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지난 달 30일 “미국국가안보국(NSA)이 38개국 미국 주재 해외 대사관 그리고 유럽연합을 상대로 스파이행위를 했다"고 보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격분했다.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본색을 드러내주는 단면이라는 지적이 주였다.
NSA가 채택한 스파이 행위는 도청 그리고 사이버 공격 등 흔하고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대사관이 본국으로 문서를 전송할 때 사용하는 팩스에 도청장치를 설치했으며 컴퓨터 하드를 복사하는 사이버공격 시스템을 활용한 것이다.
"각국 정보기관들은 세상일을 더 잘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유럽 국가도 내가 아침 식사로 무엇을 먹는지, 내가 유럽 지도자를 만날 때 말한 요지가 무엇인지 관심을 갖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7월 1일 기자회견을 통해 한 말이다. NSA의 스파이사건에 대해 별스럽지 않다는 것을 대통령은 그렇게 밝혔다. 정보기관이라면 할 수 있는 통상적인 정보수집 정도라는 것이다. 존 케리 국무장관도 다르지 않았다. "이것은 특이한 사항이 아니다"고 말했다.
가디언의 보도는 전 중앙정보국(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32)이 넘겨준 NSA의 일급 비밀 문건에 기초하고 있다. 그 문건에 의하면 NSA는 유럽연합 대사관 등 38개의 주미대사관에 대해 '표적(target)'이라고 명명했다.
‘타겟’들은 다들 심하게 반발했다. 독일이 대표적이었다. 중앙일보 미주판인 코리아데일리 2일자에 의하면 자비네 로이토이서-슈나렌베르거 독일 법무장관은 "우리의 우방인 미국이 유럽을 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다. 언론 보도가 사실일 경우 이는 냉전 당시의 적대국에 대한 행위를 연상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연방검찰은 NSA를 기소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렇지만 NSA의 스파이사건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일이 하나 있다. NSA의 또 하나의 표적이 되어 도청당하고 사이버공격을 받았던 우리나라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배알도 없냐는 얘기가 나왔다. 이럴 때 국격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NSA의 스파이사건이 국격을 훼손하는 것으로 된다고 한다면 통합진보당이 미국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은 그 국격을 살리려는 노력으로 볼만했다.
"냉전시대 이후 미국이 전 세계 질서를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임무를 자임하면서 내세운 가치는 자유였지만 이번에 드러난 불법적인 정보수집 공작은 그 자유의 민낯을 똑똑히 드러낸 사건" 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개최된 진보당의 기자회견에서 김재연 의원이 한 발언이다. NSA의 스파이 행위의혹과 관련, 미국 정부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NSA의 스파이사건에 대해 진보당은 비열한 범죄행위이자 명백한 주권침해라고 규정했다. 진보당은 무엇보다도 NSA의 스파이사건에 대한 미국의 입장과 태도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미국은 자신들의 범죄행위를 진심으로 사과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다른 나라들도 하는 정보수집활동이라며 납득할 수 없는 무례한 태도, 국제사회의 무법자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 것이다.
진보당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미 정보기관의 불법도청 진상을 밝히고 한국 국민에게 진심어린 사과와 재발방지약속을 밝힐 것을 요구하며 이러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주미한국대사의 소환조치를 요구하고 국민과 함께 미국 규탄 투쟁에 돌입하겠다고 경고했다. 진보당은 아울러 "이번 사건의 피해국과 연대해 각국 정부로 하여금 미국을 국제사법위원회 제소케 하는 등 미국의 범죄행위에 대해 강력히 대처하겠다"고 덧붙였다. 진보당의 미국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인 입장이 미국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아울러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우리정부에 어떻게 작용하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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