 걱정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당시의 아틀라스왕은 레무리아문명을 재수립하는 움직임을 은밀히 지지하고 있었다.  아틀라스는 이오니아로 추방되었던 지하운동가들을 기념하여, 자신의 아들에게 오시리우스 또는 오시리스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오시리우스는 부왕의 궁전에서 여러가지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다.

아틀란티스가 파괴되기 직전에 아틀라스는 왕의 죽음을 노리던 모반자들을 타파하기 위해서, 부인인 무우 영왕과 아들 오시리우스를 각각 다른 두 방향으로 파견했다.  아틀라스는 무우 여왕과 그녀의 남동생 마얌 공작을 아틀란티스의 주력부대와 함께 중앙 아메리카로 보냈다.  그리고 아들 오시리우스와 대다수의 사제들 기록 보관자들은 모두 리비아/이집트 제국으로 보냈다.

아틀라스는 이들 파견된 사람들이 아틀란티스의 파괴 후에 레무리아 문명을 재건할 수 있는 제국의 역할을 할 여러 지역들을 개척하기를 바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소망은 셋이라는 이름의 또다른 아들, 즉 오시리우스의 동생의 행동때문에 좌절될 운명이었다.  셋은 리비아/이집트를 다스리던 통치자로서 자신은 진정한 아틀란티스식 믿음의 최후의 잔존자이며, 자신의 주목적은 아틀라티스 제국을 재수립하는 것이라고 단정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